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마생산에 대한 특별기고


명마생산 운명인가, 인간의 비전과 의지인가

생명 설계도 DNA
생명의 모든 신비를 담고 있는 유전정보를 게놈(genome)이라고 한다. 게놈은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s)의 합성어이다.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인간 게놈프로젝트는 인간 DNA의 염기서열을 완전히 해독하여 유전질병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는 신기술을 창출하는 진행을 하고 있다. DNA의 해독은 인간의 달착륙에 비견되는 제4의 혁명이라고 한다.

인터넷 정보혁명의 기수 손정의는 1차 농업혁명은 인간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혁명이고, 2차 산업혁명은 인간 근육의 해방 혁명이며, 3차 정보화 혁명은 인간지능의 혁명이라고 말한다. 4차 혁명인 생물혁명시대에는 생명의 설계도(DNA)를 완전 해독함으로써 인간의 노력과 의지로 생명의 선천적인 결함을 치료하고 더 나아가 생명 진화의 열쇠를 발견하여 자연계 환경의 생존경쟁, 돌연변이, 적자생존, 용불용설 등에서 상상도 못할 진화가 빠르게 나아갈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은 미래에는 자신의 의도대로 지능과 능력, 성격을 겸비한 ‘맞춤 아기’도 탄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유전자의 기능과 관련, 독일의 한 교수는 “수십만년 동안 빙하기·수렵·채집 생활을 거쳐 농경생활을 해오며 축적된 인간의 유전자 정보가 불과 2∼3세대 만에 사무실 위주의 현대인 생활에 적응하게 됐다. 그런 까닭에 유전자가 환경에 맞지 않아 비만, 심장병, 당뇨병 등 각종 성인병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그러면 유전자란 무엇인가?
모든 동식물은 세포라는 조그마한 수십 만개의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세포는 세포막과 막 내에 하나의 핵을 가지고 있다. 핵 내부에 염색체가 있는데, 염색체상에 이중 나선모양의 유전전달물질인 DNA가 존재한다. 같은 종(種)의 생명은 일정한 수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46개를 가지고 있고, 말은 64개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교배시 정자와 난자는 각각 32개의 염색체와 결합하여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유전자는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부모로부터 전달되는 유전 설계도 물질이다.

경주마 생산과 멘델법칙
경마에 흥미를 갖고 서러브레드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현재 주요 혈류의 산맥을 차지하는 네아르코, 나스룰라를 생산한 이탈리아 마주이자 생산자인 페더리코 테시오를 최고의 생산자로 뽑고 있다. 그의 성공은 말을 잘 다루는 기술보다 서러브레드의 유전 잠재력을 파헤치는 깊은 통찰력과 연구로 가능했다. 그는 1906년 봄에 기차여행을 하던 중 옆좌석의 외국인이 읽던 ‘멘델리즘’이란, 독일어를 영어로 번역한 멘델잡종에 관한 책을 빌려 보고 서러브레드종의 혈통을 이해하게 되었다. 테시오는 2두의 서러브레드가 같은 양친에게서 태어난 형제간임에도, 그리고 부모가 다같이 체격이 좋고 뚜렷한 결점이 없는데도, 1두는 위대한 경주마가 되고 1두는 평범한 경주마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3가지 원칙을 가지고 마필 생산에 임했다.

첫째는 최고의 자질의 종마를 선택하는 것이다.
둘째는 닉스이론, 즉 짝이 잘 맞는 계통끼리 교배해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셋째는 근친교배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최고의 유전자 자질을 가진 씨수말은 최고의 자마를 생산한 확률이 높다. 부모의 유전 기여도는 각각 50%씩이다. 서러브레드의 경우 부모로부터 자손에게 전달되는 유전율은 25∼30%이다. 경마의 세계에서는 코차이로 승부가 결판나는데, 25∼30%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 그러나 최고의 씨수말이 항상 최고의 자마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닉스이론은 음식에도 궁합이 있듯이 유전자에도 궁합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서러브레드 계통은 주요 10개의 부계 혈통을 구성하고 있다. 노던댄서, 네이티브댄서, 나스룰라, 턴투, 파라스, 네아르코, 하이페리온, 세이트사이몬, 테디, 기타 혈통 등이 있고 계통들 간의 상호작용은 A계통-B계통은 우수한 경주마가 태어나지만, A계통-D계통은 우수하지 못한 마필이 통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경마장에 있는 94년 이후 입사한 외국산마 2,232두를 계열별로 분석한 결과 부계 노던댄서-모계 맨나 배합시 출주수당 등 상금을 가장 많이 수득했고, 그 다음이 프린스-프린스의 배합이고, 노던댄서와 니아크닉이 그 다음이다. 혈통을 연구하면 그만큼 명마생산 성공 확률에 근접할 수 있다.

서러브레드는 모두 서러브레드하고 근친교배하여 생산했다. 근친교배로도 명마를 생산할 수 있다. 피츠랙의 18.75% 법칙이론이다. 이 이론은 공통 선조가 부계 4대 6.25%와 모계 3대 12.5% 때 명마가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근친번식은 우수한 형질을 자손에게 전달하는 장점이 있지만 좋지 않은 형질이 함께 후손에게 전달되는 단점도 있다. 경마장에 입사한 외국산마 2,232두를 근친과 수득상금 관계로 분석한 결과 근교계수가 0.30∼0.78%일 때 자마당 수득상금이 가장 많았고, 근교계수가 6.25% 이상일 때 적은 상금을 수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러브레드는 항시 신선한 혈통을 원한다.

경주마의 타고난 재능
두 마리의 서러브레드를 같은 조건의 애정, 합리적 사양관리, 과학적인 조교훈련, 초지 방목위주의 관리 속에 키운다고 해도 경쟁에서는 차이가 난다. 차이가 나는 것은 유전자의 질 차이에서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뷜리에르가 시작하여 미국의 로먼에 의해 완성된 ‘도시지 시스템’이라는 이론이 있다. 이 이론은 후대에 큰 영향을 준 씨수말의 목록을 작성하여 거리적성에 따라 브릴리언트(Brilliant·단거리), 인터미디어트(Intermediate), 클래식(Classic), 솔리드(Solid), 프로페셔널(Professional·장거리)로 분류하여 경주마가 어느 능력에 치우쳐 있는가를 수학적으로 측정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속도와 지구력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면 도시지 지수가 1이 되고, 수치가 클수록 속도가 뛰어나고 작을수록 지구력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속도와 지구력의 균형 정도를 계산하는 분포중심점은 -2∼+2의 범위를 가지며, 수치가 0에 가까울수록 클래식에 가깝고-수치는 단거리+수치는 장거리 말로 나타났다.

라스무센은 1929년 이래 도시지 지수가 4.00 이상, 분포중심점 1.25 이상의 값을 가진 경주마가 켄터키더비에서 우승한 예가 없다고 밝힌 뒤 이중자격마 도시지 시스템으로 발전시켰다. 도시지 시스템은 현재 마필교배시 국내산마 생산현장에서 활용하고 있다.

도시지 이론의 문제점은 중요 씨수말 선정시 미국산마를 집중적으로 반영하였고, 씨암말 수치를 배제하였으며, 경주마 능력발휘 주요수단인 자연환경·육성·조교·기수능력을 배제한 부분이다.

2000년 6월까지 국내산마의 씨수말 자마의 출주당 수득상금을 분석한 결과 단거리(1,000∼1,400m)에서 두각을 나타낸 씨수말은 로드오브워, 로스트마운틴, 디디미순으로 나타났다. 중거리(1,700∼1,900m)에서는 디디미, 피어슬리, 로스트마운틴 순으로 나타났고 장거리(2,000∼2,300m)에서는 피어슬리, 글로리화이, 랜드러쉬 순으로 수득상금을 많이 획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것으로 보면 서러브레드 적성거리 능력은 부모로부터 유전된다고 할 수 있다.

경마와 혈통
경마가 재미있는 것은 단순하게 행운을 운에 맡기지 않고 말·기수·환경 등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추리하고 판단하여 즐기는 지적게임이기 때문이다.

21세기에는 자본, 노동, 토지 등 외형보다는 무형의 지식, 정보, 자신감,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따라서 경마에 있어서도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필의 잠재력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0년 전에 손자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러브레드의 적성거리는 유전될 확률이 많다. 그렇다면 마필혈통의 선조로부터 유전되는 잠재력 적성거리를 알면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우선 경주에 출주한 마필의 적성거리를 알면 우승마 예측에 한층 더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산자는 경주거리를 분석하여 3∼5년 후 경주 우승을 위해 씨수말과 씨암말 교배배합시 적성거리와 계통교배, 근친 등을 염두에 둔 교배배합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또 마주는 마필 거래시 현 경주체계와 맞는 혈통을 갖춘 마필을 구매할 수 있다. 조교사는 유전자의 능력한계를 깊이 인식하여 단거리 마필은 단거리에 맞게 조교계획을 수립하여 좀더 합리적인 조교훈련에 임할 수 있고, 경주 출주투표시 마필혈통 능력에 맞게 단거리면 단거리에 맞는 말을 출주하고, 장거리면 장거리에 맞는 말을 출주하여 우승의 확률을 더욱더 높일 수 있다.

우수한 성적을 거둔 말은 퇴역하여 제2의 혈통을 만들어 경마의 순환이 이루어진다. 경마란 혈통경주이기 때문에 경마고객, 생산자, 마주, 조교사는 혈통의 유전학적 능력한계를 깊이 인식하여 잠재되어 있는 재능을 최대한 발휘·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민족은 유목민족이다. 말을 잘 다루고 상마법(相馬法)에 대한 선견지명이 뛰어났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설화가 나오는 삼국유사에 보면 “주몽은 말을 키울 때 미리 준마를 알아보고 그 말은 잘 먹이지 않아 여위게 키우고, 좋지 않은 말은 잘 먹여 살을 찌워 남이 볼 때에 좋은 말로 보이도록 키웠다. 왕은 살찐 말이 좋은 말인 줄 알고 왕이 갖고, 여윈 말은 주몽에게 주었다”고 한다.

설화에서 알 수 있듯이 사료공급으로 평범한 마필을 명마로 만들 수는 없다.

말은 타고난 선천적 유전자질이 좋아야 한다. 그렇지만 씨앗이 우수하다고 좋은 꽃과 열매가 열리는 것이 아니다. 비옥한 토양, 온도, 습도뿐만 아니라 인간의 피와 땀, 눈물이 있어야 가능하다. 명마를 만들려면 혈통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말에 적합한 자연환경, 합리적 사료, 과학적 조교훈련, 초지 방목위주의 마필 관리와 비전을 갖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 미지에 대한 무한탐구 정신, 가능성에 대한 도전, 분투하는 노력이 있어야 진정한 명마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글 추만호 마사등록팀 과장
2006/01/03 23:41 2006/01/03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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