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19

2007/07/19 05:49 / My Life/Diary
A는 하루에 팔굽혀펴기를 50개씩 해왔다. 조금씩 양을 늘려간 그는 이제 그냥 50개, 주먹을 쥐고 50개, 손가락을 펴고 50개씩 총 150개를 한다. A는 서서히 운동에 중독이 되었다. 나약한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다. A는 이제 아침 150개, 점심 150개, 저녁 150개씩 총 450개를 하려 한다. A는 자기가 왜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는 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본다. 그러나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다. 태초부터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수단이 목적이 되었다. A는 분명 어떤 올바르고 건설적인 목적이 있었음을 확신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팔굽혀펴기 갯수가 늘어났을 리도 없고, 자신이 이렇게까지 열심히는 아니었을 테니까. A가 모르는 이상, 아무도 A가 왜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는 지 알 수 없다.

누군가는 기실 A가 팔굽혀펴기 갯수를 늘려나갈 수 있었던 요인은 근력의 강화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반복된 연습으로 팔의 근력을 늘이는 대신, 체중을 줄여나간 것이다라고. 그러나 또 다른 이는 팔굽혀펴기를 함으로써 A의 체중이 줄 가능성을 생각한다. 또는 체중을 줄여봐야 팔굽혀펴기 횟수를 늘일 수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우리의 논쟁은 시작된다. 그러나 아무도 A가 왜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는 지 알 수 없다.

헬스클럽 관장이자 운동생리학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모씨는 이를 일컬어 A가 계획한 고도의 공작임을 천명한다. 소모적인 논쟁거리를 만들어 대중들을 현혹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씨는 생각한다. 자신이 헬스클럽 관장이며 운동생리학 박사 학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적확히 포착할 수 있었다고. 모씨 주변에는, 과연 헬스클럽 관장이야!, 운동생리학적으로 일리가 있는 말이야! 라고 무릎을 탁치며 눈을 반짝이는 사람들이 늘 존재해왔다. 이제 사람들은 헬스클럽으로 몰려들어 모씨의 강의를 듣는다.

팔굽혀펴기 450개를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해내는 A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이 팔굽혀펴기를 시작한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이 나지도 않을 뿐더러 A가 팔굽혀펴기를 시작한 이유를 그 누구도 묻지 않기 때문이다. A는 생각한다. 도대체 동기가 어떻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제 나는 팔굽혀펴기를 450개나 할 수 있는데! 이제 A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300개씩 총 900개에 도전한다.

그래서 A는 죽게 된다.

왜 갑자기 A가 죽는가?
왜 갑자기 A가 죽으면 안 되는가?

죽음에는 이유가 없다. 이유는 사는 데 필요할 뿐이다. 사는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죽음에서 이유를 찾으려 한다. 이유 없는 죽음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왜 태어났는 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사람의 삶은, 죽고 나면 태어난 이유가 된다. 아무 이유 없이 죽는다는 것은 아무 이유 없이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A가 모르는 이상, 아무도 A가 왜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는 지 알 수 없다.
2007/07/19 05:49 2007/07/19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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