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겐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갑니다.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몸부림치며 살아왔던, 이른바 ‘인간’ 세상에서 단 하나 진리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단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간다.
나는 올해 스물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 사람들은 40대 이상으로 봅니다.”
ㅡ 다자이 오사무,『인간실격』
불현듯 떠오른 인간실격의 마지막 구절. 싯달타도 깨달았을 때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인과에 따라 세상은 돌아가고, 인간은 그걸 인식하고 감응하거나, 인식하고 감응하지 않거나, 인식도 감응도 모두 놓아버릴 수 있다. 인식도 않고, 감응도 않고, 모든 걸 공하다고 보거나, 있는 그대로 여여하다고 보거나, 어쨌든 세상은 돌아간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죽거나 살거나... 어쨌든 세상은 돌아간다. 싯달타는 체념했던 게 아닐까. 기껏해야 인간은 자신의 인식과 감정만을 조작할 수 있을 뿐. 사실 세상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살생하지 말아라... 착하게 살아라... 집착하지 말아라... 너 자신에게 나쁜 기억을 안기지 말아라...
나는 올해 스물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 사람들은 40대 이상으로 봅니다.
계속 이 마지막 문구가 머릿속을 맴도는데.
“기다림. 아아, 인간의 삶에는 기뻐하고, 화내다가, 슬퍼하고, 증오하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지만, 그래도 그것은 인생의 1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감정들이며, 나머지 99퍼센트는 그저 기다리며 사는 것 아닐까요. 행복의 발소리가 복도에 들려오길, 이제나 저제나 두 손 모아 기다리다가, 텅 빔. 아아, 인생이란, 너무 비참해. 누구나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하며 사는 이 현실. 그리고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다린다. 너무나 비참해. 태어나길 잘했다고, 아아, 이 목숨을, 인간을, 이 세상을, 진정한 기쁨의 웃음을 웃게 해주세요.
앞길을 가로막는 도덕을 뿌리칠 순 없습니까?”
ㅡ 다자이 오사무,『사양』
요즘 로맹 가리를 읽고 있다.
다자이를 한 번 더 읽어야 겠다.
나는 올해 스물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 사람들은 40대 이상으로 봅니다.
나는 스물일곱을 훌쩍 넘겨버렸어. 흔적도 없이 스쳐 지나왔다. 아아, 앞으로 스쳐 지나갈 세월을 생각하니...
TAGS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