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경마는 교수형으로 다스렸다



말의 능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방법으로는 약물이나 약제, 기타 기계적인 방법 혹은 마체의 생리적인 기전을 이용하는 방법 등이 사용되고 있다. 그중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이 약물용법이라 할 수 있다. 경주마에 약물을 투여하는 것은 경마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물검사를 영어로 도핑(Doping)이라고 하는데, 이는 말의 약물검사에서 유래되었다.

그것이 오늘날 운동선수나 경주마 혹은 개경주의 약물검사를 실시한다는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영국에서 근대경마가 처음 열릴 무렵에는 흥분제라든가 진정제보다는 우수한 말을 없애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흥분제로서 가장 널리 사용된 것은 출주할 말에게 위스키나 포도주를 마시게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는 마주들이 자기말이 우승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였고, 내기가 발달하여 도박꾼들이 끼어들면서 양상은 달라져 갔다. 인기가 있는 말이거나 배당률이 크게 오른 말이 출주할 때 이 말을 사전에 죽이거나 혹은 설사약 따위를 먹여서 능력을 떨어뜨리게 된 것이다.

그들이 인기마를 없애는 이유는 복병마를 맞히기 위함이었다. 이때는 대개 정보수집가들이 부정을 저지르며, 마주들도 이들과 같이 합세해서 자기말이 출주할 때 배당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장난을 치기도 하였다. 당시는 오늘날과 같이 토털라이제이터에 의한 베팅이 아니고 몇몇의 북메이커에 의하거나 직접 당사자들끼리의 내기였기에 오늘날보다도 심한 부정이 있었다.

영국의 경마 발전과정에서 빚어진 약물과 관련된 사건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772년 5월 ‘로즈버드’(Rosebud)라는 말이 요크경마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었을 무렵 여러 명의 악한이 ‘로즈버드’ 마굿간에 침입하여 그 말에게 강제로 독약을 먹여 죽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해 9월에는 스카보로에서 여러 명의 악당이 출주예정일 전날 밤에 토스폿에 있는 마사에 침입하여 말에게 설사약을 먹였다는 기록도 있다.

1778년 ‘미스나이팅게일’(Miss Nightingale)이라는 말이 경마에 출주하기 전 일요일에 죽었는데, 부검을 한 결과 이 말의 배 속에는 오트볼처럼 생긴 둥근 오리 사냥용 탄환이 2파운드나 들어 있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또한 조지4세가 황태자로 있을 때 그의 조교사 카스본(Casborne)은 귀족들의 마사에 침입하여 성적이 우수한 출주예정마에게 아편 따위의 환약을 먹이는 일당들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이같은 나쁜 짓은 수년간이나 계속되었다고 황태자의 전속기수였던 샘 치프니(Sam Chifney)가 증언하기도 하였다.

치프니 역시 황태자와 짜고 부정경마를 저질렀다. 돈 카스터의 어느 마사에서 사료통에 비소가 들어 있었으며, 뉴마켓에서도 비소가 든 사료를 먹고 두 마리가 죽었다. 가장 큰 사건은 1811년경에 뉴마켓의 리처드 프린스의 마굿간에 악당들이 침입하여 사료통에 비소를 넣어 폴리 경과 메리시대령의 말 4두가 죽었다. 곧 관련자들이 정보꾼들을 상대로 범인색출에 나서게 되었고, 가이스병원에서 약제사로 일했던 경력이 있는 세실 비숍이라는 자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그를 추궁한 결과 자기는 공범이며 주범은 정보꾼으로 알려진 대니얼 도손(Daniel Dawson)이라고 자백을 하였다. 도손은 혈색이 붉고 키가 작은 사내로 항상 파이프를 물고 위스키를 마시며 밤을 새우는 사교가로 알려져 있었는데, 도손의 주변에는 직업적인 도박꾼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그후 도손은 케임브리지 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고 1812년 8월8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영국에서 부정이 가장 많이 발생한 시기가 1830~ 1950년 사이라고 한다. 존 켄트 조교사가 1848년 더비에 출전하기 위하여 자신의 말인 ‘서플라이스’(Surplice)를 이끌고 엡섬에 갔을 때, 이 말의 내기금액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이 말의 사료를 줄 때 상당히 신경을 써야 했다고 한다.

엄청나게 내기가 걸린 말을 제거하면 큰 돈을 벌 수가 있기에 도박꾼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을 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해당말의 관리원까지도 매수하여 일을 저지르곤 했다. 조지4세에게 황태자 시절에 경마관여금지처분을 내린 찰스 번버리(Charles Bunbury)가 1821년에 죽은 후에는 경마계를 이끌 뚜렷한 사람이 없었다. 그후 1840년경에 얻은 인물이 조지 벤팅크경(Lord George Bentinck)이었다.

벤팅크경은 독재자 같은 인물이었다. 그의 종형제이면서 경마평론가인 찰스 그레빌이 기록한 바에 의하면 “용이주도하였던 그 시대 최고의 악당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악행을 자신이 저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어쨌든 그는 그 시대 경마를 주관하면서 부정과 일대 투쟁을 전개하였고, 벤팅크 다음에 등장하는 라우스(Rous)제독도 부정과는 타협을 할 줄 몰랐으며, 그 결과 도박꾼이 사라지면서 부정경마는 한풀 꺾이게 되었다.

약물의 남용과 검출방법의 발견

19세기 말에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경마가 다시 영국으로 되돌아 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미국인 기수와 조교사, 그리고 마주가 영국으로 이동하였다. 이 결과 영국에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중 하나가 약물에 의한 부정경마였다. 문제의 인물은 미국인으로서 영국에 온 위사드(Wishard)였다. 그는 레스터(Rester)형제를 기수로 데리고 왔는데, 시카고에서 호텔경영을 하는 존 드레이크와 직업적인 도박사로 알려진 존 게이트 등이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었다.

위사드는 격이 낮은 프레이트 출주마를 구입한 뒤 훈련을 시켜서 핸디캡경주에서 우승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였다. 1900년에 위사드가 조교한 말 중에서 54두의 우승마가 나왔으며, 그는 영국에서 최다승 조교사가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위사드는 영국에서 말을 잘 조교시키는 천재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부정적인 방법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실제 그는 항상 부정경마를 해 왔었다. 약물을 사용한 것이다. 이 사실은 당시 영국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모든 것이 밝혀졌다. 그는 코카인을 사용한 것이다. 한편 오래전부터 경주마에게 출주 전에 위스키를 마시게 했는데, 요크셔에 사는 수의사 지미 딘(Jimmy Dean)이 요크셔의 조교사들을 위해 ‘스피드를 내는 탄환(Speedy Balls)’ 이라는 약을 만들었다. 그러나 위사드는 미국 화학자들이 빛을 본 시대라고 했다.

즉, 영국의 ‘스피드를 내는 탄환’보다는 자기가 사용한 약이 더 효과적이라고 암시한 것이다. 아무튼 영국 경마계는 심각한 충격에 빠져들었다. 영국의 재결위원인 조지 램브턴과 자키클럽의 이사인 더람경은 약물의 효과를 직접 실험해서 약물투여가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실증하려고 했다. 그들은 능력이 좋지 않은 말에게 흥분제를 투여해서 경주에 우승했고, 이를 영국의 자키클럽 이사들에게 알렸다.

그래서 1903년에 경주마의 약물투여는 금지되었다. 미국인들이 실시하였던 약물투여는 영국에 이어 프랑스에서도 금지되었으나 제재방법이 없었다. 또한 이때 프랑스에도 많은 미국인들이 진출

하였기에 프랑스의 조교사들은 미국인들에게 완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약물을 사용하였다. 1911년 오스트리아 경마당국은 많은 경주마들이 약물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경주마에 투여하는 극히 적은 양의 약물을 검출하기 위하여 빈 대학의 화학자 프랜켈(Frankel)을 고용하게 된다.

그들이 고안한 방법은 약물이 투여되지 않은 정상적인 말의 타액(입속의 침)에는 약물이 함유돼 있지 않을 것이라는 데 기초를 두었으며, 대부분의 약물은 투여 후에 타액으로부터 검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실험의 결과로 경마당국은 약물의 사용증거를 제시하게 되었다. 그후 프랜켈 교수는 연구의 결과를 직접 적용하였는데, 약물투약 위반으로 면허를 정지당한 조교사는 자기자신을 방어할 목적으로 독일의 화학자를 고용하였다.

그 독일의 화학자는 정상적인 말의 타액에서도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의 약물이 검출된다고 보고함으로써 프랜켈 교수의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학문적인 싸움은 1년간 계속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과학자 7명이 프랜켈의 방법이 정당한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동원되었다. 독일과 프랑스의 일부 학자도 가담하였다.

그들은 연구를 독일의 과학자가 발표한, 즉 프랜켈의 방법이 틀렸다고 보고한 그 논문이 잘못되었음을 밝혀냈다. 그는 면허정지를 당한 조교사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받고 거짓연구를 하였던 것이다. 조교사의 면허정지는 당연한 것이었고, 프랜켈의 방법은 프랑스나 영국으로 퍼져 나갔다. 1912년 버본 로즈(Burbon Rose)라는 말이 메이슨래핏 경마의 골드컵경주에서 우승하면서 검사를 받았는데 처음으로 양성반응이 나와 실격으로 처리되었다.

미국은 약물남용의 천국이라 할 정도로 많는 말들에게 약물이 투여됐다. 그러나 실제로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미국에서 제도적으로 약물투여를 금지하기 이전에는 마약을 포함하여 말의 능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물이 널리 이용되었다.

이시영/경마평론가
2006/01/03 03:19 2006/01/03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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