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디스플레이가 품질 문제 때문에 줄일 수밖에 없었던 LCD패널 공급량을 전달과 같은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LG디스플레이의 아이패드2 패널 공급량은 6월 400만개에서 7월에 250~260만개로 줄었는데, 백라이트유닛의 품질에 문제가 생겨서 애플측에서 주문을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애플은 그 기간 삼성으로부터 200만개, CMI로부터 50만개 정도를 주문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품질 문제가 해결되어 9.7인치 아이패드2 패널 공급량은 8월에 400만개를 다시 채웠고, 비슷한 수준으로 9월에도 공급될 것이라고 합니다. LG디스플레이는 애플로부터 줄었던 주문을 다시 받기 시작했지만, LCD TV와 노트북 패널의 출하량 감소로 인해 전체적인 공장가동률은 감소했다고 합니다.

  애플의 3분기 아이패드2 출하량은 1200~1500만개 정도로 예상됩니다.




  대형 LCD 패널 생산업체들이 침체된 패널 가격 상승을 기대하며 생산량을 줄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LG디스플레이는 8.5G 생산라인의 가동률을 낮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1년 4분기에는 그 가동률이 50~70% 까지 더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패널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4분기가 전통적인 성수기지만 LCD TV의 높은 시장침투율과 경기둔화로 인해 LCD TV의 판매량이 줄었고, 대형 패널 생산업체의 판매량 역시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패널 생산업체들은 노트북 관련 제품의 판매에서도 역시 저조한 실적을 내고 있는데, 이는 타블렛PC의 판매량 증가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마존과 소니는 4분기에 새로운 타블렛PC를 출시할 계획입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2011년 타블렛PC의 출하량이 6천만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에이서(Acer)와 아수스텍(Asustek)은 올 4분기에 울트라북(Ultrabook)을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울트라북의 출시가 대형 패널 업계 4분기 매출에 눈에 띌만한 도움을 주지는 못할 것으로 봤습니다. 대형 패널 업계가 울트라북에서 이익을 얻으려면 2012년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노트북 패널의 4분기 주문량은 기존 예측치보다 10% 정도 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11/09/14 00:39 2011/09/14 00:39

2011.09.13 (2)

2011/09/13 03:02 / My Life/Diary


  사고가 난 후 아내 샌디가 응급실로 달려왔을 때, 난 아내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지금 너무 많이 다쳤어. 아무래도 다시는 좋아지지 않을 것 같소.”
  이후 나는 아주 오래도록 아주 슬피 아주 많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 깊은 절망과 무력감 속에서도 나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필요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이런 상태로 딱 2년간만 살아보겠다고 말했다. 더 살지 안 살지는 그때 가서 결정하겠노라고. 그렇게 말해놓고 나니 왠지 내가 내 인생을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은 나의 손가락 틈사이로 빠져나가고 있었던 인생이었지만.
  그렇게 2년이 흘렀고 나는 침대로 가서 깊이 숨을 들이쉬고 사색에 잠긴 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누구와의 대화일까? 하나님? 나의 수호신? 내 신념? 어쨌건 그 대화는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그래요. 약속한 대로 여기까지 살았습니다. 만약 당신이 언젠가 걸을 수 있다는 희망만 준다면 어떻게든 살아보겠습니다.”
  그때 나는 이런 대답을 들었던 것 같다.
  “아니야. 희망은 없어. 살거나 죽거나 오직 그뿐이네. 알아서 선택해!”
  나는 다시 말했다. “그러면 제가 다시는 아프지 않을 거라는 희망만이라도 주십시오.”(그때 내 체력은 거의 바닥이었다. 조금만 더 튼튼해져서 온갖 병원균의 침입을 이겨낼 수 있기만을 바랐다.) 그런데도 나는 같은 대답을 들었다. “그렇게 계속 살거나 그게 안 되면 죽어야지. 아마 앞으로도 변치 않을 걸세.”
  내 모든 요구에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그 순간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저 혼란스러웠고 어떻게든 맞서고 싶었다. 내 안의 작은 목소리가 말했다.
  “이런 젠장, 난 이제 어떻게 살지?”
  약속된 2년은 끝났다. 나는 협상을 해보려고 했다. 비상구를 찾고 싶었다. 희망이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아니, 조금이라도 나아질 가능성만 있다고 해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런 약속도 없었다. 일말의 희망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선택해야만 했다.
  나는 삶을 택했다.
  내가 대단한 영웅이라서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사실 처음에는 용기만 있다면 목숨을 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삶을 택했다. 아이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 돌이켜보면 인간은 원래 그런 상황에서 삶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삶을 택하게 되어 있다.
  이것이 나의 위대한 통찰이다. 그 시절 내가 배운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희망 없음’이라는 선물이다. 나는 언젠가 내가 꿈꾸던 인생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에 삶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기약없는 희망을 버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을 택했다.

  …그러나 나중에야, 그리고 운이 좋다면, 우리는 과거와 같은 삶을 다시 찾을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을 느낀 순간, 희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그 이후의 날들이 우리 인생의 진실임을 알게 된다.

  …희망은 언제나 미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희망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희망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 내 인생을 바꾸어주리라는 기대 속에 나를 가두어버리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희망 없음이 꼭 절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희망 없음은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하며 다음과 같은 삶의 가장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알려준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어디 있는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ㅡ pp.137~142

  어머니와 아들은 상담실에서 나갔고 문이 닫혔다. 나는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이 잘생긴 젊은이가 앞으로 겪어야 할 수많은 고통을 생각하며 울었다. 그리고 그가 느낄 혼란과 고독의 날들을 생각하며 울었다. 나는 그가 느끼게 될 갈망, 절대로 충족되지 않을 그 욕망들을 떠올리며 울었다. 나는 그 청년을 위해 울었고 나를 위해 울었으며 마침내 우리 모두를 위해 울었다.
  이런 느낌을 솔직히 말하지 않았으니 내가 거짓말을 한 셈일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그 청년과 그의 어머니와 함께 집안을 돌아다닐 때는 그런 감정을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한 말은 모두 진실이었다. 내 인생은 이대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소중하다. 나는 내 인생의 거의 모든 면을 사랑한다. 나는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감사와 경외감과 사랑을 느끼며 살아간다. 내 인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축복이다.
  그렇지만 역시 나는 많이 아프다. 때로 헤어날 길 없는 절망감을 느낀다.

ㅡ 대니얼 고틀립,『마음에게 말걸기』, pp.217~218
2011/09/13 03:02 2011/09/1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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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3

2011/09/13 02:52 / My Life/Diary
  (…)
  이사 온 집의 저녁 시간이 더 좋다.
  어둠이 깔리면서 사방 날아다니는 반딧불이 황홀하다. 열마리, 스무 마리, 그리고 더 많이 빌배산 머리 둘레로 개울쪽 과수원 울타리 너머로 한없이 날아다닌다.
  혼자 있는 것이 이렇게 포근하고 아늑한 건 요즘 와서 처음 느낀다. 조용히 앉았거나 누워 있으면 행여나 깨뜨려질까봐 꼼짝할 수 없을 만큼 평화롭다.
  좀 비겁한 자세이지만 가난하다는 것 외롭다는 것은 이렇게 평화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귀뚜라미는 낮에 본 산국화의 그 연보라 빛깔처럼 여리게 운다. 이래서 그런지, 우리 집 꾸구리(개)도 영 짖지를 않는다. 우리 집 꾸구리 눈빛깔이 너무 예쁘다. 강아지 주제에 항시 눈동자가 젖어 있는 듯 애처롭게 하늘을 쳐다 본단다.
  여섯 달 전에 장에서 사올 때, 제일 작고 빼빼마른 걸 골랐던 것이 너무 무던하고 착해서 오히려 걱정이다. 처음엔 강아지 사려고 생각지도 않았는 데 꾸구리 보는 순간 가엾어서 사온 것이란다.
  꾸구리는 된장에 비빈 밥을 제일 잘 먹는다. 싱싱한 무우잎과 배추잎도 잘 먹는다.
  현주야, 나는 언제 어른이 되려는지 아직도 만날 슬프고 아름다운 게 좋구나.
  오늘 편지 꼭 연애 편지 같이 씌여졌구나.
  4316. 10. 5
  正生

  ㅡ 권정생,「난 아직도 슬프고 아름다운 게 좋다」부분,『권정생 이야기 2』


유언장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쯤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일 쓴 사람 권정생




  문득 권정생이 읽고 싶었어...

2011/09/13 02:52 2011/09/13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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