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탐방> 새용산박물관 전시실을 가다⑤

경주 서봉총 출토 은합(銀盒)

뚜껑과 몸체의 조립식 은 그릇

신라의 4-6세기 문화는 고분에서는 적석목곽분(績石木槨墳)으로 흔히 대표되며, 출토유물로는 황금을 비롯한 금속유물이 유명하다. 이 신라실을 채우게 되는 전시물 역시 대종은 적석목곽분 금속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경주 서봉총 출토품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은으로 만든 합(盒)이라는 그릇. 몸체와 뚜껑 조립식인데 뚜껑 안쪽과 몸체 바닥에는 각각 '延壽元年太歲在卯'(연수 원년 태세 재묘)와 '延壽元年太歲在辛'(연수 원년 태세 재신)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고 있다.

두 곳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연수'(延壽)라는 말은 연호(年號)일 것이며, 이 은합이라는 기물(器物)이 제작된 연대를 지칭하고 있으리라. 태세(太歲)란 목성이 태양 주위를 도는 주기를 기준으로 시간을 헤아리는 부호다.

목성은 12년마다 태양을 한 바퀴 돈다. 이렇게 되면 희한하게도 12간지(干支)와 대응시켜 연대를 구별할 수 있게 된다.

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대목은 이 은합(銀盒)이 제작된 신묘(辛卯)라는 해가 하나(卯)는 뚜껑에, 다른 하나(辛)는 몸통에 표현돼 있다는 사실이다. '辛'이 들어간 10천간(天干)은 '卯'가 포함된 12간지에 대해 음양설에서는 양(陽)이 된다.

천간과 간지를 떼어 놓는 수법으로 연대를 표시하는 이런 방식에서 우리는 다시금 경주에 적석목곽분이 축조되던 그 시대 신라사회에 음양오행설이 얼마나 깊숙하게 침투해 있었는지를 여실히 확인하게 된다.

서봉총 은합에 새긴 명문에 의하면 이 그릇은 천간지지로는 신묘년에 해당되고 연수라는 연호로는 원년이 되는 해 "3월 중에 태왕(太王)이 교(敎.명령)하시어" 제작됐다.

학계의 다수는 이 은합이 고구려에서 제작돼 어떤 경로로 신라에 흘러들어 서봉총에 묻힌 것으로 보고 있으나, 그것을 뒷받침할 결정적 증거는 없다.

혹자는 '연수'라는 연호가 고구려에서 사용된 것이라고 주장하나, 고구려가 연호를 사용한 증거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광개토왕 비문에서 그를 영락대왕(永樂大王)이라 칭하고, 그의 재위 기간 중 일어난 사건을 '영락 ●년"이라는 식으로 기록한다 해서 영락(永樂)을 연호로 간주하고 있으나 이는 어불성설이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비문 그 자체가 영락이 호(號)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호(號)란 미칭(美稱)이란 기록이 중국에서는 이미 진한(秦漢)시대부터 쏟아지고 있다. 미칭이란 말할 것도 없이 존칭이라는 뜻. 그 외 다른 고구려 유물에서 연호가 확인되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문제가 적지 않다.

이 서봉총 은합이 신라 유물이라는 결정적 증거는 사실 서봉총이 축조되던 그 무렵 같은 신라 무덤에서 이와 거의 똑같은 유물이 다수 출토됐기 때문이다. 서봉총 은합이 고구려 수입품이라면 다른 신라무덤 모든 비슷한 출토품, 심지어 경산 임당동 고분 출토품도 고구려 수입품이라는 결론이 도출되고 만다.

황남대총 유물로는 북분 출토 금으로 만든 등자가 있다. 한데 황금 마구류가 이뿐만 아니다. 여타 소규모 장식품도 금제품이 압도적이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말 등자까지 금으로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장례는 검소하게 치러야 한다는 절장(節葬)의 사상가 묵자(墨子)의 외침이 신라에는 전해지지 않았던지, 전해졌다 해도 콧방귀도 뀌지 않았나 보다.

봉분 두 개를 남북으로 나란히 잇대어 놓은 쌍둥이 무덤인 황남대총 중에서도 여성을 묻었음이 확실한 북분은 남성이 묻힌 남분에 비해 '황금파티'가 더하다. 이곳에서는 각종 금제 그릇이 출토됐다. 그 모양도 굽다리 접시를 흉내낸 것도 있다.

그에 비해 황남대총 남분은 은색(銀色)이 상대적으로 짙다. 이곳 출토 은제 그릇 넉 점이 전시코너를 장악하고 있는데, 북분 금제 그릇이 그렇듯이 이곳 출토 은제 그릇 중에서도 굽다리 접시가 보인다.

같은 경주지역 적석목곽분인 식리총(飾履塚)은 이곳에서 황금신발이 출토됐기 때문에 이런 명칭을 얻었다. 식리(飾履)란 굳이 그대로 해석하면 장식용 신발이란 뜻이지만, 그냥 신발이라고 보면 된다. 한데 이 황금신발은 신발 밑창만 남았다.

이 식리총 출토품으로는 그 마스코트격인 황금신발 한 켤레 외에도 모양이 서봉총 은합과 매우 흡사한 그릇이 있다. 한데 그 재료는 청동이다. 이 역시 서봉총 은합처럼 몸체-뚜껑 조립식인데 뚜껑 복판에는 봉황으로 생각되는 고리를 장식하고 있다. 초두라고 하는 일종의 세 발 솥(혹은 냄비)도 식리총 대표주자로 나온다. 청동인 이 초두가 보통의 솥과 다른 점이라면 다리미처럼 길쭉한 손잡이가 달렸다는 데 있다. 죽은 사람이 저승에 가서도 두고 두고 음식을 해 드시라는 의미를 담았을 것이다.

이 외에도 적석목곽분 출토품으로는 일일이 수량을 헤아리기도 힘든 각종 구슬류가 꾸러미 상태로 출품을 기다리고 있다. 중국에서 왔을 것으로 보이는 각종 유리제품도 빼놓을 수 없다.

(연합뉴스 / 김태식 기자 블로그 200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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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9 02:53 2007/03/19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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