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 2004.11.30, 18:53      



일본의 유통회사 다이에이의 경우 6만명이 넘는 종업원중 약 80% 가량이 비정규직 사원이며 그 중 70% 이상이 기혼여성이다. 이는 회사측이 인건비 절감의 이유로 비정규직 사원을 늘린 것이 아니라 결혼이나 출산 등으로 풀타임 근무가 불가능해진 여성사원들이 파트타임 근무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다이에이의 경우 정규직 사원과 비정규직 사원의 임금을 시간급으로 환산하면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일본 정부(후생노동성)의 집계를 보면 2003년도 시점에서 정규직이 65.4%,비정규직이 34.6%를 점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구조조정과 정부의 고용유연화 정책 등의 영향으로 비정규직이 급격히 늘어났지만 일본의 비정규직은 매년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비정규직의 대부분은 파트타임 노동자가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한국과 다른 일본적 특징이다.

비정규직의 증가는 노동수요측(기업측)과 노동공급측(노동자측)의 변화라고 하는 두 가지 경로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노동수요측의 변화에 따른 비정규직 증가는 기업이 인건비 절감의 차원에서 정규직 사원을 줄이고 상대적으로 인건비 부담이 적은 비정규직 사원을 늘리게 되면서 나타나게 된다. 반면 노동공급측의 변화에 따른 비정규직의 증가란 노동자측이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의 고용형태를 선호하게 되면서 나타난다.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급격한 증가는 외환위기 이후 각 기업의 구조조정을 통한 인건비 절감의 수단에 따른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으므로 노동수요측의 변화요인이 강하다.

최근 일본 젊은이들의 노동에 대한 가치관과 의식변화가 크게 바뀌었다. 지금 일본에선 프리터(free arbeiter)의 증가가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프리터란 ‘학생도 주부도 아니면서,파견노동자나 계약사원 등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30세 미만의 젊은 노동자’를 지칭한다. 굳이 우리나라 말로 표현하자면 ‘청년 백수’라고나 할까. 불경기로 인하여 정규직으로의 취업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프리터가 된 젊은이도 존재하지만 그보다는 자발적으로 프리터의 길을 선택하는 젊은이가 더 많다는 것이 문제이다.

일본의 각종 조사결과에 의하면 취업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취미생활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의 노동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취업형태를 선호하기 때문에 프리터(주로 파트타임)가 늘어났다고 한다. 일본의 비정규직 증가는 다이에이의 기혼여성 사원과 프리터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의 고용형태를 선호함으로써 나타나는 요인이 크다. 즉 일본의 비정규직 증가는 노동공급측의 변화요인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임금액이 상승하게 되면 자신의 여가시간을 줄이고 그만큼 노동시간을 늘려 임금소득을 높이고자 한다. 이를 임금증가에 따른 ‘대체효과’라고 한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의 부가 축적되어 소위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되면 임금액이 상승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은 줄어들게 된다. 풍요로운 사회가 되면 돈을 쓰기 위한 시간,즉 여가시간에 대한 욕구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를 임금증가에 따른 ‘소득효과’라 한다. 일본의 ‘2000년도 노동백서’에서는 프리터의 증가등 일본의 고용형태의 다양화와 젊은이들의 가치관이나 의식변화의 원인을 경제적 풍요로움에서 찾고 있다.

한국과 같이 불경기로 인한 기업수익률의 저하,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업측의 구조조정과 인건비 절감의 노력에 의하여 비정규직이 증가했다면 앞으로 경기가 호전될 경우 자연스럽게 비정규직이 감소할 것이다. 왜냐하면 호경기로 전환하게 된다면 노동수요측(기업측)은 안정된 노동력의 확보를 위하여,그리고 기업특수적 기능을 양성하기 위하여 정규직 사원을 선호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는 경기 활성화 정책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경기가 호전된다 하더라도 한번 변한 노동자의 가치관은 다시 바꾸기가 힘들다. 더구나 임금증가에 따른 소득효과는 호경기가 되면 더욱 높아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일본의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비정규직은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허동한(일본 규슈국제대 교수,현 한양대 초빙교수)

2004/12/01 12:08 2004/12/0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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