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듣는 숭산 선사 법문 5

"원인없는 결과 없어 내 책임 다할때 삶 환해져"
"모양 이름 집착하고 살면 내 본래 마음 몰라요"



숭산 스님.

이 지구가 돌고있는 한 하나도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살아나가느냐 그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첫째 나 자신이 어떻게 마음을 잘 가지며 내 가정을 어떻게 잘 지키며 또 내 나라는 어떻게 육성시키며 모든 인류가 어떻게 잘 사느냐 하는 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나라를 볼 때에 여성이라는 그 힘이 올바른 정도를 잡을 때에 그 나라가 발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의 여성이 타락되면 인간성이 상실되고 나라가 망해갔습니다.

지나온 역사를 뒤돌아보면 왕실 안에서 흐름을 조정한 것이 여성들이었습니다. 그 방향을 바꾼 것도 여성이었으며 또 나라의 흥망성쇠를 가져오게 한 것도 여자입니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의 힘이라는 것이 밖에 나타나는 힘보다도 안에서 조정하는 힘이라는 것이 굉장하다는 것이 역사상에 나타난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해야만 되겠는가. 또 이 세상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그 가운데 우리는 주부로서 어떻게 나 자신을 콘트롤하고 가정을 리드하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연구해 보기로 합시다. 이 세계의 흐름을 보면 격동기입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두 개의 진영으로 벌어졌습니다. 공산국가가 탄생된 것이 1617년입니다. 그 무렵 독재가 심했습니다. 인간들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그 사회가 어떠한 주권자들에 의해서 노예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서 인간은 자유다, 평등이다 하는 것을 부르짖으며 1917년도에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백년도 못가서 공산주의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동·서독이 서로 손을 맞잡고 통일을 이루었는가 하면 소련과 중공의 개방정책을 비롯하여 공산국가가 자멸하기 했습니다. 이것은 커다란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소련에 종교인으로서 참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소련정부가 세계에 있는 모든 종교인과 정치가·학자·예술인 등 각계 분야에 있는 3백명을 초청했습니다. 그 다음 소련내에 있는 각계각층 사람들, 특히 현정부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많이 초대했습니다. 또 소련 내에 있는 권력을 가진 3백명과 같이 일주일 동안 이 지구상에 사는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한 방향을 향해서 갈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의 주요 주제가 무엇이냐 하면 ‘환경과 인간의 방향’이었습니다.

기원전 1900년 전에 그때 우리 인구가 1억도 못되었습니다. 그것이 1750년도 그러니까 1700년 동안 10억이라는 인간이 태어났었습니다.

해방되던 1945년도에 20억이라는 인구가 불어났습니다.
그러면 이 많은 인구가 얼마인가. 50억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면 이 많은 인구가 어디서 왔느냐. 이 많은 인구를 하나님이 만든 것이냐. 부처님이 만든 것이냐. 근원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구가 팽창한다 할 것 같으면 2000년대에 가서는 80억이 된다고 합니다. 지금은 50억인데 80억으로 늘어나면 인간은 설 땅이 없습니다. 인간폭발이 됩니다. 소련내에 있는 고등학교 학생 150명과 미·영국 고등학교 학생 150명 등 300명을 참여시켰습니다. 그때 고르바쵸프가 말하기를, “우리 인간들이 이 지구상에서 제일 악질적인 동물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해치고 공기와 물을 더럽게 만들고 이 세상에 모든 악행을 하는 것은 인간입니다. 인간이 동물을 죽여서 고기를 먹고, 모자를 해쓰고, 가죽옷을 입고, 신발을 쓰고 다닌다 라는 말입니다. 모든 동물의 것을 다 착취해서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 동물이 얼마나 인간보다 착합니까. 인간이 이 지구상에선 독재자입니다. 이 독재적인 인간은 얼마 안가서 멸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은 사상이니 하는 것은 철폐를 하고 인간이 어떻게 해서 환경정리를 올바로 만들었으며 우리 인간이 어떤 방향으로 올바로 나아갈 것이며 또한 다음 세대에 무엇을 전할 것인가를 여러분들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라고 고르바쵸프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옛날 어머니들은 아이 많이 낳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무엇이냐면 지금 세대가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낳는 자식들한테 돈·권력·투쟁을 물려줄 것인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우리의 자손들에게 물려줄 것입니까. 돈·권력·투쟁 어떤 것을 물려주는 것이 좋은지 곰곰히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 1억도 못되던 인간이 50억이라는 인구로 늘어났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많은 인구가 늘어났는가.

고르바쵸프는 현실에서 미래를 향한 것만 얘기했습니다. 강력히 우리는 인간성을 복구해야 되겠다는 이야기만 했습니다. 우리가 어째서 인구가 팽창했는지 그 원인을 이야기 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왜 이렇게 불어났는지 그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얼마만큼 악질 동물인가? 이 세상은 불교적으로 이야기하면 윤회를 하게 됩니다. 닦은 대로 짓는다고 했습니다.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고 좋은 일을 하면 그만큼 존경을 받게 됩니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떠한 일을 책임지고 행해야 될 것인가.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남편에게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도록 도와주고, 아이들에게는 교육을 잘 시키고 그것이 나의 책임입니다. 그러니까 내 위치와 내 환경과 내 수용, 이 세 가지를 분명히 할 때에 대한민국의 여성으로서 떳떳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내 책임을 다할 때에 내 갈 길이 환하게 열립니다. 사람답게 사는 길, 여성답게 사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우리가 변화하는 격동기에 있어서 지구상에 있는 인간 폭발지경에 있는 위기의 시기에 어떻게 해야만 여성으로서 올바른 길을 찾을 수가 있겠는가. 항상 나 자신이 무엇인가부터 찾아야 합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인가. 나 자신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올 적에 어디서 왔느냐. 죽어서는 어디로 갈 것이냐. 도대체 우리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갈 것이냐. 한번 생각해 봅시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이 지구를 창조했다는 것이 맞는 것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 일체 내 마음으로 된 것이 맞는 것인가.

또 유물론에서 물질로써 된 것이 맞는 것인가 각 종교끼리 논쟁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생각을 버리자. 생각으로써 본체를 찾고 우주의 근본을 찾는 것은 안됩니다. 그래서 내 자신을 찾아 들어가는 참선을 해야 합니다. 지금 서양에서는 신부나 수녀, 목사들이 참선을 많이 하고 있습 니디.


옛날 대혜선사가 황벽선사를 찾아갔는데,

“제가 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네가 법을 배우러 와. 누가?”

“제가요.”

“이놈의 자식 어째서 송장을 끌고 다니느냐”

옛날 서암선사께서는 매일같이 “주인공아”라고 물으면 “네”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라” “네”, “언제나 남한테 속지 말아라”

“네”“주인공아”하고 “나”라는 사람이 대답을 하셨는데 어떤 것이 진짜 주인공인가?


옛날 보리달마께서 인도에서 중국에 왔습니다. 달마는 양무제를 만났습니다.

양무제는 달마대사에게 예의를 갖추고 하는 말이, “대사님, 나는 수천 절을 짓고 수많은 스님들에게 가사장삼을 비롯하여 많은 공덕을 지었는데 내 공덕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 공덕이 없소. 겨울같이 텅 빈 자리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모를 뿐입니다.”

달마대사께서 아무 미련없이 양무제 곁을 떠나 양자강을 건너 위나라로 갔습니다. 소림사의 조그마한 굴에서 9년간 면벽참선을 했습니다.


당시 위나라에 혜가라는 국사가 있었는데, 혜가대사는 문무백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왕실에서 설법을 매월 행하여 오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혜가스님이 방안에서 경전을 보고 있는데 밖에서 어린아이의 메아리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스님이 문을열고 살펴보니, 허공에서 오색광명이 비추면서

“네가 옳은 불법을 알고자 하면 소림굴로 찾아가라.”

“네.”

그 길로 소림굴로 찾아갔습니다. 달마가 혜가를 보고,

“무엇하러 여기 왔느냐?”

“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법을 구하러 왔느냐. 그럼 네가 나를 믿느냐?”

“네, 믿습니다.”

“믿는 표시를 해라.”

그때 혜가스님은 손을 잘랐습니다. 손이 끊어지니 혜가스님은 몹시 아파했습니다.

“스님, 법은 고사하고 내 마음이 아픕니다. 아픈 마음부터 편안하게 해주십시요.”

“그래. 그 아픈 마음을 내게 가져오너라.”

“아픈 마음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여 살게되면 내 본래 마음을 모릅니다.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지 아니했을 때 내 본래 성품으로 돌아갑니다. 본 성품으로 돌아갔을 때 내가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을 해야 될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여러분들에게 끝으로 한가지 말씀드릴 것은 내 마음을 찾는 공부를 합시다.

그렇게 되면 올바른 어머니와 부인, 국민이 되고 올바른 한 사람이 되어서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인류의 행복을 줄 수 있는 마음의 광명을 찾게 됩니다. 열심히 여러분들이 나를 찾아서 모든 사람들한테 광명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04-11-30 오후 5:43:00
2004/11/30 16:59 2004/11/3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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