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단어가 다 그렇듯이 실제로 그것이 지시하는 바를 정확히 뜻하고 있는 단어는 없을겁니다. 투자에 있어서는 가치라는 단어가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의하기란 상당히 모호합니다. 세세히 따지고 들어가면 투자란 단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투자와 투기는 혼동되고, 가치의 정의는 모호해져서 급기야 '수급가치' 라는 말이 쓰일 정도입니다. 어쩌면 화장실 변기 뒤에서도 어떤 가치를 찾을지 모릅니다.

투자론의 역사를 간략히 훑어보면, 발전해 온 투자 방식이 회사의 가치를 높게 산정하기 위한 일련의 작업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액면가를 근거로 투자 가치를 측정하다가 더 이상 액면가가 의미를 갖지 못하자 배당에 근거해 투자 가치를 측정하기 시작했고, 후에는 회사의 유형자산을 근거로 주가의 적정성을 따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높은 주가를 설명하기가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에는 미래의 현금흐름을 '임의'로 측정하여 그것을 할인하거나 현재의 현금흐름에 '임의'의 배수를 적용합니다. 문제는 그 이후인데, 이유는 가치 판단의 근거가 실로 광범위하게 인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치란 것이 판단의 근거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크게 바뀔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판단의 근거는 투자자가 사람인 이상 갑작스럽고 변덕스럽습니다. 주가의 오르락 내리락 하는 그래프는 투자자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최근 제약 업체들의 주가 급등은 가치 평가의 판단 근거가 얼마나 갑작스레 바뀔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가치는 가격보다 높아야 하고 그 차이가 클 수록 기업이 성장하고 투자는 성공적이 됩니다. 그러나 가치 판단의 근거로 비교적 측정하기 손쉽고 합리적인 유형(有形)의 것에 측정하기 어려운 무형(無形)의 것을 더할 수록 미래가치와 주가는 더더욱 높아지고 그 근거의 타당성은 더더욱 낮아집니다. 하지만 일단 주가가 오르면 그것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는 고려되지 않고 판단이 옳기에 주가가 올랐다는 식의 비합리적인 논리로 귀결되고 맙니다. 그리고 이 일은 가격이 먼저 상승한 후에 평가 방법이 뒤따르고 그 평가 방법을 근거로 다시 가치가 높게 평가되어 가격이 상승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듭니다. 이쯤 되면 챠트 거래와 가치 투자가 별반 차이점을 가지지 못하는 순간까지 옵니다.

이는 산업 자체가 평가하기 어렵고 복잡한 형태로 변화한 것이 한 가지 큰 이유입니다. 바꿔 말하면 가치 판단의 근거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길이 상당히 어려워졌다는 의미입니다. 이에 대한 해법은 워렌 버펫이 제시한 바와 같이 간단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지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취해서 그 범위에서 투자 기회를 엿보면 됩니다. 정작 쉬이 이해할 수 있는 기업은 몇 개 되지 않고 매입의 기회는 더 적은데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기회는 어디에나 널려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른 온갖 곁다리 단서를 들고 나오지만 정작 근거를 제대로 밝히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대략 '이 회사는 기술력이 좋다', 'CEO는 말할 것도 없고 구성원들의 인력이 끝내준다', '난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것은 엄청난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상의 말을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어짜피 읽는 사람이 이해 못할 테니 써봐야 소용없다. 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 왜 사람들에게 그들이 제대로 알 지도, 알 수도 없는 기업을 사라고 추천하는겁니까?)

투자자들은 소위 '첨단, 과학 기업'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신중히 검토해봐야 합니다. 과거 삼성SDI가 큰 폭으로 상승할 때 이 기업의 기술력과 인력을 높게 평가하여 주가를 정당화하는 모습은 주가가 하락하자 사라졌습니다. 다시 주가가 오르니 또 이전과 비슷한 내용의 보고서들이 나올 겁니다. 요즘 하이닉스가 신고가를 경신하자 뒤이어 따라 나오는 각 증권사의 새로운 목표주가를 볼 때 마다 앞서 설명한 악순환의 고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 두 기업의 가치 평가가 (상당히 측정하기 어려운) 진정한 기술력과 인력에 근거함이 아니라 주가의 향방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생명과학주들의 폭등을 보면서도 역시 과연 기술력과 상업성을 인정받은 업체가 몇 곳이나 될 지 궁금해집니다. 주(主)가 되어야 할 그것들이 주가를 설명하기 위한 '보조 지표'로 쓰이고 있을 뿐입니다.

한 쪽에서는 여전히 인텔과 구글이 신고가를 경신하며 올라가고 애널리스트들은 새로운 가치평가모델을 직조, 환상적인 미래가치를 근거로 그 가격에 맞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반면 워렌 버펫은 지난 수 년간 살 주식이 없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가 살 주식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가 정의하는 미래가치는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것을 뜻하고, 이는 그가 이미 천명했듯 벤자민 그레이엄의 85%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이상으로 봅니다만)

벤자민 그레이엄은 주가가 상승할 땐 언제나 저평가 받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투자방법을 폄훼하는 근거 중 하나는 -- 메리 버펫의 '주식투자 이렇게 하라' -- 기간이 지나면 수익률이 줄어든다는 것인데 이는 다른 모든 투자 방법론 역시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입니다. 연간 10%로 성장할 걸로 예상하고 미래가치를 할인한 기업이 그렇게 성장 안 하면 수익률은 똑같이 줄어듭니다. 더욱이 이는 예상이기에 더 큰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그레이엄은 아주 친절하게도 파악하기 쉽고 실질적인 잣대를 제공해 준 죄밖에 없죠. '내재가치에 도달하지 않으면' 이라고 먼저 전제를 깔고 논리를 전개하는 이상 다른 투자 방법론에도 역시 '성장하지 않으면' 이라는 전제를 깔고 비교해야 하는데 그레이엄의 방법론에만 적용함으로써 왜곡시켰죠. 이는 그녀 자신의 투자론 (버펫은 자신의 투자론을 그녀처럼 세세하게 설명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을 빛내기 위해 메리 버펫이 다소 악의적으로 설정해 논 것이라고 봅니다. 그냥 '그 기준에 맞는 주식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주가가 상승했다.' 라는 한 문장이면 되는데 말입니다. 자기가 위대해지는데 남을 비천하게 만드는 것 만큼 좋은 방법은 없죠. 또는 그레이엄이 아무 생각없이 유형가치만 보고 매입했다는 식의 이상한 글들이 난무합니다. 이들은 '현명한 투자자'를 읽어보고 그게 그레이엄의 전부인양 말합니다만 "이 책의 목적은 초보자가 알맞은 투자전략을 수립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다. 증권분석의 기술에 대해서는 비교적 적게 언급하고, 주로 투자원칙과 투자자의 자세에 관심을 둘 것이다. " 라는 서론을 건너뛰고 읽었다고 밖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저평가 된 주식만을 찾아나서던 그가 그 자신이 저평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좀 씁쓸하지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적어도 저는) 그의 유훈을 따라 그의 방법을 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최근 필립 피셔의 저작물이 번역 소개 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많이 읽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 그가 쓴 책은 총 4권인데 3권이 합본으로 미국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합본을 단권 세 개로 나눠서 국내에서 번역 출판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멋진 상술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처음 그의 책을 접했을 때 느꼈던 점은, 어떤 투자에 대한 놀라운 시각보다는 지독하게도 신중한 투자 자세와 그의 방식으로 투자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업종에 종사하고, 자신의 일에 시간을 쏟아야 하는 소위 개미 투자자들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필립 피셔의 책을 읽고, 그의 방식으로 투자하려 한다면 자신도 잘 모르는 기술 용어를 남발하거나 신문이나 주·월간지 몇 권 보고 회사의 핵심을 파악했다거니 CEO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하기에 앞서 그가 제시한 조사 방법을 찬찬히 훑어보고 자신의 조사와 비교해 그 장벽을 느껴보는 것이 일반 투자자에게 차라리 옳은 일일겁니다.

훌륭한 기업을 찾기에 앞서 나 자신이 훌륭한 기업을 찾는데 있어 실수할 만한 점은 없는지, 가치를 평가하는데 있어 내 능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은 아닌지, 이 기업이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이 입을 손해를 줄일 다른 방책이 있는지를 모두 고려해도 투자의 성공을 100% 보장하기 힘든 게 투자입니다. 섣불리 미래가치를 따져 투자한다면 그건 투기와 다름 아닙니다. 저에겐 종종 '미래가치'와 '수급가치'가 동의어로 들릴 때가 있습니다.

이 글 전체의 논의와 투자론에 대한 시각은 이미 1940년대 벤자민 그레이엄이 '증권 분석(Security Analysis)'에서 통찰했던 바를 제 나름의 시각에서 정리한 것이고 이런 불합리함은 그 전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60년간 반복되어 왔습니다.

글을 쓰는 현재 건너편 앞 집에서 어떤 청년이 창문을 활짝 열고 노래 연습을 하고 있는데 무슨 공연 준비라도 하는지 어제 새벽부터 아주 죽어라고 합니다. 사람 잠도 못자게 멱따는 소리가 너무 짜증나서 죽겠는데 말이죠. (새벽엔 아주 주둥이를 틀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아마 저 청년은 자신이 노래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 생각은 빠르면 인내심이 고갈난 어느 주민의 신고를 받고 경찰차가 방문하는 날 깨지거나 늦으면 많은 인파가 몰려 있는 공연장에서 깨질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전자에 의해 깨지는 게 훨씬 낫겠죠? 지난 시간 제가 떠들어왔던 투자에 있어 제 자신에 대한 평가도 이와 같습니다.
2005/07/17 04:29 2005/07/17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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