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07

2008/10/07 04:09 / My Life/Diary

라틴어의 finis라는 단어는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끝이나 완성을 의미했고, 다른 하나는 달성해야 할 목적이나 목표를 뜻했다. 자기의 '잠정적인 실존'이 언제 끝날지 짐작할 수 없었던 사람은 삶에 있어서 궁극적인 목적을 세워 나갈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정상적인 삶을 누리는 사람과는 대조적으로 장래를 위해 사는 일을 포기해야 했다. 따라서 그의 내면적인 삶의 전체적 구조가 변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쇠퇴의 기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래의 어떠한 목표도 볼 수 없어서 그 자신의 붕괴를 내버려 둔 사람은 과거를 회고하는 데 몰두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앞에서 이미 공포로 가득찬 현재를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어 보려고 과거에 집착하는 경향에 관해 언급한 바가 있다. 그러나 현재가 실재한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데에는 위험이 가로놓여 있다. 수용소 생활을 어떤 긍정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는 확실히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회를 그냥 지나쳐 버리기는 아주 쉬운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강제수용소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참된 기회를 흘려 보냈다는 사실을 믿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한 번의 기회와 한 번의 도전은 남아 있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묘한 특수성이다. 즉 영원한 미래를 그리며 살아간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때로 자기의 마음을 미래라는 과제에 매달릴 수 있도록 억지를 쓰기는 하지만 실존의 가장 어려운 순간에 놓이게 되었을 때 미래는 자신을 구원하는 수단이 된다.

우리는 삶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멈출 필요가 있다. 그 대신 우리는 우리들 자신을 매일같이, 또는 수시로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는 존재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대답은 반드시 말과 명상이 아닌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처신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는 삶의 문제에 대해 올바른 대답을 찾아내야 한다는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앞에 끊임없이 놓여지는 삶의 과제를 수행해 나가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 (김충선譯),『 죽음의 수용소에서 』, 1995, pp.119~130
Robert Capa,「 Loyalist Militiaman at the Moment of Death 」(1936)

2008/10/07 04:09 2008/10/07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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