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듣는 숭산 선사 법문 3

-“참모습 못보는데서 번뇌 시작됩니다” -
- IMF시대 거품 빼고 과욕 버려야 회생 -
-“근원캐보면‘春日鷄聲’서도 불법만나”-





온 나라가 어수선 합니다. 누구든 입만 열면 경제 얘기를 합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목표를 잘못 세웠던 탓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을 가다듬지 못한채 너무 거창하게 세계화라는 목표를 세웠고 그 목표에 이르는 길을 잘못 걸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미궁을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이 좀 풍요로와 지니까 우리도 서구 선진국의 흉내를 내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과욕이 생겼습니다. 국민소득 1만불이라는 수치가 과욕의 도화선이 되었고 거기서 붙은 불은 소비와 향락의 잿더미를 안겨준 것입니다. 이제 참회할 때입니다.

국민소득 1만불 시대라는 수치상의 발전이 우리의 현실적인 풍요라고 믿은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잘사는 나라의 뒤꽁무니만 허겁지겁 따라다니다 보니 정부가 발표하는 수치들이 국민의 행복을 가늠하는 척도인양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착각을 한 국민이나 그렇게 수치를 앞세워 치세의 공을 선전한 정부 관료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늘의 이 경제대란은 누구 한사람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의 착각과 과욕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발을 땅에 두지 않고 허공에 목표를 매달아 둔채 정신없이 헤매다가 이제서야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철퇴를 한방 맞은 꼴입니다. 아픕니다. 정신이 아뜩합니다. 이제 빨리 정신을 가다듬고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들여다 보아 우리의 참모습을 만들어 내는 일이 중요합니다.

‘땅에 넘어진 사람은 땅을 딛고 일어난다’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난세야 말로 호시절’이란 말씀도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면 넘어진 땅이 재기의 토대가 되고 마음만 흐트리지 않으면 난세를 빌어서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힘들다’ ‘죽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며 시절만 탓하다보면 정말 힘들어 죽고맙니다.
나는 청년시절에 일본 경찰에 잡혀 감옥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평양서 학교를 다니다가 느닷없이 일본 경찰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죄라야 일본인 학생들을 때려주고 골탕먹이는 정도지요. 그런데 감옥까지 들어가다니 정말 막막한 일이었습니다. 과학에 관심이 많던 내가 당시로선 구하기도 힘들고 일반인이 소지해서는 안되는 부속품들을 좀 모아갖고 있었던 것이 독립군을 돕는 것으로 오해되어 치른 옥고였지만 그곳에서 나는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석주 스님(오른쪽)과 환담하는 숭산 스님.

어떤 경우에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였습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옛말을 실감했던 것이지요. 일본인 형사들은 아예 나를 독립운동하는 학생으로 표적을 정해두고 심문을 했습니다. 그들의 질문 한마디를 어떻게 받아 넘기느냐에 내 삶의 방향이 달려있는 것이었습니다. 감옥에서 쌀 암매상이나 고기 암매상들이 “어떤 걸 물어도 정신을 차리고 곰곰히 생각해보고 대답하라”고 조언을 했기에 나는 내가 어떤 일에 휩쓸려 있고 나의 대답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어린 나이에 감옥과 일본 형사라는 환경에서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정신을 바로 갖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운 셈입니다.
우리의 경제가 어려우면 그 어려워진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그 원인을 봐야합니다. 참선 수행법에 관(觀)한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 국민들도 경제대란의 원인을 제대로 관해야 합니다. 머리로 계산해서 알아내는 것은 관이 아닙니다. 분석이고 추산일 뿐입니다. 관이란 마음의 잣대, 다시말해 우리의 정신 상태까지를 철저히 들여다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오늘날 우리가 받고있는 고통의 근원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목표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섣불리 세계화라는 거창한 구호를 목표로 삼은 과거의 허세를 걷어내야 합니다. 요즘 거품을 뺀다는 말이 유행입니다. 우리 경제가 거품위에 떠 있다가 이제야 땅으로, 우리의 현실로 그 발을 붙이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듯이 우리들 정신 속의 거품도 속속들이 빼내야 합니다. 세계화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나는 세계화 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한국화라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경제, 문화, 사상은 급변하는 사회 정치 경제질서 속에서 국적을 잃어 버렸습니다. 우리민족이 태어나 살아온 땅인 이 한국이란 국적을 잃어 버리고 서양식에만 젖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화도 못한채 세계화를 넘보다가 이렇게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만 것입니다.

한국화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문화적 뿌리, 우리의 정신사상적 뿌리를 올바르게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뿌리에다가 현대화의 정치 경제 문화를 접목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난 30년간 세계 30여개국에 160여개의 홍법원과 선센터를 세우며 불법의 세계화를 위해 뛰었습니다. 내가 무슨 사업가여서 세계에 그렇게 많은 사무소를 설치하고 외화를 벌었으면 참으로 국익에 보탬이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수행자로서 돈이 아닌 정신으로 국익에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아상을 보이는 것 같지만 여러분을 이해시키기 위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그것이 가능했던 원인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66년 일본의 수도 동경에 홍법원을 세운 이후 대만과 미국 등 서구 유럽에 차례로 홍법원을 세워 그곳 현지인들에게 선수행을 가르칠 수 있었던 원인. 여러분은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한국선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르치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철학이었거나 스피노자의 철학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내가 가르치는 것이 과학 기술 분야거나 정치경제학이었어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나는 한국의 선수행법을 가지고 해외를 다니며 전법을 하는 수행자일 뿐이었습니다.

한국의 선이 서구 유럽에는 생소한 것이었고 그들의 황폐한 정신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기에 그렇게 긴 세월간 세계를 무대로 전법의 길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요즘도 그 길은 이어지고 있고 나를 인연으로 한국에 와서 한국스님들과 똑같이 수행하는 눈푸른 스님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우수한 민족입니다. 우리에게도 서구유럽인들이 가진 정신적인 고급문화, 과학적인 아이디어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제의 통치와 동족상잔의 전쟁 그리고 서양열강의 군사정치 논리에 정신을 잃었었습니다. 미처 그 정신을
찾기도 전에 자본주의의 달콤한 맛에 빠져 또 한번 정신을 잃어 버렸던 것 입니
다. 그러다보니 한국화, 한국적인 것을 챙기지도 못하고 세계화의 깃발을 달고 높
히 날아가는 꿈만 키웠던 것입니다.


세상의 무슨 일에든 목적과 목표가 있습니다. 한 나라의 앞길도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IMF를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해서는 안됩
니다. 그것은 짧은 견해일 뿐입니다.


아까 땅에 넘어진 사람은 땅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
장 우리의 목표는 IMF를 빌어서 정말 한국적인 기업, 진실로 한국적인 경제구조
를 창출해 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굵고 깊은 뿌리가 있는 경제대국을 세워
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당장의 일이 급합니다. 외화를 벌어야 하고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그러나 목표는 보다 더 멀고 높은 곳에 두어야 합니다. 터무니 없이 높게
목표만 세우라는 것이 아니라 ‘첫발을 내디디며 다음을 준비하는’ 마음을 가져
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교를 믿는 데도 먼저 그 목적을 바로 알고 갈길을 잘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
다. 불교를 믿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다들 아시는대로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무
엇을 깨닫는 겁니까. 이렇게 이 세상에 와서 살다가는 이 ‘나’라는 것이 무엇인
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옛날 한 스님이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불법입니까(如何是佛法)?”

“봄날 닭우는 소리이니라(春日鷄聲).”


도대체 이게 무슨 말입니까. 불교가 무엇이냐고 묻는데 봄날 닭우는 소리라니. 봄
날에 닭이 우는 소리가 어떻게 불법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봄날 닭우는
소리를 알면 인생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했잖습니까. 닭 우
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누가 그 소리를 들었나요. 내가 들었습니다. 무엇으로 들었
는가요. 귀로 들었습니다. 그럼 죽은 사람의 귀도 뚫려 있는데 그 죽은 사람도 들
을 수 있을까요. 없겠지요. 그럼 나는 무엇으로 봄날 닭의 울음 소리를 들었습니
까. 그 소리를 들은 나는 과연 무엇이란 말입니까.


자, 이렇게 자기의 근원을 캐 묻고 또 캐 묻는가운데 우리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
습니다. 불교를 봄날 닭우는 소리라 해서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 이치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닭울음 소리에도 불법의 적적대의(的的大義)가 들어 있는 겁니다.
익히 들어 본 것이지만 선문답을 더 들어 봅시다.


어떤 스님이 동산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如何是佛)?” “삼
서근이니라(麻三斤).” 또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께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부처
입니까(如何是佛)?” “마른 똥 막대기니라(乾屎궐).” 불교를 묻는데 이런 괴상한
답이 나올 수 있을까요. 어떻게 부처를 똥막대기에 비유한다는 겁니까. 모를 일입
니다. 모른다는 것은 그 말을 한 놈이나 듣는 놈이 다 모른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모르느냐. 그 말한 것, 부처나 똥막대기 마삼근을 모른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대화하는 너와 나의 마음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또 무엇이냐. 그것은 곧 부
처입니다. 마조스님의 유명한 공안이 있습니다.


어떤 스님이 마조스님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如何是佛)?” “마음
이 곧 부처니라(心卽是佛).” “어떤 것이 마음입니까(如何是心)?” “부처가 곧
마음이다(佛是卽心).” 마음과 부처는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처이고
부처가 곧 마음이란 것인데 문답은 그렇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부처냐고 다시 물어 보는데 그때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
佛)라고 합니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닌 것, 그것은 무엇입니까. 집착이 없어서
부처에게 의지하지도 않고 마음에 매달리지도 않는 곳에서 부처를 이룬다는 뜻입
니다.


이렇게 말로 하면 장난 같기도 하고 도무지 헷갈려 이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선 공부하는 이들에게 기본이 되는 이 화두들을 들어 설명하는 것은 불교를 쉽게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묻는 말은 한결 같습니다. “무엇이 부처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대답은 가지각색입니다. 말로 글로 이름지어진 것에 집착해서는 그 도리를
절대 알지 못합니다. 태양을 일본사람은 ‘다이요’라 부르고 미국 사람들은
‘Sun’이라 부릅니다. 그렇다고 태양의 본질이나 그 빛이 변하는가요.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이라 부르던 상관없이 태양은 그렇게 떴다 집니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인간이라는 ‘나’를 비롯해 모든 사물의 진실, 그 본래의
모습입니다. 진실된 모습, 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섣불리 이름을 붙여 버리는데서
우리의 번뇌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불교의 목적이 깨달음을 얻는 것이라면 무엇을 깨달을 것인지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지, 깨달은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장서방이 장에 가니 나도 간다는 식으로 불교를 믿으면 번뇌의 그늘만 더 커지는
겁니다.

요즘의 경제위기도 우리가 우리의 본질, 우리 나라의 현실을 잘 들여다 보지 못하
고 다른 나라가 가는 길이 위대하게만 보여서 무작정 그 길을 따라 가다가 만난
막다른 길인 것입니다. 옛 선사들이 끊임없이 “무엇이 불교인가”를 물었듯이 현
대인들도 끊임 없이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현대에 맞는 불교의 실체가 보일 것입
니다. 진리를 향한 구도심이 없는 세상은 경제, 정치, 도덕, 문화도 없습니다. “무
엇이 불교입니까?”라고 묻듯 “무엇이 정치입니까?” “무엇이 경제입니까?”라
고 물어 봅시다. 오늘의 어려움이 극복될 것입니다.

정리=임연태 기자

2004-11-30 오후 5:54:00
2004/11/30 16:58 2004/11/30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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