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기행3] 그리스 비극, 산양의 노래
번호 204285 글쓴이 류가미(ryugami) 조회 2603 등록일 2006-12-20 16:45 추천387 톡톡1

그리스 비극, 산양의 노래

 

 

안녕하세요. 류가미입니다. 세월이 빨라, 벌써 올해의 마지막달 12월이 되었군요. 봄에 꽃피고 여름에 무르익다가 가을에 결실을 맺고 겨울에 사라져가는 한 해의 주기가 또 이렇게 끝나가고 있습니다.

저 정도의 나이가 되면, 인생에도 이러한 주기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식물들의 한해살이처럼 나도 이런 삶과 죽음의 주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나 역시 모든 인간들처럼 정해진 운명을 따라 예정된 죽음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셈이지요. 자신이 정해진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 자신이 언젠가 죽게 될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일은 공포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공포스러운 운명 앞에서 나약하기 그지없는 자신과 타자의 존재에 대한 연민을 느낍니다. 사실 그리스 비극이 담고 있는 것도 이러한 공포와 연민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입니다.

지난 시간에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디오니소스의 찬가와 비극, 희극, 사티로스극 경연대회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듯이, 디오니소스의 찬가는 디튜람보스라고 합니다. 사티로스극은 산양의 뿔과 당나귀의 귀와 꼬리를 단 배우들이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반인반수(半人半獸) 사티로스(Satyros)와 실레노스(Silenos)를 연기하는 짧은 소극이었습니다.

그럼 희극은 뭘까요? 희극은 그리스어로 코모이디아(Komoidia)라고 합니다. 바로 이 말에서 코미디라는 말이 파생되어 나왔지요. 코모이디아(Komodia)는 코모스(Komos)와 오이데(oide)이라 두 단어가 합쳐진 합성어입니다. oide라는 단어는 노래를 뜻합니다. 또 코모스는 디오니소스 축제 첫날, 합창 경연대회가 끝난 후, 술 취한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행렬을 말합니다. 이때 술 취한 사람들은 남근상을 들고 행렬을 했습니다. 그리고 남근에 관련된 노래를 불렀지요. 다시 말해 코모이디아는 코모스 행렬이 부른 음탕하고 짓궂고 우스꽝스러운 남근에 관한 노래입니다. 바로 이 노래에서 희극이 발생한 것이지요.

반면, 비극은 그리스어로 트라고디아(tragodia)라고 합니다. 트라고디아는 트라고스(Tragos)와 오이데(oide)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합성어 입니다. 오이데는 알다시피, 노래를 뜻합니다. 그럼 트라고스는 무엇을 뜻할까요? 트라고스는 산양을 뜻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트라고디아는 산양의 노래라는 뜻이 됩니다.

왜 그럼 비극에 산양의 노래라는 이름이 붙여졌을까요? 대체 여기서 산양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 사튀로스극에서 사용되었던 실레노스 가면 http://www.cnr.edu/home/bmcmanus/mask1a.gif 

독수리가 제우스, 부엉이가 아테네를 상징하는 동물이듯, 산양은 디오니소스를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야기 했듯이, 디오니소스는 곡물신의 계보를 잇는 신입니다. 모든 곡물신들은 겨울에 매장되었다가 이듬해 공동체의 먹거리로 부활합니다. 11~12월이 있었던 시골 디오니소스 축제와 3~4 월에 있었던 도시 디오니소스 축제가 겨울밀의 파종과 추수와 관련있다는 사실은 전에도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산양은 점성학에서 12월 23일 동지 때부터 시작되는 염소자리를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산양은 풍요와 번영을 보장하는 태양이 일년 중 가장 약해졌을 시기를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 대지가 황폐해지고 곡물신이 몸이 찢긴 채, 대지에 매장되는 시기를 말합니다.

실제로 산양은 험준한 바위산에 살며 끝없이 높은 곳에 오르려는 성향이 있다고 합니다. 산에 올라보았자, 먹잇감 찾기는 점점 힘든데도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높은 곳에 오르려는 산양의 본성은 그들의 생존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듯합니다.

그런 점에서 산양은 인간과 많이 비슷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꼭 생존에 필요한 것도 아닌데, 높은 곳에 오르려는 충동이 있습니다. 세속적으로 인간은 더 높은 지위를 원하고 더 높은 명성을 원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인간이 도달하려는 것은 세속적인 차원을 넘어선 저 무엇입니다.

세속적인 차원에서 높이 오르려는 추구는 결국 어떤 형식으로든지 몰락으로 종결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높이 올라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정해진 운명에 따라 예정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높이 오르려는 인간의 충동은 이러한 인간적 한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은 삶과 죽음을 초월한 그 무엇과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더 높이 오르자는 인간의 추구는 종교적인 성향을 띨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산양이 바위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먼저 무릎을 꿇어야만 한다고 합니다. 산양의 행동은 오르기 위해서 내려가고 얻기 위해서 버리는 묘한 역설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인간의 모든 종교는 우리에게 이같은 역설을 가르칩니다. 초월적인 신성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선 개인의 야심과 자만심을 희생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어쨌거나 그래서인지 산양은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다는 충동과 더불어 자기보다 더 상위에 있는 존재를 발견하고 그 아래 무릎 꿇는 겸손을 상징합니다.

자, 다시 이야기의 원점으로 돌아가 보죠. 산양의 노래 다시 말해, 비극은 더 높이 오르자는 인간의 의지와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보다 더 높은 원리에 굴복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담은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비극은 상승과 몰락 그리고 그 이후에 찾아오는 영적인 자각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도시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경연대회는 비극 경연대회였습니다. 이 비극 경연대회를 통해서 많은 재능 있는 비극 작가들이 등장했습니다. 그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사람들이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작가라고 불리는 아이스킬로스(BC 525~BC 456), 소포클레스(BC 496~BC 406), 에우리피데스(BC 484?~ BC 406?)입니다.

비극경연대회에서 아이스킬로스는 13번 정도 우승했고 소포클레스는 24번 우승했고 에우리피데스는 5번 우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은 그리스 고전 시대라고 불리는 아테네의 최전성기에 살았던 동시대 사람이었습니다. 아이킬로스는 소포클레스의 스승이었고 에우리피데스는 소포클레스의 후배였습니다.

이 세 사람들의 작품을 모두 훌륭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의 저서, ‘시학’에서 언급했듯 그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비극작가는 소포클레스였습니다. 소포클레스는 이래저래 복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테네가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번성하던 시절 아테네 근교 콜로누스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유한 무기 상인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그는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죠. 그에게 비극을 가르쳐주었던 사람이 바로 아이스킬로스였습니다.

▲ 소포클레스 http://www.christusrex.org/www1/vaticano/GP-Sophokles.jpg 

소포클레스는 처음에는 비극 작가가 아니라 배우로서 활동했다고 합니다. 잘 생긴 외모와 노래 솜씨 덕분에 그는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BC 468년, 28세 때 비극 경연대회에 나와 스승인 아이스킬로스를 꺾고 첫 우승을 합니다. 그 후 그는 수많은 작품들을 썼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오이디푸스 왕(Oedipos Tyranos)입니다.

분명히 오이디푸스 왕은 소포클레스의 비극이지만, 오이디푸스 왕이 소포클레스가 창작한 캐릭터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다른 비극작가들처럼, 소포클레스는 이미 그 당시에 널려 알려진 미토스를 희곡화했습니다. 우리는 미토스(Mythos)를 신화라고 번역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미토스는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나열된 허구의 이야기를 뜻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미토스가 희곡화되면 어떤 변용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 비극은 하루 동안 한 장소에서 일어났던 한 가지 사건을 그리는 것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시간 장소 사건의 일치, 이것을 삼일치라고 합니다. 이렇게 길고 긴 시간 동안 여러 장소에서 일어났던 미토스(이야기)를 하루 동안 한 장소에서 단일한 사건 안에서 담아내기 위해서는 희곡적 장치들이 필요합니다.

자, 예를 들어 볼까요? 오이디푸스 왕의 신화는 사실 2대에 걸쳐 코린스, 델피, 테베 지역에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연대기 순으로 사건을 기록한 오이디푸스왕의 미토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는 젊은 시절 자신의 친구 펠로포스의 어린 아들 크립시포스를 강간합니다. 크립시포스는 강간당한 수치심을 못 이겨 자살하고. 아들을 잃은 펠로포스는 라이오스에게 너는 아들 손에 죽게 될 것이라고 저주합니다. 시간이 흘러 라이오스는 테베의 왕이 되고 이오카스테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 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라이오스는 델피에 신탁을 묻자 만약 그가 아들을 갖게 되면 그 손에 죽게 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습니다.

신탁을 받은 후, 라이오스는 아내 이오카스테를 멀리합니다. 그러자 이오카스테는 남편에게 술을 먹이고 그를 유혹합니다. 그리고 열 달 후 사내아이가 태어납니다. 신탁이 두려웠던 라이오스는 태어난 지 사흘 밖에 안 된 아들의 두 발목에 구멍을 내서 묶은 다음 양치기를 시켜 키테론 산에 버립니다. 이로써 라이오스는 결혼과 아이들의 수호자인 헤라의 분노를 사게 됩니다.

▲ 수수께끼를 푸는 오이디푸스 http://bama.ua.edu/~ksummers/cl222/oedipus.jpg 

그러나 왕의 명령을 받은 양치기는 아이를 버리지 못하고 그를 코린스의 양치기에게 넘깁니다. 그 후 코린스의 양치기는 그 어린 아이를 자식이 없는 코린스의 왕 폴리보스에게 바칩니다. 폴리보스 왕은 아이의 부은 발을 보고 그에게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오이디푸스는 활기찬 붉은 머리에 자신만만한 청년으로 자라납니다. 어느날 오이디푸스는 연회에 온 손님들에게 주어온 아이라는 놀림을 받습니다.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오이디푸스는 델피로가 신탁을 청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오이디푸스는 그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신탁을 받습니다. 그 신탁을 받은 후, 오이디푸스는 코린스로 돌아가지 못하고 북쪽으로 방랑의 길을 떠납니다.

그 즈음 테베의 왕 라이오스는 커다란 문제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그가 아이를 버린 것에 분노한 헤라가 테베에 이집트의 괴물인 스핑크스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스핑크스는 여자의 얼굴과 사자의 몸과 뱀의 꼬리와 독수리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현명한 예언가 테이레시아스는 라이오스 왕에게 헤라의 용서를 비는 제물을 올리라고 경고 합니다. 그러나 라이오스는 그 말을 듣지 않고 다시 한번 델피에 신탁을 받기 위해 남쪽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운명은 이 아들과 아버지를 두 사람이 지나갈 수 없는 좁은 협곡에서 만나게 만듭니다. 라이오스의 부하들이 오이디푸스에게 길을 비킬 것을 명합니다. 오이디푸스에 마음 깊은 곳에서 웬지 모를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는 라이오스에게 길을 비켜주기를 거부합니다. 그러자 라이오스는 채찍으로 오이디푸스의 머리를 때립니다. 분노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아버지인지도 모르는 채, 아버지와 그의 부하들을 죽입니다. 라이오스가 죽은 후, 테베는 이오카스테의 오빠 크레온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한편 스핑크스는 테베 도성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피시움 언덕에서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던집니다. 사람들이 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스핑크스는 그를 죽여 언덕 밑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아무도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기 때문에 피시움 언덕 밑에는 시체들이 쌓여만 갔지요. 그 죽은 사람 가운데는 크레온의 아들도 있었습니다. 스핑크스에게 아들을 잃은 크레온은 스핑크스를 무찌르는 사람에게 나라와 왕비 이오카스테를 주겠다고 선언을 합니다.

테베에 온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를 찾아갑니다. 스핑크스는 두발로 서기전에 네발로 걷고 그런 다음 세발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는 수수께끼를 내고 오이디푸스는 그것은 인간이라고 답합니다. 오이디푸스가 수수께끼를 풀자 스핑크스는 수치감을 느껴 스스로 언덕 아래로 몸을 던집니다. 스핑크스를 물리친 오이디푸스는 크레온의 약속대로 이오카스테와 결혼하고 테베의 왕이 됩니다. 그 후 그는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네 명의 자녀를 둡니다.

시간은 흘러, 오이디푸스가 테베의 왕이 된 지 18년이 되던 해, 갑자기 테베에 역병이 돕니다. 역병이 신의 분노 때문이라고 생각한 오이디푸스는 크레온에게 델피에 가서 신탁을 받아오라고 시킵니다. 델피에서 온 신탁은 라이오스의 살해자를 찾아 처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의 살해자를 찾기 위해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부릅니다. 테이레시아스의 예언과 오이디푸스를 버린 양치기의 증언을 통해,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라이오스의 살해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사실이 밝혀지자 이오카스테는 자살을 하고 오이디푸스는 두 눈을 찌릅니다.

오이디푸스 왕의 미토스는 몇 십 년에 걸쳐 테베 델피 코린스에서 일어난 복잡한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이와 달리, 오이디푸스가 왕이 된지 18년 되던 해, 테베의 왕궁에서, 오이디푸스가 라이오스의 살해자라는 것이 밝혀지는 단 하나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표현을 빌린다면 오이디푸스 왕의 미토스는 파블라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을 희곡화한 소포클레스의 비극은 플롯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토스(파블라)가 희곡(플롯)화 되면서 생기는 변용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보다 자세하게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그럼 아무쪼록 좋은 한주일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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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30 07:26 2007/06/30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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