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서 겨울로 넘어서면서, 마실거리를 찾아 부엌에 나서면 바닥에 바퀴벌레 한 마리가 평소에는 얼씬도 안 거리는 부엌 한복판에 가만히 있다. 열이면 열 모두 다 자란 큰 놈으로 도망가라고 주변을 발로 차 겁을 줘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죽었는가? 그렇지도 않다. 더듬이가 움직이고 가끔 날개를 움직거린다.

어쨌든 난 휴지로 돌돌 말아 짓눌러 휴지통에 넣는 게 일상이었는데, 오늘도 한 마리를 발견해 휴지통에 넣고 보니 개수대 밑에서 역시 다 자란 한 마리가 배를 뒤집고 죽어 있다. 바퀴벌레 약을 포기한 지 오래라 그걸 먹고 죽을 리도 없을진데. 그러고 보니 이게 전혀 범상치 않음이라.

별로 타당성이 없어 뵈는 가설을 세우자면, 많은 무리로는 발각될 염려도 크고, 먹이 문제도 있고, 바퀴벌레의 번식력은 놀라울 정도이므로, 먹이를 많이 먹는 성충은 유충을 위해 죽기를 결심하고 사살자들의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가서 잠자코 죽기를 기다리다가 발견되면 죽임을 당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대로 굶어 죽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제3자는 그 속사장을 전혀 알 수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으므로 그저 보이는대로 죽일 뿐이다. 한편으로는, 이처럼 서글픈 일도 없음이라.
2005/12/19 16:06 2005/12/1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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