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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 사용에 대하여..



경마는 채찍으로 인하여 망쳤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마에 있어서 채찍은 분명히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기수들의 경주중 채찍 사용은 대부분 마필의 경주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추진의 보조 수단으로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러한 일련의 동작이나 행동이 때로는 통쾌함을 주기도하지만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도 있다는 것을 밝히면서 그러한 것들을 간단하게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채찍의 사용목적

채찍은 정 부조의 보조 수단 으로써 원하는 운동의 목적을 좀더 극대화 시키기위하여 부 부조로써 사용하고 음성.박차.등이 있으며.

격려.지시.훈육.징계.의 목적으로 사용하나 경주중에는 지시.격려.그리고 추진의 보조 수단으로 주로 사용한다.

훈육이나 징계는 훈련 과정이나 순치 과정에서 주로 사용하고 이론상에서의 징계는 경주시에는 사용 하지않는다 라고 하고있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고 극히 제한적이나. 예외의 경우도 있을수있다.

평소에 하지않던 악벽이나 돌출행동을 보일때 예를 들어 사행을 한다던가 땡땡이를 피울때 혹은 거부의사를 보일때 등은 지시의 차원을 넘어 적절하게 징계를 가할수 밖에 없는 상황이 실전에서도 생길수 있고 경험을 했었지요.

그러나 가급적이면 자제를 해야함에는 물론 이고 사용자의 숙련도나 기승실력에 따라 차이가 있겠습니다 만은 자칫 잘못 사용해서는 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경주중 채찍의 사용원칙

1.가능하면 사용하지 않는다.

2.때리기 전에 먼저 보이는 채찍을 사용한다.

3.너무 세게 때리지 않는다.

4.마체가 수축했을때에 때린다.

5.마필이 최초의 채찍에 반응 했으면 더이상 때리지 말고 보이기를 한다.

6.마필이 채찍에 위축했으면 사용을 멈추고 주먹과 체중으로 몰아낸다.

7.결승선까지 여유가 있고 여력이 있을때 사용한다.

8.좌.우.양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할수 있고 균형이나 바란스 를 해치지 않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기수가 경주중 채찍의 사용은 말이 좀더 빨리 달리도록 자극을주는 것이지 결코 고통을 준다거나 강하게 사용하여 매에 못이겨 빨리 달리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명심 할필요가있다.


1번 사항은 저엮시 현역시절 그래왔듯이 이길 자신이 있을때에는 결코 채찍을 사용하지 않고 몰아내는데 주력하였으나 이길자신이 없거나 희박할때는 채찍 사용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인기마를 기승하고 채찍을 사용하지 않고 이기지못했을 때는 과연 경마팬들이 이해를 할수있겠는가? 라고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지않느냐 는 것이지요.

또한 채찍을 사용한다고 해서 더 잘뛰는 것이 아니라는것을 이해할 경마팬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요?

경험으로 미루어 보거나 현역기수들도 마찬가지로 이길자신이 없을때 채찍의 사용은 팬들을 의식함이 가장크고 이것을 스탠드 플레이라고하죠 또한 치열한 접전을 펼칠때 등은 어느정도 채찍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정신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고 승부근성으로 보아야겠죠.


2번 사항은 경주경험이 제법 풍부한 마필 이라고해도 예고없이 갑자기 엉덩이나 옆구리에 채찍을 가한다면 놀랄수 있겠지요. 해서 먼저 머리 부분으로 흔들어 보이고 자! 이제 한번 최선을 다해서 달려보자고 말에게 지시.혹은 격려를 보내는 것이지요

제법 많은 질문을 받은 부분인데 저 기수는 왜? 말머리를 때리느냐? 그러면 더잘뛰는냐?고 하시는데요 머리쪽에 흔드는 동작이 좀 강하거나 액션이커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뿐 있을 수 없고 설령 때린다 해도 백해무익 이랍니다.


3번 사항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자극만 주는 것이지 매에 못이겨 뛰는 말은 없어요 강한것이 좋다면 야구 방망이 들고 타면 맨날 일등하게요.
아니면 관우나 장비같은사람이 청룡도 휘두르던지...

혈통이 나쁘고 경주마로써 부족한 말중에 간혹 때릴수록 더뛰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옛날 얘기지요.아직도 그런마필이 남아있다면 슬픈일이지요.


4번 사항은 엇 박자로 기수가 하려고 해도 쉽지않은 일이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리고 십습니다.혹자는 그러한 얘기 들을 하는 사람이 있은데 말도 안되죠.
수축했다가 앞으로 뻗으면서 중심이동을 할때 채짹을 사용하는 것인데 무슨재주로 그것을 반대로 한단말입니까? 설령한다해도 눈에 확 띄죠.


5번 사항은 자! 이제 가자고 말에게 신호를 보내면서 어깨나 엉덩이 부분에 한두대먹이고 좀더 분발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이론 적으로야 더이상 때리지 말고 보이기만 하라는 것인데 그것이 맘대로 되남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두들겨 패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치열한 경합을 하거나 이길자신이 없을 때는 혹자는 승부근성이 강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것이지요.


6번 사항은 채찍에 위축당하는 말이 특별히 있고 전혀 효과 가 없는 말이 있습니다 유심히 관찰해보면 최초의 혹은 채찍을 사용 할 때마다 꼬리를 심하게 흔들거나 과민 반응을 보이는 말이 있는데 이런 말들은 채찍이 전혀 효과도 없고 오히려 더손해만 본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엮시도 이런종류의 마필에 기승하고 인기가 높을때 어떤일이 있어도 채찍 사용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기승하지만 라스트에서 발걸음이 없을때는 답답한 마음에 한두번 사용해보지만 뻔한것인데요뭐.이런걸 팬들이 알까요?


7번 사항은 저의 경험으로는 힘이 다하고 뛸의사가 없는 마필은 채찍 아니라 그어떤 방법으로도 몰아낼 수단이 없다는 것이지요.발걸음에 힘이 남아있고 뛰려는 의지가 있을때 자극도 통하고 부조도 통하는 것이지 지친상황 에서는 어떻게 할방법이 없고 단지 욕안먹기 위해서 최선만을 다할뿐이죠.

정말이지 인기마에 기승하고 라스트 허우적거릴 때에는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비참하고 암담한 심정이란것을 모르셨죠?


8번 사항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요 상황에 따라 양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없다면 커다란 결점이 분명 하고 또한 채찍을 사용하면서 균형을 잡지못하고 흔들어 댄다면 마필의 주행에 방해를 하는 것이고 지친상황에서는 더욱더 영향이클 수 밖에는 없겠지요.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갈때 조금만 보채고 뒤로 힘을 줘도 힘들고 불편한것인데 전속력 으로 달리는 말위에서의 바란스 유지란 굉장히 중요하고 키포인트 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채찍사용은 굳이 하는 것이 좋다 또는 안하는 것이 좋다 라고 누구도 단정적으로 말할수 없겠지요 마필에따라서 혹은 상황에 따라서 기수가 적절히 사용하여서 파생될 수 있는 오해도 불식시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주는 것이 책임이고 의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경마팬 여러분들도 너무 부정적인 시각으로 만 보지마시고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런 애환도 기수들이 갖고 있구나 하는 애정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잘못된 고정관념 에서 탈피하여 좀더 마공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확신합니다.

제가 기수출신이기 때문에 이런얘기도할 수 있지만 기수 편들어준다고는 생각 하지마세요 팬여러분들이 지금 아무리 메스컴이나 기타 여러가지로 옛날 보다는 기수 접하기가 좋아진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민감한 부분에 대한것은 시원한 얘기 못들어요.

또한 현역이 얘기하면은 변명으로 비칠수도 있고 자기합리화의 수단으로 보여질수 있어 믿음이 덜가겠지만 저야 뭐 이제 과거의 기수 였고 팬여러분과 호흡을 같이할 운명인것을 ....






2002.03.26 PM05:08:00 입력
2005/12/19 15:41 2005/12/19 15:41

경주중 기수의 역할과 판단요소...



경주에서의 우승은 여러가지 조건들이 하모니를 이룰때 비로소 도출되는 결과라할 수 있다 또한 마칠인삼 이란 말이있듯이 마필의능력이 경주우승 조건에서 우선시됨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것이나 경마의 발전과 함께 현대의 경마에서는 기수의 역할이 점점 많은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증대되어 감에따라 간단하게 기수의 역할이나 판단요소 등을 제가 배워온 이론과 현역시절의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경주에서 기수의 역할과 판단요소 들로는 페이스판단.임기응변.냉정성.기민성.결단력.승부근성.등이 있습니다만 올바른 경주자세나 부조의 사용까지 정확하다면 금상첨화라고 할수있겠지요.

*페이스판단
경주전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일종의 작전개념이나 스타트 하기 전까지 유효하다.보통 전체의 흐름은 어떠한가를 파악한다. 빠른가.늦은가.아니면 보통인가.
그리고 페이스메이커는 누구인가 상대마필은 어떤마필들인가.

상대마의 각질이나 능력 조교상태나 컨디션.게이트번호.기승기수. 장단점.특이사항.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의 마필과 비교검토한후 예견되는 모든 경주상황들을 이미지트레이닝을 통하여 숙지하고 의외의 변수도 꼼꼼히 생각해둔다.

또한 신인기수 들과의 경주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돌발적인 경주전개에 항상 대비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한다.

장,단점은 있지만 비슷한 작전의 고집보다는 항상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갈 수 있도록 훈련과 노력을 게을리 말아야 하며 할수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

경주전의 작전개념이라 과도한 신경을 쓰는것은 긴장감을 높일뿐 아니라 스트레스의 원인이 됨으로 오히려 해롭다 대상경주에서의 평소와는 달리 침착하지 못한 경주전개는 과도한 신경과 긴장감이 주원인 이라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저역시 대상경주의 첫출전시에 그랬었고.. 경험이 적은 기수들의 행동을 관찰 하여 보면 지나친 긴장으로 인해 화장실을 자주간다던지 굳은표정과 경직된 몸놀림이 눈에 선하지요 그것은 바로 이경주를 오랜시간 생각할 수 있었기때문에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증거겠지요.

과도한 신경은 해가되지만 정확한 페이스판단과 자신감은 이미 반은 이기고 들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임기응변
임기응변이란 스타트부터 결승선 골인할때까지 경주전개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 해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모두가 중요하겠지만 그중 가장중요한 부분이아닌가 생각합니다.

페이스판단의 착오와 상황변화에 즉흥적으로 대처해 나가지 못하고 처음 작전 그대로 밀고나간다면 실패는 자명한일 아닐까요?
예를 들어 선행을 하려고 했으나 스타트가 상대보다 늦었고 처음 계획보다 많은 힘을 소비하여 선행해야 한다면 그 작전은 이미 틀렸고 빨리 다른방법을 찿아야겠지요.

그러나 상대마필과 비슷한 선행력을 갖고있고 상대마가 선행을 해야 잘뛰는 마필이거나 상대마 보다 지구력에서 앞선다면 조금은 상대의 힘을 낭비시킬 필요가 충분히 있기때문에 비록 선행은 못하여도 경합으로 상대의 힘을 빼주는 것이죠.

반면에 순발력이 좋은 마필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능력에 따라 최고의 순발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리) 몸싸움을 걸어와도 굳이 싸울 필요가 없이 곱게 유도하고 상대마나 결승선과의 거리를 보아 스퍼트 시점을 조절 해야겠지요.늦어도 빨라도 안되고 절묘한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며 쉽지는 않고 거리감각.스피드감각.자신의 마필에 대한 믿음. 서두르지않는 자신감등이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임기응변의 핵심은 내가 하나를 실수 한다면 상대로 하여금 둘 혹은 셋을 실수 하도록 유도하고 서로 실수가 없다면 마필의 기본능력이나 기수의 실력이 우승의 향방을 좌우 하겠지요.판에 박힌 작전개념이나 고정관념 으로는 경주의 변화에 대처할 수 없고 좋은성적을 낼 수 없겠지요.

임기응변이나 경주의 백미는 상대가 한끝 잡았을때 광땡잡으면 싱겁잖아요.더도말고 둘도말고 한끝이나 두끝 차이 이거 좋지요 그래야 또 덤비잖아요.ㅎㅎㅎ

*냉정성
말 그대로 입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있지만.물론 쉬운 얘기는 아니지요 치열한 경주속에서 침착하지 못하고 서두르고 판단착오로 경주를 망친후에 장탄식을 하는것을 많이 볼수 있지요 팬여러분 들께서도 엽기적인 경주전개라고 때로는 욕도 하시겠지만 전부 다 고의적인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팬 여러분들이 고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것들의 대부분이(물론 고의적인 것도있음을 인정함) 어이없는 판단미스와 경주전개로 경주를 망치고 후회하고 망연자실한 모습을 저는 수없이 보아왔거든요 저도 처음에는 경주를 하면서 이해할수 없는 경주전개에 의심을 했었지만 거짓과 진심은 분명히 표가나고 다르잖아요.

냉정해야 한다는 것은 다알고 있지만 쉽지 않은것은 그만큼 경주가 긴박하고 기수역시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죠.선천적인 자질도 필요한 것이 분명하구요.

*기민성
행동을 둔하게 하지말고 기민하게 해야한다는 것인데.스포츠맨이 전부가 다 둔하지않고 기민하게 움직인다면 전부 일등하게요 결코 있을 수없죠 어느정도 선천적인 자질이 필요한 대목인데.... 그러니까 똑같이 시작해도 차이가 나는것 아니겠습니까?


*결단력
실전에서는 길게 생각할 시간이 없습니다 페이스 판단하고 작전을 바꾸겠다고 결정하였으면 물론 이와 같은 것도 생각이나 판단과 동시에 행동으로 옮겨야 겠지요
1초도 안되는 극히 짧은 순간에 정확히 판단하고 판단 하였으면 기회놓치지 말고 임기응변 하라는 것인데 우물거리다 보면 좋은찬스 다 놓치고 우승의 기회는 하늘멀리 날아갈 수 밖에요.사실 이렇게 글이나 혹은 말로 할때는 여유있는것 같지만 경주중에는 생각이나 판단.행동이 한 스텝입니다.

따로 생각하고 행동할 여유나 시간이 허락하지 않기때문입니다.그런상황에서 결단력 까지 부족하다면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승부근성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보려는 악착같은 투지를 말하는 것이죠.전쟁에서 배수진을 친 병사처럼 눈에 힘이있고 도전 의지가 충만하다면....
정신일도하사불성 이라했던가요?

위에 열거한 것들이 기수들의 판단요소일 수 있겠으나 전부라고는 할수없으며 그밖에도 많은 것들이 서로 작용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것이고 한.두 가지가 조금 부족하다하여 그것이곧 커다란 결점은 아니고 또다른 장점도 있을 수 있기에 너무 하나에 연연하여 편중되고 단적인 시각이나 판단을 하는 오류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02.03.06 AM11:02:00 입력
2005/12/19 15:39 2005/12/19 15:39

예시장인가? 주로출장시인가? [2]..



경마팬. 여러분 구정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1편 에서 예시장 에서 간단하게 마필의 컨디션 파악이나 상마학.기타 기초
적인 것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측면에서 관찰하고 살펴 보는것에 포인트 를 두시라고 말씀 드렸는데요.


같은 말을 장소나 관찰방법.선호도.안목.에 따라 관찰이나 판단이 가능 하겠으나 원래 말이라는 녀석은 사람 이 기승 하였을 때와 끌고 다닐때가 약간 차이가날 수 밖에없죠 우선 기수가
기승을 하면 말은 지금부터 시작이구나 하고 정도의 차이는있으나 약간의 긴장을 하게되고 이어서 경주도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기억 하는것이죠.

그런 긴장감 때문에 평소 조교시엔 약간 나빴던 말도 실전인 주로 출장시에는 제법좋아진 모습을 보여 주게되는 것입니다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가끔은 속을때가 있으니 그래서 말은 평생 배워도 못배운다는 말이 있는가봅니다.
그래서 정적인 평보위주의 예시장 보다는 좀더 동적이고 판단의 기준이 확실하며 예시장 에서의 미흡 하고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 하고 주로 출장시 관찰해야 할것 등을 간단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주로출장시 관찰해야할 포인트***

주로출장시 관찰해야할 것들로는.
* 마필의 몸놀림이나 발걸음.
* 보양 이나 액션.주행자세.
* 파행 여부.
* 기타.
등 이있겠는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선입견의 배제입니다.
.즉 미루어 짐작하는 폐단이있다면 이미 반은 실패한것이나 다름이 없으니까요.
철저하게 말 그자체 만으로 판단하고 관찰한것에 확신을 가질수 있도록 숙련도.정확한지식.정확한안목.경험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필의 몸놀림 이나 발걸음

1편에서도 잠깐 말씀드린것 같은데요 컨디션이나 건강상태 기타.모든것이 포괄적으로 몸놀림 이나 발걸음에 나타나지요 힘있고 건강하고 달리고 싶은말이 축처지는 모습을 보일리 없고 아프고 지친말이 경쾌한 발걸음을 보일리 만무하잖아요.
그러나 말을 다뤄본 경험이없이 스쳐지나가는 짧은 시간에 감각적으로 한눈에 판단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니란걸 잘알고있습니다.

우선 몸놀림이 안정감속에 힘이있고 탄력이 있으며 활기는 좋은가? 발걸음이 경쾌하고 가벼운가?
어딘지모르게 둔해보이거나 무거워 보이지는 않는가?
절거나 다리를 끌지는 않는가?
특히 주의해야 할것은
이와같은 관찰이 흥분성이나 무엇엔가 놀랐을 때와의 판단과 혼동되여서는 안되겠지요.

마필의 보양과 액션.주행자세.

예시장에서 관찰한 마필이 아무리 휼륭한 체구와 혈통.지세.자세.굽을 가지고 있다고해도(이런말이 보양이나 액션.주행자세 까지좋다면 일류마 겠지만)보양이나 액션.주행자세.가 나쁘다면 좋은말이라고 할수없을 뿐더러 경주생명도 짧아지겠지요.

보양이나 액션 주행자세는 속보시에 어느정도 파악 할수있지요 발이높은지? 목과 머리는 어떠한지? 뒤는 잘들어오는지? 계파는없는지? 등을 파악합니다.
그러나 좀더 확실한 판단은 말이 최대한도의 능력에 도달하는 습보시에 보양이 높은지? 액션이 부드러운지? 뻣뻣한지? 낮은 주행자세인지? 높은 주행자세인지? 를 관찰합니다.

여러분 들도 발높아서 나빠 라고 하는말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왜 나쁠까요?
경주마술은 수평마술입니다 즉 높이뛰기가 아니고 낮고 멀리 뛰도록 발전되고 연구 되어온 학문이자 스포츠 예술이지요 그래서 기수들은 낮은 주행자세로 달릴 수 있도록 주먹을 낮추고 부조조작을 통해 말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주행자세나 보양이 높은 말은 씩씩하고 힘찬모습 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속은없죠
또한 이런말은 기수가 유도나 제어하기에 좋지않고 몰아내는 데에도 호흡일치가 불편 하다는것을 참고 하시길바랍니다.

파행여부

마필의 파행여부는 속보시에만 정확한 판단이 가능합니다.
예시장에서 평보시에 파행을 보인다면 어느정도 심한 상황 이고 경주제외 가능성까지 생각해 보아야할 정도로 평보시에 미세한 파행은 판단하기 어렵고 정확하지않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평생을 말과 함께하신 선배님들도 평보시에 판단이힘들면 속보로 달리게해서 진단을 내리곤 했으니까요.

더군다나 뒷다리 부분은 심한 상황을 제외하고 미세한 파행은 웬만한 실력으로는 판단하기 힘들거라고 생각이되는군요 어떻게보면 앞다리인지 뒷다리인지 구분 하기 쉽지않고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건강한 말도 저는것처럼 보이지않던가요?

기타

흔하지 않고 요즘엔 보기힘들지만 부정구보라고 들어보셨지요?
부정구보란 앞다리는 구보이나 뒷다리가 이에따르지 못하고 속보의 운보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수가 제어해서 속보로 걷게하던지 추진하여 구보로 발진시키던지 해서 교정 해 가야하며 흔치않은 일이기에 이런것도 있구나하는 정도로 알고나 계십시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예시장 이던 주로 출장시 이던 장소가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씀드린대로 각각의 장단점이 있느니만치 충분히 활용하여 마공을 높이는데 조그만 도움이라도 된다면 하는 마음입니다.
쉽지않은 분야이고 이론대로 척척 맞아 떨어지는 것도 아니기에 여러분에게 혼선이나 초래 하지 않을까.. 염려도 되는군요.
비교 관찰이나 판단을 다시한번 권유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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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16 PM06:50:00 입력
2005/12/19 15:26 2005/12/19 15:26

예시장인가? 주로출장시인가? [1]..



근간에 팬여러분 이나 혹은 전문가 들 사이에서 현장 예상시
마필분석이나 발걸음,컨디션의 이상유무의 판단에 대하여
예시장에서 살피는 것이 좋은지,
주로 출장시 살피는 것이 좋은지 라는 문제로 격론이 벌어지면서,

토론의 중간중간에 저의 이름까지 거론되며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도마위에 오르내리는 사건(?)이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평범한 대화속에서 가볍게 이야기 한것인데,
논쟁의 중심에서 특정논리의 근거가 되고있다는 점에서 일견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기왕에 저의 이름까지 거명되었기에 차제에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제가 알고 있는 상식과 경험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양쪽 다 틀린 것이 아니라는것 입니다.

마필관찰의 주된 장소가
예시장이냐..주로에서냐...라는 것은 각각 장단점이 있어서
각각의 주된 이점을 어떻게 살려서 마필을 관찰하는냐 하는 것이 관건이겠고,
각기의 미흡한 부분을 어떻게 상호 보완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린다면,
예시장은 가까운 거리 에서 자세히 관찰할수 있다는 장점으로,
마체의 생김새나 미세한 컨디션의 변화등 동적인 것 보다는 정적인 면의 관찰에 유리하고,
주로 출장시에는마필의 보양이나 전체적인 몸놀림을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동적인 부분의 세심하고 미세한 부분의 판단에 유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동일한 마필에 대한 관찰이기에 장소에 따라서 관찰소견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만, 각기 장소의 장점을 살려서 마필을 관찰한다면, 빠르고 정확하고 유용한 현장 마필 점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찰자가 마필의 외견을 보고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을 지녔느냐라는 점이겠지요.

각각의 장소에서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관찰할 것이가 라는 점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긴 글이 되겠기에,
이번에는 예시장에서의 마필관찰에 관한 말씀을 먼저 드리고,
다음 편에서 주로에서의 마필관찰에 관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예시장 에서의 판단 요소 *

예시장 에서 판단할 요소들로써
상마학. 마필의 건강상태. 흥분성의 여부. 기타 특이사항.등이 있겠습니다

우선,
상마학적으로 관찰할 주된 점은 마필의 전체적인 균형이겠습니다.
즉, 동체와 사지와의 균형은 잡혀있는가. 라는 점이지요.

동체가 아무리 훌륭하고 전구와 후구의 조화가 잘 이루어 졌다고 해도
사지와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결코 좋은 말이라고 할수 없겠지요.
쉽게 표현하여,
3000cc급의 자동차에 1000cc급 의 바퀴를 달았다면 스피드 는 좋을지 모르나
안정성이 떨어질 뿐더러 타이어에 많은 부담이 될것은 자명한 이치 일것이며
반대의 현상이 되었다면 안정성이나 타이어의 생명은 연장 되겠으나
스피드와 순발력이 떨어지면서 튼튼하기만한 자동차답지 않은 똥차가 되겠지요.

일설에 마필은 발목이 가늘어야 잘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도 전적으로 틀린 말은아니지만 그렇다고 전부 옳은 얘기 도 아니지요.
앞으로도 제가 마필을 포함해서 경마의 모든 부분에 관한 말씀을 드릴때,
그 중심에 있는 화두는 " 조화"일 것입니다만,
상마학에서는 더욱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지요.

상마학적인 관점에서 살펴야할 두번째 요소는,
단거리형의 마필인가 중.장거리형의 마필인가를 살피는 일이겠습니다.
물론 쉬운일이 아닙니다.
상마학적으로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사실들이 전부 들어맞는 것도 아니구요.

상식선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간단한 판별법으로,
마필을 볼때 목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전체적으로 조명하여
단거리형의 마필은 거의 정사각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살집이 통통한 체형이고
중.장거리의 마필은 약간 직사각형 의 형태 를 이루고 있고 보기에 늘씬한 체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점도 역시 절대의 기준은 될 수가 없습니다.
약간 부족하다 혹은 어디 한군데가 미흡해도 다른 조건이 충족되면,
예를 들어, 마체는 단거리형이나 제기관 즉 심장이나 폐장등 내적인 기능이 월등히 좋을 경우에는 체형상 부족해 보이는 지구력을 보완하며 지구력이 좋아지겠지요.

저나 여러분이나 잘 생긴 말이 덩치 값도 못하는 경우를 한두번 본것은 아니잖아요
반면에 생긴것은 별볼일 없는데 의외로 좋은 성적을내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수있는 것이 또한 말이거든요. 그래서 말은 평생 배워도 알수없다라는 것이겠지요.

제가 현역 시절 타던 말중에 승리호란 말이있었습니다 정말 뛰어난 마체.보양.감각.무엇하나 나무랄데 없는 준마라 나름대로 굉장한 기대에 마음 설렜지만 일류마명단엔 끼어보지도 못하고 퇴역했지요.
그만큼 마필의 외모가 전부다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다음으로 좀더 자세한 관찰로는
우선 발굽을 살펴보아야겠죠. 옛부터 굽이 없으면 말도 없다라는 말이있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죠. 앞발과 뒷발의 굽의 각도는 어떠한지, 동체에 비해 지나치게 크거나
작지는 않은지, 중요한 이상제윤은 없는지 등을 관찰해야 겠지요

또한 지세나 자세 등을 살펴보고 이상유무 도 판단 해야 겠지요

제경험으로 미루어 상마학적으로 관심을 가질 기초가 되는 부분들을 언급해 드렸습니다.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쁘다라는 평가의 기준은 상세하게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저 역시 상마학의 달인도 아니고, 더구나 글을 통해서 상마학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너무 많은 부분을 대충안다는 것이 도리어 팬여러분을 혼선에 빠뜨리게 하지 않을까 염려도 되는군요.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은,
말을 20년 가까이, 가까이서 살펴온 저 역시도 상마학에 절대가 없다는 말씀을 드렸다는 점을 확인해주시면서, 정말 쉽지 않은 분야라는 점을 인정하셨으면 한다는 점입니다. 다만 경마를 즐기시면서 상마학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들을 상식선에서 아신다는 데에 의미를 두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시장에서 살펴봐야할 또 다른 주요점은,
마필의 건강상태에 관한 것이겠습니다.

포괄적인 면을 가지고있어 어느정도 숙련감과 지식이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이됩니다 모든것을 전부 체크 할수는 없지만 간단하게 그중 필요하고 중요한 몇가지만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전체적으로 마필의 몸놀림은 안정감 속에 힘이있고 경쾌한가.

둘째, 어딘가 피로해 보이고 움직임이 둔하거나 무거워 보이지는 않은가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평소의 보여주던 행동이나 습관 을 비교 관찰하는 것은 필수이고,
돌출적인 행동 이나 흥분성에 기인한 행동인가 대한 정확한 판단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셋째, 모든 감각기관이 제대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관찰합니다.
눈빛은 힘이있고 광채가 나며, 눈물을 흘리거나 눈꼽같은것이 끼어있지 않은지
심한 경우 하품을 하거나 졸린듯한 표정을 하지나 않는지
귀는 주위의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되 그정도가 적당 지 아니면 심한지
사람도 그렇지만 컨디션이 나쁘고 아픈 말은 모든것을 귀찮아 합니다.

다섯째, 기타 체모의 색깔은 윤이나고 반질반질 한가를 살핍니다.
영양이좋고 상질의 관리를 받은 말은 체모의 색깔 부터 좋으니까요

여섯째, 배변에 지나치리만치 관심을 보이시는 분들이 많은데, 설사를 하지나 않는지를 살핍니다. 그러나, 예시장에서의 정상적인 배변(똥) 은 괜찮지요.

일곱째, 주된 관심사항이 되고있는 걸음걸이를 살핍니다.
그러나 사실 예시장에서 평보로 윤승할때, 걸음걸이의 이상유무를 판단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평보시에 파행을 보일 정도라면 상주하고 있는 수의사나 조교사의 눈에 체크 될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평보시에는 아주 심하게 파행을 하지 않는다면, 미세한 이상유무를 발견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결과적으로 컨디션의 양호나 불량은 위에서 말씀 드린 기본적인 사항들을 망라해서
전체적인 몸놀림에 나타나는 것으로써 판단할 수 있는 것으로,
정확한 관찰을 하기 위해서는 말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하겠지요.
이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구요.
이제라도 마필의 상태에 관심을 갖고 관찰을 하시고자 하는 초보자라면,
특정마필을 선택해서 꾸준하게 비교관찰을 해보시길 권합니다. 이것이 혼선도 줄이고 나름대로의 관찰법을 터득하는 좋은 방법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다음으로 예시장에서 살펴야할 사항으로는 흥분성의 여부입니다.

흥분성을 판단하는 잣대 역시 꼭 이것이다 라고 선을 그을 수는 없지만,
평소와는 달리 지나치게 땀을 많이 흘린다던지 심지어는 발광 에 가까운 행동을 보인다던지
몸을 부들부들 떤다던지 하는 침착하지 못한 행동들을 지나친 흥분으로 간주합니다
이것이 왜 나쁠까요?
경주전에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여 정작 경주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중요한것은 이것 엮시 정확한 판단이 중요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겠지요

예시장에서 살펴야할 기타 특이사항을 체크해야 하겠지요.

좀더 전문적인 문제이긴 하나 경주마로서 부적절한 부분이나 이롭지 못한 부분으로써,
고래눈(눈에흰자위가많은것)
상흔(과거에 다쳤거나 상처의 흔적)..기타 등등..

경주마로서 적합치 못한 것들이 있을수 있으나,
문제는,
이러한 것들을 많이 안다고 해도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 사람을 환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중요한 것은.
상마학상 부분적으로 결점이 보이는 마필이라고 해도 단순히 그 결점으로만 마필의 능력을 평가할 수 없는데, 다른 부분의 장점이 그 약점을 커버해주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시장에서 주로 확인하고 살펴야 할 것을 주로에서의 관찰과 굳이 대비를 한다면
5m 가량의 근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다는 이점을 활용하여,
상마학에 관련되는 미세한 부분을 관찰하는데 촛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편에서는,
주로에서 중점적으로 살펴야할 점과 그 기본적인 방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002.02.07 PM03:42:00 입력
2005/12/19 15:26 2005/12/19 15:26

RankHorseYearSexSireDamOwner
1Man o' War1917cFair PlayMahubahSamuel D. Riddle
2Secretariat1970cBold RulerSomethingroyalMeadow Stable
3Citation1945cBull LeaHydroplane IICalumet Farm
4Kelso1957gYour HostMaid of FlightBohemia Stable
5Count Fleet1940cReigh CountQuicklyMrs. John D. Hertz
6Dr. Fager1964cRough n TumbleAspidistraTartan Stable
7Native Dancer1950cPolynesianGeishaAlfred G. Vanderbilt
8Forego1970gForliLady GolcondaLazy F Ranch
9Seattle Slew1974cBold ReasoningMy CharmerTayhill Stable
10Spectacular Bid1976cBold BidderSpectacularHawksworth Farm
11Tom Fool1949cMenowGagaGreentree Stable
12Affirmed1975cExclusive NativeWon't Tell YouLouis Wolfson
13War Admiral1934cMan o' WarBrushupGlen Riddle Farm
14Buckpasser1963cTom FoolBusandaOgden Phipps
15Colin1905cCommandoPastorellaJames R. Keene
16Damascus1964cSword DancerKeralaMrs. Thomas Bancroft
17Round Table1954cPrincequilloKnight's DaughterA.B. Hancock Jr. and Travis M. Kerr
18Cigar1990cPalace MusicSolar SlewAllen E. Paulson
19Bold Ruler1954cNasrullahMiss DiscoWheatley Stable
20Swaps1952cKhaledIron RewardRex C. Ellsworth
21Equipoise1928cPennant IISwingingC.V. Whitney
22Phar Lap (NZ)1926gNight RaidEntreatyDavid J. Davis and H.R. Telford
23John Henry1975gOle Bob BowersOnce DoubleDotsam Stable
24Nashua1952cNasrullahSegulaBelair Stud and Leslie Combs II syndicate
25Seabiscuit1933cHard TackSwing OnWheatley Stable and Charles S. Howard
26Whirlaway1938cBlenheim IIDustwhirlCalumet Farm
27Alydar1975cRaise a NativeSweet ToothCalumet Farm
28Gallant Fox1927cSir Gallahad IIIMargueriteBelair Stud
29Exterminator1915gMcGeeFair EmpressJ. Cal Milam and Willis Sharpe Kilmer
30Sysonby1902cMeltonOptimeJames R. Keene
31Sunday Silence1986cHaloWishing WellDr. E. Gaillard, A. Hancock and C. Whittingham
32Skip Away1993cSkip TrialIngot WayCarolyn Hine
33Assault1943cBold VentureIgualRobert J. Kleberg Jr.
34Easy Goer1986cAlydarRelaxingOgden Phipps
35Ruffian1972fReviewerShenanigansLocust Hill Farm
36Gallant Man1954cMigoliMajidehRalph Lowe
37Discovery1931cDisplayAriadneAdolphe Pons and Alfred G. Vanderbilt
38Challedon1936cChallenger IILaura GalWilliam L. Brann
39Armed1941gBull LeaArmfulCalumet Farm
40Busher1942fWar AdmiralBaby LeagueCol. E.R. Bradley and L.B. Mayer
41Stymie1941cEquestrianStop WatchKing Ranch and Ethel D. Jacobs
42Alysheba1984cAlydarBel ShebaDorothy and Pamela Scharbauer
43Northern Dancer1961cNearcticNatalmaE.P. Taylor
44Ack Ack1966cBattle JoinedFast TurnForked Lightening Ranch
45Gallorette1942fChallenger IIGalletteWilliam L. Brann
46Majestic Prince1966cRaise a NativeGay HostessFrank M. McMahon
47Coaltown1945cBull LeaEasy LassCalumet Farm
48Personal Ensign1984fPrivate AccountGrecian BannerOgden Phipps
49Sir Barton1916cStar ShootLady SterlingJohn E. Madden and Cmdr. J.K.L. Ross
50Dahlia1970fVaguely NobleCharming AlibiNelson Bunker Hunt
51Susan's Girl1969fQuadrangleQuazeFred W. Hooper Jr
52Twenty Grand1928cSt. GermansBonusGreentree Stable
53Sword Dancer1956cSunglowHighland FlingBrookemeade Stable
54Grey Lag1918cStar ShootMiss MinnieMax Hirsch and Harry F. Sinclair
55Devil Diver1939cSt. GermansDabchickGreentree Stable
56Zev1920cThe FinnMiss KearneyRancocas Stable
57Riva Ridge1969cFirst LandingIberiaMeadow Stable
58Slew o' Gold1980cSeattle SlewAlluvialEquusequity Stable
59Twilight Tear1941fBull LeaLady LarkCalumet Farm
60Native Diver1959gImbrosFleet DiverMr. and Mrs. L.K. Shapiro
61Omaha1932cGallant FoxFlambinoBelair Stud
62Cicada1959fBryan G.SatsumaChristopher T. Chenery
63Silver Charm1994cSilver BuckBonnie's PokerRobert and Beverly Lewis
64Holy Bull1991cGreat AboveSharon BrownWarren A. Croll Jr.
65Alsab1939cGood GoodsWinds ChantMrs. Albert Sabath
66Top Flight1929fDis DoncFlyatitC.V. Whitney
67Arts and Letters1966cRibotAll BeautifulPaul Mellon
68All Along (Fr)1979fTargowiceAgujitaDaniel Wildenstein
69Noor1945cNasrullahQueen of BaghdadCharles S. Howard (estate)
70Shuvee1966fNashuaLeveeMrs. Whitney Stone
71Regret1912fBroomstickJersey LightningHarry Payne Whitney
72Go for Wand1987fDeputy MinisterObeahChristiana Stables
73Johnstown1936cJamestownLa FranceBelair Stable
74Bald Eagle1955cNasrullahSiamaHarry F. Guggenheim
75Hill Prince1947cPrincequilloHildeneChristopher T. Chenery
76Lady's Secret1982fSecretariatGreat Lady M.Mr. and Mrs. Eugene V. Klein
77Two Lea1946fBull LeaTwo BobCalumet Farm
78Eight Thirty1936cPilateDinner TimeGeorge D. Widener
79Gallant Bloom1966fGallant ManMultifloraRobert J. Kleberg Jr.
80Ta Wee1966fIntentionallyAspidistraTartan Stable
81Affectionately1960fSwapsSearchingEthel D. Jacobs
82Miesque1984fNureyevPasadobleFlaxman Holdings
83Carry Back1958cSaggyJoppyMrs. Jack Price
84Bimelech1937cBlack ToneyLa TroienneCol. E.R. Bradley
85Lure1989cDanzigEndearClaiborne Farm and Nicole P. Gorman
86Fort Marcy1964gAmerigoKey BridgeRokeby Stable
87Gamely1964fBold RulerGambettaWilliam Haggin Perry
88Old Rosebud1911gUncleIvory BellsCol. Hamilton, C. Applegate, and Frank D. Weir
89Bewitch1945fBull LeaPotheenCalumet Farm
90Davona Dale1976fBest TurnRoyal EntranceCalumet Farm
91Genuine Risk1977fExclusive NativeVirtuousDiana Firestone
92Sarazen1921gHigh TimeRush BoxCol. Phil T. Chinn and Fair Stable
93Sun Beau1925cSun BriarBeautiful LadyW.S. Kilmer
94Artful1902fHamburgMartha IIHarry Payne Whitney
95Bayakoa (Arg)1984fConsultant's BidArluceaMr. and Mrs. Frank Whitham
96Exceller1973cVaguely NobleToo BaldBelair Stud and Nelson Bunker Hunt
97Foolish Pleasure1972cWhat a PleasureFool-Me-NotJohn L. Greer
98Beldame1901fOctagonBella DonnaAugust Belmont II;lessee, Newton Bennington
99Roamer1911gKnight ErrantRose Tree IIWoodford Clay and Andrew Miller
100Blue Larkspur1926cBlack ServantBlossom TimeCol. E.R. Bradley

2005/12/19 15:01 2005/12/19 15:01

Wednesday, December 22, 1999
Man o'War voted best of 20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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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ociated Press

NEW YORK -- Man o'War and Secretariat, two mighty chestnut colts, ran 1-2 in the race for Horse of the Century.


Man o'War, owned by Samuel D. Riddle and trained by Louis Feustel, won nine of 10 starts as a 2-year-old, then was unbeaten in 11 starts in 1920 before being retired. His loss in 1919 was a second-place in the Sanford at Saratoga to a horse named Upset.


Man o'War was selected as the greatest horse of the century by a six-member panel of experts assembled by The Associated Press. He received four first-place votes to one for Secretariat.

Secretariat won 16 of 21 starts in two years of racing and won the Triple Crown in 1973.


"I'm really thrilled these people in racing who have seen so many good horses would rank Secretariat with Man o'War," said Penny Chenery, who raced Secretariat.


"He had the same electric presence as Man o'War. Going to see Man o'War in the first half of the century was something. Seeing Secretariat in the second half of the century was the same thing."


Citation and Native Dancer tied for third. Citation once won 16 straight races, while Native Dancer's only loss in 22 career starts was a second place in the 1953 Kentucky Derby.


The great gelding Kelso, Horse of the Year five times (1960-64), was fifth.


Rounding out the top 10 were: Tom Fool -- who received the other first-place vote -- Dr. Fager, Count Fleet, Spectacular Bid, and Forego and Seattle Slew, who tied for 10th.




Horses of both sexes were eligible for Horse of the Century, but the top 10 were all males.


As a 3-year-old, Man o'War did not start in the Kentucky Derby, but he won the Preakness and Belmont Stakes. He had only one rival in the Belmont, and he beat him by 20 lengths. His margin of victory in the Lawrence Realization at Belmont Park in 1920 was 100 lengths.


Secretariat won 16 of 21 starts in two years of racing. Trained by Lucien Laurin, he was Horse of the Year in 1972 and again in 1973 when he became the first Triple Crown champion since Citation in 1948.


His Triple Crown was an amazing three-race performance. He became the first horse to break 2 minutes in the 1¼-mile Kentucky Derby (1:59 2-5), won the Preakness with an incredible last-to-first move on the first turn, then won the Belmont by 31 lengths in a world record of 2:24 for 1½-miles on the dirt.


In a separate vote for fillies and mares, Ruffian was picked No. 1, ahead of Twilight Tear. Ruffian was the only filly or mare to get a vote in the horses of both sexes category.


"That is terrific; I'm very pleased," said Stewart Janney III, whose parents owned the filly, trained by Frank Y. Whitely. "She provided us with excitement and unfortunately a moment of great tragedy."


Ruffian, champion 3-year-old filly of 1975, never lost to a filly in her first 10 career starts, but in a match race against Kentucky Derby-winning colt Foolish Pleasure in 1975, she broke down and was euthanized.


Twilight Tear, owned by Calumet Farm and trained by Ben Jones, was champion 3-year-old filly in 1944 when she won 14 of 17 starts and beat m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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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7 18:48 2005/11/07 18:48

작성자 운영자 추천: 0, 조회: 6, 분류: Etc.
속도지수 산출 근거 기록을 찾습니다.
답변 늦어서 죄송합니다.

속도지수를 산출하기 위해 경주당일부터 3년 전의 우승마의 주로상태별 평균기록을

사용합니다.



오늘 현재('05.11.6)부터 3년전 기간의 우승마 평균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울경마공원>

-----------------

거리 주로 평균기록

-----------------

1000 건조 62.734
1000 다습 62.556
1000 불량 62.003
1000 양호 62.764
1000 포화 62.010
1200 건조 76.644
1200 다습 76.199
1200 불량 75.400
1200 양호 76.590
1200 포화 75.457
1400 건조 89.695
1400 다습 88.955
1400 불량 88.251
1400 양호 89.356
1400 포화 88.006
1700 건조 113.757
1700 다습 113.034
1700 불량 111.773
1700 양호 113.851
1700 포화 111.661
1800 건조 120.071
1800 다습 119.453
1800 불량 118.150
1800 양호 120.007
1800 포화 118.032
1900 건조 126.951
1900 다습 126.075
1900 불량 124.860
1900 양호 126.478
1900 포화 124.522
2000 건조 133.109
2000 다습 131.165
2000 불량 130.880
2000 양호 132.930
2000 포화 129.946
2300 건조 152.744
2300 다습 154.950
2300 양호 150.400
2300 포화 145.900
-----------------





부산의 경우는 3년간이 아니라, 최초 모의경주('04.11.28)부터 반영되니 1년 정도의

우승마 평균기록입니다.



-----------------

거리 주로 평균기록

-----------------

1000 건조 63.029
1000 다습 62.667
1000 불량 61.380
1000 양호 62.681
1000 포화 63.062
1200 건조 76.143
1200 다습 75.596
1200 불량 73.900
1200 양호 75.970
1200 포화 75.707
1400 건조 89.900
1400 다습 87.944
1400 불량 87.200
1400 양호 89.410
1400 포화 89.150
1600 건조 103.457
1600 다습 100.450
1600 불량 102.500
1600 양호 101.987
1800 건조 118.167
1800 양호 119.550

-----------------



이용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참고: 출주마 분석정보 보는 법>



⑭ 속도지수 : "거리별 주로상태별 최근 3년간(출주일기준)의 우승마 평균경주기록"을 100으로 잡고
-0.2초(1마신)마다 1을 더하고 +0.2초마다 1을 빼서 계산. 지수가 클수록 경주기록이 좋음.
예) 3년간 1000m 건조 주로에서의 평균우승기록이 1:03.0일 때
해당마가 건조주로에서 1:02.0의 경주기록일 경우 속도지수는 105가 됨.
해당마가 건조주로에서 1:03.4의 경주기록일 경우 속도지수는 98이 됨.
- 1년 최고 : 1년간 최고 속도지수
- 최근속도 : 직전 경주 속도지수
- 6월평균 : 6개월간 평균 속도지수




--------------------- 원본글 --------------------
> 글쓴이 : 이정원
> homepage :
> E-mail : fallight@fallight.com
> 제 목 : 속도지수 산출 근거 기록을 찾습니다.
------------------------------------------------


안녕하세요.



유용한 사이트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금주의 경마 > 출주마 혈통정보 상에 나타나는 속도지수의 근거가 되는 거리별, 주로상태별 평균기록을 찾습니다. 군별 경주기록을 찾아보았는데 나와있지는 않네요. 가능하다면 제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부산 경마의 경우 아직 표본이 많지 않을텐데 혹시 서울 경마장의 표본을 근거로 삼고 산출하는 건지도 알고 싶습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답변 부탁드립니다.
2005/11/07 05:38 2005/11/07 05:38

각군별 1착마의 평균기록, 최고기록, 최저기록, 그리고 경주수도 함께 정리하였으니 유익하게 이용하시길 바랍니다.

현재의 군이 형성된 것은 2002년 2월 부터이므로 2002년 2월 부터 총 2,726개 경주의 1착마 2,726마리를 대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아울러 최근에 시행되는 외1가,나, 국1가,나 군의 데이터는 아직 경주수가 많질 않은 관계로
외1군과 국1군에 혼합하여 정리하였슴을 알려드립니다.


HND(Human & Dream, Horse & Data) 드림





각군별 1착마의 거리, 함수율별 평균 기록

함수율
군 거리 0~4% 5~9% 10~14% 15~19% 20%
국1 1400 1281 1289 1270 0 0
1700 0 1528 0 0 1491
1800 1590 1592 1578 1580 1579
1900 2080 2065 2065 2045 2052
2000 2141 2138 2115 2122 2106
국2 1400 1294 1274 1283 1292 0
1700 1526 1532 1542 1507 1515
1800 2017 2006 2004 1589 1583
1900 2091 2083 2072 2071 2076
2000 2146 2150 0 2101 0
국3 1200 1171 1159 0 0 0
1400 1298 1292 1288 1279 1281
1700 1546 1543 1537 1532 1529
1800 2024 2020 2011 1591 2008
국4 1200 1167 1164 1164 1154 1154
1400 1303 1301 1296 1292 1290
1700 1560 1549 1545 1540 1531
국5 1000 1034 1032 1029 1027 1024
1200 1173 1173 1169 1165 1161
1400 1312 1313 0 0 0
외1 1400 1285 0 0 0 0
1800 1596 1587 1582 1566 1550
1900 2066 2058 2051 2037 2035
2000 2132 2128 2123 2122 2112
외2 1400 1279 1281 1284 1278 0
1700 1536 1537 1526 1526 1503
1800 2007 2006 1599 1594 1590
1900 2088 2073 2072 2062 0
2000 2154 2151 2097 0 0
외3 1200 1156 1165 1146 0 0
1400 1295 1287 1283 1289 1275
1700 1537 1534 1523 1508 1527
외4 1000 1026 1023 1021 1019 1009
1200 1163 1157 1156 1152 1150
1400 1326 1292 0 1281 0


각군별 1착마의 거리, 함수율별 가장 좋은 기록

함수율
군 거리 0~4% 5~9% 10~14% 15~19% 20%
국1 1400 1269 1289 1270
1700 1528 1491
1800 1575 1571 1562 1574 1579
1900 2056 2037 2044 2034 2029
2000 2123 2096 2077 2089 2086
국2 1400 1288 1261 1272 1292
1700 1526 1518 1539 1507 1515
1800 1588 1564 1578 1577 1561
1900 2053 2046 2054 2029 2057
2000 2141 2134 2101
국3 1200 1171 1159
1400 1282 1269 1274 1253 1263
1700 1521 1512 1513 1502 1508
1800 1599 1593 1585 1566 1595
국4 1200 1152 1143 1140 1140 1140
1400 1273 1261 1271 1263 1270
1700 1541 1522 1524 1521 1524
국5 1000 1012 1013 1011 1005 1011
1200 1153 1138 1150 1136 1145
1400 1294 1299
외1 1400 1283
1800 1572 1549 1570 1552 1550
1900 2058 2026 2032 2021 2010
2000 2104 2082 2090 2106 2107
외2 1400 1273 1262 1280 1273
1700 1524 1525 1508 1526 1499
1800 1568 1569 1572 1581 1552
1900 2063 2049 2039 2027
2000 2154 2148 2097
외3 1200 1147 1145 1141
1400 1273 1258 1260 1263 1258
1700 1517 1507 1500 1488 1510
외4 1000 1008 1007 1006 1004 1003
1200 1144 1127 1137 1123 1137
1400 1326 1283 1281

각군별 1착마의 거리, 함수율별 가장 나쁜 기록

함수율
군 거리 0~4% 5~9% 10~14% 15~19% 20%
국1 1400 1292 1289 1270
1700 1528 1491
1800 2001 2017 1594 1586 1579
1900 2102 2101 2085 2054 2074
2000 2164 2190 2133 2146 2130
국2 1400 1300 1284 1303 1292
1700 1526 1545 1545 1507 1515
1800 2055 2033 2026 2008 2008
1900 2127 2106 2088 2108 2093
2000 2151 2168 2101
국3 1200 1171 1159
1400 1309 1311 1304 1298 1293
1700 1577 1571 1570 1564 1544
1800 2044 2069 2041 2009 2027
국4 1200 1178 1192 1178 1171 1167
1400 1325 1327 1318 1310 1307
1700 1579 1586 1565 1558 1538
국5 1000 1055 1055 1049 1041 1040
1200 1195 1201 1191 1184 1169
1400 1336 1327
외1 1400 1287
1800 2020 2015 1591 1591 1550
1900 2087 2093 2075 2055 2054
2000 2159 2158 2159 2133 2116
외2 1400 1285 1287 1288 1284
1700 1547 1559 1543 1526 1506
1800 2064 2051 2028 2010 2022
1900 2131 2095 2098 2101
2000 2154 2153 2097
외3 1200 1164 1180 1152
1400 1320 1315 1309 1309 1300
1700 1558 1561 1539 1522 1544
외4 1000 1047 1038 1034 1037 1016
1200 1180 1179 1178 1176 1172
1400 1326 1307 1281


각군별 1착마의 거리, 함수율별 마필 두수

함수율
군 거리 0~4% 5~9% 10~14% 15~19% 20%
국1 1400 2 1 1
1700 1 1
1800 4 10 2 2 1
1900 10 19 12 5 2
2000 17 24 7 9 7
국2 1400 2 3 3 1
1700 1 4 2 1 1
1800 17 32 16 8 9
1900 23 22 8 11 3
2000 2 6 1
국3 1200 1 1
1400 19 40 18 13 8
1700 31 63 24 13 11
1800 18 29 14 5 3
국4 1200 24 39 19 11 12
1400 80 136 72 26 21
1700 10 26 13 8 5
국5 1000 105 187 83 53 26
1200 67 147 60 41 19
1400 6 7
외1 1400 2
1800 6 9 4 3 1
1900 8 16 8 3 5
2000 18 28 17 4 2
외2 1400 4 5 2 3
1700 3 6 4 1 2
1800 18 25 12 6 7
1900 13 16 6 3
2000 1 3 1
외3 1200 3 6 4
1400 38 61 18 12 11
1700 20 29 14 4 2
외4 1000 34 53 18 19 4
1200 40 63 37 18 11
1400 1 3 1
총합계 648 1120 499 285 174
2005/11/02 02:26 2005/11/02 02:26

2005년 10월 28일 (금) 14:20   일간스포츠
모래…돛이 될까 덫이 될까

[일간스포츠 박명기 기자]

"모래 바꾼다고 설마 경주 판도가 바뀔까?"

이달 17~18일 서울경마공원 외주로에 모래 보충 공사가 대대적으로 있었다.

이에 따라 경주 판도 변화에 대한 경마팬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경주로의 상태는 경주 결과를 추리하는 데 핵심 변수 중 하나. 비가 와서 "경주로가 젖기라도 하면 선행마가 유리하다"는 말도 따지고 보면 "경주로의 상태가 경주마의 레이스 전개에 영향을 미친다"라는 가정 아래 전해오는 경마계의 통설 아닌 통설이다.

경주로의 모래는 이번이 아니어도 수시로 보충되어 왔다. 하지만 조성된 지 13년이 지나 최근 단단해지고 불량해지는 등 경주로 노화에 대한 지적이 잦아져 대대적 보수 작업을 하게 된 것. 특히 이번에 모래 보충이 이루어진 곳은 직선 홈 스트레치 구간으로 외주로 가운데 결승선 직선 주로 내측 펜스부터 12m 지점까지, 결승선 반대편 직선 주로는 내측 펜스부터 8m 지점까지다. 으깨진 모래 가루와 마사토가 혼합되어 단단해진 층을 걷어내고 새 모래를 보충했다. 투입된 모래 양도 15톤 덤프트럭으로 물경 33대 분량.

KRA 주로 환경팀은 이번 모래 보충으로 인해 완충 작용이 강화되고 배수 기능이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다리.정강이.무릎 찰과상을 비롯한 부상 가능성이 낮아지고, 미끄러짐이 적어져 비오는 날 기승이 용이하므로 고참급 기수에게 유리해지는 등 많은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또 경주로가 전에 비해 푹신푹신해지기 때문에 경주마의 기록도 과거 기록보다 다소 늦어지게 된다.

푹신푹신한 주로는 보통 단단한 주로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해 온 선행마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모래 보충이 결승선 부근 직선 주로에서 이루어진 만큼 경주 초반부터 전력 질주해 온 선행마들은 막판에 힘이 부족해 뒤로 밀려나고, 순발력보다는 지구력이 강한 추입마들은 오히려 유리해지는 환경이 된다. 추입마 역시 경주 막판 추입만을 노리다가는 의외로 힘을 받지 못해 그대로 후미에 머무는 일도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음이 있으면 양도 있는 법. 이번 경주로 보수 공사로 인해 막판 역전 승부가 많아지면서 경주가 더 박진감이 넘치고 의외의 결과가 속출할 가능성도 높아질 전망. 더욱이 겨울철은 원래 주로의 변화가 심하고 통계적으로도 고배당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계절이어서 모래 변수가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5년간 모든 승식에서 100배 이상의 배당이 나온 경주를 계절별로 분석한 결과 12월과 2월 사이에 999배당이 터진 경우가 가장 많았다. 월별 '999 배당'은 8월 39회, 12월 34회, 1월 31회, 2월 29회를 각각 기록, 겨울철이 상위권에 대거 포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낮은 기온과 눈보라 등의 영향으로 경주로의 변화가 심해 변수가 대폭 늘어나는 것이 그 이유다.

박명기 기자

- Copyrights ⓒ 일간스포츠 & Join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5/10/28 13:44 2005/10/28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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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28일 (금) 14:20   일간스포츠
모래…돛이 될까 덫이 될까

[일간스포츠 박명기 기자]

"모래 바꾼다고 설마 경주 판도가 바뀔까?"

이달 17~18일 서울경마공원 외주로에 모래 보충 공사가 대대적으로 있었다.

이에 따라 경주 판도 변화에 대한 경마팬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경주로의 상태는 경주 결과를 추리하는 데 핵심 변수 중 하나. 비가 와서 "경주로가 젖기라도 하면 선행마가 유리하다"는 말도 따지고 보면 "경주로의 상태가 경주마의 레이스 전개에 영향을 미친다"라는 가정 아래 전해오는 경마계의 통설 아닌 통설이다.

경주로의 모래는 이번이 아니어도 수시로 보충되어 왔다. 하지만 조성된 지 13년이 지나 최근 단단해지고 불량해지는 등 경주로 노화에 대한 지적이 잦아져 대대적 보수 작업을 하게 된 것. 특히 이번에 모래 보충이 이루어진 곳은 직선 홈 스트레치 구간으로 외주로 가운데 결승선 직선 주로 내측 펜스부터 12m 지점까지, 결승선 반대편 직선 주로는 내측 펜스부터 8m 지점까지다. 으깨진 모래 가루와 마사토가 혼합되어 단단해진 층을 걷어내고 새 모래를 보충했다. 투입된 모래 양도 15톤 덤프트럭으로 물경 33대 분량.

KRA 주로 환경팀은 이번 모래 보충으로 인해 완충 작용이 강화되고 배수 기능이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다리.정강이.무릎 찰과상을 비롯한 부상 가능성이 낮아지고, 미끄러짐이 적어져 비오는 날 기승이 용이하므로 고참급 기수에게 유리해지는 등 많은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또 경주로가 전에 비해 푹신푹신해지기 때문에 경주마의 기록도 과거 기록보다 다소 늦어지게 된다.

푹신푹신한 주로는 보통 단단한 주로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해 온 선행마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모래 보충이 결승선 부근 직선 주로에서 이루어진 만큼 경주 초반부터 전력 질주해 온 선행마들은 막판에 힘이 부족해 뒤로 밀려나고, 순발력보다는 지구력이 강한 추입마들은 오히려 유리해지는 환경이 된다. 추입마 역시 경주 막판 추입만을 노리다가는 의외로 힘을 받지 못해 그대로 후미에 머무는 일도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음이 있으면 양도 있는 법. 이번 경주로 보수 공사로 인해 막판 역전 승부가 많아지면서 경주가 더 박진감이 넘치고 의외의 결과가 속출할 가능성도 높아질 전망. 더욱이 겨울철은 원래 주로의 변화가 심하고 통계적으로도 고배당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계절이어서 모래 변수가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5년간 모든 승식에서 100배 이상의 배당이 나온 경주를 계절별로 분석한 결과 12월과 2월 사이에 999배당이 터진 경우가 가장 많았다. 월별 '999 배당'은 8월 39회, 12월 34회, 1월 31회, 2월 29회를 각각 기록, 겨울철이 상위권에 대거 포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낮은 기온과 눈보라 등의 영향으로 경주로의 변화가 심해 변수가 대폭 늘어나는 것이 그 이유다.

박명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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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8 13:44 2005/10/28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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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ilence
1986-2002

On August 19, 2002, Sunday Silence died at his home in Hokkaido, Japan, where he stood stud at Shadai Stallion Station. He passed away due to heart failure, after a lengthy, but courageous battle with a leg infection, as well as laminitis. This web page is my tribute to this great champion, who on and off the track, proved his worth time and time again. I hope this page can serve to properly honor this horse, who was one of the reasons I became involved in the sport of thoroughbred racing.

Undoubtedly one of the top American thoroughbreds of the last twenty years, Sunday Silence was, and remains, a favorite of mine. The late 1980's marked the period in which I began my interest/love for the sport of throughbred racing. Though I had been witness to great horses before 1989 (Personal Ensign, Risen Star, and Alysheba among others), Sunday Silence was the first horse who truly captured my young attention. My first witness to his abilities came in April, 1989, when he crushed the field in the Santa Anita Derby by 11 lengths. His fluid form, and nearly black coat stood out to me, despite that I had seen Easy Goer demolish the Gotham Stakes field by the same margin, on the same day.
When May rolled around, only weeks later, it was only the second time I had seen him run. But this was the Kentucky Derby, and Sunday Silence was much the best that day. The black colt zig-zagged through the lane as he came off the far turn, seemingly distracted by the roar of 100,000-plus people at Churchill Downs. Despite this, he ran on, finishing 2 1/2 lengths in front of the much-hyped Easy Goer. This would set the stage for the most fantastic races I have had the pleasure to witness.

The Preakness came two weeks later, and yet people were not convinced by Sunday Silence's Derby win. The bettors kept Easy Goer as favorite once again, leaving the Kentucky Derby winner as second choice. This race unfolded in the early going much as it had two weeks before. The Lukas-trained Houston ran on the lead, as he had in the Derby, with Sunday Silence tracking him not far behind. As the field neared the far turn, though, there suddenly came the massive strides of Easy Goer with Pat Day, obviously wanting to get the jump on the Derby winner. Easy Goer ran by Sunday Silence, and roared onward to the lead in a sensational burst. Pat Valenzuela, aboard Sunday Silence, quickly asked his colt to move. Move he did. The Derby winner quickly gained ground, and by the time the field hit the top of the stretch, Sunday Silence had moved to even terms with Easy Goer. For the next quarter of a mile, the two were inseparable.

Sunday Silence thrust his nose out as the they came upon the wire, and captured the Preakness. Sunday Silence suddenly stood on the verge of winning racing's coveted Triple Crown, but to do so, he would have to win the Belmont Stakes, upon Easy Goer's own "home" track.
The task of beating Easy Goer at Belmont proved insurmountable even for Sunday Silence. Sunday Silence tracked Le Voyageur into the sweeping far turn at Belmont, sticking a nose in front, and raising the hopes of many for a Triple Crown. But the long-striding Easy Goer came with a rush, sweeping by both runners. This time, Sunday Silence was no match, as the son of Alydar roared to an eight length win.
Following the Triple Crown campaign, Sunday Silence and Easy Goer went seperate ways. Easy Goer stayed in New York, while SS went west. Their respective campaigns could not have been more different. Sunday Silence was raced only twice, in lower caliber races, between the Belmont Stakes and Breeders Cup. Easy Goer ran one of the more impressive fall campaigns I can ever remember seeing, winning the Whitney, Travers, Woodward, and Jockey Club Gold Cup. The question of which horse was best had surfaced yet again. The two would meet for the final time in the Breeders Cup Classic, to settle the question.
The Classic would live up to its hype, indeed. Slew City Slew went out and set the pace, with top older horse Blushing John second, and Sunday Silence just in behind those two. Pat Day kept Easy Goer well off the pace, hoping to come with his usual late run. As the field neared the far turn, Slew City Slew began to give way quickly, and Angel Cordero Jr. send Blushing John to the front. Chris McCarron (riding in place of the suspended Pat Valenzuela) sent Sunday Silence after him. Before the horses hit the final quarter mile, Sunday Silence was matching strides with him, and ran on by as they straightened out for the stretch drive. Easy Goer was still lagging behind, but Pat Day put him to a strong drive. With a furlong to go, Sunday Silence had assumed a clear lead, with Blushing John hoping for second. But Easy Goer was flying on the outside, and as they neared the wire, was closing strongly with every stride.

Sunday Silence held on by what track announcer Tom Durkin deemed "a desperate neck". He had won the Clasic in a then stakes-record for the mile-and-a-quarter Classic, 2:00.20. Having won three of four races against Easy Goer, Sunday Silence was named the 1989 Horse of the Year, as well as the Champion 3-year-old Title for the same year.The two horses would not renew their rivalry at four. Sunday Silence raced only twice in 1990, before being purchased by Japanese interests.

After his retirement, Sunday Silence stood at Shadai Stallion Station in Hayakita, Japan. From 1995 onward, he was Japan's leading sire, and proved to be a prolific and popular one. In 2001, alone, he covered 221 mares. In June, 2002, Sunday Silence began to suffer from a bacterial infection in a leg. Through three surgeries the stallion showed his champion's heart. Yet the infection proved to be too much, as laminitis would ultimately set in due to shifting his weight off the injured leg. On August 19, 2002 Sunday Silence passed away, at the age of 16.



Lineage:
Born March 25, 1986
Sire: Halo
Dam: Wishing Well

Race Record:
Lifetime- 14 Starts, 9 Wins, 5 Second, Earnings $4,968,554
Age 2: 3 Starts, 1 Win, 2 Seconds, Earnings $21,700
Age 3: 9 Starts, 7 Wins, 2 Seconds, Earnings $4,578,454
Age 4: 2 Starts, 1 Win, 1 Second, Earnings $368,400

At Two:
Maiden Race: 2nd
Maiden Race: Won (by 10 lengths)
$24,000 Allowance Race: 2nd

At Three:
$32,000 Allowance Race: Won (by 4 1/2 lengths)
San Felipe Handicap (G2): Won (by 1 3/4 lengths)
Santa Anita Derby (G1): Won (by 11 lengths)
Kentucky Derby (G1): Won (by 2 1/2 lengths)
Preakness Stakes (G1): Won (by nose)
Belmont Stakes (G1): 2nd
Swaps Stakes (G2): 2nd
Super Derby (G1): Won (by 6 lengths)
Breeders Cup Classic (G1): Won (by neck)

At Four:
Californian Stakes (G1): Won (by 1 length)
Hollywood Gold Cup (G1): 2nd

2005/09/09 01:31 2005/09/09 01:31

Man o' War came close to perfection

By Larry Schwartz
Special to ESP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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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thoroughbred racing needed a boost, Man o' War unleashed his blazing speed and came to the rescue. Though he competed for only two years, he energized a reeling sport.

There was a thickness to Man o' War that probably came from his voracious appetite.
Let's look at the world of racing that Man o' War entered in 1919: Racing in New York had been eliminated in 1911 and 1912 because of antigambling legislation led by Gov. Charles Hughes. Other states had taken up Hughes' crusade. Many stables had folded and some of the bigger ones had moved to Europe.

While racing was legalized again in 1913, World War I soon dominated the public's attention. Attendance and purses were at record lows when Man o' War made his debut on June 6, 1919.

By the time he retired 16 months later, he was a national hero, joining Babe Ruth as the first shining stars of the Roaring Twenties. The charismatic horse's popularity had brought fans back to the track.

Man o' War went to the post 21 times and won 20 races. He won one race by an incredible 100 lengths and triumphed in another carrying 138 pounds. He whipped a Triple Crown champion by seven lengths in a match race.

He brought international recognition to Kentucky breeders and made the United States the racing center of the world. When he retired, he held five American records at different distances and had earned more money than any thoroughbred.

In a mid-century Associated Press poll, he was overwhelmingly voted the greatest thoroughbred of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Not only did Man o' War perform like a superstar on the track, the chestnut-colored horse (though he was nicknamed "Big Red") looked like one. At 3, he was a strapping 16.2 hands (about 5-foot-6) and weighed about 1,125 pounds with a 72-inch girth. His appetite also was huge, as he ate 12 quarts of oats every day, or about three quarts more than the average racehorse. He ran in big bounds as well, with his stride measuring an incredible 25 to 28 feet.

Bred by August Belmont II, son of the founder of Belmont Park and for whom the Belmont Stakes was named, the future champion was foaled on March 29, 1917 at Nursery Stud near Lexington, Ky. His sire was Fair Play and his dam was Mahubah, the daughter of Rock Sand, the 1903 winner of Britain's version of the Triple Crown (the 2,000 Guineas, the Epsom Derby and the St. Leger). He was 15 generations removed from the Godolphin Arabia, one of three Arab and Barb stallions considered to be the founders of the thoroughbred line.

Originally, Belmont's wife named the horse My Man o' War, after her soldiering husband, who was stationed in France during World War I, but the "My" was later dropped.

Belmont's military involvement prompted him to sell his entire 1917 yearling crop. Sportsman Samuel Riddle, owner of the Glen Riddle Farm, was the beneficiary of this decision. Accepting the judgment of trainer Louis Feustel, Riddle purchased the rangy colt, who seemed too large for a yearling, for $5,000 at the Saratoga yearlings' sales. "As soon as I saw him, he simply bowled me over," Riddle said.

At the beginning, Man o' War's aversion to the bridle and saddle caused problems. "He's nice and he's smart, but don't ever try to force him or you'll come out second best every time," a stable boy said. "Ask him and he'll do what you want. Push him and it's all off."

Under Feustel's training, patience paid off, and the energy of Man o' War was harnessed. His debut, in a five-furlough maiden race against six other 2-year-olds at Belmont, was no contest. The fans reportedly screamed and pounded the rail as jockey Johnny Loftus tightened the reins at the stretch, slowing Man o' War to a virtual canter. But the horse still won by six lengths.

"He made half-a-dozen high-class youngsters look like $200 horses," wrote the turf editor of the New York Morning Telegraph.

Following his smashing debut, Man o' War won three stakes races, at three different New York tracks, in the next 17 days.

His winning streak was at six when Man o' War raced in the Sanford Stakes at Saratoga on Aug. 13. It is Man O' War's most remembered race -- because it is the only one he would lose.

Starting gates were not yet used, and horses were led up a tape barrier. A fill-in starter had difficulty getting the horses ready and they milled around. While Man o' War apparently was backing up, the tape was sprung. Man o' War "was almost left at the post," the Louisville Courier-Journal reported.

After a slow start, Man o' War was third as the field headed for home in the six-furlough race. Blocked by close quarters, he had to go to the outside in the final eighth. Though he gamely made up ground, he missed by a half-length of overtaking the winner, who at 115 pounds carried 15 fewer pounds than the 11-20 favorite. The winner was named, rather appropriately, Upset.

Big Red, who beat Upset in their six other meetings, finished the year with easy victories in the Hopeful and Futurity, giving him nine victories in 10 races.

In 1920, Man o' War won all 11 of his races, with Clarence Kummer aboard nine times. Big Red didn't race in the Kentucky Derby because Riddle believed that a soft-boned 3-year-old should not have to run 1¼ miles in early May. Instead, he set his sights on the Preakness (Man o' War held off an Upset charge to win) and Belmont (a 20-length victory in a two-horse field).

After winning the Travers against two horses at Saratoga, only one colt challenged Man o' War in his next race. Well, it wasn't exactly a challenge as Big Red, the 1-100 favorite, defeated Hoodwink by 100 lengths in the 1 5/8th-mile Lawrence Realization at Belmont Park.

He was 1-100 again in winning the Jockey Cup at Belmont Park, and then he was saddled with the excessively high weight of 138 pounds for the Potomac Handicap. After being a bit fractious at the post, he assumed command and won easily.

Man o' War's last race was against Sir Barton, who in 1919 had become the first to win the Kentucky Derby, Preakness and Belmont. Like most match races, it was hardly competitive. At Kenilworth Park, in Windsor, Ontario, Man o' War won the $75,000 purse and $5,000 Gold Cup by defeating the older Canadian-owned horse by seven lengths.

When Riddle was informed that Man o' War would have to carry even more than 138 pounds as a 4-year-old, he retired his horse to stud. Man o' War held American records for the fastest mile, 1 1/8 miles, 1 3/8 miles, 1½ miles and 1 5/8 miles. His total earnings were $249,465, a record at the time.

Don't feel sorry for Man o' War because he stopped racing so young. He proved to be quite a stud. In 1926, his issue won $408,137, breaking a 60-year-old record. Among his 386 registered foals were 64 stakes winners, including 1937 Triple Crown winner War Admiral, 1929 Kentucky Derby winner Clyde Van Dusen and Battleship, the winner of the 1938 Grand National Steeplechase in England.

In 1921, a Texas oil millionaire, William Waggoner, offered $500,000 for Man o' War. Riddle turned him down, as he did when Waggoner increased his offer again, first to $1 million and then a blank check. "The colt is not for sale," he said.

Although Man o' War spent most of his life in Kentucky, he never raced there. He died there, though, at the age of 30 of a heart attack on Nov. 1, 1947 in Lexington.

2005/09/09 01:16 2005/09/09 01:16

Seabiscuit: An American Leg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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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biscuit became one of thoroughbred racings greatest legends at a time when the sport needed it the most. At age 2 he had raced a record 35 times with only 5 wins to his name. He went on to race 23 more times at the age of 3, capturing 9 of these outings, before he was claimed by Charles and Marcella Howard after winning a claiming race at Saratoga. Then Seabiscuit was in the hands of his new trainer, Tom Smith, an old western cowboy who knew how to communicate with horses like no other.

Smith remembered having seen the colt race a month earlier at Suffolk Downs. He was not surprised that Seabiscuit was tired and sore after all he had done in just 2 years at the track. The horse was 200 pounds underweight with a weary temperament. He raised hell at the starting gate, intimidated the grooms, nervously paced his stall, and refused to eat. Seabiscuit was in serious need of some rest and relaxation, and a chance to form a bond with people. Tom Smith babied his new colt in hopes of Seabiscuit one day living up to his potential as the grandson of the mighty Man O?War. He put leg braces and bandages on Biscuit뭩 legs, and equipped him with blinkers for training and racing to keep his mind on business. He also gave his colt a double sized stall complete with roommates. Seabiscuit's new companions were a stray dog named Pocatell, a spider monkey known as Jo Jo, and his lifelong traveling mate, a calm horse name Pumpkin. Once Seabiscuit뭩 nerves had been calmed and his ailments had been treated, Smith decided it was time to return him to the races.

He chose Johnny Pollard to be Seabiscuit뭩 new jockey. Pollard was an ex-boxer that was blind in one eye, and at five feet, seven inches, towered over most other jocks. His career had been on the decline when he walked into Smith뭩 barn that summer of ?6. He and Seabiscuit took to each other immediately, with Pollard affectionately nicknaming him 밣ops? Between the care he received from both Smith and Pollard, Seabiscuit flourished. The once neurotic, skittish animal became easygoing and sociable. For the remainder of the year the trainer and the jockey worked with Seabiscuit by running him in small allowance races and putting him through intensive schooling. Towards the end of ?6, Seabiscuit won the Scarsdale Handicap in track record time, and then went on to win the west over by claiming victories in two major races in California, just missing two world records in the process.

1937 began Seabiscuit뭩 4 year old season at Santa Anita, where he won his first race of the year. He then went on to run in the prestigious Santa Anita Handicap against 17 other competitors. With one furlong to go in the race there was no one ahead of him. It looked like he was going to win, but neither horse nor jockey noticed the closer Rosemont, whom Seabiscuit had defeated just one month earlier, gaining on them with every stride. And then, it was too late. 멊iscuit lunged at the last second to induce a photo finish, but he had lost by a nose. Even so, the horse had started to become a celebrity. Howard began promoting his colt, and raced him on 18 tracks in 7 states and Mexico that year. He raced on both coasts, winning ten major races and tying five track records while becoming the leading money winner for 1937, and only finishing off the board once. However, he was not named Horse of the Year. That honor went to a 3 year old, the near-black, east coast based Triple Crown winner War Admiral.

Seabiscuit뭩 5 year old season started off with a bang, as just weeks before he was to run in the Santa Anita Derby for the second time, he was jockey less. Pollard had been injured in a spill and was told it would be at least a year before he could ride again. He recommended his good friend George Woolf to take over the riding duties of his beloved Seabiscuit. Woolf was the son of a bronc buster, fearless, diabetic, and one of the greatest riders thoroughbred racing has ever seen. Nicknamed 밫he Iceman? he was known to time his horses?closing stretch drives so precisely that he won on a regular basis. He made it a point to know his mounts well, as long as every one else뭩 with the same attentiveness. The 1938 Santa Anita 멌ap imposted 130 pounds upon the mighty Seabiscuit, with him giving as much as 30 pounds to his competitors. At the break, he was knocked nearly to the ground. Woolf sent him in a drive to make up the distance, and thinking he had his main rival Stagehand beat, let Seabiscuit settle. Sadly, this was not the case, as Stagehand began to close upon the bay colt. He drew even, and Woolf asked 멊iscuit for everything he had. Miraculously, his colt came back, resulting in a head-bobbing duel all the way to the wire. But this was not to be his Santa Anita 멌ap either; Stagehand had gotten in front at the finish. That same afternoon in Florida, War Admiral had gone on to win his 10th consecutive race. The public clamored for a match race between the two colts, and Belmont Park offered $100,000 for battle between the two thoroughbreds in May. Both owners accepted but a flare-up in 멊iscuit뭩 bad leg forced a cancellation, and was instead entered in the Mass 멌ap for June along with the Admiral. Minutes before the race, with the Suffolk Downs grandstand overflowing, Smith discovered his colt had again injured his leg and scratched him from the race. Once Seabiscuit healed he went on to win the Hollywood Gold Cup in California and smash the race뭩 record along the way. Afterwards, Howard brought him back east, eager to see his horse meet up with War Admiral.

By summer of ?8, Pollard began riding again. One morning, he decided to ride a horse for another trainer in a morning workout. The colt rammed Pollard through the track rail and into the side of a barn, almost severing the jockey뭩 leg. After seeing a team of doctors, the jock was told he might never walk again.

In the fall of 1938, it seemed the big match race would finally happen. Alfred Vanderbilt, the president of Pimlico Racecourse, wanted nothing more than the race to be run there. He couldn뭪 offer a large purse, but appeased to Riddle뭩 and Howard뭩 sportsmanship attitude by explaining to them how good it would be for racing. The mile and three-sixteenths Pimlico Special would be held November 1, 1938, with a winner take all purse of $15,000. Each horse would carry 120 pounds, and would break from a walk-up start instead of a gate. They were both favorites in their own way. Seabiscuit had captured the hearts of the fans, while War Admiral captured their betting money. Many predicted that the Admiral would run away with the race right off the starting line, as 멊iscuit was not known for his fast breaks. But that was about to change.

Smith trained his colt to break off in a hurry, first by fashioning a starting bell to accustom him with the noise, and then by running him with top sprinters. Seabiscuit learned to give everything he had into speeding away at the start of the race. By midday on November first, a record 40,000 spectators squeezed themselves into Pimlico뭩 tiny racetrack, pouring over into the infield. At 4 pm, War Admiral and Seabiscuit stepped out onto the track. They stepped up to the line together, and at the sound of the bell, 멊iscuit took off like a bolt of lightning. He opened up to a two length lead until the half mile pole, when the Admiral was in full stride at his shoulder. But Seabiscuit wouldn뭪 let him pass, he refused to give up his lead. He even cocked his ear towards his rival, but then, War Admiral pushed his head in front. The colt, however, was struggling, and Woolf knew the race was theirs. He pushed his little bay for just a little more, and 멊iscuit sailed to a four length lead over the younger near black horse, finishing in near world record time. This year, Seabiscuit claimed Horse of the Year honors.

In January, at the start of his 6 year old season, Howard pointed him yet again towards the elusive Santa Anita Derby. It would be Seabiscuits third try for the one race his owners so badly wanted him to win. But it would be another year before 멊iscuit could even attempt it again. As he made his closing move in a prep race, the colts longtime ailing left front tendon finally ruptured. He managed to hang on for second but all though his career would be over. He was sent to Howard뭩 ranch and for nine months wandered a paddock, became fat, and tried to race deer along the fences. Meanwhile, Pollard had endured several leg operations and was beginning to hobble on crutches. He stayed at Ridgewood Ranch with his dear racehorse Pops. Once the colt was no longer lame, Pollard began riding him to build his own strength and to ready 멊iscuit for a return to racing. By the end of ?9, he was once again a sound horse, and Howard decided to try for a comeback in 1940.

At 7 years of age, Seabiscuit was more than twice the age of some of his rivals. But his team of Howard, Smith, and Pollard believed him to be capable, even though no horse had ever returned to top form after such an injury and long layoff. Pollard was determined to ride him, and win on him, again, even though he now required a steel brace on his leg to ride. They set out to chase the Santa Anita Handicap. 밢ld Pops and I have got four good legs between us,?said Pollard. 밠aybe that뭩 enough.? Seabiscuit and Pollard received a standing ovation as they stepped onto the track for their dream chased handicap. A crowd of 70,000 had gathered to witness the 1940 Santa Anita 멌ap, and this time they would not be disappointed. 멊iscuit broke well and and settled into striking position. He was shouldered into a pocket and Pollard momentarily panicked, thinking that once again the race would be lost. But then space opened up and Seabiscuit shot through. The closer and defending champion Kayak II came up to challenge then, and 멊iscuit looked him in the eye, teased him a bit, and then swept ahead to win the handicap while running the second fastest mile and a quarter in American racing history.

Seabiscuit was finished. In six years of racing, he had competed 89 times, winning 33 of these matches, finishing on the board 61 times, (more so in his later years), set 16 track records, and equaled another. Having won $437,730 in purse money, he was worth his weight in gold to the Howards, who had purchased him for a mere $7,500. it was time to retire. Seabisciut was going home to Ridgewood Ranch. On May 17th, 1947, the great and mighty champion suffered a heart attack at only 14 years of age. He was buried on a secret site on the ranch, with only an oak sapling to mark its location.

Above biography by Raelyn Mezger



2005/09/09 01:16 2005/09/09 01:16

Posted: Tuesday, January 29, 2002

Archer City Slew, Nite Dreamer, Walkslikeaduck to stand in Korea

Graded stakes winners Archer City Slew, Nite Dreamer, and Walkslikeaduck have been purchased privately by Asian interests to stand the 2002 season on the island of Cheju in South Korea.Nite Dreamer, a four-time stakes winner in five seasons of racing, and Walkslikeaduck, who finished second to Horse of the Year Tiznow in the 2001 San Fernando Breeders' Cup Stakes (G2), were purchased by the Korean Racing Association and will stand publicly at its farm. Archer City Slew, once considered a leading prospect for the 2000 Triple Crown series, was purchased by Pegasus Stud Farm and will stand there privately.

Emmanuel and Laura de Seroux's Narvick International brokered the deals and purchase prices were not disclosed. Narvick's Richard Cross confirmed the sale of the three stallions, which were sent from the United States to Korea on December 26.

"They'll all be standing on the island of Cheju, which right now is the major area of breeding in the country," Cross said.

Archer City Slew, a Kentucky-bred five-year-old son of Slew City Slew out of the unraced Miswaki mare I'm Yours Joe, won three of 13 career starts, placed five times, and earned $193,930.

Campaigned by David and Holly Wilson, Archer City Slew won two of seven starts as a two-year-old in Northern California for trainer Vladimir Cerin. He started his three-year-old campaign with a fifth-place effort in the six-furlong San Miguel Stakes (G3) at Santa Anita Park then bounced back to win the seven-furlong San Vicente Stakes (G2).

Archer City Slew stamped himself as a classic contender with a game second-place finish behind War Chant in the one-mile San Rafael Stakes (G2). Archer City Slew finished off the board in his final two starts of 2000?running a dull seventh in the Turfway Spiral Stakes (G2) and fourth in the Lazaro Barrera Memorial Stakes at Hollywood Park.

On the sidelines for more than 15 months after the Barrera, Archer City Slew finished sixth in his final career start, the 2001 Pirate's Bounty Handicap at Del Mar.

Nite Dreamer, a seven-year-old Canadian-bred by El Prado (Ire) out of stakes winner A Dream Above, by Great Above, competed on 14 different racetracks during his lengthy career. He won five of 37 career starts with ten seconds and six thirds for $1,149,788 in earnings.

Second in the 1998 Prince of Wales Stakes in the Canadian classic series, Nite Dreamer won the '99 Prairie Meadows Cornhusker Breeders' Cup Handicap (G3) during his career for trainer Niall O'Callaghan. He also set a track record of 1:43.53 during his victory in the 2000 Sportsman's Park Breeders' Cup Handicap at 1 1/16 miles.

Walkslikeaduck, a five-year-old son of Blushing John out of Nabla, by Theatrical (Ire), was unraced at two and later became one of Southern California's leading three-year-olds on the turf.

Trained by Patrick Gallagher, Walkslikeaduck won four of his first seven starts, including the 2000 Del Mar Derby (G2) and Bay Meadows Breeders' Cup Derby (G3) to earn a start in the Breeders' Cup Mile (G1). He finished 12th in the Mile, 5 1/2 lengths behind winner War Chant, and ended the season with a fifth-place finish in the Hollywood Derby (G1) won by Brahms.

Walkslikeaduck returned to the main track for his lone start at four and finished 1 1/4 lengths behind Tiznow in the San Fernando Breeders' Cup Stakes at Santa Anita. Overall, he won four of ten starts, placed three times, and earned $418,354.?Tom Law

2002/01/29 03:23 2002/01/29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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