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중 기수의 낙마에 대해....



- 기수가 경주에서 고의로 낙마할 수 있을까?

경마 팬들과 함께 스탠드에서 후배들의 경주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기수가 경주 중 낙마할 때마다 심심찮게 들려 오는 야유와 고함 심지어는 욕설 등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가끔은 고의적인 것 아니냐? 또는 일부러 입상하지 않으려 그러한 것이 아니냐? 라는 질문을 들을 수 있는데 그저 기가막혀 할 말이 떠오르지를 않는다.
미리 결론을 말한다면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고 꿈 속에서도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고 싶다.

기수가 경주 중 낙마하는 케이스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스타트 직후 착지불량, 다른 말과의 충돌, 압박이나 진로방해, 전도, 고장, 급격한 사행, 장구의 불량, 유도 제어 불량으로 인한 밸런스 상실 ,기타 돌발적인 상황 등이 있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긴가민가하며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고 또한 자주 경마팬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스타트 직후의 낙마와 급격한 사행이 아닌완만한 사행 시 낙마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로 스타트 직후 시의 낙마로써, 자주는 아니지만 인기마 낙마로 인해 말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스타트에서 기수는 말의 급속 진출에 늦어지지 않고 말의 중심이동에 맞춰 나가기 위해서 중심과 체중을 최대한 앞으로 이동한다. 즉, 스타트 순간 말이 튀어나갈 때 말의 급속진출에 맞춰 나가는 것이다.
보통은 말의 중심이동에 방해만 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나, 기수의 기량이 늘어 가면서 자의로 말을 차고 나가는 수준에 까지 향상되는 것이다.

마필은 스타트 순간 뒷발로 추진하여 마체가 비약하고 이어서 앞다리가 착지하며 1완보를 마치는 것인데, 이 순간 어떤 이유로 인해 착지가 불안정하게 되면 무릎을 꿇는다거나 아니면 넘어지는 현상까지 나오게 된다.
그때는 마필이나 기수가 모든 중심이나 체중이 앞으로 쏠려 있는 상황이다 보니 전혀 대비하거나 손 쓸틈이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고, 그런 경우 말 머리 위로 떨어지게 된다.
달리던 자동차가 급 감속을 하게 되면 사람이 앞으로 날아 가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시트에 기대어 앉은 자세에서도 그럴진대 무릎 밑으로만 밸런스를 유지하는 경주자세에서야 뻔하지 않겠는가?

설령 기수의 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지 않았다 해도 500Kg 정도의 마필의 중심이 앞으로 쏠리면서 넘어지려 할 때 그 무게를 경주자세의 짧은 등자인 기수가 어떻게 고삐하나 만으로 들어 올릴 수 있겠는가? 마필 스스로 일어나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혹 로데오를 하는 카우보이라면 몰라도..

또한, 다행히도 마필의 중심 쏠림이 가벼운 정도라 해도, 일단은 중심이 무너진 상황에서 마필이 일어나면서 똑바로 가지 않고 옆으로 조금만 휘청거린다면, 기수는 무너진 중심을 회복하기전이기 때문에 기좌가 불안정하여 마필의 2차 액션에 대비 할 수없어 밸런스를 잡지 못하고 다시 옆으로 낙마할 가능성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급격한 사행시의 낙마야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어서 언급을 회피하겠지만, 완만한 사행 시에는 보기에 기수가 뛰어 내리는 동작 같아서 많은 분들이 이해하는데 조금은 긴가민가 하지 않나 싶다.
그러나 마필이 정상적으로 주행할 때에 기수는 안정된 기좌로 마필을 제어 유도 추진하는데 정신을 집중하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는 비록 완만한 사행이라 해도 밸런스가 무너질 수 있다.

마필이 사행하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기수 중심이 급격히 쏠리는 상황에서 마필 진행 방향의 기좌로 지지하며 반대쪽의 기좌는 사용할 수 없어 등자에 온 체중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짧은 등자이기에 반대쪽 기좌로 지지 한다 하지만 큰 힘으로 작용은 할 수 없고 반대쪽 등자에 체중 전부를 의지 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한번 잃은 밸런스에다 마필이 사행을 멈추지 않고 진행한다면 기수의 중심이 회복 불가능 상태에 빠져 결국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낙마의 순서를 보면, 제일 먼저 마필 진행방향의 기수 기좌가 풀어지고 이어서 반대쪽 등자에 의지하고있다가 떨어지는데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어찌 보면 뛰어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런 현상은 기수가 밸런스를 회복하고 낙마하지 않으려 노력하다가 밸런스를 회복하지 못하고 중심을 잡지 못 한채 갑자기 떨어지지 않고 같은 스피드에서 완만하게 이어지는 상황이기에 그런 것이다.

경마장에는 말도 많고 말도 많다. 기수에게는 낙마가 자칫 목숨과 바꿀 수도있는 절대절명의 사건인데 바라보는 팬들의 시각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
또한, 많은 분들이 낙법을 말하지만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높이가 있고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기에 아마도 낙법의 고수라 해도 전혀 사용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특히 어설프게 시도했다가는 공연히 타마의 발굽에 밟히기 십상이 아닌가 싶다.

기수가 말에서 떨어지는 것을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현역 시절의 경험담을 예로 들어서 여러 분의 이해를 돕는데 조금의 도움이라도 된다면 하는 바램이다.

말과 함께 하면서 수 많은 낙마가 있었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3건이 있다.

하나는 경주 중의 유일한 낙마로써 후배 기수의 진로방해로 앞다리가 걸려 넘어지면서 낙마하여 어깨의 인대가 끊어져 이로 인한 수술 상처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고..

나머지는 두 번의 고의적인 낙마가 있었으니..
그 하나는 기수 1년차의 수습 시절이었다. 소속조 마필도 전부 조교를 실시할 수도 없는 그런 실력인 상황에서 하루는 선임 기수선배님께서 술이 덜 깨셨는지 술 냄새 풀풀 풍기며 늦게 나와서 하는 명령이, 그 당시 급격한 외곽 사행으로 명성이 자자한 ‘인디애나’라는 말을 반대로 속보 2 바퀴 타고 오라고 했다. 물론 해당 마필은 그날 새벽이 첫 기승이었고..

안장을 얹어 가지고 나온 마필관리사 왈, "너 이제 죽었다"하면서 겁을 잔뜩 준다.
왜냐하면, 사실 그 말은 우리 선임 기수도 타지 않을 정도로 한마디로 성질 더러운 놈이어서 그 말을 전담으로 조교하는 힘 좋은 선배님이 계실 정도였다.
그러나 "반대로 속보 정도야 괜찮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에 나 보고 타라고 지시했으리라 생각된다.
"정신일도하사불성 이라 했는데" 빌어먹을 관리사가 미리 초 치며 사기 떨어뜨리고..
잔뜩 겁을 먹고 긴장하고 말에 기승하니 아마도 말이 눈치 챘으리라 싶다. 쪼다 같은 신참이 자기를 타려고 까불고 있다고..
아마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녀석이 날 완전히 물로 본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채 한 바퀴도 돌기 전에 말이 거의 날아갈 지경에 이르렀고, 도저히 제어 못하는 상태에서 이 녀석이 냅다 튀는데 내 실력으론 도저히 제어할 방법이 없었다.
말의 입이 거의 통나무에 고삐 매 놓고 당기는 듯이 엄청 뻣뻣하고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서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옆으로 뛰어내렸다. 나중에 정신 차려 보니 병원에 누워 있고..

그 당시 나를 병원으로 후송한 조교사님께서 나보고 “야 임마 죽으려고 환장했어? 뛰어내리게.."라고 하시면서 한참동안 카우보이 라고 놀리시곤 했다.
날 물 먹인 그 녀석 나중에 내가 강해지면서 나 에게 넙죽 엎드렸고 많은 기쁨도 주었음은 물론이며, 경주마의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녀석을 사랑했고 문득 그 녀석이 보고싶어 진다.

다른 하나는, 정확하진 않지만 조금의 세월이 흐른 후 그 당시 “제 3교실”이라는 TV 청소년 프로에 나가게 되었다. (물론 말 타는 역할에 한하였고) 기수가 경주 중 낙마하면서 좌절하고 정신적,육체적인 고통 받을 때 애인의 사랑과 설득으로 재기에 성공 한다는 줄거리였다.
사건의 핵심은, 마침 촬영 날이 경마일 하루 앞둔 날 이여서 그런지 재결에선 절대로 낙마는 허락할 수 없다는 명령이 내려왔다.
안장을 얹어 놓고 대기하는 중에 수많은 구경꾼(거의가 조교사 기수 관리사 직원) 속에서 서로 내기가 벌어졌다. "떨어질 것이다? 아니다?"로..
그런 와중에 하! 이 사람들이 나를 물로 보네 하면서 호기 아닌 오기로 떨어지기로 결심을 했고, 결승선 20M 전방 지점에서 보통구보로 진행하다(약 분당 350M 정도의 속도) 내 나름대로 멋있게 떨어져 보이겠다 하고 맘 먹었으나 떨어질 지점이 다가오자 망설이게 되고 쉽지 않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옆으로 떨어졌다.
그다지 빠르지 않은 속도인데도 탄력으로 한 3 바퀴 정도 몸이 굴러 같지 싶다.
유명 배우라면 스턴트맨이 대신 연기하였겠지만 첨 카메라 앞에 섰고 그래도 명색이 프로 기수인데 주지도 않겠지만 어찌 대역을 쓸 수 있겠습니까? 자존심 구겨지게 말이죠.

기수 생활동안 고의적인 낙마가 이와 같이 두 번이 있었으나 그다지 빠르지 않았고 또 아무도 옆에 없는 나 혼자만이 행한 행동이었음에도 쉽지 않은 것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낙마를 당할 때마다 정말이지 매번 머리가 곤두섬을 느낀다. 누구를 막론하고 떨어져 본 사람은 낙마의 고통이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오는 두려움과 데미지를 결코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음을 뼛속 깊이 새기고 있으리라.

하물며 경주에선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대부분이고 속도가 빠르고 말 무리 속에서 이루어지기에 고의로 떨어진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자살을 생각한다면 몰라도..
크고 작은 부상에 신음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경주 중 사고로 하늘나라로 간 후배도 있고, 하반신 마비로 인하여 장래가 유망했던 그 탁월한 기량을 펼치지도 못한채 지금도 정신적 육체적 고통 속에서 삶을 영위 하고있는 후배도 있고, 아울러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기수 또한 없음이니..

기수는 경마의 꽃이며 Horse Racer이지 스턴트맨도 아니고 목숨을 담보로 우매한 짓을 저지를 바보 멍청이는 결코 아니다.
극소수의 의견이긴 하지만 입상을 하기 싫어 낙마를 선택하는 짓은 꿈속에서도 생각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차라리 말을 당겨 정지를 먹거나 최악의 사태인 면허취소가 목숨보다 소중하지 않음을 모르는 기수는 단 한 명도 없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레이스를 끝내지도 못하고 비록 낙마하여 부상당하지 않았더라도 그 더러운 기분 이해하여 주시길 당부 드리고 싶다.

또한 내가 그랬으니 아마도 기수라면 가장 치욕적이고 심하게 생각하는 욕은 말에서 떨어져 죽으라는 소리일 것이다. 그 말은 정말이지 싫다.
과거 뚝섬 시절에는 주로 윤승 시 스탠드 앞으로 나가게 되 있었다. 인기마에 기승하고 입상에 실패하여 바짝 약이 올라 있는데 어떤 팬이 “야 백원기 말에서 떨어져 죽어라"하는데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못하고 윤승하다 말고 말을 세워서 그 팬한테 경마 끝나고 정문 앞에서 날 기다려 달라 차라리 내가 당신을 용서 하지 않겠노라 했겠는가..
고의도 아니고 실수도 없었지만 단지 입상에 실패했다는 결과만으로 그런 욕을 먹기엔 너무 피가 뜨거웠던 것일까?
그 당시 누군지는 모르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만나서 차 한잔 나누고 싶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만이라도, 고의적으로 낙마하는 기수는 절대로 없음을 믿어 주시고 말과 레이스를 좋아하고 사랑하여 기수란 직업을 선택한 기수에게 사랑하는 말에서 떨어져 죽으라는 말은 하지 말도록 부탁 드리고 싶다.

차라리 개나 소나 말 같은 놈이라고 욕하는 것은 얼마든지 개의치 않는다.
화가 나있는 상태에서 무슨 말은 못하겠는가 그러나 그건 아니지 싶다. 요즘은 여성 팬 들도 제법 많은데..
여성답고 우아하게(?) 화 내거나 욕 한다면 차~암~ 멋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여유를 갖고 허허 웃어 넘길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어찌 보면 기수란 직업은 좋던 싫던 욕을 먹는 직업이 아닌가 싶고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 여겨진다.

이 코너에 글을 쓸때 마다 항상 말씀 드리지만, 중이 제 머리 깎을 수 없음이니 기수들을 이해하고 알아 간다고 생각하여 주시기를 다시 한번 이해를 구한다.
아울러 말을 다루는 기수나 말과 함께 희비의 쌍곡선을 그리는 경마 팬 모두가, 초롱초롱 맑고 커다란 말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눈을 닮아 간다면 조금은 서로를 신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2004.07.21 PM12:25:00 입력
2005/12/19 16:02 2005/12/19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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