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말을 길들였다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인간이 말보다 힘이 세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들보다 현명하지도 지혜롭지도 않으니 길들였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슨 복으로 이 크고 멋진 동물과 함께 살 수 있었을까? 정답은 바로 말이 인간을 그들 무리의 한 일원으로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

에퀴타나 기간 중에 나는 여러 주제로 강연을 했다. 한번은 강연을 듣던 사람들이 나를 경마장으로 데리고 가더니 누가 우승할지 알려 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까? 경주 전에 말들과 아무리 대화를 나눠 봐도 우승말을 맞히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왜냐하면 대부분의 말은 자신이 1등 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경주 직전의 말들의 생각을 엿보는 것은 개성이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참 재미있다. 이제 막 경주마가 된 풋내기 말들은 이런 반응을 보인다.

" 어라, 왜 한꺼번에 달려 나가야 하는 거야? "

" 하여튼 빨리 달리기만 하면 된단 말이지? 좋아, 내가 다 따라잡아주겠어. "

풋내기들이 이런 대책 없는 자신감을 보이는 데 반해, 선배 말들은 " 난 프로야 ! " 라는 말을 즐긴다. 또 심통을 부리는 말도 있다.

" 출발 신호가 나기 전에 먼저 뛰쳐나가야지. 그럼, 전부 다시 시작해야 된다고. 재밌겠군, 흥흥. "

반면에 이 일에 회의를 느끼는 말도 있다.

" 나는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하는 걸까? "

" 와우, 저 많은 사람을 봐. 진짜 재밌겠다. " 며 경주를 즐기는 말도 있고, " 이번에는 꼭 우승을 해야 할 텐데. 아니면 어디로 팔려 갈지도 모르는데...... " 라며 순위를 걱정하는 말도 있다.

Citation (Bull Lea x Hydroplane)

한번은 중요한 경주를 앞둔 자신의 경주마와 대화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 말은 우승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한 그저 그런 경주마였는데, 최근에 갑자기 우승을 하기 시작했다며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다.

상담을 시작하자 말은 얼마 전 경주를 마치자마자 기수와 함께 산책 나갔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산책길에서 둘은 함께 달렸던 경주마 중의 하나가 심장마비로 죽어 마구간 밖으로 끌려 나오는 걸 보게 되었다고 한다. 놀란 말은 걸음을 멈췄고 기수가 말에게 귓속말로 이렇게 말했다.

" 너도 좀 더 빨리 뛰지 않으면 저렇게 죽게 될 거야! "

기수는 장난을 친 것이었지만 이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이해한 말은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두려움에 경주 때마다 죽어라 뛰었던 것이다. 이 말을 전해 들은 기수는 놀라서 거의 숨이 멎을 뻔했다.

" 이 녀석이 정말 그렇게 말해요? 세상에...... 내 말을 알아들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정말로 그렇게 말했단 말이에요? 시기적으로 따져보면, 음...... 이 녀석이 우승을 하기 시작한 게 그러니까...... 정말 제가 그 말을 한 시기랑...... 딱 맞네요, 세상에 ! "

리디아 히비 (김보경譯), 『 동물과 이야기하는 여자 』, 2006, pp.120~128

2008/09/15 18:18 2008/09/1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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