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전, 운명과 우연의 자연사 』
제니퍼 애커먼 지음, 진우기 옮김


새로움은 복제와 일탈을 통해 태어나고, 이전의 주제에 변주를 가해야 생겨난다. 그 결과 휘파함새의 깃털, 손가락과 발가락, 가리비의 반복되는 빗살무늬, 지네의 몸토막, 뱀의 척추, 턱 안의 이 등에서 새로움이 목격된다.

노벨 의학상을 수상한 분자생물학자 자콥(Francois Jacob)은 이런 말을 했다. " 진화는 서툰 땜장이가 수백만 년 동안 자신의 작품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시 만지고, 자르고, 길이를 늘이면서 서서히 변화시키는 것처럼 일어난다. " 다윈은 생명체의 이런 서툰 솜씨가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해주었기 때문에 즐거워했다. 그는 ≪종의 기원≫에서 " 인간의 손, 박쥐의 날개, 돌고래의 지느러미, 말의 다리가 모두 같은 뼈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진화가 느리고 가볍고 연속적인 변화를 통해 일어난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 고 말했다. 오웬이 이전에 관찰했듯이, 손, 날개 , 지느러미는 모두 상동기관이며, 공통의 유전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최근 초파리의 게놈을 해독한 과학자들은 비록 작지만 매우 복잡한 생물을 만드는 데 동원된 유전자 수가 너무나 적다는 것에 놀랐다. 정교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초파리가 단세포 생물인 효모의 두배에 해당하는 유전자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 이 세상을 복잡하게 만들어놓은 진화는 새로운 유전자를 다량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기존의 유전자를 가지고 아이처럼 장난치면서 논 결과였던 것이다. 마치 초서(Geoffrey Chaucer)가 ≪데카메론≫을 ≪캔터베리 이야기≫로 재구성했던 것처럼, 그리고 베토벤이 스코틀랜드의 옛 노래를 더 풍요롭고 아름다운 곡으로 만들어냈던 것처럼 말이다.

pp.51-52


1940년대 매클린톡은 자기가 기르던 옥수수에 무언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챘다. 옥수수 알갱이가 물려받은 색깔이 멘델의 법칙을 위배하고 있엇던 것이다. 게다가 그 색깔은 다음 세대에서 너무나 빨리 변해, 느리게 진행되는 점돌연변이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한 옥수수 줄기의 인접한 부분들은 서로의 형질을 교환했다. 마치 한쪽이 버린 것을 다른 쪽이 취하는 것처럼 보였다. 매클린톡은 이런 변화가 게놈이 복제될 때마다 염색체 위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튀는 유전자(jumping gene)'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라고 추론했다. 이때 그녀는 혁신적인 생각을 내놓았는데 바로 유전자는 한 곳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염색체 위의 이곳저곳으로 튈 수있고 심지어 염색체와 염색체 사이로도 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식물이 악조건의 환경을 만났을 때는 그런 도약률이 더욱 커진다는 것이었다. 우연이 세상에 새로움을 만들어내고, 생명이 도약을 하는 새로운 방식이 여기 또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정말 대담한 발상이었고 하계를 당황하게 했다. 대부분의 과학자가 게놈 내 유전자의 안정성을 생물학의 이정표로 삼고 있던 시절이었다. 유전자가 움직인다는 것, 세포의 DNA가 구성요소를 이리 저리 보낸다는 것을 믿을 준비가 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 매클린톡의 말이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PP.56-57


생물학자들은 한 때 이 초기조상이 무정형의 납작한 연충처럼 세포들이 단순하게 뭉친 튜브형이며 다른 것과 구별할 만한 특색은 없었을 것으로 상상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파리와 쥐가 이 고도로 융통성 있는 유전자와 유전경로를 공유한다면 그들의 초기 공통조상도 그 유전자를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너무나 융통성 있고 성공적이어서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그 유전자들은 무엇인가? 몸의 형태는 혹스와 고슴도치 유전자가, 부속기관은 디스탈레스가, 심장의 원시적 전구체는 틴맨(tinman)이, 눈은 Pax 유전자가 만들어준다. 그런 유전자들을 가진 생물이라면 단순한 튜브형이기보다는 훨씬 더 정교했을 것이다. 아마도 좌우대칭에 상하와 부분이 잘 구획된 몸에 액체를 펌프질할 수 있는 근육, 더듬이 같은 곁가지, 심지어 안점(眼點)까지 갖추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상상을 재현해 스케치한다면 블레이크가 분절된 유충과 같은 것을 그린 <인간이란 무엇인가What is Man?>라는 그림에서 아기 얼굴만 뺀 것과 유사할 것이다. 이 조상이 실제로 사지나 심장, 눈을 가졌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 조상이 앞으로 따스한 진흙 위를 기어다닐 가능성, 자신의 체액을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 아직 볼 수는 없는 태양빛을 느낄 수 있는 유전적 가능성으로 가득차 있었음은 분명하다.

pp.136-137

사용자 삽입 이미지
What is Man?, William Blake
(http://www.biblical-art.com/)


언젠가 그레고리는 나에게 유아기부터 눈이 멀었던 한 환자가 52세가 되었을 때 각막이식 수술을 받아 시력을 회복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놀라운 것은 그 환자가 수술 직후에 벽에 있는 시계를 보고 시간을 말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눈앞에 놓여진 대문자를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소문자는 읽지 못했지만 말이다. 수술 전에 그는 유리뚜껑이 없는 커다란 시계를 사용했는데 손으로 바늘을 더듬어서 시간을 알았다고 한다. 그는 또 맹인학교에서 점자를 통해 손으로 대문자는 배웠지만 소문자는 배우지 않았었다. 그 환자는 이전에 촉각적으로 배웠던 것을 즉시 시각적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촉각 이미지가 일순간 시각 이미지로 도약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도약이 시각을 낳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주 오래전에 우연한 돌연변이가 한두 번 일어나 촉각에 예민한 신경세포나 피부의 색소세포가 어두웠던 과거와 결별하고는 태양빛의 떨림에 몸을 열었다. 어떤 면으로는 시각이 촉각의 일종이라는 그리스인들이 옳았다. 적어도 초기에는 그랬다. 나중에는 시각의 존재 자체가 피부를 아름답게 만들고 빛나게 하기도 했다. 버지스셰일에 있는 일부 동물들은 눈의 출현과 함께 몸에서 화려한 무지갯빛을 발하여 피부를 반짝이게 했다고 한다.

pp.152-153


그러나 새, 물고기, 인간, 나무, 일부 곤충에 이르기까지 몸이 더 크고 장수하는 생물에서 자가수정은 유전적 함정을 안고 있다. 자연은 이를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근친상간 금기는 인간뿐 아니라 다른 많은 동물들이 지키고 있다. 자가수정은 가족 밖의 사람이라면 희석될 수도 있는 희귀하고 위험한 열성 유전자를 발현시킬 수 있다. 개를 번식시켜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듯이 몇 세대에 걸쳐 자가수정이 계속되면 순혈종의 동물은 종종 둔부 이형성증, 시각 장애, 행동 장애 같은 심각한 불능을 겪는다. 해로운 열성 유전자라 할지라도 둘이 함께 짝을 이루지 않으면 해를 일으키지 않는다. 오직 둘이 만날 때에만 숨은 곳에서 나와 큰 해를 야기한다. 사촌끼리 결혼했을 때 태어났던 네 명의 소두증 어린이다, 1800년대에 유럽의 왕실을 휩쓸었던 혈우병이 그 좋은 예이다.

pp.218


노화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단일 유전자나 세포 메커니즘도 우리를 늙게 하는 유일한 원인이 될 수 없다. 텔로메라제는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다. 우선 첫째로 뇌세포와 일부 근육세포는 성인의 일생 동안 분열하지 않으므로 짧아진 텔로메라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세포들 내에서 무엇이 노화를 관장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한 배양접시에서는 텔로메라제가 많은 인간세포에 노화를 가져오는 것이 분명하게 나타났지만, 이들이 생명체 내에서 노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은 것이다.

pp.308

2007/07/05 11:36 2007/07/0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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