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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31

2005/12/31 21:40 / My Life/Diary
장례식에 갈 때면,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유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장례 치룰 일도 걱정이고, 유언 쓸 일도 걱정이다. 오래 오래 사소서.

대한민국에서 하루에 수 만건의 장례가 치뤄지고 있을 생각을 하면 이상하다. 수 만건의 장례와 수 천만의 하객들이 365일 쉬지 않고 돌고 돈다.
2005/12/31 21:40 2005/12/31 21:40

2005.12.29

2005/12/29 00:52 / My Life/Diary
성적이 모두 나왔다.

국어정서법 B-
시창작실습 Ao
역사학입문 Bo
정치학개론 A+
보험론 B+
법학개론 Ao

국어정서법, 기말 과제물을 내지 않았다. B- 가 나온 것만 해도 다행이다. 내가 왜 국문과가 됐을까 싶다. 시창작실습, 그렇게 칭찬을 해놓고 Ao 를 주다니. 역시 믿을만한 표현은 아니었다. 역사학입문, 너무 한다…. 제일 열심히 한 과목인데 Bo 라니! 이것으로 역사학에 적성은 없다. 정치학개론, 정치학으로 전공을 바꿔볼까 싶다. 수업도, 교수님도, 정말 좋았고, 재밌었으며 유용했다. A+ 은 4학기 동안 처음 맞아보는 학점이다. 이런 학점도 있었구만. 보험론, 중간 고사에서 실수한 것 치고 B+ 라면 양호하다. 그래도 좀 아쉽다. 유용했으나 생각보다 도움이 되진 못했다. 법학개론, 빡쎄게 공부했는데 사실 문제 하나를 전혀 다른 내용으로 시험지 반을 채웠다. 출석 만발에 노력이 가상해서 준 것 같다. 그러나 법학 역시 내 적성은 아니다.

이로써 적성검사는 끝났다. 결론은 여전히 오리무중. 내 적성은 공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다고 다른 데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모르겠다. 아무 생각이 없다. 아이히만이 유태인 학살을 스스럼 없이 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무(無)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란다. 세상은 표상으로 존재하고 실상은 아무 것도 없으며 거기엔 어떤 의미도 없다….

물리학과 철학과 불교는 상당히 비슷한데(사실 모든 학문이 다 비슷하다. 아니, 다 똑같다고 할 수도 있다), 물리학에선, 세상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를 더 파고 들어가면 쿼크까지 가게 되고 쿼크를 더 파게 되면 또 뭐가 나올지 모른다. 문제는 우리는 그렇게 작은 소립자들을 볼 수 없지만 그것은 분명히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과 연관되는 법칙들. 세상이 돌아가는 방법. 상대성이론이니 열역학이니 양자론이니 하는 것들을 모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진정으로 어떤 모습인지를 알고자 하는 인간의 상상이다.

철학은 진실 탐구의 중심을 인간으로 끌고 온다. 사람이 왜 이 세상을 이렇게 저렇게 보는가. 우리가 쓰는 언어는 과연 내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가? 이 세상은 과연 인간이 살만한 곳인가?

불교(禪)는 모두를 포괄한다…. 사실 이 말은 물리학과 철학 그리고 다른 모든 학문에도 맞는 말이다. 물리학은 아직 원자를 쪼개고 있지만 좀 더 발전해 나가고 상상력이 나래를 펴서 더 이상 탐구할 게 없어질 때는 결국 이 원자가 '어디서 왔는가?', '왜 쿼크는 여기에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로 갈 수 밖에 없다. 신학은 이 문제를 신의 존재를 설정함으로써 아주 간편하게 처리해 버렸다. -- 비록 이는 명백한 순환오류지만 신학에 논리는 필요 없다. -- 철학 역시 결국엔 인간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하는 궁극적인 문제를 풀어야 한다. 불교 선의 집대성인 벽암록에 실린 화두 가운데 하나는, 萬法歸一 一歸何處. -- 만법이 모두 하나(원자와 인간)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 이다. 이것들은 모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들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는 보지도, 알지도 못한다. 우리가 우리 두뇌의 몇 프로 정도밖에 쓰고 있지 못하다는 말은 그래서 참이다. 두뇌는 상상 외에는 학습한 것 밖엔 떠올리지 못하지만 학습하는 것들은 모두 기존의 것들이다. 상상력 역시 기존의 학습에 상당한 근거를 두고 있기에 엄청난 제한을 받고 있다. 그렇기에 최초의 상대성이론, 양자론 등이 제안되었을 때 이해되지 못하고 반발을 샀던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하이젠베르크가 지적했듯이, 이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자신의 이해로 이루어질 수 있는데 인간 자신 역시 하나의 자연이기 때문이다. 만약 신이 (또는 그 무엇이라도) 자연을 어떤 요소와 원리로 만들었다면 인간 역시 그 모든것이 똑같이 적용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선 불교의 '오직 모를 뿐' 이라는 가르침과 통한다. 에머슨은, 내가 무엇을 이해했다는 것은 이미 나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며, 다만 그것을 다른 사람이 먼저 깨닫고 말했을 뿐이라고 했다. 결국 동서양과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모두가 어떤 하나의 점으로 모이는 것 같다. … 재밌다. 그러나 이 하나의 점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에 이르면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가 없게 된다. 그저 세상을 살 뿐이다.

샤워나 해야겠다.
2005/12/29 00:52 2005/12/29 00:52

적성검사

2005/12/26 21:40 / My Life/Diary
[검사소견]

당신은 감정대로 행동하거나 너무 시간을 길게 잡고 생각하는 타입이 아니고 적절히 감정과 이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검사소견]

독립지향적인 성격으로 자기 혼자서 결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의견을 남에게 분명히 하는 경향이 있어서 주위 사람과 잘 협조해 나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직업이 적합합니다.






[검사소견]

내향적인 성격으로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신의 행동에 너무 많은 시선이 집중되면 허둥지둥하며 어쩔 줄 모릅니다. 소란 피우는 것을 싫어해서 대부분의 경우 불평하기 보다는 참아버리고 맙니다. 인간 관계의 마찰을 피할 수 있는 '그늘에서 일하는 숨은 일꾼' 이라는 직책을 가장 좋아합니다. 또한 남에게 싫은 느낌을 주지 않도록 매우 신경을 쓰며, 남들로부터는 양심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검사소견]

감상적인 사람으로 매사를 깊이 생각하고 인간관계에서도 배려를 많이 합니다. 사물의 양면을 볼 수가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공평함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용서하는것 또한 잘 합니다. 예술에 대해서 감동하기도 하고, 직감적으로 반응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창조적인 일이나 세심한 배려로 타인의 고민을 해결하는 일에 적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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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소견]

당신은 온순한 성격으로 침착하고 유유자적합니다. 매사를 주의깊고, 신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결단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기한을 두고 재촉 받는일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느긋하고 침착하게 일을 하기 때문에 일을 훌륭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검사소견]

독립지향적인 성격으로 자기 혼자서 결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의견을 남에게 분명히 하는 경향이 있어서 주위 사람과 잘 협조해 나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직업이 적합합니다.






[검사소견]

내향적인 성격으로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신의 행동에 너무 많은 시선이 집중되면 허둥지둥하며 어쩔 줄 모릅니다. 소란 피우는 것을 싫어해서 대부분의 경우 불평하기 보다는 참아버리고 맙니다. 인간 관계의 마찰을 피할 수 있는 '그늘에서 일하는 숨은 일꾼' 이라는 직책을 가장 좋아합니다. 또한 남에게 싫은 느낌을 주지 않도록 매우 신경을 쓰며, 남들로부터는 양심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검사소견]

이상과 현실을 모두 고려하는 사람으로 둔감하거나 감정이 메마른 사람도 아니고, 비현실적이고 이상만 앞세우는 사람도 아닙니다. 때에 따라서는 현실을 고려한 판단을 하기도 하고 또 불공평함이나 감동적인 일에 반응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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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소견]

감정의 기복과 예민성 등을 측정하는 척도입니다. 높은 점수인 경우 정서가 안정되어 있어 주변상황에 크게 영향받지 않고 자신의 일을 편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낮은 점수인 경우 정서가 불안정해 타인이나 주변상황에 의해 쉽게 상처받거나 동요됩다. 극단적으로 낮은 점수는 불안장애나 적응장애를 시사합니다.

등급:중하

당신은 조급하고 근심걱정이 많고 푸념을 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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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소견]

당신은 현재 우울한 기분을 느끼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좀더 정밀한 심리검사를 받아보신 후 심리상담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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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소견]

정서적으로 불안해 하지 않으며 심한 긴장이나 불안,죄의식,우울을 느끼고 있지 않습니다. 다소 능동적이며 대부분의 상황에서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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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소견]

당신은 가능성을 추구하는 현실파입니다. 가능성 추구형으로 현실을 잘 인식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쳐다보는 신중성이 있습니다. 내심 자신에 차 있지만, 사람들과 충돌하면서까지 자기주장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타인에게 지배당하는 것을 싫어해 자신의 개성이나 생각을 살리도록 환경에 적용해 나갑니다. 자기의 가치는 타인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무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독자성을 발휘하면 조화로운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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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거...
2005/12/26 21:40 2005/12/26 21:40

그 사람.

2005/12/26 20:54 / My Life/Diary
그 사람 이름은 모른다.

4년전, 공익 시절,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말끔한 차림이었는데 구청에 일이 있어 온 듯한 모습이었다. 자못 친근한 척 굴면서 요즘 공익 생활이 힘들지 않느냐, 자기는 해군 장교 출신이며 자기 때는 줄빠따를 맞고 때리고 했다며 위로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말을 하곤 가버렸던 사람이다. 대머리인 그의 뒷통수를 보면서 아마 빠따를 하도 맞아서 머리가 다 빠져버렸겠거니 생각했다.

그를 다시 본 건 몇 주 뒤였다. 역시 횡단보도에서 였지만 그는 나를 알아 보지 못했다. 처음에는 나도 그를 알아 보지 못했는데,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어디서 열심히 굴렀는지 옷이 모두 얼룩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횡단보도를 마주쳐 지났지만 역시 날 알아보지 못했다.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다시 몇 주 뒤, 서류를 찾으러 1층 민원실에 내려갔다가 그를 다시 만났다. 수염은 덥수룩한데다 꼬였고, 얼굴은 새까맣게 탄 채로 거의 다 헤진 옷을 입고선 민원실 직원들을 향해 호통을 치고 있었다. " XX를 찾으러 왔다. XX는 나와 결혼할 상대다. "

이야기인즉슨, 원래 맛이 좀 간 사람인데 민원실의 직원을 짝사랑해서 잘 보이려고 항상 깔끔한 모습으로 구청에 와 추근대다가 그 여직원이 전근간 후로 완전히 사람이 거지꼴을 하고는 종종 찾아와 행패를 부린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 내가 구청을 떠날 때까지 그를 두 번 더 봤다. 한 번은 민원실에서 손님용 컴퓨터에 앉아 띄어쓰기도, 줄바꿈도 안 된 엄청난 분량의 메일을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지막 만남에서, 그는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역시 횡단보도에서 였는데, 슬쩍 내 곁으로 와선 담배 한 개피를 '요구' 했던 것이다. 나에겐 그것이 '구걸'로 느껴졌는데, 그의 외모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명명백백한 거지꼴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 개피를 꺼내 불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1/3 가량 남아있던 담배를 모두 그에게 주고는 쫓기듯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렇게 헤어진 후 6개월 이상 구청에 다녔지만,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다. 그가 애초에 정말 미친 사람이었는지, 여전히 구청에 찾아가 호통을 치고 수신자 불명의 이메일을 하루종일 쓰고 있는지 더 이상 알 수 없다.

갑자기 오늘따라 그가 보고 싶어진다….

그는 내 뒤를 따라 횡단보도를 건넜을까?
2005/12/26 20:54 2005/12/26 20:54

2005.12.26

2005/12/25 21:08 / My Life/Diary
25일이 지났다. 혹은,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실상, 25일도, 크리스마스도 아닌 그런 게 지났다. 아니, 지나지 않은 건지도 모르지. 단지 우리의 표현일 뿐이니까.

혼자가 좋다. 신경 쓸 필요도, 맞춰줄 필요도 없이, 내 마음가는 그대로. 집에 있을 때는 그 어느 때도, 그 어느 한 순간도 다른 이를 필요로 하지 않는. 홀로는 식사할 때가 가장 큰 곤욕이긴 하지만…. 이 쓸데없는 사회성.

외로움은 외로움 자체로 값지다.

인간은 사회를 벗어나 살 수 없다. 로빈슨 크루소? 본말이 전도 됐다. 인간이 있고 사회가 있다. 애초에 사회성에 길들여진 탓일뿐, 인간은 사회를 벗어나서 충분히 살 수 있다. 머리 속에 -- 아마도 화학물질로 -- 습득된 사회성이라는 회로를 끊어버리면 사회 속에 있어도 사회를 벗어난 듯 살 수 있을텐데! (밥도 혼자 잘 쳐먹고 말이지)

정리하자면, 나와 맞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며 괴로워 하며 사느니 차라리 혼자가 낫지 않은가? 하는 말이다. 알면 알 수록 실망만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알면 알 수록 미안해지는 사람, 알면 알 수록 지겨워지는 사람이 있다. 이는 모두 내 주관이므로 사회적 관점이나 타인의 관점, '보편타당한' 인식은 되지 못하겠지만, -- 이래서 사회성이 싫다는 것이다, 내가 보편타당함을 매일 같이 증명하며 살아야 하는 아이러니 -- 적어도 나에겐 무시 못할 문제가 된다. 변태된 결백성 쯤 될까?

쓰고 보니 마치 히키코모리의 자기고백쯤 되는 것 같은데, 문제는 정작 실생활 속의 나와는 다르다는 데 있다. 여기서 갈등은 시작 된다. 수 많은 소설가처럼, 나도 그저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거짓말을 찌끄릴 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에 분노하면서도 전연 변하지 않는다….

요즘 점점 무언가를 계속 잊고, 생각만큼 빨리 떠올리지 못한다. 한 쪽 콧구멍이 막혔고, 왼쪽 어깨부터 목줄기까지 올라 뻐근하다. 무언가 항상 목구멍에 맺혀 있다.

내 눈물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2005/12/25 21:08 2005/12/25 21:08

2005.12.23

2005/12/23 04:06 / My Life/Diary
너는 무얼 보고 있니. 너는 무얼 보고 있니. 너는 무얼 보고 있니. 눈이 온다. 가만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 보는 남자도 있다. 어둔 바탕에. 하얀 점들. 더 없이 선명하다. 점점이 쏟아져 박히는 눈. 눈물이 난다.
2005/12/23 04:06 2005/12/23 04:06

황우석 교수의 발표문 중에 논문 내용의 어느 부분에 '인위적 실수' 가 있었다고 한 발언을 들으면서 아리송해졌다. '조작' 이라는 말을 돌려서 말한 것이리라 내심 짐작을 했지만 그 표현에 있어 참으로 듣는 이를 호도하기에 탁월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다소 편향적인 시각에서 이 문구를 분석해보자면,


의도적(意圖的) 실수(失手)

의도(意圖) : 무엇을 이루려고 속으로 꾀함, 또는 그 계획.

-적(的) : 한국어에서 접미사 적은 '그런 부분이 많음' '그런 성질을 띔' 이라는 뜻.

실수(失手) : 부주의로 잘못을 저지름, 또는 그 잘못.


1)

거칠게나마 끼워 맞춰보면, " 무언가를 이루려고 다분히 꾀하여 부주의로 저지른 잘못. "

여기서 표현이 아리송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으니, 실수란 단어에 내포된 '부주의'란 의미 때문이었다. 부주의란 단어까지 의미를 파헤쳐서 해석해보면, " 무언가를 이루려고 다분히 꾀하여 주의하지 않고 저지른 잘못. " 이 말인즉슨, 무언가를 이루려고 꾀했는데 주의하지 않은 탓에 드러나고 말았다. -- 결국 조작을 하려고 애썼는데 주의하지 않은 탓에 조작이 탄로나고 말았다….

이 말을 황우석 교수가 당당한 표정에 강한 어조로 말을 하니 아리송할 수 밖에.



2)

위의 글은 의도적 장난이고(!), 실제로 실수란 말에는 의도적이란 수식어가 붙을 수가 없다. 실수는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기에 실수다. 의도적이라는 말에는 능동적인 의미가 깃들어있는데, 실수는 완전히 수동적인 것이다. 조작이라는 사실 자체를 다른 말로 꾸며보려고 장고 끝에 찾아낸 문구인 것 같으나 결론적으로 조작임을 더 확신하게 만들게 됐다….



3)

과연 황우석 교수는 어떤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을까? 아직 모든 것이 밝혀지지 않았다. 실제로 황우석 교수는 아무 잘못이 없을 수도 있다.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납득 가능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혹은, 모두가 예상치 못했던 어떤 실수에서 기인한 해프닝일 수도 있다. 어찌됐건, 세상의 모든 인식은 극과 극을 오갈 수 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사건이 돼 버렸다.
2005/12/19 19:34 2005/12/19 19:34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서면서, 마실거리를 찾아 부엌에 나서면 바닥에 바퀴벌레 한 마리가 평소에는 얼씬도 안 거리는 부엌 한복판에 가만히 있다. 열이면 열 모두 다 자란 큰 놈으로 도망가라고 주변을 발로 차 겁을 줘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죽었는가? 그렇지도 않다. 더듬이가 움직이고 가끔 날개를 움직거린다.

어쨌든 난 휴지로 돌돌 말아 짓눌러 휴지통에 넣는 게 일상이었는데, 오늘도 한 마리를 발견해 휴지통에 넣고 보니 개수대 밑에서 역시 다 자란 한 마리가 배를 뒤집고 죽어 있다. 바퀴벌레 약을 포기한 지 오래라 그걸 먹고 죽을 리도 없을진데. 그러고 보니 이게 전혀 범상치 않음이라.

별로 타당성이 없어 뵈는 가설을 세우자면, 많은 무리로는 발각될 염려도 크고, 먹이 문제도 있고, 바퀴벌레의 번식력은 놀라울 정도이므로, 먹이를 많이 먹는 성충은 유충을 위해 죽기를 결심하고 사살자들의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가서 잠자코 죽기를 기다리다가 발견되면 죽임을 당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대로 굶어 죽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제3자는 그 속사장을 전혀 알 수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으므로 그저 보이는대로 죽일 뿐이다. 한편으로는, 이처럼 서글픈 일도 없음이라.
2005/12/19 16:06 2005/12/19 16:06

2005.12.18

2005/12/18 19:31 / My Life/Diary
황우석 교수 이야기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집단화 된 대중의 광기는 말릴 수 없다. MBC를 겨누던 칼로 황우석을 겨누더니, 이제는 노성일을 겨눈다. 급작스럽고, 무비판적이며, 일정한 방향성이 결여되있다. 황우석 교수는 이해할 수 없다. 난자 채취 과정에서 이미 1차적으로 거짓말을 했고 -- 자진해서 공개하지 않았고 -- 논문 사진과 지문 검사 내용을 조작했으면서도 -- 자진해서 공개하지 않았고 -- 그에 대한 납득할 만한 이야기가 없다. 노성일 이사장도 이해할 수 없다. 논문 공저자가 연구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도 않았고, 사태 파악도 하지 못했다니! 세상의 많은 일들이 주먹구구로 이뤄진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경마는 패배. 맞추는데 돈은 되지 않는다.

시험이 모두 끝난 관계로 책과 지내야할 시간이 돌아왔다. 언제까지 이어질 지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겨울철에는 일감이 별로 없다.
2005/12/18 19:31 2005/12/18 19:31

2005.12.14

2005/12/14 23:56 / My Life/Diary
채우기 위해선 버려야 하듯이, 만나기 위해선 헤어져야 한다. 속에 담아 둔.


p.s; 에어메리를 샀다. 따뜻하다. 그러나 크다….
2005/12/14 23:56 2005/12/14 23:56

2005.12.12

2005/12/12 16:53 / My Life/Diary
보일러를 고쳤다. 16만 7천원. 난 6만원을 보탰다. 물이 새서 부품이 전부 부식되어 교체했단다.

그러나 내 방은 별로 따뜻하지 않다.

수요일에 역사학 시험이 있고, 금요일에는 법학개론과 보험론 시험이 있다. 한 학기가, 한 해가 끝나간다. 조올립다.
2005/12/12 16:53 2005/12/12 16:53

1965.1.8 전혜린

몹시 괴로워지거든 어느 일요일에 죽어버리자.
그때 당신이 돌아온다해도 나는 이미 살아있지 않으리라.
당신의 여인이여, 무서워할 것은 없노라.
다시는 당신을 볼 수 없을 지라도 나의 혼은 당신과 함께 있노라.
다시 사랑하면서 촛불은 거세게 희망과도 같이 타오르고 있으리라.
당신을 보기위해 나의 눈은 멍하니 떠 있을지도 모른다.



전혜린은, 몹시 괴로워지거든 어느 일요일에 죽어버리자. 나는, 겨울이면 죽고 싶다. 어느 겨울의 눈오는 일요일에 죽어버리자.

훈련소에 있을 때, 엄청난 눈보라가 쳐서, 모든 훈련이 중단되고 하루종일 눈을 쓸었다. 눈보라 속에서 치워도 치워도 치워지지 않는데 -- 그래 마치 시지프스처럼 --, 너무나 즐거웠다. 눈이 좋아서, 눈보라여서,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사방에 눈이 쌓여 있어서, 누구도 아무런 말 없이 바람 소리 속에서 눈만 눈만…. 그대로 서서 죽어버려도 하나도 슬프지 않겠다, 너무 행복하겠다, 어는 건 싫지만, 눈 사람이 된다면, 완벽한 죽음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나는 눈을 좋아한다.

일과 시간을 마치고 작업이 끝났을 때, 불도저가 올라왔다. 젠장, 불도저가 올 양이면 왜 우리에게 작업을 시킨거야, 웅성웅성. 그래도 여전히 눈보라. 내가 싫었던 건 더 이상 눈보라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 아마도 죽음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삶 자체는 싫다. 어짜피 죽을, 삶 자체는 싫다. 그러나 눈보라처럼 펼쳐진 세상, 이 세상을 떠나는 건 괴로운 일이다.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봐라, 천상병도 삶이 아름답다 말하지 않는다. 세상이 아름다울 뿐. 삶 자체는….
2005/12/11 20:39 2005/12/11 20:39

2005.12.11

2005/12/11 20:26 / My Life/Diary
보일러가 망가졌다. 대충 살펴보니 온도 센서쪽이 맛이 간 듯하다. 나를 비롯한 한심한 이 집 식구들은 별 관심이 없다. (돈이 없으면 관심도 없다.) 움직임 없이, 홀로 외로운 심사에 골몰하는 것들은, 사실 모두 쓰레기다. 홀로 열을 내 썩어들어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집안은 완전히 쓰레기 집안이다. 엄마가 구석에 쳐박혀 있던 전기 스티머를 꺼내서 거실에 틀어 놓았다. 따뜻한 지 모르겠다. 양말 신고, 코트 입고 자야겠다. -- 무엇이든, 방식보다 의미가 중요한 법 아니던가? -- 옷을 껴입고 있으면 지내는데 부족하지 않은데, 내 걱정은 내일 머리 감을 일이다. 나도 참 쓰레기다. 겨울에 더 맹렬히 썩는.

… 라면 그릇에 물을 끓여 써야겠다.



論語/顔淵.11

齊景公問政於孔子.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물었다.
孔子對曰
공자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君君 臣臣.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父父 子子.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하는 것이다.


공자는 꼭 안 될 말만 멋드러지게 한다.
2005/12/11 20:26 2005/12/11 20:26

2005.11.27

2005/11/27 19:49 / My Life/Diary
결국 당신도 늙는구나.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2005/11/27 19:49 2005/11/27 19:49

2005.11.23

2005/11/23 23:27 / My Life/Diary
누구에게나 인생의 전환점이 있다. 아니, 전환점이 아니더래도 그 순간 이전의 기억은 모두 사라지는 그런 순간이 있다. 나에게 그런 순간이란 한 사람으로 귀결된다. 그 사람 이전의 모든 기억은 그 사람으로 수렴되고, 그 사람을 떠올리기 전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사람을 잊게 되면 내 수 년간의 기억 역시 사라지는 그런 사람. 누구에게나 인생에 그런 사람은 있다.

나는 차마 그 사람을 대면할 수 없다. 마치 도플갱어(Doppelganger) 같은, 만나게 되면 둘 중의 하나는 죽게되는, 내 현실은 사라지고 과거의 기억이 나를 괴롭히는 상태가 되고 마는, 너무나 만나고 싶지만 너무나 만날 수 없는.

인생은 참 슬프다. 이건 절대 진리다. 그러나, 슬프게 살 수는 없다. 슬픈 인생을 슬프게 살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니다. 세상은 가만히 있어도 날 슬프게 만들테니까. 슬픈 인생을 슬프지 않게 사는 것, 그것만이 내 존재의 이유를 말해준다. 그렇지 않다면 죽는 것과 다름 없다.

그러나 가끔은 세상에 날 맡기고 그저 흐르고 싶다. 어느 둔치에 걸려 그대로 썩고 싶다. 그게 나쁜 것이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 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2005/11/23 23:27 2005/11/23 23:27

2005.11.21

2005/11/21 21:28 / My Life/Diary
세상 사는 데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유쾌한 기분으로만 살 수는 없다. 내가 의도치 않게, 혹은 상대방이 의도치 않게 서로의 마음을 상할 수 있다. 대개의 경우 그것은 말로써 촉발된다.

헝클어진 문제의 시작을 따라가보면, 내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측은해져야 하고 무척이나 언짢해져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들은 꺼지지 않는 낡은 영사기처럼 대가리속에 떠올라 생각을 교란시킨다. 화가 났다, 측은해졌다, 우스워졌다… 조울증 걸린 미친 놈처럼 정신 둘 곳을 찾지 못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스스로 조절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이해하기도 어렵다. 언제나 그렇듯, 선택은 세 가지다 ⅰ) 나를 접고, 숙이고 상대방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절대 순수히 받아들이지 않는다--ⅱ) 나와 제대로 맞는 이와만 교류하는 것.--평생에 걸쳐 두 명을 만날 수 있었다.-- ⅲ) 오롯이 홀로 지내는 것.

인간관계란 거미줄처럼 가늘어서 끊기면 바람에 날려 어디론가 사라져서 다시는 찾을 수 없다. 그리고 망각은 기억보다 막강하기에 관계의 흔적조차 떠오르지 않게 한다.

내게 가장 편한 건 홀로 지내는 것, 그러나 외로움에의 두려움은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게 만든다. 나란 존재가--혹은 인간 존재가-- 본질적으로 나약하게 태어난데서 연유하는 태생적 한계의 위력. 물론, 이게 순전히 나의 변명일 수 있다. 자기 기만이나 자기 합리화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아무리 이성적으로 나를 분석하여 해답을 알게된다한들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거라는 사실이다. 정신분석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의 정신병이 결코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다름 아니다.
2005/11/21 21:28 2005/11/21 21:28

2005.11.17

2005/11/17 22:25 / My Life/Diary
학교 문예창작학과 초청으로 소설가 K가 왔다. 근래 어느 대학에 출강한다는 얘기와 함께 자기는 시를 쓰고 싶었지만 소설을 쓰게 됐다는 얘기를 하면서, 그래서인지 자신은 제목에 꽤 심혈을 기울인다고 했다. 지난번 국어국문학과 강연회의 소설가 P가 했던 말과 똑같았다. 그런데 실상 제목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자신이 하는 문학을 '순수' 문학이라면서 고정독자 만오천명을 위해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땐 헛웃음만 나왔다. 요즘 학생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쉬운 소설' 부터 친구들에게 권하라는 말에선 어처구니가 없었다. 소설가 J가 D신문에 '한국 소설이 재미없다고요?' 라고 쓴 칼럼을 읽고 느꼈던 그 어처구니 없음을 그대로 K에게서 느낄 줄이야!

이 땅의 소설가들은 일반 독자들이 언제나 그들의 지고지순한 문학적 성과를 받들어줘야하고, 그들의 소설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은 수준이 낮은 천민 대중으로 밖엔 생각지 못한다. 문단이라는 좁아터진 테두리 안에서 비평가와 작가가 그들만의 세계에서 짝짝꿍하며 서로 띄워주는 이 비정상적인 나라에서 독자는 하위층으로 계급지어졌다.

현대의 고전이라 불리는 문학은 결코 그 시대의 독자들과 괴리되어있지 않았다. 그들이 읽힌 이유는 그만큼 쉬웠기 때문이고, 그만큼 감동적이었기 때문이고 그만큼 재밌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이 현학적이고 알아먹지도 못할 평론이 없어도 문학은 충분히 평가 받았다.

수준 낮은 독자 핑계, 감각적인 영화 핑계, 퇴폐해가는 사회 핑계…. 도대체 변명거리는 어디서 그렇게들 갖고 오는지. 소설가 답다. '순수' 문학? 요즘은 '순수' 문학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고? 아주 웃기고 자빠졌네. 자신들이 쓴 소설이나 다시 읽어보고 똑바로 본인의 주제를 아는 게 선행될 일이 아닐까.
2005/11/17 22:25 2005/11/17 22:25

2005.11.09

2005/11/09 23:20 / My Life/Diary
기본적으로, 삶은 슬프다. --갑자기 어떤 비평가의, 요즘 작가들(90년대)이 쉼표를 너무 남발해서 문장을 망가뜨린다는 요지의 글을 본 게 생각 난다.-- 그래도 나는, 삶은 슬프지 않다고, 죽을 때까지 주장하련다.
2005/11/09 23:20 2005/11/09 23:20

2005.11.07

2005/11/07 02:00 / My Life/Diary
지방에서 친구가 올라와 간만에 모여 토요일 저녁부터 마시기 시작해서 일요일 새벽까지 먹다가 도저히 더 먹질 못하고 모두 게워냈다. 정답이 없는 돌고 도는 얘기로 쓸데없는 논쟁 때문에 더 역했던지 자리가 파하고도 잠을 못 자 다시 게워냈다. 오랜만이라는 것과 이상하게 괴롭지 않았다는 것.

아침을 먹고 집에 오니 13시. 샤워를 하고 잠에 들었다 깨어나보니 새벽 2시다. 온통 막막하다.
2005/11/07 02:00 2005/11/07 02:00

2005.11.04

2005/11/04 04:03 / My Life/Diary
바퀴벌레와 모기 때문에 골치 아프다. 11월인데 그렇게 춥지 않고, 방안은 더더욱 춥지 않으니 이들이 활개치기 딱 좋다. 세워서 꽂아놓은 책더미의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똥을 싸놓으니 이것 참 난감한 일이다. 그래서 오늘 책을 모두 눕혀 놓았는데 과연 효과가 있을런지… 책장을 하나 더 사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다.

바퀴벌레와 모기는 먹이가 있는 곳에 모이는 습성이 있다. 책장 가까이 쓰레기통과 내 간식거리가 있고 (바퀴벌레) 나는 집에서 대부분 내 방에 있다. (모기) 사람들은 돈이 있는 곳에 모이는 습성이 있는데 성욕, 식욕 등의 원초적, 추상적 욕망들이 돈이라는 개체를 통해 객관적인 모습으로 드러나는 게 아닐까 싶다. '돈벌레' 라는 말을 누가 만들어 냈는지 너무나 탁월하다.


다시 돌아온 환절기 덕분에 비염이 극성이다. 계절이 바뀌는 걸 누구보다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단점에 비해 너무 초라한 장점이 있긴 하다. 곧 겨울이다.


시창작 강의, 시인 K 교수가 몇주 전 실습시를 고쳐 써오라더니 어제 따로 불러내 내가 '하늘이 내려주신 시적 재능'을 타고 났으니 더 열심히 써보라고 격려했다. 그 자리에선 웃으며 감사하다고 하는 수 밖에 없었으나 돌아서니 혼란스러워졌다. 첫째로, 하늘이… 같은 찬사는 너무 과해서 진실성이 느껴지질 않는다. 더욱이 워낙 칭찬을 좋아하는 분이니까. 둘째로, 이미 시인이 되기에는 너무 늙었다. 문학은, 소위 천재의 문학이 아니면 --적어도 나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셋째로, 경영학적인 삶(?)과 시적인 삶(?)은 나에게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성적이고 규칙적인 삶과 감정적이고 무규칙적인 삶이 공존할 수 있겠는가? (둘다 자신없지만) 시쓰기는 무척 비효율적이고, 고통스런 부끄러움이다. 가난한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가 좋다. 독살과 살육의 차이를 나는 모른다.


방금 바퀴벌레 한 마리를 죽였다. 애를 배고 있었다.

가끔 생각해보지만 어느 외딴 섬에 바퀴벌레 월드(Roach World)를 만들어서 세상 모든 바퀴벌레들이 그들끼리 잘 먹고 잘 살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다. 그러다가 문득 이게 바로 히틀러의 유태인 척결과 다를 게 뭐냐는 생각을 한다.
2005/11/04 04:03 2005/11/04 04:03

2005.10.24

2005/10/24 04:56 / My Life/Diary
마찰을 일으키며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타인과 의견이 대립할 때의 '존중'이란 무조건 수용이 아닌 옳고 그름과 상대의 의견이 가진 합리성을 판단하는 조건부 수용이 되어야 한다. 만약 의견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논쟁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 역시 확립된다. 다만 문제점은 그 누구도 설득 당하기를 원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이 틀렸다는 것을 쉬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데 있다. 급기야 상대방의 말을 왜곡하고, 부분을 찝어내 말꼬리를 잡기 시작하면 그것은 더 이상 논쟁이 아닌 유치한 애들 놀음이 되어버린다. --비록 '어른은 나이먹은 아이에 불과하다' 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결국 서로가 서로의 적이 되버릴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논쟁은 정신력, 힘, 시간을 모두 소진시킨다. 따지고 보면 누더기가 된 성취감과 자기 논리력의 확인, 좀 더 완벽해진 의견의 확립을 얻게 되는데 이게 과연 잃는 것들과 비교해 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일까? 웃기는 건 나 스스로는 논쟁의 회피를 떳떳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서서히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회피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어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런 사실 자체가 또 싫은 탓에 간간이 논쟁을 벌이게 된다.. 내가 무슨 진리의 투사이며 오류 제거자인양…. 다치바나 다카시는 소시적에 많은 논쟁을 하고 논쟁에서 깨져보고 하는 것이 훗날 도움이 된다고 했는데, 이기든 지든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여 유쾌하지 못하다.


저번, 이번 주 경마는 완전 꽝이다. 공부를 더 해야겠다. 아니면 아예 관두고 시간을 확보하던지. 내 인생의 마스터 플랜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에 판단이 서질 않는다!


생활의 규율이 필요하다. 계획성 있게 살아야 하고, 수익과 지출에 대한 통제도 필요하다. 급박한 돈 문제가 사라지자 필요 없는 곳에 돈을 너무 헤프게 쓰는 경향이 있다. 식사량도 조절해야 한다. 배가 나온다. 운동도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너무 무기력하다. 그 어떤 열정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5/10/24 04:56 2005/10/24 04:56

프리드리히 니체,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도덕적 감각의 역사에 대하여>



102

'인간은 항상 선하게 행동한다' -- 자연이 뇌우를 내려 우리를 젖게 했다고 해서 자연을 비도덕적이라고 탓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해를 끼치는 사람을 비도덕적이라고 부르는가? 그 이유는 우리가 후자의 경우네는 자의적으로 나타나는 자유의지를, 전자의 경우에는 필연성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구별은 오류이다. 또한 우리는 경우에 따라서는 의도적으로 해를 끼치는 것에 대해 비도덕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간은 모기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모기를 아무 거리낌 없이 의도적으로 죽이고, 우리 자신과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 범죄자를 의도적으로 처벌하고 그에게 고통을 준다. 첫번쨰 경우는 개인이 자기 보존을 위해서 또는 자신이 불쾌해지지 않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자가 되며, 두 번째 경우에는 국가가 그러하다. 모든 도덕은 의도적으로 해를 가하는 것을 정당방위로 인정한다 : 단 그것이 자기 보존의 문제가 되는 경우라면! 인간이 인간에 대해 가하는 모든 악행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관점으로도 충분하다 :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 쾌감을 원하고 불쾌감을 없애고자 한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보존의 문제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말은 타당하다 : 인간은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선을 행한다. 즉 인간은 지성의 정도와 이성의 갖가지 척도에 따라 언제나 자신에게 선하게(유리하게) 보이는 것을 행한다.



모기를 살육하는 밤이 계속되는 가운데, 문득 보게 된 니체의 글귀.

<김현 문학전집>과 <니체 전집>을 사고 싶다. 둘이 합하면 60만원~ … 로또가 되면 사야겠다.
2005/10/17 16:29 2005/10/1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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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4

2005/10/14 01:41 / My Life/Diary
나이 먹으니까, 아니 나이 먹었다면 너무 건방지니까, 세월이 좀 지나지까… 술 쳐먹고 주사도 못 부리겠고, 맛탱이 갈 때까지 취해서 오바이트도 못 하겠다. 억지로 술 먹이는 사람도 없어졌고, 같이 먹고 죽자는 사람도 없어졌다. 나도 다음날 겔겔 댈 생각이 앞서고… 이러다 언젠간 오바이트의 추억을 주제로 글을 써야 할 날이 올 지도 모르지.

3주전 갖고 온 일감을 여직 처리 못하고 있고, 이제 곧 시험기간인데 준비는 별로 되있지 않고, 강의 시간에 졸리는 건 여전하다. 좀 더 독한 커피가 필요한 듯. 혹은 대학에 대한 좀 더 강한 당위가.

말 그대로 일상이 심심하게 지나가는데, 그래서 그런가 사람이 너무 나이브해져. 머리통은 좀 복잡하고, 밥이 늘자 잠도 늘었고. 게으름은 하늘을 찌르는데 문득 곧 26살이라니까. 너무 나이를 많이 쳐먹은 것 같아. 뭐야! 난 여직 20살 겨울 이후의 기억은 없는데… 이 나이를 어떻게 오바이트로 게워낼 수는 없는걸까. 쌓이는 추억으로 글을 쓰는 건 언제나 참 서글픈 일인데 말이야.

눈이나 왔으면 좋겠어.
2005/10/14 01:41 2005/10/14 01:41

2005.11.12

2005/10/12 01:36 / My Life/Diary
거짓말 안 하고, 모기에 30대는 물린 것 같다. 전자모기향 패드가 다 떨어져서 더 살려다가 어짜피 날이 추워졌으니 조금만 더 버티자 하고 버텼는데 모기가 이렇게 극성을 부릴 줄이야! 어제는 손으로만 네마리를 잡았다. 개 중에는 피 터뜨리며 죽는 놈도 있었는데 그 피가 내 피인지 그 놈 피인지… 문득 약자에 대한 살생은 스스럼 없이 자행된다는 진리(?)가 퍼뜩!

고3 때 썼던 일기장 발견~ 거의 한 달에 한 번 쓰나마나 한 건데, 재밌는건 그 때랑 지금이랑 달라진 게 거의 없다는 사실. 참 우울한 사실.

오랜만에 No Doubt의 Don't Speak 를 듣는다. We used to be together~

전등 수명이 다 됐는지 깜빡이기 시작한다. 이런 뒈질. 야밤에 깜빡이면….
2005/10/12 01:36 2005/10/12 01:36

2005.10.09

2005/10/09 23:40 / My Life/Diary
만남 뒤의 허무가 두렵다. 삶 뒤의 죽음, 그 후에 찾아오는 허무, 그 허무의 두께가 두렵다. 인연의 고통. 인연은 눈물 나는 일. 눈물로 뜨거운 심장을 적시는 일.

감상에 빠지지 말자.

내 온 몸을 흔드는 만남 뒤의 그 축축한 허무.
2005/10/09 23:40 2005/10/09 23:40

2005.10.08

2005/10/08 22:14 / My Life/Diary
모기 침에는 수면제 성분이 포함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2005/10/08 22:14 2005/10/08 22:14

2005.10.04

2005/10/04 03:13 / My Life/Diary
이기적인 나에 놀란다.
인간 관계의 끈이 한없이 가늘고 위태하다는 사실에 놀란다.


우습게 봤던 일감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기한내에 끝낼 수 없을 것 같다. 연속된 즐거운 휴일, 책 한 권 읽지 못했다. 너무 게을러서.
2005/10/04 03:13 2005/10/04 03:13

2005.10.03

2005/10/03 01:39 / My Life/Diary
세상을 살다보면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몇 가지는 포기해야 할 상황에 처한다.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는 법인데, 나는 모든 걸 다하고 싶다. 버릴 줄 알아야 얻는 법인데, 나는 버리는 데 미숙하다. 그래도 많은 것을 포기하고 그럼으로써 얻어 왔다.

어쨌든 대부분의 것을 안고가는 -- 요즘의 '전문화' 와는 전혀 거리가 먼 -- 형국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겐 절대로 안고 갈 수 없는 몇 가지는 꼭 있다.

뭐든지 다 때가 있는 법. 오늘 포기해버린 무언가가 다음엔 후회로 다가 올 지도 모른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수 많은 포기 가운데 언제나 날 괴롭히는 포기가 있으니까. 이건 frequency의 문제가 아닌, severity의 문제므로.
2005/10/03 01:39 2005/10/03 01:39

2005.09.30

2005/09/30 03:41 / My Life/Diary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점점이 내리는 가을비. 스피커에서는 김광석의 노래. 산더미처럼 쌓인 일감.

나는 내 한 몸 부지하기도 버겁다. 읊조림.
2005/09/30 03:41 2005/09/30 03:41




거짓말이라도 좋아…
2005/09/25 02:07 2005/09/25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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