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엽전 사상' 떨쳐버려야..金秉柱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나이든 사람들은 "역시 조선사람은 안돼"하고 자조하며 스스로 기죽어하던 때를 기억한다.

일제 강점기에 지배자들이 주입했던 식민지교육 탓도 있었겠지만,광복 후에도 오랫동안 한국인 스스로 가치가 보잘 것 없는 '엽전(葉錢)'으로 격하하는 풍조가 지속됐었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서구문명 앞에서 무너져 내린 전래의 문물들이 초라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우리는 노력해도 가망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자포자기와 무사안일이 팽배했고,주어진 가난의 멍에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이 같은 엽전사상을 떨쳐버리고 국민적 자조(自嘲)와 나태를 자조(自助)와 근면으로 대체시켜 이룩한 것이 고도성장기의 정신적·물질적 성과였다.

'하면 된다'는 정신은 비단 경제적 측면(고도성장,소득증대,절대빈곤 탈출 등)에 그치지 않고,사회 문화 측면(올림픽 월드컵 등 국제경기 주최,예술인들의 해외무대 활약 등)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이루게 했다.

자신감이 지나쳐 '역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신토불이(身土不二)'등 국제화 시대에 역행하는 말이 유행할 정도가 됐었다.

그러다가 1997년 외환위기를 맞기도 했다.

엊그제 마스터카드 인터내셔널이 아시아 13개국 경기전망에 대한 소비자 신뢰도지수를 조사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이 가장 나쁘게 나타났다.

요즘 엽전 사상돌림병이 도져 번지고 있는가?

지난 총선 직전에는 예측기관들이 앞다퉈 상향조정하던 경제성장 전망치가 최근에는 일제히 낮추어졌다.

예측기관들도 선거계절의 유행성 감기에 걸렸던가,그후 경제 여건변화에 기민해서인가? 가장 낮게 전망한 올 연간 성장률이 4.8%이다.

이는 선진국 클럽(DECD)평균치보다는 높지만,한국의 과거 성장추세로 보면 신통치 않게 받아들이는 것이 국민의 심기이다.

최근 외신들은 흥미 있는 기사를 실었다.

"내수부진과 강성노조에도 불구하고 선박 메모리칩 LCD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며,자동차 철강 휴대폰의 수출도 호조다"(7월28일자 FT).한국이 수출로 번 달러로 미국채권을 사들이고 국내증시를 외면하는 바람에 외국인의 국내증시지분이 높아 "누가 한국을 소유하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7월20일자 IHT).

증권시장의 외국인 지분 문제로 반계몽적 언론이 원초적 국민 감정을 부추겨 삼복 더위를 더욱 달구고 있다.

외국인 지분율이 일본에서도 20%에 접근하고 있지만,서울 상장주식 시가총액의 40%가 외국인 수중에 있다.

더구나 블루칩 종목의 경우는 외국인 지분이 60% 또는 70%를 넘어섰다.

언뜻 보면 외국 투기자본 탓으로만 여겨진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엽전사상 탓이 크다.

기업의 수익이 좋아도 국내 투자자들이 시장에서 높게 평가해주지 않기 때문에 주가수익비율(PER)이 낮게 나온다.

요즘 PER가 매우 낮다.

7월28일 현재 PER가 한국은 64개 우량기업 기준 6.20배에 불과하지만,일본 3백34개 우량기업 기준 16.97배,미국 S&P 500 기준 15.71배에 비하면 크게 낮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국내기업 가치를 얕잡아 보니까 주가가 싸고,주가가 싼 맛에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사들였다.

그래서 그들의 지분이 높아졌고,받아 가는 배당액이 많아졌다.

국내인들이 잡석으로 내친 것 가운데 보석을 골라 사들일만큼 눈과 돈이 외국인에게 있었다는 얘기다.

외국인 지분율이 높고,배당을 많이 챙긴다는 문제는 결국 내국인의 증시 외면 문제로 귀착된다.

만일 외국인이 지분을 몽땅 정리하고 떠나면 주가는 반토막 나고 증시기능의 파탄이 올 것이다.

사람마다 인격이 있듯이 나라에도 국격(國格)이 있다는 얘기가 솔깃하다.

요즘처럼 국가기관과 공직인들의 품격이 중요한 때가 없었다.

좋게 보면 개혁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빚어지는 아노미현상이라고 변명할 수 있겠지만,그 과정에서 국가의 핵심가치까지 흔들어서 되겠는가? 각종 이익단체,시민단체들의 합창소리에 다수 국민들은 엽전사상에 전염되고 있다.

국내투자자들이 증시를 떠나고 기업인들은 사업의욕을 상실했다.

국민이 경제의욕을 잃어가는 퇴행성 질병의 책임소재는 분명하다.

엽전사상의 만연을 차단해야 국태민안의 기초가 든든해진다.


출처 : 한국경제신문 (2004.07.29)
2004/07/31 14:28 2004/07/31 14:28

한 늙은 시장의 여우가 자신의 최고 고객 몇 명과 편안하게 앉아 투자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씩 돌아가며 질문에 질문을 내놓았다.

「 내가 이전부터 알고 싶었던 것은, 시세상승투자와 시세하락투자가 도대체 어떻게 시작되느냐는 겁니다. 」

늙은 증권인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 자, 내가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몇 십 년 전의 일입니다. 어느 날 오래된 스코틀랜드 혈통의 젊고 잘생긴 왕자가 매력적인 스페인 공주와 약혼을 했다고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지요. 온 세계가 이 아름다운 한 쌍에 매혹되었고, 사람들은 곧바로 그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둘의 로맨스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에 온갖 관심을 쏟게 되었지요. 이 사건은 대중들에게 긍정적인 분위기를 제공하며 일반적인 낙관론이 유럽의 증권시장에도 전염되었습니다. 그럴듯한 이유도 없이 시세는 오르고 또 올랐지요. 많은 투자자들은 부자가 되었고 사람들은 집을 사고 재화를 벌어들이며 투자를 계속했습니다. 당연히 경제는 번창해졌지요. 이렇게 해서 시세상승 투자가 발생한답니다. 」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동의하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으며, 그들 부모님들이 이야기해 주었던 당시의 황금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증권시장 여우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 그러던 어느 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나쁜 소식이 날라듭니다. 혼인은 깨어졌고 왕자와 공주는 싸우다가 서로 헤어졌지요. 이 뉴스는 하나의 충격으로 작용하며 증권시장의 폭락을 불러일으켰답니다. 주가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떨어졌으며 부를 구가하던 그 동안의 모든 생활이 거품처럼 날라가 버렸지요.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답니다. 이것이 바로 시세하락 투자입니다. 」

잠시 침묵이 흘렀고, 결국 처음에 질문을 했던 사람이 화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 아니, 도대체 귀족들의 결혼이 증권시장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

그러자 늙은 여우가 이렇게 되물었다.

「 이상하군요. 내가 처음에 시세상승 투자를 설명했을 때는 왜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나요? 」



자칭 순종투자자인 앙드레 코스톨라니(Andre Kostolany)의 이야기입니다. 가치투자와는 거리가 있지만 시장을 설명하는 그의 이야기들은 참 좋습니다. 이 이야기의 본래 주제는 정치와 주식시장의 관계인데 요즘 상황에도 맞는 것 같아 옮겨봤습니다.

제가 스크랩하여 가지고 있는 2003년 12월 3일자 신문기사를 보면 큰제목이 《 경기 3분기에 바닥쳤다 》 입니다. 재경부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경기선행지수가 실제 경기를 3~5개월 선행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3분기 저점통과가 유력하다 」고 말합니다. 더욱이 주가는 경기를 선행한다고 하고, 주가가 올랐으니 경제는 더 좋아져야 했지요. 하지만 한 신문 경제면의 내일자 머릿글은 이렇군요.《 한국경제 '먹구름' 몰고오나 》. 반 년이 지났을 뿐 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에 어이없어 해야할까요?

주가가 상승할 때는 아무도 그 이유를 찾으려하지 않고, 단지 주가가 오른다는 이유로 투자의 성공과 경제의 번영을 믿습니다. 작년만해도 주가는 올라도 직접 체감하는 경기는 별로 나아진 것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떨어졌던 주가가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어떤 종목은 떨어지기 이전보다 더 올랐기에 자신의 '가치투자'가 증명이 되고 있으며 경제가 더 나아지면서 주가는 더 오를 것이고 아직 상승추세는 끊기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 …

주가가 속절없이 떨어지고 앞으로의 경제전망이 어둡자 사람들은 이유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정치권에서 사건이 터지면 희생양을 찾듯이 주가가 떨어지는 수 많은 문제점을 찝어내고 자신의 투자와는 상관없는 다른 것들을 꺼내들기 시작했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 모든 것들은 예전에도 있어왔으며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일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한탄하고 욕을 해도 공허한 메아리만 울릴 뿐이죠.

우리 모두는 가치투자란 기업의 내재가치를 찾는 일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와 시장의 변덕스러움은 예측불가능하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잘 알고 있을까요?

지난 6개월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회사 속에서 찾는 가치와 시장 속에서 찾는 가치를 계속 혼동할 지도 모릅니다.

「 만약 우리가 주식을 매입하고 1년이나 2년 동안 주식시장이 문을 닫더라도 그리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100% 소유한 시즈 캔디나 브라운의 주식을 만약 팔게 되면 얼마쯤 될지 알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7% 소유한 코카콜라의 주가 수준을 꼭 알아야만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워렌 버펫


2004.07.29
2004/07/29 04:14 2004/07/29 04:14

워렌 버펫을 비롯한 투자의 구루들은 주변 환경의 변화에 동요하지 말 것을 강조합니다. 벤자민 그레이엄은 시장의 변화로 인해 내재가치와 동떨어져 나타나는 기업들을 포착하는 손쉬운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존 템플턴과 짐 로저스는 가장 안 좋을 때를 가장 좋은 기회로 생각하는 역발상 투자를 강조합니다.

이런 방법들은 기본적으로 경제를 기업과 분리시켜 바라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경제는 순환하는 것이고 결국은 평균으로 회귀하거나 더욱 좋아질 것이다라는 낙관적인 시각이면 족합니다. 그럼 경제는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가? 네. 단지 기업에 집중하십시오.

경영자에 대한 면밀한 분석은 기업에 대한 면밀한 분석 가운데 한 가지입니다. 우리는 성장주 투자의 대가인 필립 피셔, 그리고 현존하는 최고의 투자가인 워렌 버펫이 경영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자주 보아왔습니다. 워렌 버펫은 자기가 전체를 매입한 회사의 경영자를 교체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 회사에 그 경영자가 없었다면 사지 않았을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정크 본드의 황제였던 마이클 밀켄은 투자자가 주목해야 할 기업의 주요한 부분으로써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인적 자원(Human Capital)을 꼽습니다. 벌쳐 펀드의 원조인 '3번가 펀드(The 3rd Avenue Fund)'의 회장인 마틴 휘트먼은 버펫의 투자 성과는 그의 회계 분석 능력 덕분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뛰어난 눈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회사의 가치 가운데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경영진과 최고 경영자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건 과거의 건실한 재무기록을 살펴봄으로써 일정 부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오랜 기간 기복없이 좋은 재무 성과를 이루어 왔다면 그것은 기업 자체가 뛰어난 사업 구조를 갖고 있거나 (하지만 단지 뛰어난 사업 구조만으로 잘 운영되는 회사는 거의 없습니다.) 훌륭한 경영자가 지휘하고 있을 때, 또는 그 두 가지가 모두 결합되었을 때 일 것입니다. 우리는 회사의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기간이 아닌 장기간의 성과에 운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주변 환경은 활발히 변해갑니다. 금리가 오르내리고 유가가 오르내리고 예상치도 못했던 충격적인 사건이 터지는가 하면 장기간의 불황과 믿을 수 없는 호황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것은 투자자가 아닌 경영자가 신경써야 할 부분입니다. 자기가 운영하고 있는 기업이 앞으로 헤쳐나갈 미래를 위해 경영자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것 입니다. 그리고 뛰어난 경영자라면 그 어떤 경제 상황이라도 그에 맞는 해법을 찾아 나아갈 것 입니다. 그들은 이런 일을 위해 고용되었고 그 성과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보상을 받습니다. 지난 수 년간 존경받아온 경영자들은 바로 그 표본이며 그들이 운영한 회사들의 성과와 회사의 가치는 경제의 불확실성과 변동성 속에서도 꾸준히 좋아졌고 건실했으며 뛰어났습니다.

그런 경영자를 찾아나서 그가 운영하는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좋은 투자 성과를 얻었습니다. 경영자의 자질을 판단하는 것 역시 상당히 어려운 부분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미래의 불확실함을 예측하는 것 보다 훨씬 쉬운 일임에 분명합니다. 버크셔 헤더웨이의 부회장인 찰리 멍거는 투자시에 우리가 아는 범위를 넘어서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경영자가 이룩한 성과를 보고 그를 판단할 수 있지만 1% 혹은 0.5% 오른 실업수당청구건수라던지 0.25% 오른 금리가 앞으로 기업 운영과 경제 상황, 주식 시장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판단 할 수는 없습니다.


2004.07.06
2004/07/06 04:13 2004/07/06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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