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Dancer는 숏다리였다




늦둥이 · 꼬마 그러나 노던댄서(Northern Dancer)
1961년 5월 27일 캐나다의 원드필드 목장에서 태어난 노던댄서(Northern Dancer)는 ‘The Blood-Horse’지에 의해 선정된 20세기 최우수 경주마 100두 중 생일이 가장 늦은 ‘늦둥이’이면서 키가 작아 1세마 경매시장에서 아무에게도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늦둥이·꼬마(runt)였다.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그를 찾은 샤다이목장의 요시다씨도 ‘소처럼 생긴 말’로 표현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80년대에 이르러서는 마체심사 기준이 달라질 뻔했다.

‘좋은 경주마는 어떻게 생겨야 하는가? Northern Dancer와 얼마나 닮은 데가 많은가? 그의 유전 형질이 마체에도 느껴지는 것 같은가?’ 어디 경주마로서 자질뿐인가. 일본의 씨수말 전문지 ‘Futurity’는 1999년도 최우수 경주마 146두 중(북미, 유럽, 호주, 일본, 두바이의 챔피언 및 G1경주 승리마) 45%인 65두가 Northern Dancer의 부계라인이며, 78%인 114두의 혈통표에 그의 이름이 있다고 발표했다. 20세기 마지막 30년 동안 그의 후손들은 9번이나 최고 씨수말의 영예를 누렸으며 지금도 손자 Storm Cat에 의해 그 기록은 계속되고 있다.

야심과 수완, 그리고 행운이 따른 Taylor
생산자 겸 마주 Edward Plunkett Taylor는 서러브레드 생산에 뛰어들면서 미국으로부터 무시당하는 변방 캐나다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탔다. 그는 기업운영에서 벌어들인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실전 경영기법을 도입했다. 넓은 국토에 흩어진 소규모 목장들이 서로 연맹체(circuit)를 형성하도록 후원했으며, 주위의 목장들은 직접 통합하고 국립교배소도 인수하여 윈드필드 목장을 설립했다. 세계적 규모를 자랑하는 Woodbine경마장도 만들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경주마 생산역사 중 최고의 행운이 그에게 다가왔다. 켄터키 오크스를 준비 중이던 Natalma가 칼슘 과다급여로 추측되는 무릎 고장으로 3세 봄에 경주생활에서 은퇴하게 된다. 그리고 적당한 교배상대는 이미 예약이 완료되어 할 수 없이 같은 목장에 있던 Nearctic에게 시집보내졌다. 그래서 늦둥이가 태어났으며, Taylor는 그를 Northern Dancer라 불렀다.

목장에서 태어난 망아지들이 1세가 되면 Taylor는 캐나다의 이름있는 사업가들을 초청해 목장에서 칵테일 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망아지들을 보여 주면서 “이 놈은 얼마면 팔겠소”하고 이른바 ‘Pre-Priced Yearling Sale’이라는 새로운 경매제도를 시행했다. ‘꼬마’도 이때 당시 가격으로는 상당히 높은 2만5,000달러에 선보였으나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서러브레드 역사상 이런 흥밋거리가 도처에 산재한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Secretariat는 동전던지기로 마주가 정해졌고, Seattle Slew와 Sunday Silence도 Northern Dancer와 비슷한 경우이고, 660만달러를 수득한 John Henry는 1976년 1세마 경매에서 단돈 1,100달러에 팔렸다. 국내 우수경주마도 마사회 6개월령 매입검수에 떨어져 선진국의 교훈(?)을 따르는 일이 더러 있다.

Northern Dancer가 탄생하기까지



Northern Dancer의 탄생 과정은 최소한 2대모 Lady Angela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캐나다에서 경마기반을 착실히 다진 Taylor는 다른 한편으로 우수 번식마 확보에도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영국의 뉴마켓 경매에서 최고 씨암말을 구해 오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1952년 세일에서 최고가인 1만500기니(약 2만5,000달러)로 Nearco의 자식이 수태된 Hyperion의 딸 Lady Angela를 손에 넣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 말을 곧바로 데려오지 않았다. 다시 Nearco와 짝지어 주기 위함이었다. 선경지명이었을까? 먼저 태어난 망아지는 실패였다. 두번째가 수태되어 캐나다로 데려왔다. 이듬해 태어난 망아지가 Nearctic이었다. 이 망아지가 나중에 Northern Dancer뿐 아니라 Clever Trick(76), Wild Again(80), Explodent(69)등 걸출한 씨수말을 배출하면서 야심가 Taylor를 업계의 독보적 존재로 부상시켜 준다.

한편 그는 1958년 사라토가 1세마 세일에서 ‘회색괴물’ Native Dancer의 딸 Natalma를 두번째 고가인 3만5,000달러에 구입한다. Natalma는 분명히 우수한 경주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앞서 말한 것처럼 켄터키 오크스를 앞두고 부상으로 은퇴해 Nearctic이 기다리는 윈드필드 목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듬해 첫 자마로 Northern Dancer를 배출하게 된다. Northern Dancer가 2세부터 승승장구하자 Taylor는 같은 배합을 5차례 되풀이했으나 더 이상의 명마는 하늘이 점지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씨수말과의 사이에서 스테이크스 승리마가 3두 더 나왔다. 우수한 씨수말에서 명마가 태어날 확률이 10%, 씨암말은 25% 수준에 이른다는 통계를 다시 한 번 입증한 셈이다.

짧은 경주마 생활
그는 조기 성숙형이었다. 2세부터 이미 캐나다에는 적수가 없었다. 미국으로 무대를 옮겨 Secretariat의 삼관마 시절 기수로 유명한 Ron Turcotte를 태우는 등 승수를 계속 늘려갔다. 그러나 미국은 시골뜨기를 여전히 무시했다. 이 때문에 큰 경주에 나갈 때면 항상 낮은 부담중량을 부여받았다. 켄터키더비 때는 몇번 기승한 적이 있는 Bill Shoemaker로부터도 무시를 당했다. “괜찮기는 한데 너무 숏다리라서…”(Bill Shoemaker는 1999년 겨울 Pincay에 의해 깨진 생애 8,832회의 우승전적이 있는 전설적 기수다) 그러나 Northern Dancer는 더비에서 Secretariat에 이어 역대 2번째 기록인 2분00초로 Shoemaker를 태운 Hill Rise를 물리친다(애석하게도 올해 더비마 Monarchos의 기록에 0.03초 밀려 역대 3위로 내려앉음). 2주 후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를 거머쥔 Northern Dancer는 그러나 삼관마 마지막 관문인 벨몬트의 2,400m 코스에서 거리 적응의 한계로 3위로 밀려나고 만다.

그는 경주마 시절 초기부터 뒷다리 고장으로 고통을 받아왔다. 처음에는 오른쪽 뒷다리 굽이 갈라져 경주와 치료를 반복했다. 이때 유명한 일화가 있다. 굽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 캐나다로 돌아갈 절박한 순간, 어떤 사람이 굽을 감싸는 압축고무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얼마간 치료하니 새살이 돋기 시작했다. 그것을 그 사람의 이름을 따 ‘Bane Patch’라 부른다고 한다. 다음에는 비절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3세 후반기 망가지고 짧은 뒷다리를 오직 투쟁심 하나로 버텨온 그는 마침내 짧은 2년간의 전적(18전 14승, 수득상금 58만달러)를 남긴 채 은퇴하고 고향으로 개선한다.

폭풍우를 몰고온 그의 망아지들
그는 캐나다에서 교배료 1만달러로 씨수말 생활을 시작하고, Taylor가 메릴랜드의 동부 해변가에 또 다른 윈드필드 목장을 만들면서 부마 Nearctic과 그 곳으로 이주했다. 1967년에 두번째 자마군인 NijinskyⅡ, Vice Regent가 태어나고 연이어 최고의 망아지들이 줄을 이었다. 1970년대에는 240만달러로 신디케이트가 형성되었으며,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20세쯤이 되었을 때는, 유럽에서 4,000만달러(약 510억원)에 팔 수 없겠느냐는 제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제의는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정중히 거절되었다. 영국 조교사 Vincent O’Brien이 캐나다에서 NijinskyⅡ를 구해 영국 삼관마에 올려 놓자 세계의 관심은 Northern Dancer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Storm Bird와 Sadler’s Wells는 영국에서, Lyphard와 Nureyev는 프랑스에서, Northern Taste는 일본에서, Danzig와 Vice Regent는 미국에서, 바야흐로 전세계를 동시에 지배하는 최고의 혈통이 되었다. 이때 서러브레드에 관련된 모든 자금은 미국의 경매시장으로 모여 들었고, 그의 망아지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듯…. Storm Bird도 이때 홀연히 날아왔다.

큰말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씨수말 활동을 시작한 지 몇 년쯤 지나 ‘The Blood-Horse’지에 씨수말 홍보를 하면서 “체고가 15.1핸드(153.4㎝)가 아닌 15.2핸드이니 1㎝를 올려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으며, 초기 상대 씨암말을 고를 때도 키가 커야 한다는 우선 조건을 내세우기도 했다. 이 사실은 당시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키가 큰 경주마를 선호했음을 확인해 준다. 하기야 훨씬 전 유럽에서는 키가 작은 말은 아예 번식마로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까지 만들었으니….

그러나 키가 커야 잘 달린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경주마의 스피드나 스테미나는 체고와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 경주마는 긴 다리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튼튼한 심장과 투쟁심으로 달리기 때문이다. 씨수말의 조건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성공한 씨수말의 체고는 대부분 15.2핸드(154.4㎝)와 16핸드(162.6㎝)사이에 분포한다. 그리고 최소한 그들의 절반 이상은 최고의 경주마 출신이다.

필자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큰 경주마, 큰 번식마를 외치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다. 그러나 Northern Dancer뿐만 아니라 Hyperion도 그러했고, 더 옛날 Lexington도 그러했다. 그들은 모두 꼬마였다. 한편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Phar Lap이란 말은 174㎝가 넘는다. 그는 단 한 차례 미국 원정경기에서 그 곳 경마계의 기를 단숨에 꺾어버린 최고 경주마였다. 그러나 그가 잘 달릴 수 있었던 것은 긴 다리보다 지금도 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유별나게 큰 심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체고가 큰 말을 피하는 논리적 근거는 무엇일까?

닮은 것끼리(Type to Type)
마를린 먼로가 ‘당신의 두뇌와 나의 몸매’ 운운하면서 아인슈타인을 유혹했을 때 거절당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배우자끼리는 닮은 구석이 있어야 한다. 이 이론의 지지도는 점점 높아지는 듯하다. 생산배합이론에서 ‘Type to Type’이란 첫째 키와 외형 등이 비슷한 것끼리, 둘째 경주적응거리가 비슷한 것끼리, 셋째 질(수준)도 비슷한 것끼리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둘째와 셋째의 경우는 1,200m의 단거리에 소질이 있는 씨암말과 2,400m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씨수말을 짝지우지 말 것이며, 싸구려 씨암말에 40만달러를 투자해 Storm Cat을 찾는다면 후일 태어난 망아지를 팔 때 크게 손해를 본다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첫째의 경우는 씨암말의 체고는 수말에 비해 작은 편이며 대부분이 16핸드 이하이니 씨수말도 당연히 비슷한 놈이어야 궁합이 맞다는 것이다.

글 / 김종식 푸른목장 대표
2006/01/04 01:08 2006/01/04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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