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산스님 마지막 인터뷰-'오늘 이땅을 살아가는 지혜'
숭산 행원 대종사.
지난 10월 13일 현대불교신문은 ‘원로 스님들에게 듣는다-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지혜'를 주제로 화계사 조실 숭산 스님과 마지막 인터뷰를 가졌다.
오늘의 난국을 돌파할 지혜와 용기를 숭산 스님의 마지막 법문을 통해 다시한번 되새겨 본다.
문 :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서민들의 삶이 힘겹기만 합니다. 그러나 정치권 일부에서는 이에 아랑곳 없이 정쟁에 몰입하고 있는듯한 양상입니다. 국민들이 이 어려운 상황에서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요?
숭산 스님 : 화(禍)와 복(福)은 스스로 받고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니 고난중에도 마음을 비우는 사람은 평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복이라고 다 좋은가요.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도 있는데 복도 너무 많으면 복받느라 걱정이 많아집니다.
그러니 오유지족(吾唯知足)이라. 제 분수를 알아 욕심을 내려놓고 쉴 것이며 내 앞에 닥친 이 일, 이 순간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 자체로서 삶은 이미 바른 길로 들어선 것이 됩니다.
내려놓고 쉬라고 해서 결코 머물러 버려서는 안 됩니다. 자기 능력에 따라 그릇 크기에 맞게 최대한 노력해야 합니다.
문 : 현재 한국불교에는 각종의 수행법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어떤 수행법은 며칠이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며 불자들을 유혹하기도 합니다. 수행법 춘추전국시대에 어떤 수행법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는지, 또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요?
숭산 스님 : 선(禪)을 닦는데도 그 사람의 마음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규봉종밀 선사의 말을 빌면 선에도 외도선이니 범부선이니 소승선이니 하는게 있고, 중도실상을 관하는 대승선, 최상승선인 여래청정선 등이 있습니다. 또 불교공부를 하는 과정으로 보면 간경문에 염불문 그리고 진언문도 있고 참선문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밭을 가는데도 호미로 쟁기로 또는 소를 끌어 가는 등 여러 방법이 나올 수 있습니다. 모두 방편이 되기에 문제삼을 일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마다 근기가 다르니 외도선이 아닌 다음에야 '이거다' 라고 한가지로 고집할 수는 없지만 이왕에 대자유인이 되어 걸림없이 살아가고자 한다면 최상승의 참선문을 통해 마음을 깨닫도록 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세상이 점점 영악해지다 보니 수행도 깨달음도 뭔가 요령껏, 남보다 빠른 지름길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또 그런 것을 좋아하는게 요즘의 세태인 모양이나 깨달음엔 지름길도 없고 특별한 요령도 없습니다.
그저 가고 오고 앉고 눕고 간에 언제 어느 곳에서나 마음자리를 살펴나가면 됩니다.
문 : 한국불교 일각에서는 계율을 안 지키는 풍토가 한국불교를 병들게 하는 주 원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일각에서는 시대에 맞는 계율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큰스님께서는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숭산 스님 :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지만 옛날에 백낙천(白樂天)이 조과(鳥 ) 선사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불법입니까?"
조과 선사의 대답이 간단합니다.
"나쁜 짓 하지 않고 착한 일 많이 하고 그 마음을 깨끗이 쓰면 그것이 불법이다(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足諸佛敎)."
그러자 백낙천이 껄걸 웃으면서 "그쯤이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 아닙니까?" 하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나 백낙천이 뭘 몰라도 한참을 몰랐던 것입니다.
불교는 이치를 아는데 있는게 아니라 실천하는데 있습니다. 만약 계율을 가지고 이러니 저러니, 시대에 맞느니 안 맞느니 하는 얘기가 사실이라면 그런 말하기에 앞서 조과 선사가 대답한 뜻부터 바로 알라고 일러주고 싶습니다.
다만 5계, 10계 라도 목숨 걸고 실천부터 하는게 신불자(信佛者)의 도리입니다. 계율의 개정을 말하는 이들은 돌이켜 그 말을 하는 마음자리부터 살필 일입니다."
문 : 저 멀리 십자군 전쟁에서부터 최근 이라크 전쟁까지 종교가 전쟁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진정한 세계평화를 이루고 종교화합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숭산 스님 :네 신, 내 신…. 신의 이름을 앞세워 싸움을 벌이는 성향이 없질 않으니 그래서 '종교를 아편'이라고 극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이 먼저 사람의 도리를 알고 땅의 도리를 알고나서야 하늘 길을 묻는게 순서이겠거늘 가르침을 잘못 받아들여서 그만 인간의 길은 제쳐두고 서로들 하늘 일을 잘 안다고 나대니 전쟁이 날 수 밖에 없지요.
기독교의 하나님이란 분은 텅 비고 깨끗한 자리라 그속에서 삼라만상이 탄생했다는 의미이니 불교의 가르침과 크게 어굿나지 않습니다. 유교다 도교다 하는 가르침도 다 마음을 잘 지키고 자연스럽게 쓰는 것이니 불교와도 또 어긋나지 않거늘 어디 다투고 싸울 명분이 있겠습니까.
모두가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으면 그야말로 세계가 한 꽃송이 이거늘 그걸 모르니 편가르고 싸우는 것입니다.
산은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
숭산 행원 대종사.
지난 10월 13일 현대불교신문은 ‘원로 스님들에게 듣는다-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지혜'를 주제로 화계사 조실 숭산 스님과 마지막 인터뷰를 가졌다.
오늘의 난국을 돌파할 지혜와 용기를 숭산 스님의 마지막 법문을 통해 다시한번 되새겨 본다.
문 :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서민들의 삶이 힘겹기만 합니다. 그러나 정치권 일부에서는 이에 아랑곳 없이 정쟁에 몰입하고 있는듯한 양상입니다. 국민들이 이 어려운 상황에서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요?
숭산 스님 : 화(禍)와 복(福)은 스스로 받고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니 고난중에도 마음을 비우는 사람은 평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복이라고 다 좋은가요.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도 있는데 복도 너무 많으면 복받느라 걱정이 많아집니다.
그러니 오유지족(吾唯知足)이라. 제 분수를 알아 욕심을 내려놓고 쉴 것이며 내 앞에 닥친 이 일, 이 순간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 자체로서 삶은 이미 바른 길로 들어선 것이 됩니다.
내려놓고 쉬라고 해서 결코 머물러 버려서는 안 됩니다. 자기 능력에 따라 그릇 크기에 맞게 최대한 노력해야 합니다.
문 : 현재 한국불교에는 각종의 수행법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어떤 수행법은 며칠이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며 불자들을 유혹하기도 합니다. 수행법 춘추전국시대에 어떤 수행법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는지, 또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요?
숭산 스님 : 선(禪)을 닦는데도 그 사람의 마음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규봉종밀 선사의 말을 빌면 선에도 외도선이니 범부선이니 소승선이니 하는게 있고, 중도실상을 관하는 대승선, 최상승선인 여래청정선 등이 있습니다. 또 불교공부를 하는 과정으로 보면 간경문에 염불문 그리고 진언문도 있고 참선문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밭을 가는데도 호미로 쟁기로 또는 소를 끌어 가는 등 여러 방법이 나올 수 있습니다. 모두 방편이 되기에 문제삼을 일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마다 근기가 다르니 외도선이 아닌 다음에야 '이거다' 라고 한가지로 고집할 수는 없지만 이왕에 대자유인이 되어 걸림없이 살아가고자 한다면 최상승의 참선문을 통해 마음을 깨닫도록 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세상이 점점 영악해지다 보니 수행도 깨달음도 뭔가 요령껏, 남보다 빠른 지름길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또 그런 것을 좋아하는게 요즘의 세태인 모양이나 깨달음엔 지름길도 없고 특별한 요령도 없습니다.
그저 가고 오고 앉고 눕고 간에 언제 어느 곳에서나 마음자리를 살펴나가면 됩니다.
문 : 한국불교 일각에서는 계율을 안 지키는 풍토가 한국불교를 병들게 하는 주 원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일각에서는 시대에 맞는 계율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큰스님께서는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숭산 스님 :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지만 옛날에 백낙천(白樂天)이 조과(鳥 ) 선사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불법입니까?"
조과 선사의 대답이 간단합니다.
"나쁜 짓 하지 않고 착한 일 많이 하고 그 마음을 깨끗이 쓰면 그것이 불법이다(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足諸佛敎)."
그러자 백낙천이 껄걸 웃으면서 "그쯤이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 아닙니까?" 하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나 백낙천이 뭘 몰라도 한참을 몰랐던 것입니다.
불교는 이치를 아는데 있는게 아니라 실천하는데 있습니다. 만약 계율을 가지고 이러니 저러니, 시대에 맞느니 안 맞느니 하는 얘기가 사실이라면 그런 말하기에 앞서 조과 선사가 대답한 뜻부터 바로 알라고 일러주고 싶습니다.
다만 5계, 10계 라도 목숨 걸고 실천부터 하는게 신불자(信佛者)의 도리입니다. 계율의 개정을 말하는 이들은 돌이켜 그 말을 하는 마음자리부터 살필 일입니다."
문 : 저 멀리 십자군 전쟁에서부터 최근 이라크 전쟁까지 종교가 전쟁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진정한 세계평화를 이루고 종교화합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숭산 스님 :네 신, 내 신…. 신의 이름을 앞세워 싸움을 벌이는 성향이 없질 않으니 그래서 '종교를 아편'이라고 극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이 먼저 사람의 도리를 알고 땅의 도리를 알고나서야 하늘 길을 묻는게 순서이겠거늘 가르침을 잘못 받아들여서 그만 인간의 길은 제쳐두고 서로들 하늘 일을 잘 안다고 나대니 전쟁이 날 수 밖에 없지요.
기독교의 하나님이란 분은 텅 비고 깨끗한 자리라 그속에서 삼라만상이 탄생했다는 의미이니 불교의 가르침과 크게 어굿나지 않습니다. 유교다 도교다 하는 가르침도 다 마음을 잘 지키고 자연스럽게 쓰는 것이니 불교와도 또 어긋나지 않거늘 어디 다투고 싸울 명분이 있겠습니까.
모두가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으면 그야말로 세계가 한 꽃송이 이거늘 그걸 모르니 편가르고 싸우는 것입니다.
산은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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