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문집에는 점술로 유명한 이광의(李光義)라는 맹인 점쟁이가 소개되어 있다. 이광의는 본래 사족 출신으로 충의위(忠義衛)의 6품 관직에 있던 인물인데, 어느 날 눈병이 나서 시력을 잃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관직을 버리고 그때부터 음양학을 공부하였다.

그런데 점치는 기술이 매우 신이(神異)하여 점을 쳤다 하면 모두 들어맞았다고 한다. 임진왜란 중에는 강원도 이천에서 병화(兵火)를 피하였는데, 번번이 왜적이 쳐들어올지 여부를 미리 점쳐 사람들을 인솔하였다. 그 때문에 목숨을 구한 자가 매우 많았으며 사람들은 이광의를 신(神)이라고 불렀다. 그는 평안도 중화(中和)에 있던 자신의 집 이름을 '탐원와'(探元窩)라고 했는데, 이는 '근원을 탐색하여 군생(群生)을 교화한다'(探元化群生)는 말에서 다온 것이었다. 점치는 음양학을 근원으로 생각하고 그를 통해 사람들을 구원한다는 뜻이 담겨 잇다.

허균은 원래 점술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어서 일찍이 이광의를 여러 번 만낫지만 한번도 자신의 점괘를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다 언젠가 중화에 여행을 갔다가 이광의와 함께 잠을 자게 되었는데 이때 자신의 운명이 어떤지 물어보았다. 이광의는 '당신의 목숨은 마땅히 연장될 것이고 지위도 마땅히 높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내년 여름에는 황해도 좌막(佐幕)이 될 것이니, 나는 마당히 황강(黃岡)으로 그대를 찾아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 해 허균은 정말 황해도 지방의 좌막이 되었으며, 황강에 도착한 지 며칠 후 이광의가 찾아와 "내 말이 맞습니까?"라고 물었다. 허균은 하도 신기하여 "아, 세상 사람들이 점술을 믿고 점치기를 즐기는 것은 모두 이렇게 해서 걸려드는 것이구려" 하고 말했다. 그러나 이광의는 아무 해를 길하고 아무 해는 흉하며, 아무아무 해는 감사가 되고 경이(卿貳:좌찬성과 우찬성)가 된다고 술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허균은 "내 앞길은 내가 익히 알고 있소. 나는 하늘에 맡기고 명에 맡기는 사람이오. 하늘과 운명이 내게 부여한 것은 비록 그대가 예언하지 않더라도 나는 이를 향유할 수 있소"라고 하였다.

중요한 것은 예언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는 의미 있는 말이다. 현실 개혁과 체제 변혁을 꿈꾸다 역적으로 몰려 최후를 맞은 허균에게 예언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pp.392-393
신병주­­ㆍ노대환, 『고전소설 속 역사여행』, 돌베게, 개정증보판, 2005

2007/03/23 01:54 2007/03/23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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