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경마 및 부담중량을 통한 부정경마



기수는 말을 조종하는 역할을 하며, 모든 기술과 능력을 다해서 우승을 해야 한다. 경마의 우승열패 원칙을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이 기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기수는 불특정다수인을 상대하는 공인이다. 기수의 행동 하나 하나에 많은 사람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다면 공인으로서 자격을 갖췄다고 할 수 있으나, 불특정다수인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생활방식과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한다면 공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얼마전까지 쟁쟁한 기수로 활약하다가 어느날 검찰의 조사를 받는 사람들이 그 예이다.



마음을 졸여야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검찰의 조사를 받기 전까지 얼마나 가슴을 졸일까. 아마 하루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도를 낸 기업체의 사장이 검찰에 구속기소되면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항상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어쩔 줄 모르다가 막상 쇠고랑을 차고 나면 마음이 홀가분해진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체념한 때문일까.우리 기수들 중에서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고 계속 끌려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앞에서 얘기한 부도를 낸 회사 사장과 똑같은 신세일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착잡할는지도 모른다. 부도를 낸 사람은 검찰에 붙들리지 않기 위해서 혼자 도망만 다니면 되지만, 기수에게는 그러한 여유가 없다. 매주 닥쳐오는 경마일마다 기수는 누군가의 집요한 갖가지 주문을 받아야 한다. 들어 주지 않을 수 없다. 이미 큰 낚싯바늘이 두툼한 입술에 꿰어 있기에 그들이 당기는 대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낚싯바늘을 빼 달라고 사정도 해본다. 그러면 그들은 “이번 한 번만 더”라며 절대 빼주지 않는다.



이러한 일은 기수뿐 아니라 조교사나 마필관리원에게도 벌어진다. 조교사나 마필관리원은 독자적으로 자기가 아는 범위에서 말의 컨디션만 전달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기수에게 주문을 하게 될 것이다. 결국 기수, 조교사, 마필관리원은 모두가 한통속이 되고 만다. 서로가 서로를 낚싯바늘에 꿰어 놓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각각의 고객들에게 코를 꿰인 상태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가 된 셈이다.



정보경마의 두 부류



기수나 조교사 그리고 마필관리원이 고객과 접촉해서 정보경마를 하는 것에는 두 부류가 있다. 우선 적극적인 자세로 정보경마를 하는 경우다. 이때 이미 착외로 들어오도록 약속이 되었다면 기수는 자기의 말이 아무리 인기마라고 해도 고의로 말의 고삐를 잡아당기든지 혹은 다른 수단을 강구하여 착순내에 들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반대로 별로 능력이 좋지 않은 말에 기승했지만 착순에 들어야 한다면 다른말을 방해해서라도 우승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즉 적극적인 자세로 고객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다. 이 경우는 정보경마라 하기보다는 승부조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경우다. ‘적당한 선’을 유지한 채 대충 말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고, 맞든지 틀리든지 별로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결국에는 지쳐서 더 이상 요구하지 않도록 하자는 속셈이다. 그러나 경마고객은 기수가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그 꾐에 걸려들면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에 몸을 던지게 된다.



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다가 고객과의 관계를 청산해야 할 필요를 느낄 때 이와 같은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하지만 고객은 예전과 같이 적극적으로 해주기를 바랄 것이고, 이에 기수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면 고객은 애가 타다가 할 수 없이 관계당국에 과거 사실을 고발하게 된다.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잘 되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맞지 않기 때문에 고객은 본전 생각이 나고, 그 보상을 기수에게 요구하게 된다. 이미 오랫동안의 관계에서 상당한 액수의 돈을 잃은 것이다.베팅을 해서 잃은 돈도 돈이지만 기수에게 베푼 향응비도 상당하다. 기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액수이기도 하다. 과거 어느 기수는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던 고객과의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적극적인 방법에서 소극적인 방법으로 대처했지만 고객이 집요하게 변상을 요구하자 제3자를 개입시켜 협박하다가 모두가 쇠고랑을 찬 경우도 있다.



기수·마필 관계자와 고객의 연결에는 정보꾼들이 개입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경마계 주변을 돌면서 부정적인 방법으로 부정적인 돈을 먹으려는 사람들이며, 고객과 기수를 연결해 주거나 자신이 직접 기수와 연결된 사람들이다. 기수와 연결고리도 없으면서 기수와 잘 아는 사이인 것처럼 위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주로 초보고객에게 접근, 자기만이 아는 것인 양 정보를 알려주고는 맞으면 대가를 요구한다. 틀리면 슬그머니 사라진다. 역사적으로 보면 영국에서는 19세기께, 정확하게 말해서 1843년에 직업적 도박사가 등장하였고, 이들이 경마계의 물을 흐려 놓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사기꾼’ 혹은 ‘투기꾼’으로 불렸다. 이와 같은 사기꾼 혹은 투기꾼은 우리 경마장에도 상당히 많이 있다.



우승하기 위한 부정한 방법



우승하기 위해 남을 방해하거나 규정된 부담중량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외국에서도 부담중량을 속인 채 경주하고는 후검량 직전에 다시 원상으로 돌려놓은 뒤 후검량을 받다가 다른 기수가 항의를 해서 들통이 난 사례가 있다. 적극적으로 고객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기수, 즉 레이스를 조작하려는 기수라면 의도적으로 부담중량을 가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기마를 착순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부담중량을 올리면 약물의 영향보다도 더 효과적일 수 있다. ‘7착 이후의 말에게는 후검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악용할 수도 있다. 설혹 재결위원으로부터 후검량 말로 지정되더라도 “말이 땀을 많이 흘려 잭킹이 젖었고, 또 전검량 후 목이 말라 물을 마셨다”라고 하면서 약 1㎏은 속일 수 있을 것이다.



기수의 부담중량이 부족하다는 것이 발견되어 이를 실격처리한 일이 우리나라의 초기경마에 있었다. 1922년 9월23일 제8경주는 당초 5두가 출주예정이었으나 2번 ‘인천호’가 부상으로 출주취소되어 4두만이 출주하였는데, ‘운룡호’라는 말이 예상을 뒤엎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후검량에서 부담중량이 부족한 것이 발견되어 재결위원에 의해 실격처리되고 2착한 ‘조일호’를 우승마로 확정하였다. 이때 ‘운룡호’ 마권을 구입한 고객들이 배당금 지불을 요구하면서 거센 항의를 하였고, 폐장 후까지 시비가 일었으나 주최측의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당시 재결위원은 2명이었는데, 일본 육군의 수의관과 경마구락부 직원이었다.



의도적이 아닌 부담중량 부족사태가 1970년에 발생하였다. 그해 7월2일 뚝섬경마장의 제10경주 때였다. 그해 5월에는 말인플루엔자가 발생하여 2주동안 경마가 중단돼 마사회로서는 어려울 때였는데 예기치 않은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결승선 약 2백m 앞에서 4번마의 잭킹 2장이 안장회전으로 떨어져나갔고, 그 말은 1착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후검량에서 부담중량이 부족한 것은 당연했다. 착순 4-1-6-3이 4번의 실격으로 1-6-3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고객들이 소동을 일으켰다. 고객들은 주로를 점거하고 각종 경마장의 기물을 파손하기도 하였다. 결국에는 경찰이 출동하여 고객들을 해산시켰으며 마사회는 두 가지의 마권, 즉 4-1과 1-6 모두를 적중마권으로 인정하였다.



부담중량과 관련, 영국 경마역사에 기록된 사실을 하나 소개한다. 앤 여왕 시절, 뉴마켓의 왕실마사 관리자이면서 당시 경마계의 지도자였던 트레곤웰 프램프턴(Tregonwell Frampton)과 관련된 이야기다. 당시 영국에서 최고의 경마실력자로 불리던 프램프턴이 큰 낭패를 본 일이다. 당시는북부와 남부의 경마관리체계가 서로 달랐다. 그때 요크셔에 사는 윌리엄 스트릭랜드라는 사람이 자신의 소유마 ‘메르린(Merlin)’을 이끌고 뉴마켓의 프램프턴에게 도전했다. 많은 사람이 큰 관심을 가졌으며, 전례가 없을 정도로 거액의 내기돈이 걸렸다. 북부와 남부의 대결양상이었다.프램프턴은 이름을 알 수 없는 말로 이 도전에 응했는데, 사전조사를 할 목적으로 예비경주를 벌였다. 이때 프램프턴은 약 7파운드를 더 실어 예비경주에서 졌다. 그래서 프램프턴은 의기양양하여 자신있게 내기를 걸었다. 하지만 본경주에서도 프램프턴의 말이 지고 말았다. 사실 스트릭랜드측의 조교사는 예비경주 때 프램프턴의 말보다도 더 많은 부담중량을 실었던 것이다. 이 경주의 결과로 뉴마켓 사람들은 많은 재산을 잃게 되었고, 프램프턴의 명예도 큰 손상을 입었다.



이와같이 부담중량은 경마에서 상당히 중요한 사항이다. 등짐을 무겁게 진 말은 지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지하에 후검량실이 마련돼 있어 일반사람은 검량 자체도 잘 모른다. 그러나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후검량을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후검량실이 관람대 전면 중앙에 위치, 경주 후 말들이 관람대 전면주로에 모이게 된다. 그리고 규정된 착순에 든 말의 기수는 안장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가슴에 안고 검량위원 앞에 놓인 저울에 올라선다. 이처럼 후검량이 고객에게 공개되기는 하지만 고객이 그 저울의 눈금을 읽기는 어렵다. 저울은 전자식이 아닌, 바늘침이 돌아가는 구식이며 그 직경은 겨우 30㎝ 정도다.영국 경마 초기에는 부담중량이 말의 나이에 의해 정해지지 않고, 체고에 의해 정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마주는 가급적 부담중량을 줄이고자 체측기(체고를 재는 계기)를 어깨에 갖다댈 때 말이 움츠리게 하는 짓을 시켰다. 매일 손이나 기구로서 말의 어깨를 치면 말은 어깨를 움츠리거나 앞다리를 벌려 그만큼 키를 줄였던 것이다. 당시는 검량위원의 경우 부담중량으로 부정을 저지르고, 발주위원은 늦발주나 재발주로 부정을 저지르던 때였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라우스 제독이다. 그는 연령에 의한 부담중량의 기초를 확립한 인물이었고, 그의 이론은 지금도 우리 경마장에서 핸디캡위원들이 이용하고 있다.
2006/01/03 03:35 2006/01/03 03:35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Trackback RSS : http://www.fallight.com/rss/trackback/553

Trackback ATOM : http://www.fallight.com/atom/trackback/553


« Previous : 1 : ... 37 : 38 : 39 : 40 : 41 : 42 : 43 : 44 : 45 : ... 57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