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 서울
1985 부산
1965 부산 광복동
용산역 앞, 서울 1957. 용산역 부근에는 폭격으로 반쯤 부서진 시커먼 건물들이 군데군데 서 있었다. 그중의 한 집 모퉁이에서 국수를 먹고 있는 어린아이를 발견했다. 진저리나게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굶주림'은 얼마나 구체적이고 위대한 우리의 경험이었던가. 나는 이 아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고, 결국 한 장의 사진으로 남기게 되었다.
1985 부산
부산, 1985. 시내 극장가에서 한쪽 다리와 한쪽 팔이 없는 불구자가 성한 사람들보다도 더 빨리 뛰면서 신문을 팔고 있었다. 외신기자들도 그의 모습을 여러 번 촬영했다고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무더운 날에나 추운 날에나 한결같이 뛰었다. 삼 년 동안 이곳에서 일한 청년은 하루의 수입이 꽤 짭짤하다고 했다. 어느 날부터는 그가 보이지 않았다. 그 동안 모은 돈으로 변두리에 구멍가게를 차려 어머니와 함께 산다는 말을 전해 들은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1965 부산 광복동
광복동, 부산, 1965. 이 어린 불구 소년을 부산의 중심거리에서 발견했다. 한 시간 후 다시 와 보았지만 그의 손에는 한푼도 없었다. 당시 군사정부는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경제개발을 서둘러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버려져 있었다.
- 최민식ㆍ조세희, 『최민식』(열화당 사진문고)
사진 기기는 기술적으로야 완벽하지만 손이나 뇌와 비교하면 엉성한 기계일 뿐이다. 더욱이 가장 아름다운 사진 작품들은 초창기 때 것들이다. 사진 기술이 그다지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가는 자신의 시간과 의지를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됐다. 모를레 신부는 18세기에 이렇게 썼다. “자연은 어머니 품(또는 연인의 품) 안에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그 순간조차 아름다움은 지속되지 않는 법이다. 아름다움은 간혹 한 찰나에 불과하다.” 사진은 바로 이 기회를 잡았다. 사진은 그것을 보여준다. 순간성, 바로 그것이다.
- 레비 스트로스, 『보다, 듣다,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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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老에 길을 묻다 <8> 최민식 사진작가
Tracked from fallight.com 2007/10/01 19:48www.KOOKJE.co.kr 2007년 02월 26일 元老에 길을 묻다 <8> 최민식 사진작가 최민식 사진전 '인간, 그 아름다운 이름'이 열린 용두산미술관에서 사진작가 최민식(왼쪽) 씨가 후배작가인 김홍희 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