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늦게 어둠 속의 바람을 가르며 말을 달리는 자는 누구일까?
그것은 아이를 따뜻하게 품에 안고 말을 타고 달리는 아버지다.

ㅡ 아가, 너는 무엇이 그리 무서워 얼굴을 가리느냐?
ㅡ 아버지, 아버지는 마왕이 보이지 않습니까? 관을 쓰고 긴 옷을 늘어뜨린 마왕이…

ㅡ 귀여운 아가, 이리 오너라.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 저곳에 아름다운 꽃이 많이 피어 있고 또 너의 어머니는 많은 금으로 된 옷을 가지고 있다.

ㅡ 아버지, 아버지는 들리지 않습니까? 마왕이 귀여운 소리로 속삭이고 있는 것이…
ㅡ 가만히 있거라 아가. 걱정하지 말아라. 마른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다.

ㅡ 귀여운 아가. 나와 같이 가자. 소녀들이 너를 즐겁게 해 주리라. 밤에 춤추는 데 가서 즐겁게 해 줄테니…

ㅡ 아버지, 아버지, 저 어두운 곳에 마왕의 소녀들이 보이지 않습니까?
ㅡ 아가. 아가. 아무 것도 아니란다. 그것은 잿빛의 오래된 버드나무란다.

ㅡ 나는 네가 제일 좋다. 자, 오라. 내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억지로 끌고 가겠다.

 ㅡ 아버지, 아버지, 지금 마왕이 나를 잡아요. 마왕이 나를 심하게 해요.

아버지는 무서워서 급히 말을 달린다. 팔에는 떨면서 신음하는 아이를 안고서…
지쳐 집에 도착했을 땐 사랑하는 아들은 품에서 이미 죽어 있었다.

ㅡ「마왕」, 슈베르트ㆍ괴테

지난 주. 미친듯이 흔들리는 창문 소리에 잠에서 깨니 붕붕이가 내 옆구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채 겁먹은 눈이다. 깜빡임조차 없는 까만 눈. 무언가 쓰러지고 깨지는 소리가 창밖에서 날 때마다 바짝바짝 긴장하는 게 느껴진다. 창틈으로 파고드는 바람은 귀신 소리를 냈고. 괴테의 마왕이 생각났다. “사랑하는 아들은 품에서 이미 죽어 있었다.” 나는 왼손을 뻗어 붕붕이를 끌어안았다.

모든 게 날려가던 그날. 누가 누굴 위해 옆에 있어준 걸까... 누가 누굴 안았던 걸까.
2010/09/06 00:56 2010/09/06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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