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가미의 문예기행(27) 메리 셸리, 새로운 장르의 어머니
안녕하세요. 류가미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야기한 대로, 메리 셸리(1797-1851)의 프랑켄슈타인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합니다. 사실 이 작품만큼 최초라는 말이 많이 붙은 작품도 없을 겁니다. 평론가들마다 조금씩 견해가 다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은 최초의 공포 소설이자 SF 소설이며 또한 최초의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프랑켄슈타인은 그 시대에 매우 급진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프랑켄슈타인을 쓴 것은 바로 메리 셸리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메리 셸리를 아나키즘과 페미니즘의 결합물이자 낭만주의의 신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말하면 꽤 이상하죠. 하지만 그녀의 집안 내력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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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 셸리의 어머니이자 페미니즘의 선구자였던 메리 울프스톤 크래프트 http://www.nypl.org/research/chss/victoria/ images/full/ps_cps_cd6_081.jpg |
메리 셸리는 급진적 사상가로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를 설파했던 윌리엄 고드윈과 여성 해방론자였던 메리 울스톤 크래프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또 그녀의 남편은 바로 영국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시인 퍼시 셸리(1792-1822)였습니다.
메리 셸리의 아버지 고드윈은 매우 급진적인 사회 사상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정치적 정의와 그것이 일반 미덕과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고찰, 1793>을 통해서, 정부는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게 부패하기 마련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는 인습적인 정부를 거부하면서 그 대안으로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가 이루어지는 소규모 자립 공동체를 제안합니다. 그는 19세기에 사회주의 혁명을 부르짖었던 마르크스의 선구자였던 셈입니다.
메리 셸리의 어머니 메리 울프스톤 크래프트는 최초의 페미니스트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저서, <여성의 권리 옹호>를 통해서, 여성이 남성의 쾌락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관념을 비판하면서 여성도 교육, 직업, 정치에서 남성과 똑같은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녀는 여성의 자존을 주장하면서 남성들만의 ‘반쪽뿐인 세계’에 저항했습니다. 살아생전, 메리 울스톤 크래프트는 ‘나는 새로운 종(種)의 시조가 될 것이다’고 선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메리 울스톤 크래프트는 딸 메리 셸리를 낳은지 열흘 만에 산욕열로 죽고 맙니다. 메리 울스톤 크래프트는 딸에게 메리라는 자신의 이름을 남겨주었을 뿐 전혀 어머니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메리 셸리는 ‘나는 새로운 종의 시조가 될 것’이라는 어머니의 선언에 영향을 받았는지, 오로지 남자에 의해서 창조된 새로운 종의 이야기를 씁니다. 그것이 바로 프랑켄슈타인 박사에 의해서 실험실에 창조된 한 이름 없는 괴물이 이야기입니다.
당대 유명한 사상가들을 부모를 둔 메리 셸리는 그 당시 여자로서는 드물게 지적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개인적은 삶은 그다지 평탄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죽은 지 얼마 안되서 그녀의 아버지는 재혼을 했고 그녀는 이복형제 자매들과 함께 자라나야 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집에는 수많은 사상가와 문학가들이 드나들었죠. 그 중의 한 사람이 문단의 이단아였던 퍼시 셸리였습니다.
열여섯 살이었던 메리는 스물 한 살 난 젊은 시인과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퍼시 셸리 역시 철학과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이 총명한 처녀에게 온통 정신을 빼앗기죠. 그러나 그들의 사랑에는 큰 장애가 있었는데 그것은 퍼시 셸리가 이미 결혼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퍼시 셸리의 아내는 남편과 메리의 불륜에 절망한 나머지 자살을 하고 맙니다. 그 후 메리는 퍼시 셸리와 결혼하지만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을 곱지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그것은 한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결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안정한 환경 때문이었을까? 퍼시 셸리와 결혼 한 뒤, 메리 셸리는 조산을 하고 맙니다. 그리고 일찍 세상에 나온 그녀의 아이를 태어나서 얼마 못가 죽고 맙니다. 메리 셸리는 겨우 열아홉의 나이로 출산과 아이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그 해 프랑케슈타인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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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 http://www.german.leeds.ac.uk/RWI/2002-03project2/Images/MarySportrait.jpeg |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쓰게 된 사건은 문학사에서는 하나의 전설로 내려옵니다. 1816년 6월 퍼시 셸리, 메리 셸리, 메리의 이복 여동생이자 바이런의 애인이었던 클레어, 그리고 바이런경의 주치의자 비서였던 폴리도리는 레만 호숫가에 있는 빌라 디오다티에 체류하고 있는 바이런 경을 방문합니다.
그러나 비가 많이 오는 여름 날씨 때문에 그들의 아름다운 레만호의 풍경을 즐기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내야만 했습니다. 무료했던 그들은 독일의 콩트집 팡타스마고리아니(Fantasmagoriana)에서 영감을 받아, 유령 이야기들을 하기로 했습니다. 단 조건은 그 유령 이야기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이죠.
그날 밤 잠들기 전, 의사인 폴리도리는 메리와 그의 친구들에게 갈바니 전기에 대해서 이야기 해줍니다. 이탈리아의 생물학자 갈바니가 해부 실험 중 개구리의 다리가 해부도에 접촉하여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동물 전기현상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메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학이 보여주는 새로운 전망들에 매혹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자극을 받아 이상한 꿈을 꾸게 됩니다. 그날 밤 그녀가 꾼 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는 자신이 만든 창조물 주위에 창백한 얼굴로 무릎을 꿇고 있는 신성 모독적인 기술의 신봉자를 보았다. 나는 누운 채로, 위력적인 기계가 작동하자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끔찍한 형체가 딱딱한 몸짓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장인은 자기의 성공 자체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고는 공포에 사로잡혀 재빨리 도망쳤다. 그는 잠자고 있었다. 아니 깨어난다. 그는 눈을 뜬다. 그러자 그 무시무시한 존재가 커튼을 젖히면서 자신의 누르스름하고 흐릿하면서 사색에 잠긴 듯한 시선을 그에게 고정시킨 채 머리맡에 있었다.
다음날, 친구들과 모여 유령 이야기를 할 때, 메리는 이 꿈 이야기를 합니다. 바이런과 퍼시 셸리는 그녀에게 그 꿈을 소설로 써볼 것을 권합니다. 그들의 격려에 힘을 입어, 메리 셸리는 자신의 꿈 이야기를 소설화합니다. 그날 밤 메리가 꾼 꿈에는 소설 프랑케슈타인의 중요한 테마들은 다 나옵니다. 강박적인 과학자, 금지된 지식과 금기 위반, 창조자에게 버려진 괴물, 괴물로 인해 발생하는 공포 등이 말입니다.
그런데 빌라 디오다티에서 탄생한 공포 소설은 프랑켄슈타인만이 아니었습니다. 바이런의 비서이자 주치의였던 폴리도리는 이곳에서 얻은 영감으로 ‘벰파이어, 설화(The Vampyre, A tale)’를 썼습니다. 메리 셸리가 프랑케슈타인을 창조해내는 동안, 폴리도리는 매력적인 흡혈귀 귀족, 루벤스를 창조해낸 것입니다. 흡혈귀 루벤스는 심미안을 가진 귀족으로 여자들을 유혹해 그녀들의 피를 빠는 바람둥이입니다.
사람들은 흡혈귀 루벤스가 바이런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평소에 바이런은 폴리도리를 심하게 놀렸다고 합니다. 어쩌면 폴리도리는 바이런에게 품었던 자신의 반감을 루벤스라는 흡혈귀를 통해 표현했는지 모릅니다.
루벤스라는 흡혈귀가 중요한 것은 그전에는 단순한 전설상의 인물이었던 흡혈귀를 독특한 개성과 내적인 동기를 가진 현대적인 캐릭터를 재창조해냈다는 데 있습니다. 사실 루벤스는 프랑켄슈타인만큼 유명한 괴물, 드라큘라의 원형이 되는 캐릭터입니다. 브람 스토커는 폴리도리가 ‘벰파이어, 설화’를 쓴지 거의 80년 후인 1897년에 드라큘라를 완성합니다.
제네바의 빌라 디오다티에 머무르는 그 짧은 기간동안, 인조인간 프랑켄슈타인과 심미적인 흡혈귀라는 문학사 남을 불멸의 캐릭터가 두 명이나 창조되었다는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자 이제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속으로 들어가 보죠.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일찍부터 연금술에 몰두하다가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합니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지식을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 듯, 그는 생명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금기를 위반합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시체를 조합해 8피트의 인조인간을 만들고 동물전기를 이용해 되살려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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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이름 없는 괴물 http://nalts.files.wordpress.com/2006/07/frankenstein.jpg |
이 소설의 제목은 ‘프랑켄슈타인, 새로운 프로메테우스’입니다. 다시 말해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그리스 신화 속의 프로메테우스처럼 인간을 창조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신화 속의 프로메테우스 보다 훨씬 무책임합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창조물을 위해 신들이 금한 지식(불)을 훔쳐오지만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창조물을 외면합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창조물이 눈을 뜨자, 창조물의 추악함에 겁을 먹습니다. 그는 자신의 창조물을 실험실에 팽개치고 거리로 도망칩니다. 다시 그가 실험실로 돌아갔을 때는 그의 창조물은 이미 그곳을 떠난 뒤였습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그것으로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창조물을 잊으려고 합니다. 사실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로부터 이년 후, 그는 자신의 어린 동생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살해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는 동생을 살해한 것이 자신이 만든 그 괴물이었음을 알아차립니다.
어느 날 우연히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창조한 괴물을 만납니다. 그 괴물은 그에게 자신이 사회에서 받은 냉대를 털어놓습니다. 괴물은 한 아이를 알게 되었는데 그 아이가 빅터의 동생인 것을 알고 복수심에 죽여 버렸다고 고백합니다. 괴물은 분노에 차서 울부짖습니다.
“저주 받은 창조자여! 신은 자비심을 가지고 자신을 닮은 아름다운 인간을 만들었는데, 내 모습은 어찌 이리 추악한가?”
괴물은 마지막으로 빅터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과 함께 살아갈 배우자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빅터는 또 다른 괴물이 태어나는 것을 두려워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이에 분노한 괴물은 빅터의 친구 크레르발을 죽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괴물에게는 이름이 없습니다. 창조자인 빅터 프랑케슈타인은 괴물을 거부했고 그에게 자신의 성을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괴물은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버림 받은 이름 없는 자입니다. 다시 말해 괴물은 사회적으로는 자기를 증명해줄 아무런 신분도 가지지 못한 소외된 존재입니다. 괴물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자신처럼 사회적으로 고립된 인간으로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괴물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살해합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고향으로 돌아가, 약혼녀 엘리자베스와 결혼합니다. 그러나 첫날 밤 그의 신부는 괴물의 손에 살해되고 맙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잃은 빅터 프랑켄슈타인 복수심에 불타 괴물을 추격합니다. 그렇게 고립된 두 사람은 서로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전 세계를 떠돕니다. 누군가가 괴물을 쫓는 프랑켄슈타인을 남극에서 봤다는 이야기로 이 소설은 끝이 납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19세기 유럽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열망에 빠져 주위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의 목표는 한 가지 자신의 힘을 극한까지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는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그는 지적으로는 신의 권능에 도전할 만큼 탁월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돌볼 줄 모르는 인간입니다. 그는 사랑하는 약혼자와 가족을 떠나 혼자 연구에 몰두합니다. 마침내 그는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지만 자신이 피조물이 추악하다고 해서 버립니다. 괴물은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가 사랑하는 이들을 죽이려 합니다. 빅터는 괴물의 의도를 알고 있지만 그의 복수를 막아내지 못합니다.
빅터 프랑켄슡인은 인간을 넘어선 신과 같은 권능을 추구하지만 자신이 창조한 생명을 보호할 줄 모르는 매정한 사람입니다. 그의 파멸은 권력이 사랑을 몰아낸 그 자리에서 발생합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권능을 추구하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은, 시장과 원료를 대어줄 더 많은 식민지를 찾아 밖으로 팽창하던 19세기 유럽의 열강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19세기 영국은 지구상에 수많은 식민지를 획득해, 해가 지지 않은 나라라고 불렸습니다. 그 당시 세계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같은 몇몇 나라로 분할되었습니다.
19세기 유럽의 열강은 지구상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괴물을 창조해 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창조해낸 그 괴물은 인간 사이의 유대와 자연을 파괴했습니다. 19세기 팽창하던 유럽의 제국주의는 20세기 세계 1,2차 대전으로 끝이 납니다. 세계를 정복하려는 제국주의의 결말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한 동맹국으로 갈리어 서로를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남성들이 권력과 영광을 추구한다면 여성들은 인간 사이의 유대와 친밀감을 추구합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19세기는 남성성에 의해 여성성이 극도로 억압된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19세기 비엔나의 프로이트는 많은 여성들이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는 것을 발견합니다. 히스테리는 신체적인 이상 없는데도 자꾸 몸의 통증을 느끼는 증상을 말합니다. 프로이트는 여성들의 고통이 신체적 이상이 아니라 바로 심리적인 억압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또한 억압된 여성성을 해방시키려는 페미니즘 운동이 본격화된 것도 19세기의 일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어머니 없이 태어난 이 괴물의 복수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그의 복수는 여성성을 억압하는 남근중심적인 사회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생명의 창조라는 신의 영역을 넘본 인간의 오만에 대한 징벌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끝없이 팽창하려는 유럽의 제국주의가 가져올 파멸에 대한 예언으로 읽어야 할까요? 괴물의 복수는 그 모든 함의를 담고 있거나 그 이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낭만주의가 몰락해 가던 19세기 쓰여진 프랑켄슈타인은 낭만주의가 시작되었던 17세기에 쓰여진 신(新)엘로이즈와 달리, 더 이상 인간 본성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성을 따라 행동하고 숭고함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만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던 낭만주의의 꿈은 19세기 끝없는 탐욕으로 얼룩진 제국주의 안에서 악몽으로 변하고 맙니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괴물에게는 돌아갈 어머니(Nature Mother)가 없습니다. 황폐한 된 인간의 심성을 달래줄 모체로써 자연은 이미 인간의 권력욕에 의해 파괴당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초에 쓰여진 프랑켄슈타인은 그렇게 다가올 세기말적 절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힘찬 도약으로 시작했던 낭만주의는 바닥없는 추락으로 끝나고 맙니다.
이쯤에서 낭만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접고 다음 시간부터는 사실주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그때까지 평안하시길…….
ⓒ 류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