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듣는 숭산 선사 법문 2

“세계는 한송이 꽃이예요”

우리의 좋은 것은 반드시 지키고 남의 좋은 것은 대범하게 수용
과학과 지식만으로 인류 책임질 수 없어 인간성 회복 시급해요



숭산 스님.

1970년대 후반, ‘지구촌’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세상에 얼굴을 드러낼 때만 해도, 그것은 그리 실감나는 말이 아니었다. 아주 먼 훗날의 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의 들머리에 선 지금, ‘지구촌’이라는 말은 ‘세계화’라는 말로 옷을 바꿔 입고 우리 눈앞에 현실로 다가왔다.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정보 통신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낸 결과이다. 인터넷의 등장이 1980년대의 중반이고 보면, 불과 15년의 세월이 인류의 지난 몇천년을 능가하는 문명사적 전환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제 ‘세계화’는 지향해야 할 목표가 아니다. 이미 세계화된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할 바가 있다면, 19세기의 가치와 20세기의 시스템과 21세기의 비전이 혼재한 상황에서 ‘세계화’된 ‘세계’가 요구하는 ‘우리 다움’을 추스리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을 알아 보기 위해 북한산 자락의 화계사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미 30여년 전부터 한국 선불교의 세계화를 실현하고 있는 숭산 큰스님을 만나 뵈었다.


― 큰스님께서는 ‘세계화’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인 1966년부터 일본 홍법원의 개설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에 한국 선불교를 전파하시고 있습니다. 특별한 동기나 원력이 있었는지요. ▲ 일찍이 만공 스님께서 수덕사에 계실 때 ‘세계일화(世界一花)’라는 말을 남기셨어요. ‘세계는 한 꽃’이라는 뜻인데, 세계의 실상을 이보다 더 멋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사실 세계는 한 송이 꽃이예요. 그리고 나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세계 포교에 나선 겁니다. 만공 스님께서 말로 하신 것을 나는 실천에 옮긴 것이지요.



숭산 스님.

― 지금까지 몇 나라에나 선방을 여셨습니까?
▲ 32개국에 130여개의 선방을 열었어요. 한창 때는 한해에 지구의 두 바퀴를 돌기도 했지요.

― 언어와 문화, 관습 등이 제각기 다른 그 많은 나라에 한국의 선불교를 심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특별한 방편 같은 게 있었을 법한데요. ▲ 상대를 인정해 주는 겁니다. 내 식만을 고집해서는 곤란해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그 나라의 법식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각 개인의 근기에 맞추어 설법을 하는 것처럼 각 나라의 풍속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는 특별한 통제와 간섭이 필요없어요. 목탁을 치고 설법 준비를 하기도 전에 미리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기다립니다. 반면에 프랑스 사람들의 경우는 반대예요. 시간이 다 되어야 어슬렁어슬렁 모이는 사람들이 프랑스인이예요. 그게 바로 그 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이라는 겁니다. 무엇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예요. 이렇듯 나라마다는 각기 다른 특성이 있습니다. 그것을 존중해야만 포교가 가능해요. 그래서 저는 어떤 나라에 가든지 그 나라의 영웅에 대해 험담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 평범 가운데 숨겨진 비범이라 할 방편인 것 같습니다. 이걸 문화인류학자들은 문화적 상대주의라고 말하는데, 세계화된 사회의 국제적 매너 또한 그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가 ‘세계화’하는 모습을 보면 걱정스런 부분이 아주 많습니다. 세계화가 곧 서구화인 양 무분별하게 서구를 뛰좇는 경향이 대표적인 경우인데요, 상당히 걱정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그 점에 대해서는 좋은 예가 있어요. 한 15년 전쯤의 일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 신도와 미국 신도들이 함께 모여 파티를 했어요. 그런데 아주 재미난 현상이 벌어졌어요. 미국 사람들은 다 젓가락을 사용해서 음식을 먹는데, 한국 사람들은 오히려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음식을 먹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지요. “이건 거꾸로 된 게 아니냐.” 하고 말이죠. 그러니까 미국 법사 한 사람이 뼈 있는 농담을 하더군요. “동양 문화 가운데는 본받을 게 참으로 많은데 동양 사람들은 그것의 중요함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바로 그거예요. 우리 것 중에서 좋은 것은 반드시 지키고 남의 것 중에서도 좋은 것은 대범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동양의 정신과 소중한 전통을 버리고 서구를 따르는 것은 인류 모두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 말씀을 듣고 보니 미국인이 한국의 선불교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도 교훈 삼을 일이 있을 것 같은데요? ▲ 미국인들이 젓가락을 사용하는 걸 보세요. 한국 음식을 먹는 데는 젓가락이 훨씬 더 편리하다는 걸 알아차린 겁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선의 정신’이야말로 자신들이 애타게 찾던 삶의 빛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지요.


― 다시 화제를 세계화의 문제로 돌려 보겠습니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화의 실상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불교에서 흔히 말하는 사물의 연기(緣起)적 관계가 국가간의 관계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화의 이념적 바탕이 ‘탈국가주의’인 것도 그렇고, 실제로 세계화의 진전 양상이 ‘국제적 상호의존성’의 증대라는 측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의 세계화는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자 바람직한 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국가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기도 하고 애당초 국경의 개념이 없는 공해는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인종과 종교 문제로 인한 분쟁이 끊이질 않고 범죄 또한 증가일로에 있습니다. 가히 인류 파멸의 징후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 그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인구의 급속한 팽창에 있어요. 1945년, 그러니까 우리 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되던 해의 세계 인구가 약 20억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60억을 넘었어요. 몇천년 동안 증가한 인구가 20억인데 불과 30년 사이에 40억 가까운 인구가 늘어난 겁니다. 그러다 보니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이 먹거리예요. 더 중요한 것은 먹을 것의 부족이 아니라 지나침에 있어요. 못살던 시절에는 배고픈 것만이 문제였어요. 고기 한점이라도 먹으려면 명절이나 가능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엄밀한 의미에서 살생이 생활화 된 거예요. 불교 신자의 입장에 그 많은 생명들의 윤회와 환생을 생각해 보세요. 인면수심(人面獸心)이 될 수밖에 없어요. 둘째, 구 소련의 붕괴와 함께 이념이 퇴조하면서 갑자기 방향을 잃어버렸어요. 그러다 보니 이제 붙잡을 것이라곤 경제밖에 없어요. 경제라는 게 뭡니까? 그 거, 개가 똥덩어리 좇아가는 것과 똑같아요. 물론 인간이 살아가려면 경제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얘기 하는 경제 문제는 그것과 차원이 달라요. 오로지 먹을 것에만 혈안이 된 동물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발버둥치는 형국이예요. 셋째, 인간의 기계화예요. 요즘은 컴퓨터가 그것을 더 가속화시키고 있어요. 앞으로 인공 지능을 가진 컴퓨터가 등장한다고 하는데, 기계 문명과 인간의 불화는 지금과는 또다른 모습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 이렇게 원인을 진단하셨으면 처방도 있을 법한데요.
▲ 인간성 회복이 시급해요. 먼저 교육 현장에서부터 인성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과학과 지식으로 머리통만 비대해진 인간으로는 인류의 건강한 미래를 생각할 수 없어요. 기계화된 사고를 하는 사람에게 인간성이라는 걸 기대할 수 있겠어요. 머리와 몸의 조화, 물질과 정신의 균형이 중요한 겁니다. 인간성이 회복되어야만 ‘올바른 관계, 올바른 위치, 올바른 수용’이 될 수 있고 세계 평화도 이루어지는 겁니다.

― ‘올바른 관계, 올바른 위치, 올바른 수용’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일러 주시지요. ▲ 올바른 관계란, 말 그대로 바람직한 관계를 말하는 겁니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국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바르게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 결코 인간은 자연을 함부로 파헤칠 수 없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한 몸인 관계를 투철히 알아야만 환경문제도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올바른 위치란, 각자의 역할에 대한 자각입니다. 가정을 예로 들어 봅시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지신의 위치가 있어요. 그 위치를 제대로 인식해야만 바람직한 행동이 나와요. 그것을 모르니까 자기 식의 고집을 하게 되는 겁니다. 흔히 악법이라고 말하는 세간법을 보세요. 그건 사회적 고집입니다. 그런 고집이 순리를 거스를 때, 불화가 생기고 혼란이 오는 것이지요. 그럼 올바른 수용이란 뭐냐, 제대로 받아들여서 제대로 쓰는 겁니다. 머리 속에 쓸데없는 지식이 너무 많은 것이 현대인의 병통이예요. 본연의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르게 쓰라는 겁니다.

― 너무 귀하신 말씀이어서 거듭 여쭙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겠습니까? ▲ 갑자기 한꺼번에 하려고 하지 마세요. 하나씩 하나씩 자신의 처지에 맞추어서 고쳐 나가야 합니다. 중생 교화라는 것도 그래요.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한꺼번에 교화시킵니까. 그러면 또 반발이 생겨요.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입니다. 남에게 잘하라고 할 것이 없어요. 스스로 잘하면 옆에 있던 사람도 따라하게 돼 있어요. 나 자신을 정화시키는 일이 곧 세상을 정화시키는 일입니다.

― 이렇게 말씀을 듣고 보니까 과학과 합리로 길들여진 미국인들이 스님의 제자가 되어 불교에 귀의를 하는 까닭을 알 것도 같습니다. 잠시 책 얘기 좀 하겠습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선불교의 고전이 된 <부처님께 재를 털면(Dropping ashes on the buddha)>이라는 책을 보면 참으로 독특한 스님만의 선풍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에 알려진 한국의 선불교를 ‘숭산불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식으로 하면 숭산 가풍이 되겠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인지 일러 주시면, 많은 부분에서 서구화된 오늘의 한국 사람에게도 ‘반면 교사’가 될 것 같습니다. ▲ 남녀노소나 승속을 따지지 않습니다. 오로지 수행만을 강조할 뿐입니다. 합리와 이성으로 길들여진 그들은 지식의 차원에서 보면 최고의 엘리트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는 물음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 때 나는 그들 머리 속에 가득 채워진 지식들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들임을 일깨워줍니다. 그러면 그들은 충격을 받는 한편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깨닫습니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그들에게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인 그 마음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대화의 바탕을 우리는 미국식으로 ‘공안 인터뷰’라고 합니다. 이 공안 인터뷰의 특징은 스승과 제자가 마주한 그 순간의 상황에 최선을 다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들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곧 진리임을 스스로 체득해 나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 긴 시간 동안 참으로 귀한 말씀을 현대불교 독자들과 함께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의 말씀은 한국 불교의 세계화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세계화 또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아울러 성찰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부 말씀이 있으시면 한 마디 더 일러 주시지요. ▲ 21세기 인류의 대안은 선입니다. 참선을 통하지 않고는 인간성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수행들 하세요.

삼배 올리고 물러 나오는데, 하얀 고무신을 신은 눈푸른 외국인 행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나이키’ 신발을 신고 조계사 앞을 지나는 스님들이 떠오른 건 무슨 심사에서였을까? ‘세계화’의 참뜻을 다시금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대담=윤제학 부장
(jhyun@buddhapia.com)

2004-11-30 오후 5:48:00
2004/11/30 16:56 2004/11/3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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