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5 Articles, Search Results for 'My Life/Diary'
- 2011/05/29 남아있는 나날 (The Remains Of The Day,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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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1/19 소년 소녀를 만나다 (Boy Meets Girl,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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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1/03 2011.01.03
- 2011/01/01 나쁜 피 (Mauvais Sang, 1986) (2)
- 2011/01/01 2011.01.01
- 2010/12/31 2010.12.31 (2)
예전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의 극지 탐험가들이 부딪히는 최대의 도전은 ‘아침에 제때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빙판 위에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아침에 제때 일어나는 것이라고. 슬리핑백에 누워 있는 개운치 못한 즐거움과 일어나는 데 대한 두려움은 전형적인 알프레드 히치콕표 공포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쾅”하는 소리 자체에 긴장하는 게 아니라 “쾅”하는 소리가 날까봐 긴장하는 것이다. 일어나는 것도 물론 고통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안 좋은 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두려워하며 누워 있는 것이다. 잘 만든 공포영화에서도 그렇듯이 가장 큰 위험은 뭔가를 미루는 데 있다. 나는 일어나야만 한다. 단순히 5분을 미루고 5시간을 미루고의 문제가 아니다. 슬리핑백에서 나오는 것은 원정에서 가장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 이후로는 대체로 쉽다. 대개 내가 두려워한 일들도 (그것이 종상이든 물집이든 피로든) 일단 시작하고 나면 두려워했던 만큼 나쁘지 않다. 사실은 그 반대일 때가 많아서 도전을 만나면 그런 것들은 무의미해진다. 게다가 일어나지 않고 계속 자면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어디에 있든, 전날 밤에 무엇을 했든 여전히 가장 중요한 일은 제때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나는 다르게 사는 사람도 많이 알고 있으며,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자려다가는 가정생활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고 직장에서 야망을 실현하기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던 버릇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으로 바꿨다. 그럴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나는 ‘극한의 상황’에서 규율을 익혔다. 날씨가 추워지면 스키 잠금 고리의 수리를 미루고 싶어지고, 항해 도중 밤에 갑자기 바람이 일면 갑판으로 올라가 키를 잡기보다는 그대로 누워 있고 싶어진다. 배가 고프면 내일 먹을 식량을 조금 떼어먹기가 얼마나 쉬운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집에서라면 그대로 누워 자버리거나 기분 나쁜 전화를 미룬다고 세상이 뒤집히지 않지만, 광풍이 휘몰아치는 바깥세상에서는 자신을 속이려고 할 때마다 즉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확실히 나는 집에서보다 광활한 바깥세상의 경험을 통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게다가 일단 거치적거리는 일을 먼저 해치웠을 때 그날 하루가 더 상쾌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세계 최초로 남극점에 도착했던 로알드 아문센은 “슬리핑백에서 나오고 싶지 않은 이유가 가장 그럴듯한 날이, 하루를 시작하고 나면 가장 일이 잘 풀리는 날”이라고 했다. 지난 겨울에 나는 아내와 코펜하겐에 있었다. 월요일 아침, 우리는 노르웨이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기 위해 시청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날씨는 매섭게 추웠고, 그 시간이면 늘 그렇듯이 기차역 바로 뒤에는 노숙인 몇 명이 웅크린 채 서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덴마크 판 <빅이슈>지를 팔러 다가왔다.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판매가격의 50퍼센트가 그것을 파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잡지였다. 우리는 시간이 많았던 터라 거기에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온몸이 꽁꽁 얼어 있었고 자신을 잡아주지 못한 사회를 원망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유머가 넘쳤다. 그와 비교하자면 나는 세상에 속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와 완전히 다른 사람을 살고 있음에도 나는 ‘사람은 전부 다 비슷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떠올렸다. 나는 결국 그 사람이 파는 잡지를 샀다. 첫 페이지에 꿈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꿈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럼에도 꿈을 말로 표현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설문 대상자인 노숙인 중독자들은 대부분 꿈이 없다고 답했다. 나 역시 가끔 내 꿈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가 힘들 때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잔인하게도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요. 당신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생각해보세요.” ㅡ 엘링 카게,『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pp.67~69, pp.243~244 |
20 대 1
ㅡ 장 도미니크 보비,『잠수복과 나비』
ㆍ그래, 그거야. 나는 이제서야 그 말(馬)의 이름을 생각해 냈다. 미트라 그랑샹(Mithra-Grandchamp)이었다.
뱅상은 지금쯤 아베빌 근처를 지나고 있을 것이다. 파리에서 자동차를 타고 오면, 바로 이 부근에 도착할 무렵부터 여정이 길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차도 적고 얼마든지 속력을 낼 수 있는 고속도로가 끝나고 2차선 국도로 접어들면, 자동차와 트럭의 행렬이 끝도 없이 꼬리를 문다.
ㆍ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러니까 지금부터 10년 전, 뱅상과 나는 다른 몇몇 동지들과 함께 지금은 없어진 한 조간 신문을 발행하는 엄청난 행운을 누리고 있었다. 소유주는 언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실업가로서, 생긴 지 5,6년 된 이 신문을 탐내는 정치계-금융계의 음흉스런 모의가 한창 진행중이던 시기에, 대담하게도 파리를 통틀어 가장 젊은 팀에게 자신이 탄생시킨 신문을 맡기는 일대 모험을 감행했다. 우리도 모르게 그는 이 싸움에 우리와 더불어 자기의 마지막 카드를 던졌으며, 우리는 이 모험에 기꺼이 우리 자신을 1백 퍼센트, 아니 1천 퍼센트 투자했다.
뱅상은 이제 사거리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사거리에서는 루앙과 크로투아 방향을 왼쪽 옆으로 끼고 베르크 방향으로 들어선 다음, 크고 작은 시가지들은 지나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 바람개비 같은 사거리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는 수가 많다. 뱅상은 벌써 여러 차례 나를 보러 왔으니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그는 뛰어난 방향 감각에다가 지나칠 정도로 변함없는 우정까지 겸비했다.
ㆍ그러므로 우리는 노상 일에 쫓겼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주말은 물론 때로는 밤샘도 불사해 가며 다섯 명이서 열두 명이 할 일을 유쾌한 기분으로 해치우곤 했다. 뱅상은 1주일 동안 거창한 아이디어만도 열 개 정도는 제안했다. 이 중 세 개는 뛰어나고 다섯 개 정도는 쓸 만했으며, 나머지 두 개는 황당한 것들이었다.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당장 실행에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뱅상의 급한 성미를 누그러뜨리도록 유도하면서, 그가 내놓은 아이디어 중에서 취사 선택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도 뱅상이 운전석에 앉아 발을 동동 구르며 토목 공사를 있는 대로 저주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2년 후에는 베르크까지 고속도로가 연결될 테지만, 현재로선 캠핑 트레일러 틈바구니에 끼여 감속으로 우회해야 하는 공사장에 불과하다.
ㆍ사실상 우리는 거의 헤어진 적이 없었다. 신문과 더불어 함께 먹고, 마시고, 자고, 연애했으며, 신문을 위해 함께 꿈을 꾸었다. 그날 오후에 누가 경마 이야기를 꺼냈더라? 화창한 겨울 일요일이었다. 기온은 차도 하늘은 푸르고 습기라곤 없는 청명한 날씨였다. 뱅센 숲에서는 경마가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둘 다 경마광은 아니었지만, 마침 경마 칼럼 담당자가 경마장 식당에서 우리에게 식사를 한턱 낸다고 하면서, 경마라는 신비스런 세계에 입문시켜 주겠노라고 장담했다. 그 사람의 말을 들어 보면 경마란 확실한 투자이며,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미트라 그랑샹이 20 대 1의 배당률로 출발하므로, 웬만큼 쩨쩨한 가장들의 재테크 방법보다 훨씬 짭짤한 재미를 볼 수 있으리라고 점쳤다.
뱅상은 이제 베르크로 들어서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이곳에 무얼 하러 왔는지 한동안 자문할 것이다.
ㆍ우리는 경마장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식당에서 흥겹게 점심을 먹었다. 깡패와 포주 및 불법체류자 외에도, 경마장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불량배들이 일요일이라 성장을 하고 식당에들 앉아 있었다. 배불리 먹고 흡족한 상태에서 우리는 길다란 시가를 입에 물고 열심히 빨아댔다. 범죄가 무성하게 피어오르는 이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네번째 경주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바닷가에 도착한 뱅상은 방향을 꺾어 넓은 광장을 가로지른다. 여름 휴가를 즐기는 만원 인파 속에서, 베르크의 텅 비고 얼어붙은 겨울 풍경을 찾아볼 수는 없다.
ㆍ뱅센 숲에서 우리는 너무 오래 기다린 나머지, 결국 경주가 시작한 뒤에도 마권을 사지 못했다. 내가 미처 우리 편집국 직원들이 내게 맡긴 돈을 지갑에서 꺼내기도 전에 창구가 닫혀 버렸기 때문이었다. 함구무언하라는 지시에도 불구하고 미트라 그랑샹이라는 이름이 편집국 전체에 퍼졌으며,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다크호스 미트라 그랑샹은 소문을 거치는 사이에 어느새 누구나 판돈을 걸고 싶어하는 전설적인 경주마로 둔갑해 버렸다. 그러니 이제 남은 거라고는 직접 경주를 관람하면서 이기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커브에서 미트라 그랑샹은 선두로 나서기 시작하더니, 커브를 벗어나면서부터는 다섯 걸음쯤을 앞섰다. 우리는 그 말이 추적자를 40미터 가량이나 제치고, 마치 꿈 속에서처럼 결승선에 유유히 들어서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전투기 같은 돌격이었다. 편집국 TV 수상기 앞에서는 모두들 기뻐 날뛸 것이 뻔했다.
뱅상의 자동차가 병원 주차장으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시다. 방문객들이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누르고, 나와 세상을 갈라 놓는 마지막 몇 발자국을 옮겨 놓기 위해서 특별히 용기를 내야 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유리로 된 자동문, 7번 승강기, 그리고 마침내 119호 병실에 이르는 짧은 복도. 반쯤 여린 문틈으로는, 마치 운명의 신이 삶의 낭떠러지에 던져 버린듯 드러누워 있는 환자들만 보인다. 이런 광경을 접하면 숨이 막힌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 병실에 도착해서 울컥 목이 메이고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려지지 않으려면, 다른 중환자들의 병동을 거쳐 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마침에 내 병실에 도착한 사람들의 표정은, 산소 호흡기 없이 깊은 물 속에 잠긴 잠수부의 표정과 흡사하다. 병실 문 앞까지 왔다가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그대로 발길을 돌려 파리로 돌아가 버린 사람들도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뱅상은 노크를 한 후, 말없이 병실로 들어선다.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 이제는 하도 익숙해진 나머지, 나는 뱅상의 얼굴 위로 얼핏 스쳐가는 두려움의 기색을 거의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남들이 두려운 기색을 보인다 하더라도 나 자신이 처음보다 훨씬 초연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마비로 위축된 표저이지만, 나는 그대로 환대의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한다. 찡그림에 가까운 나의 미소에 대한 답례로 뱅상은 내 이마에 입을 맞춘다. 그는 늘 변함이 없다. 붉은 머리털, 찌푸린 얼굴, 뒤뚱거리는 뚱뚱한 몸집의 뱅상은 마치 웨일스 지방 노동조합원이 갱내 가스 폭발 사고로 부상당한 동료를 문병 온듯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반쯤 긴장이 풀어진 뱅상은 건장-연약 체급의 권투 선수처럼 다가온다. 미트라 그랑샹의 치명적인 승리에 대하여, 그는 “머저리들, 머저리들 같으니. 신문사에서는 우리를 잡아먹으려 들겠지”라고만 말했다. 그가 늘 즐겨 쓰는 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미트라 그랑샹의 일화를 잊고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남으로써 나는 이중으로 고통스럽다. 돌이킬 수 없이 지나간 과거에 대한 향수와, 특히 놓쳐 버린 기회에 대한 떨쳐 버리기 어려운 미련이라는 두 가지 감정 때문이다. 미트라 그랑샹은 사랑할 줄 몰라서 떠나보내야 했던 여인들일 수도 있고, 잡을 줄 몰라서 흘려보낸 기회일 수도 있으며, 멀리 날아가 버린 행복의 순간들일 수도 있다. 요즈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인생 전체가 이처럼 작은 실패의 연속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답을 뻔히 예상했으면서도 상을 탈 수 없는 경주.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우리는 판돈을 모두 환불함으로써 이 사건을 매듭지었다.
※ Mithra Grandchamp - Tony M. (FR) x Duchesse Royale II (FR), Tigre Royal (FR)
마차 경주(Harness Race) 경주마
아, 밴드는 대열을 맞춰 행진했고
브라스 밴드는 내가 알 수 없는 선율로 진행했지
창문은 열린 채, 비가 들이쳐
밤색, 노란색, 파란색, 황금색 그리고 회색
술 취한 이들은 이리저리 튀고
시내의 낡은 건물들은
비어버린 지 오래
창문은 깨졌고, 꿈도
내 집이었던 곳을 떠나니 너무 행복해
하늘, 파란 하늘과
이 썩어버린 시간
그렇게 나쁘진 않아 보여
아, 난 죽지 않았어
만족해야지
살아남았으니
그걸로 충분해 지금은
하늘, 파란 하늘과
이 썩어버린 시간
그렇게 나쁘진 않아 보여
아, 내가 죽지 않았다면
만족해야지
살아남았으니
그걸로 충분해 지금은
이사 했고, 살아남았고, 불안해. 그걸로 충분해 지금은. 스스로를 조금 더 이해했고… 이해한다는 건, 원인과 결과를 안다는 것.
“이봐, 전쟁이 더 치열해져서 주먹밥 하나 놓고 다퉈가며 살아야 한다면, 난 사는 걸 그만둘래. 주먹밥 쟁탈전 참전 권리는 포기할 생각이니까. 안됐지만, 당신도 그땐 아이와 함께 죽을 각오를 하라고. 그게 지금의 나한테 남은 최소한의 프라이드니까.”
ㅡ 다자이 오사무, 『나의 소소한 일상』, p.101 |
부끄러움을 가진 사람도, 책임을 지려는 사람도 없었구나. 너희들 전부, 애들 모두에게 “미안해”라고 말해야 해.
뼈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 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 주는 바람뿐 |
쓸 말은 많은데,
못 쓰겠네….
사람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과정이요 몰락이라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그런 자들이야말로 저기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신에 대한 사랑에서 자신의 신을 꾸짖고 나무라는 자를. 그런 자는 그 신의 노여움을 사 파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상처를 입고도 그 영혼이 심오하며, 하찮은 사건으로도 파멸할 수 있는 자를. 그런 자는 이렇게 하여 기꺼이 저 교량을 건너고 있는 것이니. ㅡ F. 니체(정동호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니체 전집13), pp.20~22 |
처음이고 싶었다. ... 그러나 이제는 결코, 처음은 될 수 없구나. 이럴 때면, 너무 오랜 시간을 놓아버린 것 같은, 처음이 되기에 난 너무 오래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모든 영화와 소설은 결말이 중요하지. 주인공들은 항상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 그래도 난, 첫 장면에서, 첫 단락에서 잠깐 나타났다 영원히 사라진다 해도, 처음이고 싶었는데. 딱 한 번, 단 한 사람, 오직 하나의 과거가 되고 싶었는데. 이젠 그럴 수 없네. 나 역시 아무런 추억이 없네.
리필 음료수가 된 것 같아.
ㅡ 이젠 이 여자가 싫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가는 것도 싫다. 사랑하기도 싫다. 몇 번의 대화속에 넌 진지하지 않았어. 대화 중에 본 네 모습은 껍데기 뿐이었고, 난 내심 널 모욕했어. 그러자 너와 나 자신이 불쌍해지더군. 그래서 우리가 싫어. 함께가 더 외로워. 누가 우릴 사랑할 수 있겠어? 우린 너무 밀착되어 있어. 예전처럼 됐으면 좋겠어. 눈치 보는 일도 그만하고… 서로 상처 주지도 말고… 안녕, 나의 천사! 나 오늘 늦을 거야.
ㅡ 알렉스니? 니 애비다. ㅡ 안녕하셨어요. ㅡ 잘 있다. ㅡ 몇 시죠? ㅡ 6시 39분이다. ㅡ 전화하셔서 놀랬어요. 일종의 환각상태 같아요… 현재의 기억처럼요. 그래서 어지러운가봐요. ㅡ 숙모 얘기 들었니? ㅡ 아니오. ㅡ 죽지 않았다더라. ㅡ 돌아가실 이유가 없잖아요. ㅡ 병원 주사로 연명하고 있어. 끔찍한 일이야. 정말 환멸스러워! ㅡ 새로울 것도 없잖아요. ㅡ 널 믿는다. 내가 노망부리거든, 탕! 식물인간이 되긴 싫다. 우리 약속을 잊지 마라. 내 머리에 총알을 갈겨. 약속해라! 농담 아니다, 알렉스! 맹세해! ㅡ 벌써 했잖아요. 내가 먼저 죽지 않는다면요… ㅡ 닥쳐, 몹쓸 자식! 망할 놈!
ㅡ 난 비열한 기회주의자 희생양이야. 내 더러운 엉덩이와 물집. 안 맞는 신발… 사람들은 신발로 우리를 평가해. 그는 발바닥이 아플 땐 얼음을 신발에 넣었댔어. 나도 그렇게 해봤지. 처음엔 낫는 듯 했는데 나중에 더 아팠어. 내 발이 자라듯… 내 영혼도 자란다. 난 모든 면에서 고상해졌어.
ㅡ 다시 태어날 순 없을까? 난 낙오자가 될 거야. 기회가 있었지. 난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었어. 비행사, 여행가, 음악가… 다시 태어날 순 없을까? 우린 처음 만났어. 내겐 처음만이 중요해. ㅡ 그럼 오래 가지 않겠네. ㅡ 내게 애가 있다면 말을 배운 순간부터 무시할 거야. 몇 년간 섹스를 갈망해왔어.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까 전혀 반대였어. 난 꿈을 이루려 애쓰지 않고 꿈만 꿔왔어. 차 마시겠어? ㅡ 좋아. ㅡ 컵이 하나뿐이야. ㅡ 상표가 떨어졌어. 뭔지 모르겠는걸.
ㅡ 사랑에… 자주 빠지곤 해? ㅡ 그래, 쉽게 빠져. ㅡ 그럴 줄 알았어. ㅡ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오래 가. 난 떠났을 때 더 가까운 느낌이 들어. 사랑은 오래된 언덕과 같아서 닳아지기 마련이야. 욕망은 극복하기 힘들고, 요즘은 돈도 많이 들어. 정열은 많은데 사소한 일로 낭비되지. 그건 사라지지 않아. 나도 그렇고.
ㅡ 그는 늦게 돌아왔어. 난 자고 있었지. 그는 어두운 내 침대 곁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어. 열쇠 소리에 깼지만, 난 자는 척했어. 그의 눈길이 느껴졌지. 아주 집요한… 처음이 아니었어. 그리곤… 내 침대에 들어와… 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날 사랑했어. 그는 그런 식을 좋아했어. 때론 이런 말도 했지. “우리 죽은 척 해볼까?” 그를 만난 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였어. 너무나 편안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내가 모르는 일까지도. 그에겐 모든 게 문제야. 나의 과거, 미래, 현재, 죽음까지도… 난… 그냥 나야.
ㅡ 당신과의 시간이 꿈같이 느껴져. 평범하지 않은 꿈. 깊이 잠들어야 꿀 수 있는 꿈. ㅡ … ㅡ 당신 옆에 앉아 있는 게, 영원처럼 느껴져. ㅡ … ㅡ 당신을 본 순간 운명처럼 당신을 사랑하게 됐어. 딱 한번만 얘기할께. 사랑해 미레이유, 당신을 사랑해! 그걸 모른다면… 너무 늦는 거야. 못들은 척 해. 침묵할 때야. 20년간 떠들었으니 침묵해야지. 당신 몸이 늙는 것을 생각하면… 처진 가슴에 주름살도 늘겠지, 미레이유, 당신 배에도 엉덩이에도… 다 내 잘못이야. 두고 봐, 미레이유. 후회없는 사랑, 망설임 없는 사랑이 될 거야. 오라면 오고 웃으라면 웃을께. 원하는 만큼 함께 잠을 자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팀을 이뤄 함께 일하고 우리의 운명이 무엇이든 뛰어들거야. 키스도 우리의 입을 봉하지 못해. 내게 날개를 줘. 몸이 1톤은 되는 것 같아. 트럭도 아닌데 말이야. 난 결코 다시 생을 살진 않겠어, 결코!
ㅡ 알렉스, 도와줘… 여기서 나가게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