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잡설

2009/11/16 06:04 / My Life/Diary

밸리브리백광, 아마 이 둘이 참가한 큰 경기는 꼭 현장에서 챙겨봐온 것 같다. 밸리브리가 서울 경마장을 평정한 마필이라면 백광은 뛰는 모습 자체가 멋있는 마필. 그 육중한 백색의 덩어리가 튀어나오는 광경… 글쎄… 그게 보고 싶었다.

그래 대통령배를 직접 볼 마음에 두 시쯤 집을 나섰다. 경마장은 뒤질만큼 추웠다. 해가 넘어가고 나서는 아마 뒤졌던 것 같다.

서울 경마장의 인프라는 상당히 훌륭하다. 다만 겨울철엔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앉을 자리도 없는 실내 외에는 갈 곳이 없다. 사실 따뜻한 날에도 베팅을 하지 않으면 시간을 보내기 마땅치 않다. ①주로내 공원을 한바퀴 돌거나 ②대출은 커녕 점심시간에는 아예 운영을 안 하는 마사회 도서관에 가거나 ③지난 3년간 전시물이 거의 그대로인 마사박물관을 보거나 ④좁아터진 인터넷실에서 또 지겹게 인터넷을 하거나… 뿐이다.

차라리 현재의 마사박물관 건물과 폭포수를 철거하고 뒷쪽 산등성도 깎아내 싹 정비, 장외발매소식의 건물을 지어 실내수용인원을 늘려야 한다. 신관 지나 4코너 부근의 소규모 광장도 대상이 될 수 있다. 여름 한철 운영하다 썩은 물 고여 황폐해지는 그곳이 과연 효율성 있는 공간일까? 마사박물관과 구관 1층 로비 끝단의 기념실 등은 통합해서 주로내 공원에 기념관 건물을 짓는 게 낫다. 인터넷 베팅과 장외발매소 추가 개소가 금지된 마당에 리모델링이나 하고 자빠져 있으니 화가 돋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베팅은 도박이다. 유인되면 도박 외에는 할 일이 없는 곳, 그곳이 바로 도박장이요, 하우스다. (그래서 사감위의 대표적 병신 정책이 바로 인터넷 베팅 금지다. 병신짓도 이런 상병신짓이 있나!) 경마장이 도박장이 되느냐 공원이 되느냐는 할 수 있는 게 베팅뿐이냐 아니냐가 가름한다.

하나 더, 경주로 앞에 잔디를 깔아 놓고 쇠꼬챙이를 꽂아 나이롱줄을 매어논 것은 도대체 무슨 발상인지 모르겠다. 경주로로 침범할 사람이 걱정된다면 제대로 된 철책을 만들어 놓던지, 잔디 보호를 위해서 관람객을 내쫓는 거라면 완전히 본말이 전도된 행태다.

이런 생각들을 할 정도로 오늘 너무나 추웠다…

사실 백광의 재기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계인대염은 치명적인 질병이고, 인대는 지금껏 재생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대표적인 신체부위였다. 그러나 백광은 앞서 재기전인 SBS배에서 건재함을 과시했고 오늘 경기로 예전 최고의 상태와 별 다를바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했다. 방송해설자는 “예전 전성기였다면…” 운운하였지만 백광에겐 지금이 전성기다. 막판 한발 쓰는 모습은 대표적인 추입마로서 역시 명불허전.

백광을 보면서 밸리브리가 안타까웠다. 지난 경주 졸전은 여러가지 악재가 겹친 결과로 그의 실력이라고 볼 순 없다. 다만 납득키 어려운 것은 현재 마체 상태를 오랜 기간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530kg에 육박하는 체중은 과하다.

마체성장이 정리되어 가는 4-5세 이후에 체중의 주요 증가요인은 기초대사량 감소로 인한 지방 축적이다. 말은 태생적으로 게으른 동물이다. 국내처럼 조교 강도가 낮을 수록 다른 방법을 모두 동원하지 않으면 체중이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국내 경주로 여건상, 또한 조교사들의 인식에 따라 격렬한 조교는 지양되어 체중 조절이 어려우리란 건 예상된다. 그러나 체중은 생각보다 그 중요성이 크다.

밸리브리의 경우 어깨 근육 파열로 인해 조교하기가 더욱 조심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그 이전에, 높은 핸디캡을 받아갈 때 체중을 500kg 정도로 낮춰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3-4kg의 핸디캡 증가에는 민감하면서도 20-30kg의 체중 증가는 너무 쉽게 생각해온 것은 아닐까?

경주로에서 말 다리가 부러져 나갈 때면 언제나 그 마필의 혈통표 속에서 네이티브댄서(Native Dancer)와 그의 아들 레이즈어네이티브(Raise a Native)를 지목한다. 현대 주류 혈통의 아버지인 네이티브댄서는 4세 때 구절 부상으로 은퇴했고, 레이즈어네이티브는 겨우 네 경주밖에 뛰지 못했기에 내구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거고, 그 후대들은 그런 취약성을 물려받았을 것이므로… 등등… 그러나 혈통표를 보고 말을 논한다는 것은 사실 넌센스에 가깝다.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이 있으려면 그들의 어떤 구조적ㆍ유전적 결함이 마필의 골격에 무리한 스트레스를 가하는가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러나 단지 혈통표에서 이름 하나만 가리키면 끝이다.

실제로 현대 경마에서는 상당히 많은 경주마가 골절로 죽어나간다. 그 이면에는 몇 가지 큰 이유가 있다. 경주마의 가파른 증가, 뼈가 여물지 않은 어린 나이에 시키는 강한 조교, 스테로이드로 인한 지나치게 두꺼운 근육, 그리고 가장 주요한 경주마의 대형화 추세.

써러브렛의 시조들은 겨우 15핸드(152cm) 남짓했지만 현대 경주마들의 체구는 계속 커지고 있다. 더 강한 말을 염원한 인위적 교배의 산물이다. 젠야타(Zenyatta), 레이첼알렉산드라(Rachel Alexandra), 랙스투리치스(Rags to Riches), 불운의 암말 러피안(Ruffian)과 에잇벨즈(Eight Belles)까지… 숫말들을 상대로 능력을 발휘한 암말들의 공통점 한가지. 바로 어지간한 숫말들을 능가하는 큰 체구다. (서울ㆍ부산 경마장 1군 마필들의 체중을 살펴보라) 물론 마체가 커야만 명마가 되는 건 아니다. 마체와 경주 능력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다음에 얘기하도록 하고, 여기서 살피고자 하는 것은 체구가 커짐과 동시에 골격이 감당해야할 자신의 체중도 함께 늘어난다는 점이다.

간단한 산수. 면적이 제곱(가로Ⅹ세로)으로 늘면 부피는 세제곱(가로Ⅹ세로Ⅹ높이)으로 늘어난다. 곧 성장으로 골면적이 두 배가 되어도 체중은 세 배로 불어서 결국 과부담을 가져오게 된다. 성장 이후에 지방이 축적되면 그 압력은 고스란히 기존의 골면적에 가해지고 체구가 클수록 그 부담은 더욱 늘어난다. 개념은 간단하지만 그 결과는 결코 간단치 않다. 현대 경마는 유전적 취약성 때문이 아니라(훗날 이 역시 한가지 이유로 추가될 수는 있다) 자연의 속성 그 자체 때문에 말들이 사지로 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며칠 전엔 540kg의 체중으로 질주한 브릴리언트나이트(Brilliant Knight)가 골절로 경주로를 떠났다. 이를 개선하는 방법이란… 체구가 큰 마필일수록 체중 변화에 더욱 신경쓰는 길밖엔 없다. 그뿐이다.

앞으로 한국 경마의 수준 상승도 경주마의 대형화와 함께 할 것은 자명하다. 과연 좋아해야 할 일인가? “선진 경마”라는 어처구니 없는 허울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2009/11/16 06:04 2009/11/16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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