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진심으로 사랑해요. ㅡ 원하는 게 뭐야? ㅡ 모르겠어요. ㅡ 키스하고 싶어? ㅡ 아니요. ㅡ 나랑… 자고 싶니? ㅡ 아뇨. ㅡ 원하는 게 뭐야? ㅡ 없어요. ㅡ 없어? ㅡ 네. ㅡ … ㅡ 카페에 가서 아이스크림 먹을래요?

ㅡ 얼마동안 날 엿봤지? ㅡ 1년요. ㅡ 아침에 한 말… 정말이니? ㅡ 사랑해요. ㅡ 사랑 같은 건 없어. ㅡ 있어요. ㅡ 없어. ㅡ 친구는 없니? ㅡ 한 명 있는데 지금은 없어요. ㅡ 어디 있는데? ㅡ 시리아에 갔어요. 그 친구 엄마 집에서 하숙해요. ㅡ 내 방 정면이군. ㅡ 걔도 같이 엿봤어요. ㅡ 그 애가 뭐래? ㅡ 떠나기 전에 당신 창을 가리키면서 망원경을 줬어요. ㅡ 뭐라고 했는데? ㅡ 말할 수 없어요. ㅡ 말해봐. ㅡ 미인이고… ㅡ 뭐라고? ㅡ 미인이고 남자를 좋아한다고. ㅡ 맞았어. ㅡ 날 사랑하고 우체국에서 일하는 것말고 또 뭘 하지? ㅡ 외국어를 배워요. ㅡ 뭘 배웠는데? ㅡ 불가리아어요. ㅡ 굉장하구나, 그건 뭐하러? ㅡ 고아원에 불가리아 출신이 둘 있어요. 그 다음엔 영어, 지금은 포루투갈어를 공부해요. ㅡ 넌 참 특이하구나. ㅡ 아뇨 기억력이 좋아요. 모든 걸 기억하고 있죠. ㅡ 네가 태어났을 때의 일도? ㅡ 가끔 그렇다고 느껴요. ㅡ 부모님도? ㅡ … ㅡ 가을에 날 찾아오곤 했던 마른 남자 기억나니? ㅡ 네, 우유랑 빵을 놓고 소포를 가져갔어요. ㅡ 그래, 그리곤 돌아오지 않았지.

ㅡ 나에 대해 뭘 알지? 남자랑 있을 때 뭘 보니? ㅡ 사랑을 나누는 거요. 하지만 이젠 안 봐요. ㅡ 그건 사랑이랑 상관 없는 거야.

ㅡ 여자친구 있니? ㅡ 아뇨. ㅡ 날 보면서 너도 자위를 하니? ㅡ 전엔 했어요. ㅡ 그건 죄야. ㅡ 알아요. 이젠 안 해요. 당신 생각만 해요. ㅡ 아무 말 하지마. 나 속옷을 안 입었어. 알고 있니? 여자가 남자를 원할 때, 깊은 곳이 축축해진단다. 나 지금 젖어 있어. 섬세한 손이구나. 두려워 하지마. ㅡ … ㅡ 다 끝났어? ㅡ … ㅡ 좋았니? ㅡ 사랑이란 건 그게 전부야. 화장실 가서 손 씻어. 거기 수건이 있어.

ㅡ 실례합니다. ㅡ 몇 호죠? ㅡ 376호요. ㅡ 아무것도 없습니다. ㅡ 우체국에 다니던 젊은 친구는 어떻게 된 거죠? 창구에 있던 아이요. ㅡ 사랑 때문에 손목을 그었나 봅디다. ㅡ 이름이 뭐죠?

ㅡ 이젠 당신을 엿보지 않아요. ㅡ …


  아주 오래 전에, 정말 아주 오래 전에 본『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몇 년 전에 다시 한 번 보고, 오늘은 원작인『십계, 6(Dekalog, szesc)』를 우연히 보았다.『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에서 가장 인상 깊던 장면ㅡ토멕이 얼음을 귀에 문지르던ㅡ은 없었지만, 너무도 너무도 다른 결말에 감탄. 그리고… 대사가 이렇게나 야했던가, 하는 깨달음.

  십계명의 제6계명, “간음하지 말라”. ㅡ 사랑 같은 건, 있으므로.
 
  그리고, “이젠 당신을 엿보지 않아요.”
2011/06/05 20:38 2011/06/05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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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4 (2)

2011/06/04 22:54 / My Life/Diary
  사람들 사이에서는 무표정하게 있을 수가 없다. 울적한 기분을 알아 달라고 떼쓰는 것 같아서. 비굴하고 저열해.

  기계적으로 일에 몰두하다 슬픔이 엄습하면 옥상으로 한 계단씩 오른다. 옥상 출입문 앞에서 문을 열 때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멀거니 난간에 기대어 빌딩 밖을 쳐다보는 모습이 보여지는 건, 뭐랄까, 치욕이다.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면서 실은 관심을 바라는 속마음을 들켜버리는 일. 이런 까닭으로 여러 번 헛걸음을 한 이후로는 어지간해선 오르지 않는다. 며칠 전부터 흡연구역이 옥상 하나로 제한되고 나서는 더 이상 가지 않는다. 이젠 갈 곳이 없어.

  한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던 것도, 익명성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각자가 서로 보여지고 있음에도, 보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피차일반의 비극.

  모르는 척하다가, 결국 모른다고 생각한다. 의심 없이, 모른다고, 착각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하고, 계속 써나가기로 했다. 회사 이야기만 쓰지 않으면, 이곳과 나 그리고 현실이 교차하는 부분만을 제외한다면, 아무 상관 없겠지. 지금처럼, 앞으로도, 두 공간을 교차하고 있는, 보여지는 쪽과 보는 쪽은 계속 서로를 모르는 척 할테니까.

  모르는 척 하는 건, 모른다는 거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말없이 있을 수가 없다. 둘이 남겨져 있을 때는, 너무나 곤혹스럽다. 정말이지… 혼자 택시를 타야할 때나, 술자리에서 덩그러니 둘만 남게 될 때, 거짓말과 허튼 소리를 남발한다. 다음날이면 어김없는 후회. 그저 침묵으로 공존할 수 있는 관계만이 진실해.

  기억 속 할아버지는 말이 없다. 풍을 맞으신 탓에, 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주무시다가 말없이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그리도 서럽게 통곡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주 어릴 적에는 할머니의 어머니인, 증조할머니도 살아계셨는데, 그분도 말이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다 넘어져 돌아가셨다는데, 장례식에 대한 기억은 없다. 할머니댁의 그 날카롭던 계단턱과 벽을 손으로 짚으며 비스듬히 한계단씩 내려오던 모습을 기억한다.

  이분들은 말이 없었다.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2011/06/04 22:54 2011/06/04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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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22시에 잠들어서, 오늘 04시에 깼다. 밥통을 박박 긁어 꽉 채운 그릇을 오징어채 하나로 다 비우고 푸쉬업을 백 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지갑을 열어 보니 봐야할 영화 몇 개를 적어 놓았길래『퍼머넌트 노바라』를 봤다.


  밥을 너무 먹었나, 보다 졸고 보다 졸고, 뻔한 일본식 영화에 진부한 대사,라고 생각하며 보다, 결말에 한방 먹고, 졸면서 못 본 부분 다시 보고는.

  잤다.

  깨보니 14시.

  “나 혹시 미쳤어?”,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가 들리고.

  또 배가 고파.
2011/06/04 14:55 2011/06/0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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