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10

2011/02/10 01:56 / My Life/Diary
“이제 내겐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갑니다.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몸부림치며 살아왔던, 이른바 ‘인간’ 세상에서 단 하나 진리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단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간다.

나는 올해 스물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 사람들은 40대 이상으로 봅니다.

ㅡ 다자이 오사무,『인간실격』

불현듯 떠오른 인간실격의 마지막 구절. 싯달타도 깨달았을 때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인과에 따라 세상은 돌아가고, 인간은 그걸 인식하고 감응하거나, 인식하고 감응하지 않거나, 인식도 감응도 모두 놓아버릴 수 있다. 인식도 않고, 감응도 않고, 모든 걸 공하다고 보거나, 있는 그대로 여여하다고 보거나, 어쨌든 세상은 돌아간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죽거나 살거나... 어쨌든 세상은 돌아간다. 싯달타는 체념했던 게 아닐까. 기껏해야 인간은 자신의 인식과 감정만을 조작할 수 있을 뿐. 사실 세상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살생하지 말아라... 착하게 살아라... 집착하지 말아라... 너 자신에게 나쁜 기억을 안기지 말아라...


나는 올해 스물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 사람들은 40대 이상으로 봅니다.

계속 이 마지막 문구가 머릿속을 맴도는데.

“기다림. 아아, 인간의 삶에는 기뻐하고, 화내다가, 슬퍼하고, 증오하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지만, 그래도 그것은 인생의 1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감정들이며, 나머지 99퍼센트는 그저 기다리며 사는 것 아닐까요. 행복의 발소리가 복도에 들려오길, 이제나 저제나 두 손 모아 기다리다가, 텅 빔. 아아, 인생이란, 너무 비참해. 누구나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하며 사는 이 현실. 그리고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다린다. 너무나 비참해. 태어나길 잘했다고, 아아, 이 목숨을, 인간을, 이 세상을, 진정한 기쁨의 웃음을 웃게 해주세요.

앞길을 가로막는 도덕을 뿌리칠 순 없습니까?

ㅡ 다자이 오사무,『사양』

요즘 로맹 가리를 읽고 있다.

다자이를 한 번 더 읽어야 겠다.

나는 올해 스물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 사람들은 40대 이상으로 봅니다.

나는 스물일곱을 훌쩍 넘겨버렸어. 흔적도 없이 스쳐 지나왔다. 아아, 앞으로 스쳐 지나갈 세월을 생각하니...
2011/02/10 01:56 2011/02/10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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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7

2011/02/07 02:39 / My Life/Diary
휴일 마지막 날이면 잠이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후까지 자기 때문에. 언제나 월요일은 고되다. 밤을 새우고 출근하는 일도 종종 있다. 에스프레소 몇 잔이면 36시간 정도는 자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에.

최승자를 들춘다.

“우리 청춘의 유적지에선 아직도 비가 내린다더라.
그래서 멀리 누운 우리의 발가락에도
때로 빗물이 튀긴다고 하더라.
그리고 우리가 살아 있다는 헛소문이 간간이 들린다고도 하더라.”
ㅡ「望祭」

당신은 당신이 하는 장난이
내게는 얼마나 무서운 진실인가를 모르는 체한다.
당신이 모르는 체하는 것을 모르는 체하면서,
내가 자꾸 빠져 들어가는 게 나의 사랑이라는 것을 당신은 모르고, 모르는 체하고,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딧물이 벼룩을 낳고 벼룩이 바퀴벌레를 낳고 바퀴벌레가 거미를 낳고…
우리의 사랑도 속수무책 거미줄만 깊어 가고,
또 다른 해가 차가운 구덩이에 처박힌다.
ㅡ「연습」

그리고 이성복을,

바퀴벌레들이 동요하고 있어 꿈이 떠내려가고 있어
가라앉는 山, 길이 벌떡 일어섰어 구름은 땅 밑에서
빨리 흐르고 어릴 때 돌로 쳐죽인 뱀이 나를
감고 있어 깨벌레가 뜯어 먹는 뺨, 썩은 나무를
감는 덩굴손, 죽음은 꼬리를 흔들며 반기고 있어
닭아, 이틀만 나를 다시 품에 안아 줘
아들아, 이틀만 나를 데리고 놀아 줘
가슴아, 이틀만 뛰지 말아 줘
밥상 위, 튀긴 물고기가 퍼덕인다 밥상 위, 미나리와
쑥갓이 꽃핀다 전에 훔쳐 먹은 노란 사과 하나
몸 속을 굴러다닌다 불을 끄고 숨을 멈춰도 달아날 데가 없다
ㅡ「루우트 기호 속에서」

아아 기형도는,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이미 대지의 맛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
내 초라한 위기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진다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ㅡ「10월」

다시 최승자가,

그리하여 우리들은 잠들었네
너는 흔들리는 코스모스의 잠
나는 흩어지는 연기의 잠

한 세기가 끝날 무렵에도
너는 코스모스의 잠
나는 연기의 잠
ㅡ「그리하여 우리들은 잠들었네」

그러나 나는 잠들지 못하고. 왜냐하면, 오후까지 잤기 때문에. 그리고 너는 끝까지 나를 모를 것이다. 애초에 나를 보려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러다가도, 한센병자와 권정생을 떠올리면 나는 지나치게 행복한 것이 아닌가, 행복한 놈이 제 복에 겨워 사치스런 절망을 무슨 비싼 술 마시는 양 입에 머금고 호로록 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술도 싫고 담배도 싫고 타이레놀도 싫고 제정신도 싫다. 방법이 없어 방법이...

“어째서 사람들은, 자신을 ‘멸망’이라고 단언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ㅡ 다자이 오사무

네네... 저도 이렇게 징징대면서도 실상은 멀쩡히 살아있는 걸 보면...

유치하고 혐오스럽네요.
2011/02/07 02:39 2011/02/07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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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5 (2)

2011/02/05 15:35 / My Life/Diary
사람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과정이요 몰락이라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그런 자들이야말로 저기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신에 대한 사랑에서 자신의 신을 꾸짖고 나무라는 자를. 그런 자는 그 신의 노여움을 사 파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상처를 입고도 그 영혼이 심오하며, 하찮은 사건으로도 파멸할 수 있는 자를. 그런 자는 이렇게 하여 기꺼이 저 교량을 건너고 있는 것이니.

ㅡ F. 니체(정동호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니체 전집13), pp.20~22

가고자 하던 길에서 낙오가 되었다. 낙오자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길을 택하라고 말한다.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순간 더 이상 낙오자가 아니며 앞으로 펼쳐질 자기 생의 개척자가 된다고.

지랄, 나는 낙오자다.
니체는 미쳤거나, 존나 미쳤다.

내 속으로는 아무도 틈입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아무도 틈입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부처는 세계가 불타고 있다고 말했지만, 부처가 틀렸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2011/02/05 15:35 2011/02/0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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