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씨수말(Sires of the Century)


Hyperion
(Gainsborough x Selene)

생산자 & 마주
17th Earl of Derby

활동 목장
Woodland Stud, Newmarket, England. (1934~41, 1945~58)
Plantation Stud, Newmarket, England. (1942~44)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1930년 어느 추운 날 태어난 하이페리언은 마체가 너무나 작아서 그대로 죽게 내버려질 뻔했다고 한다. 하이페리언은 확실히 왜소했고, 뛰어난 갈색 씨수말에게서 밤색의 아들이 태어났다는 사실이 불길한 징조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하이페리언은 살아남았다.

이 작은 마필의 생산자인 17대 더비 백작은, 하이페리언의 모마인 셀리니(Selene)를 가지고 값비싼 실수를 저질렀던 적이 있는 터라 모마와 같은 외형적 단점을 안고 있는 하이페리언에게 그 어떤 성급한 짓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셀리니의 작은 마체는 클래식 경주 출전을 포기하게 만들었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여러 스테익스 경주를 우승하며 스스로 당대 최고의 3세 암말임을 입증했다. 어쩌면 셀리니는 그녀가 받을 수 있었던 약 2kg 정도의 감량으로 캡틴커틀(Captain Cuttle)에게서 더비 타이틀을 뺏었을 지도 모른다.

하이페리언은 미숙아가 아닌, 작은 체격의 균형잡힌 써러브렛이었다. 그의 반형(半兄)인 식클(Sickle)도 그렇게 크진 않았지만 유능한 2세마였으며 3세때 2000기니(the 2000 Guineas Stakes)에서 3착을 할만큼 충분히 뛰어났다. 하이페리언도 이런 모습을 따를 기회가 항상 주어졌다.

하이페리언이 뛰었던 세 시즌들 사이에는 명확히 구분되는 시기들이 있다. 첫 번째는, 마방에서는 너무나 게을러서 경주를 뛸 준비가 됐는지 거의 알 수 없는 그를 영국의 챔피언 조교사 조지램튼(George Lambton)이 이해하는 시기다. 두 번째는, 반쪽짜리 말처럼 보이는 하이페리언이 마치 두 마리 말처럼 뛰는 시기고 세 번째는, 새로운 조교사와 함께 다른 말들과 비슷해지는 시기다.

들쭉날쭉했던 2세 때 경주는 주목할만하다. 하이페리언은 뉴-스테익스(the New Stakes)에서 애스콧(Ascot) 경마장의 5펄롱(1000m)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그러나 다음 두 경주에선 무뎌진 경주력을 선보였고, 이어 그해 최악의 경주를 하는가 하면 듀허스트(Dewhurst Stakes)에선 손쉬운 우승을 거뒀다.

2세 때의 하이페리언이 애매했다면, 3세 때는 화려했다. 4번의 경주에 출전해서 모두 우승했으며 클래식 경주에서의 성적은 매우 훌륭했다. 더비(Epsom Derby)에서 보여준 활발한 걸음은 오만해 보일 정도로 굉장했고, 세인트레저(St. Leger)에서는 다른 마필들을 압도하며 시종일관 리드를 지킨채 우승했다. 이 시점에서 그는 세기의 마필이 되었고, 여기에 추호의 의심이 있을 수 없다.

다음 시즌 하이페리언은 최고의 4세마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이런 하향세가 씨수말로서 하이페리언이 가진 매력을 감소시키지는 못했다. 지난날 잔디 주로의 제왕은 재빠르게 씨수말의 제왕이 되었다. 오랜 기간 씨수말로서, 이전에도 혹은 이후로도 비교 대상이 없을만한 기록을 세웠다.

하이페리언은 6번의 챔피언 씨수말이었으며, 16번을 상위 10위권 안에 들었다. 외조부마 리스트를 4번 석권했고, 상위 10위권 안에 18년간이나 머물렀다. 처음 8번의 자마군(群)에서 7마리의 클래식 우승마를 배출했고, 비록 13번째 자마군에서 연속기록이 끊겼지만 하이-클래스 경주마를 배출하는 물줄기는 그칠 줄 몰랐다. 마지막 챔피언은 1960년의 뛰어난 2세 암말인 오팔라인(Opaline)이었는데, 하이페리언이 27세에 얻은 자손이었다.

하이페리언이 씨수말로서 세운 기록에 있어서 간과되어선 안 될 것은, 그의 성과들이 바로 네아르코(Nearco)가 확고한 라이벌로 활약하는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분명히 하이페리언은 질 높은 자마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네아르코를 능가했다. 우승경주수와 수득상금 모두에서 하이페리언의 자손들이 더 나았다.

다른 나라들도 이내 하이페리언의 성공신화를 접하고는 그의 아들들을 씨수말로 삼았다. 헬리오폴리스(Heliopolis), 알리바이(Alibhai) 그리고 할레드(Khaled)는 미국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고, 셀럼(Selim), 하싼(Hassan) 그리고 아리스토파니즈(Aristophanes)는 아르헨티나에서, 다이머스(Deimos)는 남아프리카에서, 루스리스(Ruthless)는 뉴질랜드에서 활약했다. 하이페리언의 손자이며 스타더스트(Stardust)의 아들인 스타킹덤(Star Kingdom)은 오스트레일리아에 강력한 스피드를 퍼뜨렸다.

물론 본토에서도 여러 씨수말이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오리올(Aureole)만이 1960년과 1961년에 씨수말 리스트를 석권할 수 있었고, 오리올의 아들 비에나(Vienna)가 배출한 베글리노블(Vaguely Noble)이 하이페리언의 다른 부계()라인을 확립한 유일한 자손이 됐다.

게인즈버러(Gainsborough)의 명맥을 사실상 혼자서 이어온 하이페리언은 생산계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결국 수많은 팔라리스(Phalaris) 가문이 그의 자리를 차지하고, 특히 그의 오랜 라이벌인 네아르코(팔라리스의 2대손)의 후예들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부계라인의 패권을 쥐게 됐다.

만약 폴리(Forli)의 아들들이 희망대로 번성했다면, 그리고 만약 베글리노블의 자손들이 그렇게도 실망스럽지 않았다면, 힘의 균형은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조절되었을 것이다. 과거의 활력을 되살릴 효과적인 유전력이 최근 몇 년간 부족했던 탓에, 혈통의 다양성면에서 심각한 손실로 나타나 보인다.

Original Article by Tony Morris
kiv.
2008.07.16

2008/07/16 04:53 2008/07/16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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