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듣는 숭산 선사 법문 1

“우리는 오직 모를 뿐”
“언제나 이순간 밖에 없다 아무것도 집착하지 말라”

서양인들 설교식 불교 원치않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 보고파 해




계룡산 국사봉 자락에 위치한 국제선원 무상사에서도 3개월 동안 용맹정진을 다짐하는 결제 법회가 열렸다. 이번 결제 법회에는 특별히 화계사 조실인 숭산 스님이 오셔서 법문을 해주시기로 한 까닭에 무상사는 아침부터 큰 스님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

오전 10시경 숭산 스님과 화계사 대중들이 무상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대중들이 “헬로우, 하우아 유?(안녕, 잘 지냈어요?)”하며 서로 정겹게 악수하고, 포옹하며 가벼운 볼 키스까지 나누는 풍경이 자연스럽고 다정해 보였다.

숭산 스님도 대중들을 향해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헬로 에브리바디(여러분 안녕하세요), 결제일입니다. 결제일이라는 것은 마음을 텅 비우고,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드디어 법회가 시작됐다. 무상사 선원동 2층 법당 앞쪽에 대중들을 마주보며 숭산 스님과 무상사 조실 대봉스님, 주지 오진 스님, 그리고 통역을 맡은 도관스님이 나란히 앉았다. 주지 스님과 조실 스님의 짧은 인사와 법문이 끝나고, 숭산 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에 와서 결제를 하게 되고, 이곳 무상사가 수행하기에 얼마나 좋은 장소인가를 설명하겠습니다.



숭산 스님.

무상사는 백두산에서부터 태백산을 거쳐 계룡산으로 이어진 국사봉 정맥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계룡산은 그 드높고 신비한 힘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동학사, 갑사, 신원사와 같은 큰 사찰들이 계룡산에 자리를 잡았으며, 한국 근대 불교의 정신적 스승인 경허·만공 스님과 같은 위대한 선사들이 이곳에서 수행을 하였습니다. 2년 후 무상사가 완공되면 이곳은 옛 선인들이 예언했던 대로 한국을 돕고, 세계를 도울 훌륭한 스승들이 여럿 나올 것입니다. 예로부터 큰 사람이 날려면 그 터를 보라고 했습니다. 명당이 아니고서는 훌륭한 도인이 나올 수 없습니다. 장소와 시간, 노력 모든 것이 들어맞아야 합니다. 깨달음을 이루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앞으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와서 수행을 하고, 깨달음을 이룰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에는 세계 평화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대중 모두가 저마다 큰 원력을 갖고, 무상사에서 참선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어 널리 중생 제도를 위해 힘써 주기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법문은 짧고 간단하면서도 힘찼다. 숭산 스님은 평소에도 긴 법문을 하지 않는다. 제자들의 질문에 간단한 대답으로 응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지도한다. 이는 순간 순간의 연결을 통해 제자와 스승의 밀접한 관계를 이루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숭산 스님은 줄곧 이 방법을 고수해 왔다.

이날 법회에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70여명이 동참했다. 이들은 3개월간 무상사 선원에서 함께 수행할 것을 서원했다. 보통의 한국 선원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다. 승속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본성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숭산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승속을 초월해 모든 대중이 똑같이 수행한다. 최근 재가불자들이 안거수행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는 하지만, 스님은 스님들만의 공간에서, 재가불자들은 또 다른 공간에서 각각 따로 수행을 하고 있음에 비추어 파격적이다.

숭산 스님의 안거 수행지도 방법 또한 전통적인 한국의 수행지도 방법과 다르다. 철저한 묵언수행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법회를 연다. 이때 참석자들은 수행에 대한 모든 질문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숭산 스님과 제자사이에 오가는 질문과 대답을 ‘공안인터뷰’라고 하는데, 숭산 스님은 이번 동안거 기간 중에도 화계사와 무상사를 오가며 공안인터뷰를 통해 제자들의 수행을 점검, 지도할 계획이다.

지난 30년간 해외 포교를 통해 숭산 스님이 배출한 서양인 제자는 5만명이 넘는다. 그 제자들의 공통적 특징 가운데 하나가 서양철학에 심취하고, 기독교적 전통에서 살아왔으면서도 내가 누구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삶의 방향과 목표를 찾지 못했던 이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숭산 스님의 가르침을 접하고서야 비로소 그 의문들을 풀고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그동안 읽었던 많은 책의 지식과 논리적 근거들을 버리고, 원래 그대로의 본성인 마음자리로 향하는 수행의 길에 올랐다. 이미 자전적 에세이집 <만행>으로 유명해 진 현각스님(미국인)을 비롯해 무상사 조실 대봉스님(미국인), 무상사 주지 오진스님(폴란드인) 등이 모두 그러한 인연들로 이국땅인 한국에서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이다.

이 스님들은 모두 숭산 스님의 생활 자체가 그대로 가르침이며 귀감이 된다고 말한다. 숭산 스님은 “언제나 이 순간 밖에 없다. 아무 것도 집착하지 말라. 우리는 오직 모를 뿐이다! 공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생과 같이 있는 것이다. 우리 생활과 떨어진, 지식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 생활의 영향을 그대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본래 있는 그대로에서 깨달음을 구하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제자들과 신도들은 순간순간 올바른 상황, 관계, 행동으로 자신의 인생을 실천하고 있는 숭산 스님을 수행자의 사표로 삼아, 스승의 삶을 바로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본래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하나씩 터득해 나간다.

오래 전 숭산 스님이 제자들과 멕시코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곳에서 잠시 머물렀는데, 숭산 스님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하러 대봉 스님이 숙소를 찾아갔다. 그때 스님은 잠에서 깨어나 속옷 차림으로 대봉 스님을 반갑게 맞았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또 다른 스님이 숭산 스님을 찾아왔다. 숭산 스님은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그 스님을 반갑게 맞았고, 스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나서 잠시 후에 한국인 제자 스님이 숭산 스님을 찾아왔다. 숭산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저고리와 마고자를 차려입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저마다 어떻게 다른지 헤아리는 스님은, 찾아오는 제자들에 따라 옷 입는 그 한 가지에도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하신 것이다. 그때 대봉 스님은 숭산 스님의 작은 행동에서 큰 가르침을 얻었다고 한다.

이뿐이 아니다. 이번 동안거 결제 법회 날 아침 대봉 스님은 몇몇 스님들과 유성의 여관으로 숭산 스님을 모시러 갔다. 한국인 시자 스님과 외국인 스님들이 큰 탁자에 둘러앉았는데, 숭산 스님이 언제 준비해 오셨는지 사탕, 과자, 빵 등을 한아름 내놓고 먹으라고 권했다. 계룡산 산골에서 군것질거리가 궁했을 외국인 제자들을 위해 서울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직접 휴게소에서 사 오신 것이다. 외국인 제자들은 그 과자들을 맛있게 먹었다. 그러자 한국인 시자스님이 과자, 빵을 다시 숭산 스님 앞에 가져다 놓았다. 숭산 스님은 다시 그 과자들을 앞으로 내어 놓았고, 몇 번의 오고감 속에서 모두의 눈빛이 하나로 모아졌다.

대봉 스님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이 다르다. 생활방식과 문화도 다르다. 어떻게 그 사람과 사람사이를 연결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가? 이것이 숭산 스님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가르침이다. 숭산 스님은 진정으로 모르는 마음을 가지고, 집착 없이 모든 상황들에 대처하라고 당신 스스로의 실천을 통해 말없는 법문을 항시 해 주시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덧붙여서 대봉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서양의 불자들은 기도와 명상 외에는 관심이 없다. 대부분이 수행을 통해 마음이 맑아지고 깨달음을 얻길 원한다. 기독교적 선교 방식에 피곤해져 있는 서양인들은 불교의 스님들이 행동으로 실천하는 걸 보고 싶어 하지, 설교식으로 하는 불교를 원치 않는다. 숭산 스님은 한국인 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적인 방식이나 형태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 가시더라도 그 나라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을 먼저 헤아린다. 어떤 계획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구하는 바가 바르고, 마음이 맑을 뿐. 순간에 한사람을 만나서 얼마나 올바른 방향을 보여줄 수 있나를 몸소 보이신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가 참 힘들다.”

이렇듯 제자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 진정한 보살도로 이끌어 주는 숭산 스님. 매일 매일의 생활수행을 통해 우리 자신을 깨우고, 이 세상에 도움이 되도록 중생 제도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숭산 스님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우리는 진리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만물은 공(空)하므로 모든 것이 이미 완벽한 길입니다. 이것을 지적으로 혹은 학문적으로 이해하려 하면 안됩니다. 수행을 통한 어떤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실제로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절대이고 경계가 없으며, 나의 모든 행동이 순간순간 중생을 향한 큰 사랑과 자비라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사실 본래 ‘나’라는 것도 없으므로 다른 중생을 위한다는 말조차 틀린 말입니다. ‘나’와 ‘남’의 경계가 없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 길에는 생각도 없고, 고통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방해하는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순간순간의 모든 행동은 진리이며 완벽하게 다른 중생의 고통과 닿아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그를 도와 줄 수 있을까?’ 이것이 진정한 인간의 길이며, 완벽한 길이며, 진리의 길입니다.”

무상사에서의 동안거 결제 법회가 끝나고, 숭산 스님은 무상사를 떠나기 전에 제자들과 요사채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오! 에브리바디 히어. 원더풀, 원더풀.(여러분 다 여기 모여 있었군요. 좋아요)” 특유의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미소로 숭산 스님은 제자들과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다. 차에 올라타 무상사를 뒤로 하면서도 연신 손을 흔들며 “바이, 바이”를 외치는 스님과 합장으로 배웅하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자비로운 큰 스님의 그늘이 얼마나 크며 포근하고, 또 소중한 것인지 알수 있었다.

글=이은자 기자 ejlee@buddhapia.com
사진=고영배 기자 ybgo@buddhapia.com



숭산스님은?

숭산 스님은 제자들로부터, 존경하는 선의 선생님이라는 뜻인 ‘선사(禪師)님’으로 불린다.

30년 이상 전 세계를 돌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 온 숭산 스님. 그동안 세계 30개국에 세워진 선원만 120여 군데나 되고, 교수 박사 등 엘리트층의 일반신도를 비롯해 신부 수녀 목사 등에 이르기까지 인종과 언어, 문화와 종교를 초월한 폭넓은 포교를 해왔다.

숭산 스님은 5년 전 부터 전 세계의 불교신자들이 함께 모여 수행할 수 있는 국제선원을 계룡산에 마련할 계획을 세웠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계룡산 국제선원에서 수행하여, 법사나 선사가 된 후 자신의 나라에 돌아가 선원을 세우고 한국식 불교를 가르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1927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난 숭산 스님은 47년 마곡사에서 출가해, 49년 수덕사에서 고봉 선사를 법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58년 화계사 주지, 60년 불교신문사 초대 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66년 일본 홍법원 개설을 시작으로 홍콩, 미국, 캐나다, 브라질, 프랑스, 싱가포르 등에 홍법원과 국제선원을 개설하며 적극적인 해외 포교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현재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이며, 화계사 조실이다.

2004-11-30 오후 5:41:00
2004/11/30 16:55 2004/11/3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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