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적 인간은 몹쓸 인간


기억생리학의 관점에서 기억력에 대해 생각해 보자. 뇌는 실수를 반복하면서 기억을 형성해 간다. 따라서 시행착오를 하면 할수록 기억은 강화된다. 반면 기억에는 반드시 어딘가 애매한 부분이 남아 있다. 따라서 아무리 그 이치를 정확하게 연구하려고 해도 잘못된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실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며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겁낼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하고 나서 '후회'하지 않고 '반성'하는 일이다. 실수를 거울로 삼아 그것을 고쳐나가는 일은 애매한 기억을 하는 인간 두뇌의 훌륭한 점이다. 또한 학습 순서를 제대로 밟으면 보다 빨리 기억한다. 쥐의 오퍼런트 조건반사에서는 먹이와 손잡이 그리고 벨소리라는 세가지 요인을 단번에 기억하기보다는 이 세 가지 관계를 분리시켜 기억하게 한 것이 더욱 빨리 학습되었다. 언뜻 보기에는 멀리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제대로 학습 순서를 밟아야 실수도 적다. 이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고난도의 문제를 풀기보다는 기초를 익히고 나서 조금씩 난이도를 높여 가는 것이 빨리 학습된다.

학교 공부는 교과서를 따라 기초부터 응용 순서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렇게 '순서'에 신경 쓸 필요는 없지만 뭔가를 독학으로 배우려는 사람은 학습 순서를 고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공부를 할 때는 먼저 큰 틀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지 말고 대략적인 큰 틀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세세한 부분은 그 후에 조금씩 공부해 가면 된다.

쥐의 경우 오퍼런트 과제의 초기단계에서는 '도' 음과 '솔' 음을 구별하지 못한다. 원래 기억이란 대충대충 입력되기 때문에 서로 비슷한 것을 잘 구별되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에는 비슷한 사물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우선 비슷한 것의 범주를 파악하는 일이 학습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세세한 부분의 구별은 그 다음 단계이다. 일단 '도'와 '솔'을 구별하면 훈련을 통해 '도'와 '도#'의 구별도 할 수 있다. 곧바로 '도'와 '도#'을 구별하게 하려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처음에는 전체적으로 구별하고 나중에 세세한 부분을 구별해야 한다.

예를 들면 서양화에 흥미가 없는 사람에게는 모든 그림이 똑같이 보인다. 하지만 조금 흥미를 가지고 그림을 보면 르네상스 그림인지 인상파 그림인지를 구별할 수 있다. 그리고 좀더 공부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라파엘로 그리고 미켈란젤로까지 구별할 수 있게 된다. 클래식 음악도 맟나가지다. 흥미가 없으면 어떤 곡을 들어도 똑같이 들린다. 하지만 자꾸 들으면 어느 시대 음악인지도 구별할 수 있다. 어쨌든 비슷하게 생긴 것은 똑같이 기억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잘 구별할 수가 없다. 이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순서만 제대로 밟으면 누구라도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할 수가 있다.

'도'와 '도#'의 구별이 가능해지면 '솔'과 '솔#'의 구별도 쉬워진다. 다시 말하면, 세세한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되면 다른 세세한 부분까지도 구별이 가능해진다. 즉, 어떤 것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면 다른 것을 이해하는 방법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야구를 잘하는 사람은 소프트볼도 금방 익힐 수 있고 영어에 능통한 사람은 불어도 쉽게 배울 수 있다. 또한 어떤 수학문제의 풀이를 알면 비슷한 패턴의 문제에 이것을 응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뇌가 기억할 때 기억 대상이 되는 '사실 또는 사물'을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실 또는 사물을 '이해하는 방법'도 동시에 기억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효과적인 기억을 위해서는 '법칙성'을 이해해야 한다. 한가지 사실을 기억하면 자연히 다른 사실의 법칙성을 발견해내는 능력도 생긴다. 다시 말하면, 기억에는 상승효과가 있다. 따라서 많은 것을 기억하고 많이 사용한 뇌일수록 더욱 많이 사용할 수 있는 뇌가 된다. 사용하면 할수록 고장이 잘 나는 컴퓨터와는 달리 뇌는 사용량이 많을수록 성능이 향상되는 신비한 기억장치이다.

공부를 예로 들어 말하자면 어떤 과목의 일정 부분을 충분히 이해하고 나면 다른 부분도 이해하기 쉬워진다. 그리고 어떤 과목을 통달하면 다른 과목의 공부도 쉬워진다. 한 과목도 통달하지 못한 사람이 볼 때 모든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는 우등생은 초인적인 천재로 보이지만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좋다기보다 여러 과목의 학습 능력이 상승효과를 가져온 결괴앋. 따라서 한 가지 과목을 통달하고 열등의식만 극복할 수 있다면 비교적 쉽게 다른 과목의 성적도 올릴 수 있다. 여러 과목을 골고루 공부해서 평균적인 점수를 얻으려 하기 보다는 한 가지 과목을 집중해서 공부하는 편이 장기적인 면에서 볼 때 효율적이다. 우선은 한 가지라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천재의 비밀


'이해 방법'을 아는 것의 효과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해 보자. 이것은 '방법'을 기억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차기억'이라 할 수 있다. 절차기억은 기억계층으로 말하자면 최하층에 속하는 원시적인 기억이다. 원시적인 기억이란 가장 잘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다. 예를 들면 자전거를 타는 방법이나 트럼프 게임의 규칙 등은 오랜 시간 하지 않아도 필요할 때 자연히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방법으로 일단 기억되면 수정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러한 절차기억을 잘 이용한다면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절차기억은 '잠재기억'이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기억되고 떠오른다. 실제로 사실 또는 사물을 기억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사실 또는 사물을 '이해하는 방법'은 무의식중에 기억 된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절차기억은 마음대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절차기억은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예를 들면 장기나 바둑을 잘하는 사람은 게임이 끝난 뒤에도 그 게임을 완전히 재현할 수 있다. 아마추어들이 볼 때 그들은 천재적인 기억력의 소유자처럼 보일 것이다. 실제로 '일화기억(경험으로 얻은 기억)'만으로 게임 진행을 완전히 기억하려면 초인적인 기억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일화기억'뿐만 아니라 '절차기억'도 동시에 사용하여 진행 과정을 기억하고 있다. '자신이 무엇을 생각해서 어떻게 놓았는가'와 같은 일화기억과 '상황으로 봐서 나타날 패턴'을 기억하는 것이다. 즉, 그들은 절차기억을 통해 무의식중에 '법칙성'을 발견하고 있다.

실제로 게임 중에 예상치 못했던 패턴(예를 들면 초보자가 생각 없이 둔 경우)이 나오면 아무리 고수라도 전체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얻었던 절차기억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전문가의 놀라운 기억력도 초보자와 같은 수준이 된다. 이처럼 '천재적'인 능력을 '절차기억'을 통해 발휘된다. 절차기억이 천재를 만드는 셈이다.

예를 들어 A라는 내용을 기억했다고 가정해보자. A라는 것을 이해하는 방법조차 알지 못해도 A는 절차기억을 통해 뇌에 보존 된다. 따라서 다음에 B라는 것을 기억하려 할 때 A의 절차기억이 무의식적으로 B의 이해를 도와서 간단히 B를 기억할 수 있게 된다. 물론 B의 절차기억 또한 자동적으로 기억된다. 이때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그뿐만이 아니다. 새로이 기억된 B의 절차기억이 이미 기억되어 있는 A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즉, A와 B를 기억하면 'A', 'B', 'A에서 본 B', 'B에서 본 A'와 같이 '기억의 연합'이 일어나서 기억한 내용에 대한 네 가지 효과가 나타난다. 이처럼 기억력의 상승작용은 일반적으로 '누적효과'가 있다. 따라서 학급효과는 기하급수적인 곡선을 그리며 상승한다.

예를 들면 지금 여러분의 성적이 1의 위치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목표성적을 1000으로 정한다. 공부해서 등수가 오르면 성적은 2가 된다. 더욱 더 열심히 공부를 해서 한 단계 더 상승하면 성적은 4가 된다. 이렇게 계속 노력하면 성적은 8, 16, 3, 64와 같이 조금씩 누적효과를 나타낸다.

그러나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아직 성적은 64에 머물러 있고, 처음 성적보다 그다지 많이 향상된 것 같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점에서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내 성적은 도대체 왜 오르지 않는 거야!', '나는 정말로 재능이 없는 건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1000이라는 성적을 얻은 사람을 보면 '저런 사람을 보고 천재라고 하는구나!', '완전히 다른 세상 사람이구나!'라며 부러워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무능력함에 낙담하여 공부를 포기해 버린다. 일단 성적 1000을 넘은 사람을 천재라고 부르기로 하자.

하지만 좀더 참고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한 사람은 그후 128, 256, 512라는 식으로 성적이 향상된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노력이 드디어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이것이 공부와 성적과의 관계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마침내 1024라는 성적에 도달하게 된다. 공부를 계속하다 보면 갑자기 눈앞에 큰 바다가 펼쳐지는 것처럼 시야가 넓어져 모든 것을 잘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일종의 깨달음과 비슷한 현상인데, 이러한 현상은 공부의 누적효과에 의한 것이다.

여기까지 이르면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성적을 2048로 향상시킬 수 있다. 이것이 상승효과의 실체이다. 2048에 도달한 사람은 64까지만 도달한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엄청난 천재처럼 느껴질 것이다. 공부효과에 관한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천재와 보통사람이 능력 차이는 확실히 크지만 천재들간의 능력 차이는 더욱 크다는 사실이다. 성적이 1024인 사람과 2048인 사람은 둘 다 천재지만 이 두 사람간의 차이는 1024나 되므로 성적만 가지고 볼 때 엄청난 차이가 있다. 물론 1024라는 차이는 성적이 64인 보통사람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큰 차이다.

예를 들면 아마추어 야구 집단에 프로야구 선수가 섞여 있으면 누가 보더라도 천재적인 선수처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프로야구계는 '천재'들만 모여 있는 집단이 아니다. 그 집단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능력의 차이가 있다. 박찬호나 선동렬 같은 일류 선수와 평범한 프로야구 선수와의 능력 차이는 초보자가 보아도 확연히 알 수 있다. 그 능력의 차이는 초보자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다. 이처럼 수준이 높아질수록 개인의 능력차도 커진다. 이는 야구뿐만 아니라 테니스, 장기, 피아노, 공부 등에도 적용된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노력'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딘다. 물론 주변 천재들을 보고 주눅들 필요도 없다. 그들과 자신의 능력을 단순하게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노력과 성과는 비례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듭제곱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차이가 있지만 계속 노력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들을 사정거리 내에 둘 수 있을 것이다. 뇌도 이러한 성장패턴을 보인다.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두뇌 능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때때로 공부가 싫어졌을 때 이러한 사실을 떠올려 보자. 언젠가 반드시 효과가 나타날 테니 좀더 분발하기 바란다.

'천재'란 노력이 부족한 보통사람들의 망상에 의해 만들어진 말이다. 이러한 말에 기분 좋아하며 게을러져서는 안 된다. 천재 에디슨이 '99퍼센트의 노력과 1퍼센트의 영감'이라고 말한 것처럼 '천재'란 신에 의해 부여되는 재능이 아니라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이다.



『뇌 기억력을 키우다』, 이케가와 류우지(동경대 약학박사)
2006/01/24 15:29 2006/01/2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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