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한국의 문학교육
자율성과 창의성이 강조되는 교육
- 프랑스의 문학교육
박 해 현(조선일보 파리특파원)
프랑스의 문학교육은 초등학생 때부터 시 외우기를 중시한다.
개인적인 경험을 늘어놓는다면, 파리의 공립초등학교에 다니는 필자의 딸아이는 프랑스어 정규과목으로 매주 시 외우기 숙제를 해야 한다. 우리 아이는 6살 때부터 '포에지'라는 프랑스어를 마치 구슬을 어루듯 혀로 굴릴 줄 알아야 했다. 딸아이가 1학년 때 외웠던 시로는 라 퐁텐의 우화를 꼽을 수 있다. "나무 가지에 앉은 까마귀 아저씨 / 부리에 치즈를 물고 있네 / 여우 아저씨, 향긋한 내음에 끌려 / 혀를 조금 내미네…… " 운운하는 시 「까마귀와 여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우화를 담고 있다. 까마귀가 치즈를 입에 물고 있는 것을 본 여우가 그 앞에서 온갖 감언이설로 까마귀를 꼬드겨서, 마침내 우쭐해진 까마귀가 제 아름다운(?) 목소리를 뽐내려고 입을 열다가, 그만 치즈를 떨어뜨려 여우가 낼름 주워먹는 다는 이야기다. 라 퐁텐은 이솝 우화를 시로 만들어서 후세에 전했고, 급기야는 한국에서 태어나 아비를 따라 파리의 초등학교에 몸을 담게 된 우리 아이의 입에서 시가 암송됐다.
딸아이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외우는 시의 수준도 높아졌다. 물론 가장 간단한 시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때로는 한국에서 성인용(?) 시로나 통용되는 시인 자크 프레베르의 작품이 아이의 시 숙제 노트에 적혀 있기도 한다. 프랑스인들의 애독서로 꼽히는 프레베르의 시집 『파롤』에 실린 시 「내 집에」를 아이와 함께 외우기도 했다. 어설프게나마 아이에게 뜻풀이를 했던 시의 앞 부분은 이랬다. "당신은 내 집에 오리라 / 사실, 이건 내 집이 아니네 / 누구의 집인지 나도 몰라 / 어느날 이렇게 내가 들어왔을 때 /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네 / 흰 벽에 거미 한 마리 뿐이었네 / 오랫동안 여기에 살았지만 / 아무도 오지 않았네 / 하지만 매일매일 / 나는 당신을 기다리네…… "
나는 딸아이에게 자크 프레베르가 어떤 시인인지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우리 딸은 시행을 다 외우고 나서도, 자크 프레베르란 이름까지 시의 한 행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미당 선생의 시를 한국의 초등학교 2학년들이 외우면 얼마나 귀여울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미당 서정주라는 이름까지 시의 마지막 행인양 외워서, 한 위대한 시인의 이름을 속으로 삼켜 오랜 세월이 흘러도 유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이름을 되새김질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프랑스의 '포에지' 교육이 새삼 부러웠다. 시가 언어의 무용임을 어릴 때부터 체득하도록 하도록 하기 위해 시를 외우게 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문학교육도 우리처럼 고전을 읽고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중학교에 가면, 몰리에르의 희극이나 모파상의 단편소설들을 읽힌다. 원전을 강독하고, 작품의 주제와 문체, 어조, 양식 등을 배우는 것은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 필자는 한 번도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문학수업을 참관한 적이 없다. 단지, 교사출신의 프랑스인 친구에게 들은 바로는, 교사가 마음 먹기에 따라 지정된 문학 프로그램 안에서 다양한 작품들을 읽힐 수 있고, 당대의 작가 작품들도 수업시간에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니까, 지난 20세기의 마지막 해 겨울, 불문학자 김화영 선생님과 함께 프랑스 문단의 대가 미셸 투르니에의 집을 방문했을 때가 기억난다. 투르니에는 우리에게 어느 중학교 선생님이 보내온 선물이라면서 한 권의 문집을 보여주었다. 중학생들이 쓴 산문을 모아 엉성하지만, 귀엽게 제본한 문집이었다. 그것은 학생들이 투르니에의 산문 한 편을 패러디해서 각자의 소망을 담은 글모음집이었다. 가령, 내게 고양이가 있다면, 내게 배 한척이 있다면, 내게 딸이 있다면 등등 각자의 가정법으로 시작하는 글들이었다. 그러니까 중학교 학생들이 문학사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당대의 노작가의 글을 나름대로 음미했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의 교실로 시선을 돌렸을 때, 피천득 선생의 수필 한 편을 읽고, 그것을 패러디해서 쓰라고 숙제를 내는 국어 선생님은 지극히 드물 것이다. 아니면, 1960년대 이후 한국 작가의 작품을 중고교 수업 시간에 다루는 선생님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프랑스 문학교육의 최근 경향은 문학교육의 대상을 시와 소설과 같은 전통적인 문학장르에 한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대형 슈퍼마켓의 책 코너에서 발견한 중학생용 문학교과서는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파격적인 교육방법을 동원하고 있었다. 마르셀 줄리앙이라는 소설가 겸 시나리오 작가가 쓴 이 교과서는 영화를 비롯해 만화, 신문-잡지의 기사, 광고까지 넓은 차원의 문학으로 아울러서 아이들에게 문학의 개념을 안내한다. 언어의 기원, 기호의 세계, 문학과 문체, 문학사의 흐름 등등을 다룬 이 교과서는 화려한 원색 사진과 미술작품들을 동원해서 마치 한 권의 화려한 잡지처럼 편집됐다. 흰 종이에 검은 글자만 있는 교과서로는 이미지 세대의 학생들을 사로잡지 못하리라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어쨌든 문학이 자유로운 상상상력의 활동이듯, 문학교과서 역시 학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프랑스인들이 가장 많이 읽는 현대소설이라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장 폴 사르트르의 『말』, 앙드레 말로의 『인간 조건』 순이라고들 한다. 대개 고등학교 때 이 소설들을 읽어내기 때문에 당연히 최대의 독자를 확보할 수 있다. 물론, 프랑스의 고교생들도 대학입학자격시험을 보기 위해 문학수업을 받아야 하고, 문제도 풀어야 한다. 그런데, 대학입학자격시험의 국어문제라는 게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가령, 1999년에 출제된 문제의 지문은 "이미지들, 특히 텔레비젼의 세계는 그것에 대한 비평이 새로운 문학 장르가 될 정도로 지성의 세계를 뒤흔드는가"라고 시작한다. 철학자 뤽 페리와 앙드레 콩트-스퐁빌이 1998년에 펴낸 책 『현대의 지혜』에서 따온 「이미지의 역할」이란 글이다. 현대인의 삶의 양식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책에서 텔레비젼을 중심으로 한 이미지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따지면서, 이미지에 대한 논쟁을 유도한 글이다. 학생들은 이 글을 읽으면서 독해 능력을 측정하는 단답형 문제에 답을 하고, 간단한 작문도 해야 한다. 흔히 시대적으로 수험생들과 거리가 먼 고전을 지문으로 채택하지 않고, 바로 동시대의 텍스트를 통해서 수험생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문제에 대한 논리적 사고능력까지 요구하는 국어문제다.
프랑스의 문학교육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이벤트라면, '고등학생들의 공쿠르상'을 꼽을 수 있다.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과 별도로, 지난 1988년 만들어진 이 상은, 말 그대로, 전국의 고등학생들이 참여해서 독자적으로 매년 11월 초 그 해의 신작소설을 대상으로 심사를 해서 수상자를 결정하는 청소년 문학축제다. 교육부와 대형 서점 프낙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이 상의 심사기간 중 최종심에 오른 작가들은 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올해 수상자는 중국계 여성작가 산 사의 소설 『바둑두는 여자』였다. 전국 2천여명의 고교생이 심사에 참여한 뒤 각 지역 대표들이 별도로 모여 9편의 후보작을 놓고 최종심을 가졌다. 아카데미 공쿠르가 올해의 공쿠르상 수상작으로 뽑은 『붉은 브라질』은 고교생 사이에서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고등학생의 공쿠르상' 수상작 선정은 언론에서 주요기사로 취급될 정도로 어느덧 권위를 쌓아갔다. 문학 소년과 소녀들에게 교실의 울타리를 벗어나 동시대 문학의 현장을 체험케하는 이 행사 역시 프랑스적 문학교육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http://daesan.or.kr/wepzine/5/contents/%B1%E2%C8%B9%C6%AF%C1%FD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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