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에 뿌려졌던 차범근씨의 선수적 기록들 중 기사 내용이나 경기 중의 소소한 일들을 제외하고, 기록에만 입각해서 정리해 봤습니다. 80% 이상의 내용이 틀린 것들이더군요.

* 알려졌던 내용
> 수정된(교정된) 내용



* 77년 대통령배 축구대회(Park''s Cup).
   말레이지아 전 1:5로 뒤지던 상황.
   종료 5분 남겨놓고 4골의 소나기 골.

> 틀림, 76년 9월 대통령배 축구대회.
   1 : 4 로 뒤지던 상황, 7분 남기고 3골 넣어 동점


* 79년 프랑크 푸르트 입단
   8월 당시 세계 최고 리그로 불리던 분데스리가 데뷔
   데뷔전 상대는 도르트문트.
   스타팅으로 75분까지 뜀.
   어씨스트 기록.
   최고권위 축구전문지 ''KICKER''紙 선정 주간 베스트11.

> 틀림, 분데스리가 데뷔는 78/79 시즌 다름스타드98 (Darmstadt 98)
   공격수로 스타팅 출전하여 우베 한(Uwe Hahn)과 77분 교체. (무득점)

   79/80 시즌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Eintracht Frankfurt) 데뷔.
   상대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Borussia Dortmund)가 맞음.
   스타팅으로 뛴 것도 맞으나 75분이 아니고 끝까지 다 뜀.
   어시스트 없음, 왜냐... 0 : 1 로 졌기 때문.


* 세번째 경기 슈투트가르트전
   헤딩으로 승리 결정 골.
   KICKER지 선정 이주일의 골.

> 맞음. 헤딩 골, Kicker지 선정 여부는 알 수 없음.
   전반 52분 1 : 0 에서 2 : 0 쐐기골.
   2 : 0 으로 경기 끝남.


* 네번째 경기 바이에른 뮌헨 전.
  그라보스키 어씨스트로 선취골.

> 틀림, 네번째 경기는 아인라흐트 브라운슈바이그(Eintracht Braunschweig)전.
  전반 32분 득점을 함, 선취골이 아닌 만회골 (1 : 1)


* 다섯번째 경기 최강호 보루시아MG 전.
   한가운데 돌파에 이어 찬 공, 왼쪽 포스트 맞고 골.
   선취골.
   세경기 연속 골.
   이날 KICKER지, 처음으로 <차붐>이라는 단어 씀.

> 틀림, 보루시아MG(Borussia Monchengladbach)전은 8번째 경기.
   차범근 처음부터 끝까지 뛰었으나 한 골도 못 넣고, 팀은 4 : 1로 짐.

   세경기 연속골은 맞으나 2,3,4 번째 경기였고,
   상대팀은 차례로 '슈트트가르트, 브라운슈바이그, 레버쿠젠' 이었음.
  

* 9월 강호 함부르크 전.
   페차이의 어씨스트를 받아 강슛.
   그라보스키 센터링, 헤딩 슛.
   30M 중거리 슛.
   첫 해트트릭 기록.

> 틀림, 79/80 시즌 차범근 해트트릭 기록한 적 없음.
   (11월 쾰른전에서 2 득점이 79/80시즌 한 경기 최다임)
   9월 22일, 함부르크(Hamburger SV)전 에서 풀타임 뛰었으나 득점 없음.
   팀은 3 : 2 로 이김.


* 11월 일본의 오데쿠라가 소속된 쾰른 전.
   두 동양인의 대결로 관심 집중.
   차 선취골, 결승골로 두골 기록.
   오쿠데라 헛발질 7번.
   차붐 대승.
   프랑크푸르트 3:1로 승리.

> 오데쿠라가 아니라 야쓰히코 오쿠데라(Yasuhiko Okudera)
   전반 26분 선취골과 후반 79분 쐐기골로 두 골 기록 맞으나,
   3 : 0 승리임.


* 12월 UEFA 컵 출전.
   첫번째 경기 레알 마드리드를 맞아 차, 선취골을 넣었으나 1:1 무승부
   두번째 경기 AC밀란 전.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강슛.
   포스트 맞고 튀어나왔으나, 골대 5초이상 흔들림. 특종 기사실림.
   3:2로 프랑크 푸르트 승리.

> 죄다 틀림, 79년 11월 28일 UEFA 컵 1라운드 경기.
   상대는 FC 아버딘(FC Aberdeen), 1 : 1 무승부, 1 : 0 승.
   UEFA 컵 2라운드 경기.
   상대는 디나모 부카레스트(Dinamo Bukarest), 0 : 2 패, 3 : 0 승.
   UEFA 컵 16강
   상대는 로테르담 (Feyernoord Rotterdam), 4 : 1 승,  0 : 1 패.
   80년 5월 3일 두번째 경기.
   상대는 쥬브로죠브카 뷰노(Zbrojovka Brno), 4 : 1 승, 2 : 3 패.
   4강 진출.
   UEFA 컵 4강
   바이에른 뮌헨과 첫번째 경기 2 : 0 패,
   두번째 경기 5 : 1 승, 프랑크푸르트 결승전 올라감.


* 80년 3월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1차전.
   당시 20세의 나이로 ''게르만의 혼''이라 불리던
   로타 마테우스(90년 월드컵 MVP), 갈색 폭격기 ''차붐'' 전담마크 특명.
   신문 <마테우스! 차붐을 막아라> 톱기사.
   경기 마테우스의 완승. 차붐 속수무책.
   2:3 패.

> 맞음. (결과만 봤을 때, 신문 내용은 알 수 없음)


*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2차전.
   역시 마테우스 차붐 전담 마크.
   이번엔 마테우스 속수 무책. 차붐 대활약.
   우측사이드 마테우스 여유롭게 제치고 어씨스트. 1:0 프랑크푸르트 승리.
   차붐, 이날의 선수.
   원정팀 득점 우선권으로 프랑크푸르트
   창단이후 첫 UEFA컵 우승.
   경기 후 신문 마테우스 인터뷰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범근)는 현재 세계 최고 공격수이다."

> 맞음. (역시 결과만, 내용 알 수 없음)


* 79~80 시즌 득점 랭킹 7위 랭크.
  세계 상승세 베스트 4 선정됨.

> 틀림, 시즌 득점 31경기 12골로 공동 12위. (동점자 수 제외하면 8위)
   1위는 34경기 26골로 바이에른 뮌헨(Bayern Munchen) 소속의
   칼-하인쯔 루메니게(Karl-Heinz Rummenigge)

   팀내 득점 1위 (12골), 2위는 베른트 홀쩬바인(Bernd Holzenbein, 11골)


* 세계축구 베스트 11 선정됨.
   연봉 독일에서 세번째 액수. 협상 타결.
   독일 대표팀 감독 차붐 귀화 추진. 실패.

> 알 수 없음.


* 81시즌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겔스도프에게
   육탄공격 받아 심한 부상. 프랑크푸르트 팬들 레버쿠젠까지 가서
   겔스도프 살해 위협 소동. 경찰 출동.
   부상이후 슬럼프. 이때도 역시 한국언론 차범근 씹기 발동.
   KICKER지 이일로 <한심한 한국인들> 이라는 기사.
   곧 슬럼프 회복.

> 80/81 시즌 중이던 80년 8월 23일,
   바이어 레버쿠젠(Bayer everkusen)과의  경기 도중 전반 16분
   위르겐 겔스도프(Jurgen Gelsdorf)에게 부상.
   (당시 경기 기록이 미흡하여 확실치 않음)


* 83년 레버쿠젠으로 트레이드.
  프랑크푸르트 팬들 울음바다.

> 맞음. 83/84 시즌 전 트레이드.


* 85~86시즌 분데스리가 MVP !
   득점 4위.

> 맞음. 34경기 17골로 득점 단독 4위.
   1위는 34경기 22골의 스테판 쿤쯔(Stefan Kuntz)
   MVP는 확실치 않음.

   팀내 득점 1위, 2위는 34경기 14골의 헤르베르트 바스(Herbert Waas)


* 86년 한국대표팀 선수로 멕시코 월드컵 출전

> 맞음, 3경기 출전, 무득점.


* 88년 다시 UEFA컵 출동.
   차붐 스페인 에스파뇰을 맞아 극적인 3:3 동점골 터뜨림.
   5만 관중 차붐! 환호.
   승부차기로 레버쿠젠 역시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UEFA컵 우승.

> 5월 4일 UEFA컵 결승 1차전 0 : 3 으로 패.
   5월 18일 결승 2차전 3 : 0 으로 승, 81분 차범근 동점골!
   승부차기 3 : 2 로 승.


* 신문 톱기사
   <지구 최고의 선수 ''차붐''>
   KICKER지
   <차붐, 팀 창단 첫 UEFA 우승 두번이나 이끌다,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의 영웅이자 분데스리가의 최고스타>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출장 최다골 기록 (아쉽게도 이기록은 최근몇년전에깨짐)
   분데스리가 308경기 98골
   우리나라 사상 최단시간 골 기록(전반 시작 15초)

> 확인 불가능, 308경기 98골은 맞음.



어쨌든 차범근씨의 선수적 기록은 거품을 뺀 지금 봐도 엄청나네요. 특히 현재까지 유수 클럽팀에서 그의 기록에 버금가는 능력을 보여주는 선수는 아무도 없기에 더욱 대단해 보입니다.

당시의 기록을 뒤져서 맞춰본 것이니 틀린 점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차범근... 아니 차감독... (이라 부르고 싶군요) 역시 불세출의 스타라고 생각되네요.


2002.05.01
2004/06/07 13:01 2004/06/07 13:01

우리나라에서 한자에서 파생된 단어가 대부분이고 라틴어 역시 영어의 근간을 이루는 것임에는 분명하나 한자에서 파생된 우리가 쓰고 있는 단어의 경우 거의 뜻글자인 한자의 특징에 따라 많은 단어들이 자체적으로 뜻을 포함하고 있고, 뜻의 변형이 중국보다 덜하다는 것 또한 특징이다.

하지만 라틴어에서 파생된 영어의 경우 라틴어의 단어 자체가 조금씩 변형되고, 혹은 음가만 남은채 완전히 변형, 더욱이 뜻의 변형까지 가해져서 탄생한 것이 영어의 단어들이다.

쉽게 말해서, 한자를 할 줄 알면 국어 단어 역시 80% 이상 풀이 할 수 있지만, 라틴어를 할 줄 안다고 해서 영단어를 그만큼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라틴어와 영어는 별개의 영역으로 봐도 무관하지만 (라틴어 교과서를 읽을 줄안다고 영어 교과서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자와 한글은 둘이 하나이고 하나가 둘인 것이며 한자 교과서를 읽을 줄 알면 국어 교과서를 읽을 줄 아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는 모두 한자어의가 들어있는 한글 단어를 쓰고 있으며, 우리나라 한학은 모든 한자어에 정해진 음가와 뜻을 달고 있다.

이 한자교육 정책을 정치적인 입장에서 반대하거나 그런 시각으로 무조건적으로 해롭다고 보지 말고 객관적이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문' 이라는 입장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국어사전을 펴보라, 주된 내용은 한자어 풀이다. 그것이 곧 국어사전인 것이다. 물론 모든 단어를 한글로만 썼으면 좋겠지만, 과연 그것이 실효성이 있을 것이며 100년 안에 이루어질 수 있을것인가? 현실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봤으면 한다.


2002.04.21
2004/06/07 12:52 2004/06/07 12:52

원래 유도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어떤 선수가 어떤 선수인지 잘 모르지만, 전에 인간시대 비슷한 형식으로 추성훈이란 선수에 관한 이야기가 방영된 적이 있었다.

재일동포로 한국에서 유도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여러 대회에 참가, 우승도 하고 다수 입상하는 등 대표급 기량을 선보이지만 국가 대표 선발전에만 나가면 국내 유도판의 학연주의, 연고주의 같은 텃세 때문에 번번히 고배를 마셨다.

물론 실력이 미진해서 상대에게 패했던 경기도 있었겠지만 각종 대회에서 1위를 휩쓸던 선수가 국대선발전에서만 수도 없이 굴러 떨어진다는건 말이 안 되고, 당시 그를 지도하던 한국인 코치 역시 그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머니와 함께 변변치 못한 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 당시에도 일본의 여러 팀에서 그를 스카웃 하려 했으나 할아버지의 조국(아버지인지 할아버지인지는 확실치 않음)에서 뛰고 싶은 마음에 거절했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고, 그는 28살의 늦은 나이에 일본 대표팀에 발탁됐다… KBS 카메라 앞에서 자기가 받을지도 모를 비난을 의식하는 듯 상기된 얼굴로 일본, 한국 가리지 않고 응원해줬으면 한다는 그의 말에 참 안타까웠다. 이미 유도 선수로서의 전성기를 지나버린 그… 조국이라는 명목하에 청춘을 허비하게 만든 한국 유도판에 본 때를 보여주길 바란다.

아직도 국대선발전에서 패한 후 한국인 코치가 그에게 "미안하다 성훈아…" 라고 울먹이던 목소리가 생각이 난다.


2002.04.23
2004/06/07 12:48 2004/06/07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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