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r Lap
기상천외한 경주작전





뉴욕 타임스의 부고장(訃告狀)
1932년 4월 6일 뉴욕 타임스 1면에 경주마 한 마리가 산통으로 죽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말 이름도 생소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보도는 극히 이례적이었다.

그 말이 바로 뉴질랜드에서 출생하여 단 한 차례 미국 원정경기 후 의문사한 ‘Phar Lap’이다. 미국에서 20세기 최우수 경주마 100두를 선정한 내용을 살펴보면 켄터키더비마 126두 중 겨우 28두가 뽑혔고, 최고 명문인 Northern Dancer계도 5두에 불과하다. 그리고 미국 이외 지역에서 태어난 말은 Phar Lap을 포함해 5두뿐이다(아일랜드 2두, 프랑스 1두, 아르헨티나 1두). 그러나 나머지 4두는 출생지만 다를 뿐 미국에서 경주를 계속했으며, 오직 Phar Lap만이 한 차례 원정 경기로 22위에 랭크되었다. 미국인들이 그들의 자존심을 접으면서 왜 이 말을 최고 경주마로 선정했으며, 세계 굴지의 신문을 통해 부고장을 돌렸을까?

자이언트의 탄생
Phar Lap은 1926년 10월 28일 뉴질랜드 Seadown Stud에서 태어난 밤색 거세마이다. 그의 혈통표에는 부계쪽에 영국 더비를 거머쥔 Bend Or(3대, 1877년생, Northern Dancer의 8대조), Spearmint(3대, 1903년생)가 들어 있으며, 모계는 St. Simon(5대, 1881년생)의 후손이지만 그 라인은 이미 쇠퇴해 버린 지 오래된 것 같다.

호주 조교사 Herry Telford와 미국인 사업가 David Davis가 공동으로 약 800달러에 구입한 거세마였으나 체고가 17.1핸드(173.7㎝)이고 흉위가 2m가 넘는 거구였다. 그가 이긴 경주에서 측정한 평균 보폭은 732∼824㎝에 달했다(국내의 평균 보폭은 650∼700㎝임).

‘Phar Lap’이란 마명의 근원은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단지 자바의 방언으로 ‘lightning strike’(번개처럼 빠르다)란 뜻으로, 혹은 어미의 아비인 ‘Winkie’에서 유래한 ‘밤하늘의 윙크’로 받아들여지지만 ‘Red Terror’의 별칭으로 자주 불리기도 했다.

호주에서의 경주마 시절
1929년부터 1932년까지(미국 원정경주 포함) 51전 37승으로 30만1,402달러를 수득했으나, 대부분의 명마들처럼 3세 후반기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호주인들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할 당시부터 무장 경호원과 경찰견의 경호 속에서 지낸 그의 위세는 멜버른컵(Melbourne Cup, 2mile) 경주의 설명만으로 충분할 것 같다.

‘톰소여의 모험’을 지은 마크트웨인은 “지구상에서 말과 관련된 최고의 축제가 바로 이것”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경마전문가들은 지구 남반구의 최고 경주이기는 하지만 가장 잔인한 핸디캡 경주라 일컫기도 한다. 4세 때 Phar Lap이 이 경주에 참가했을 때 워낙 인기가 높아 전체 국민들 중 심사가 뒤틀린 사람은 경마예상지 판매업자뿐이었다. 5세 때 경주에서는 필자가 생각해도 거짓말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 당해 그가 유일하게 3착이하의 착외로 밀린 경주가 바로 이 경주다.

부담중량이 무려 150파운드(68㎏)였는데, 우승한 말의 부담중량은 겨우 98파운드(44㎏)에 머물렀다. 경주마 자원이 워낙 부족했던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런 일들이 가끔씩 있었다.

세계 최고 상금 수득마 Cigar의 전성기 때도 부담중량은 130파운드에 불과했다. 한쪽은 적당한 부담중량 부여로 전 국민의 영웅을 만들어내고 경마를 대중화시켜 나가는 반면, 다른 쪽은 고객의 흥미 충족에만 급급하여 어린 망아지의 다리가 부러지는 것조차 기꺼이 감수하려는 상황들이 경마제도를 잘 모르는 필자로서는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하여튼 Phar Lap은 호주에서 28만 2,200달러를 수득하고 주위에 적수가 보이지 않자 세계 최고 상금 획득을 목표(당시 최고 상금 수득마는 37만6,744달러를 번 미국의 Sun Beau, 93위)로 미국 원정길에 오르게 된다.

기상천외한 경주작전
1만마일의 바닷길을 화물선 바닥에서 3주 동안이나 참아낸 그는 마침내 샌프란시스코 항구에 도착했다. 얼마동안 컨디션을 조절한 후 10만달러의 우승상금이 걸린 Agua Caliente Handicap 경주에 출사표를 던졌다(불행하게도 경주 직전 상금 규모가 절반으로 줄어들어 최고 상금 수득의 꿈은 좌절되었다). 경마장의 모든 환경이 다를 뿐 아니라 발주기 또한 지금 것의 전신인 Maxwell 발주기여서 Phar Lap에게는 처음 보는 쇠덩어리였다.

경마진행자의 적응 훈련 권유를 무시하고 시골길이나 낮은 언덕을 이리저리 피해다니며 이국의 풍경들을 감상하는 것이 그의 훈련 방법이었다. 진행자의 귀찮은 권유가 계속되자 원형마장에서 등 위에 새끼염소 4마리를 태우고 서커스하듯 빙글빙글 돌았다. “워낙 온순하고 영리해서 그런 훈련은 필요없소” 하고 조교사는 한마디 던졌다(그가 죽은 지 70년이 지난 지금 Phar Lap에 대한 재평가는 그의 경주능력보다 오히려 ‘영리함’ 때문에 최고의 경주마 반열에 올려 놓는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음).

경주 당일에도 몇 경주 앞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공터에서 이리저리 달려보았다. 발주요원이 기겁을 하고 기수에게 “당신 말은 최고 인기마이니 얼른 내려 그를 쉬게 하시오”라고 했으나 Phar Lap은 재빨리 멀리 도망가 버렸다. 경주 며칠 전 조교사 Telford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출발지점에서 시시한 미국말들이 튕겨내는 흙먼지를 Phar Lap의 얼굴에 묻힐 수는 없으니 천천히 출발하여 외곽으로만 달리게 하여 2,000m 거리 중 마지막 800m만 갤럽하겠다고 희한한 경주작전을 공개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다.

1,800m 트랙 중 중앙 관중석을 지나는 200m 지점에서 앞무리와 정확히 50야드(45m) 떨어져 있음이 측정 결과 드러났다. 그것도 외곽 펜스에 붙어서…. 1,200m를 남겨놓고 후미그룹에 합류한 뒤 800m를 남겨두고 기수는 채찍을 뽑았다. 그리고 여유있게 승리했다. 경주 후 여러 경마장에서 고액의 상금을 걸고 그를 초청하려 하였다. 어떤 사람은 트랙에 실크카펫을 깔아 줄 테니 그 위를 한 번만 달려 달라고 매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일반인의 출입을 막은 채 부어오른 근을 비밀리에 치료하고 있었다.

의문의 죽음
느닷없이 뉴욕 타임스에서 Phar Lap의 죽음이 보도되었다. 부검 결과 사인은 이슬에 젖은 알팔파를 먹어 산통이 발생한 것이며, 소량의 극약 성분도 검출되었다. 독극물 성분은 목장 관리인이 주위 나무에 살충제를 뿌리던 중 일부가 바람에 날려 그의 마방까지 침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른 곳에서 Phar Lap을 주연으로 출연시키는 영화 제작에 관하여 논의하던 마주도 급히 달려와 주위의 설명을 듣고 부검 결과에 동의했다.

그러나 호주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1999년 브리더스컵 경주를 참관하러 온 호주 경마관계자들도 환담 중 Phar Lap의 이야기가 나오자 정색을 하고 “당신네 미국 사람들이 우리의 영웅을 죽였소” 하고 고함을 쳤다) 믿지 않는다.

호주에서는 Phar Lap의 독살을 소재로 소설이 쓰여지고 그를 추모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제작되었다. 그리고 이른바 양심선언이란 것도 수없이 나왔다. 남미계 폭력배들이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으며, 훈련을 마치고 마방으로 돌아가는 그에게 총이 발사되었으며, 심지어 타살이라고 계속 주장하던 당시의 전담관리사도 50년이 지나 신문기자들을 모아 놓고 호주에서 가져간 영양제가 부족할 것 같아 물을 타 먹여 그가 죽었다고 대성통곡하는 등….

반면 미국에서는 Damon Runyon이라는 소설가가 2차대전 당시 연합군 병사들에게 편지를 보내 “Phar Lap은 분명히 세계 최고의 경주마다”며 “미국의 어떤 사람이 감히 그를 죽일 마음을 품었겠느냐”고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Phar Lap은 지금도 살아 있다
그의 부검 후 14파운드에 달하는 심장(경주마 평균 심장은 9파운드임)은 뉴질랜드로 보내져 영구 보관 중이며, 몸체는 박제되어 멜버른 빅토리아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1999년 가을 마주 David의 손자집에서 우연히 Phar Lap의 우승 트로피가 하나 발견되었다. 그 트로피는 소더비 경매에서 예상가격 9만달러를 훨씬 상회하는 27만달러에 팔렸다. 그는 호주인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양심선언이 나오면 신문들은 그것을 대서 특필하고, 그들은 다시 분노하기 시작한다. “Phar Lap의 사인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라고….


글 / 김종식 푸른목장 대표
2006/01/04 01:25 2006/01/04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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