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올리버 색스, 이마고, 2006(원저1985)


'열등한' 반구라고 불리는 멸시를 당할 정도로 우반구에 대한 연구가 소홀하게 다루어진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좌반구의 손상 부위와 그에 따른 증상을 밝혀내는 것이 비교적 쉬운 일이었던 데 반해, 우반구의 각 영역에 해당하는 증후군은 알아내기가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우반구는 좌반구보다 좀더 '원시적'인 것으로 비하되곤 했다. 반면 좌반구는 인간의 진화가 만들어낸 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 주장이 옳다. 좀더 정교하고 전문화되어 있으며 영장류의 뇌, 특히 인간의 뇌에서는 가장 나중에 발달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인식하는 능력 즉 생명체가 생존하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할 능력을 담당하는 것은 우반구이다.

p.20


나이가 들면 중풍이나 노쇠, 뇌 손상 등으로 그때까지의 생활 즉 고도의 정신생활이 예상치 않게 빨리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겪는다 해도 자신이 인생을 살아왔고 자신의 등 뒤에 과거가 있다는 기억은 남으며, 그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뇌를 다치기 전 또는 발작을 일으키기 전에는 힘껏 노력하면서 살았다.'라고. '인생을 살았다'라는 의식은 인간에게 때로 위안을 주기도 하고 때로 쓰디쓴 회한을 주기도 하지만, 역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리면 이러한 의식조차 없어진다.

내가 진찰했던 어떤 환자는 머리 뒤쪽으로 통하는 혈관이 막혀 뇌의 시각을 담당하는 부분이 죽어버렸다. 시력을 완전히 상실했는데도 정작 본인은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행동을 보면 장님이 틀림없었지만 그는 한마디 불평도 없었다. 질문과 검사 결과에 따르면 그는 완전히 장님이 되었을 뿐 아니라 시각적 상상력과 기억을 몽땅 잃어버렸다. 그런 까닭에 그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본다'는 관념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는 무엇 하나 표현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디'라든지 '빛'과 같은 개념을 질문하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쩔쩔맸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본다'는 것과 관게 있었던 모든 부분을 상실하였다. 발작을 일으킨 순간에 사라져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다.

pp.88-89


제육감(第六感)이란 근육, 힘줄, 관절 등 우리 몸의 움직이는 부분에 의해 전달되는, 연속적이면서도 의식되지 않는 감각의 흐름을 말한다. 우리 몸의 위치, 긴장, 움직임은 이 제육감을 통해서 끊임없이 감지되고 수정된다. 그러나 무의식중에 자동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다른 감각들 즉 오감은 누가 보더라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 숨겨진 감각은 1890년대에 셔링턴에 의해 발견됨으로써 비로소 그 존재가 알려졌다. 그는 그것을 '외감각'이나 '내수용'과 구별하기 위해서 '고유감각'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이름을 붙인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제육감은 자신이 자신임을 아는 감각으로는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고유감각'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몸이 자기 고유의 것, 자기의 것임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셔링턴, 1906, 1940)

pp.93-94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막연히 '근육감각'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말한 '근육감각'이란 관절과 힘줄에 있는 수용체를 통해 전달되는, 몸통과 손발의 상대적 위치의 인식이다. 그러나 이 감각의 정체가 분명하게 밝혀지고 '고유감각'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1890년대의 일이다. 그리고 공간 속에서 몸을 똑바로 세워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복잡한 메커니즘과 제어가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 단순히 속귀 미로뿐 아니라 세 개의 숨은 감각(속귀감각, 고유감각, 시각)의 복잡한 통합에도 적용된다. 파킨슨병으로 손상된 것은 방금 말한 통합인 것이다.

… 이 3중의 감각제어시스템에서는 세 가지의 감각제어 하나하나가 다른 것의 결함을 메울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각각의 기능은 별도의 것이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완벽하게 대신하는 것은 무리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대행할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시각반사와 시각제어의 중요성이 훨씬 낮다. 따라서 전정시스템과 고유감각계가 손상되지 않는 한, 눈을 감고 있어도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눈을 감았다고 해서 앞이나 옆으로 기울거나 쓰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균형이 불안정한 파킨슨병 환자는 눈을 감자마자 옆으로 기울거나 쓰러지는 일이 있다. (파킨슨병 환자가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몸을 한쪽으로 크게 기울인 채 앉아 있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거울을 보여주면 자신의 기우뚱한 자세를 깨닫고 얼른 자세를 고친다.)


pp.146-150

… 나를 포함해서 언어상실증 환자를 접하는 사람들이 자주 느끼는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거짓말을 해도 금방 들통 나고 만다. 언어상실증 환자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말을 듣고 속는 일도 없다. 그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하게 파악한다. 그들은 언어가 갖는 표정을 간파한다. 종합적인 표정, 언어에 당연히 수반되는 표정을 느끼는 것이다. 언어를 사용해서 거짓말을 하기는 쉽다. 그러나 표정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언어상실증 환자들은 그 표정을 간파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말했듯이 목소리의 표정과 음색에 대해서 뛰어난 감수성을 지닌 언어상실증 환자에게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언어상실증 환자와 정반대의 증상을 가진 환자의 경우에는 어떨까? 즉 단어를 이해하는 힘은 있지만 목소리의 표정과 음색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 사람의 경우다. … 전문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언어상실증이 아니라 일종의 인식불능증, 소위 음색인식불능증 환자다. 말의 의미는(나아가 문법구조까지도) 완벽하게 이해하지만 말투, 음색, 느낌, 음 전체의 성질 등 목소리의 표정은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언어상실증이 '왼쪽' 관자엽의 장애에 원인이 있는 데 반해 이러한 음색인식불능증은 '오른쪽' 관자엽의 장애로 인해 일어난다.

우리 정상인들은 마음속 어딘가에 속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잘 속아 넘어간다. ('인간은 속이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속는다.') 음색을 속이고 교묘한 말솜씨를 발휘할 때 뇌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만 빼고 전부 다 속아 넘어간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pp.161-166


1885년 샤르코의 제자인 질 드 라 투렛은 놀라운 증후군에 대해 발표했다. 그 증후군은 발표되지마자 바로 투렛 증후군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투렛 증후군은 신경질적인 에너지 그리고 기묘한 동작이나 생각이 과잉현상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틱, 흠칫거림, 매너리즘, 찡그린 얼굴, 신음소리, 욕설, 무의식적인 모방, 갖가지 강박 등이 나타난다. 동시에 기묘하고 반짝이는 유머와 변덕스럽고 유별난 행동도 볼 수 있다. 중증은 경우에는 정서, 본능, 상상에 관련된 모든 면에서 증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보다 가벼운 증상(아마도 흔히 볼 수 있는 증상이기도 할 것이다)일 때는 기껏해야 이상한 동작이나 충동적인 행위 정도에 머문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묘하기는 마찬가지다.

p.177


파킨슨병 환자의 경우에도 L-도파를 투여해서 '각성'을 일으키게 한 뒤에 그림을 그리게 하면 도움이 되는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처음에 나무를 그리라고 하면, 그들은 왜소하고 빈약한데다 잎이 완전히 떨어진 겨울나무를 그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L-도파를 투여해서 각성시키면 생생하면 힘이 넘치며 잎이 무성한 나무, 생기로 가득 찬 나무를 그린다. … 암페타민 중독 상태에서 그리는 소위 스피드 아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상상력이 눈을 떠 점점 활발해지다가 마침내 끝없는 과잉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 또한 코카인 같은 마약을 복용했을 때 나타나는 특수한 불안정 상태도 의심할 바 없이 이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코카인은 L-도파나 투렛 증후군과 같이 뇌 속의 도파민을 증가시킨다.)

pp.204-205


… 과거라는 것을 지니고 있으며 연속하는 '역사'와 '과거'가 각 개인의 인생을 이룬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의 인생 이야기, 내면적인 이야기를 지니고 있으며 그와 같은 이야기에는 연속성과 의미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곧 우리의 인생이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야말로 우리 자신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자기정체성이기도 한 것이다.

만약 누군가에 대해 알고 싶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이야기, 그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진실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전기(傳記)이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우리 자신에 의해, 우리 자신을 통해, 우리들 안에서 즉 지각ㆍ감각ㆍ사고ㆍ행동을 통해서 스스로 끊임없이 무의식 중에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물론 입으로 말하는 이야기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생물학적으로나 생리학적으로 우리는 서로 그다지 다를 것이 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그리고 이야기의 화자로서 우리 모두는 각각 고유한 존재이기도 하다.

pp.213-214


그녀는 커다란 동요를 일으켰다. 음악은 변함없이 시끄럽게 울려퍼졌다. 상황이 이렇다면 믿을 수 있는 것은 이비인후과 의사밖에 없었다. '날 진료해주는 의사한테 상담을 해야지. 그분이라면 난청 때문에 생긴 단순한 이명현상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할 거야.' 그러나 다음 날 아침에 진찰을 받았더니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틀렸습니다, C부인. 귀 때문이 아닙니다. 끼리릭끼리릭, 윙윙,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들리면 이명일 수도 있지만 아일랜드 노래가 들린다면 그건 귀탓이 아닙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정신과에서 진찰을 받아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녀는 그날로 정신과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다.

"틀렸습니다, C부인. 정신적인 것이 아닙니다.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닙니다. 머리가 잘못된 사람에게는 음악이 들리지 않습니다. 목소리가 들리지요. 신경과 의사에게 가서 진찰을 받으십시오. 제 동료인 색스 선생에게 가보시지요."

이렇게 해서 그녀는 나를 찾아왔다.

pp.250-251


어린아이들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듣고 싶어한다. 아직 일반적인 개념이나 범례를 이해하는 힘이 없는 동안에도 이야기의 형태로 나타난 복잡한 내용은 잘 이해한다. 세계가 어떤 것인가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이야이적인' 혹은 '상징적인' 힘이다. 상징이나 이야기를 통해서 구체적인 현실이 표현되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사고 따위가 아직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무렵부터 '이야기적인' 힘은 위력을 발휘한다. 아이들은 유클리드를 이해하기에 앞서 성경을 먼저 이해한다. 그 까닭은 성경이 좀더 단순하기 때문이 아니라(아마 그 반대일 것이다) 성경이 상징으로 표현되는 이야기의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pp.340-341


음악, 이야기, 극에는 실천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대단히 중요한 힘이 있다. 지능지수가 20 이하이고 운동능력이 지극히 떨어지는 저능아의 경우에도 이 말은 그대로 적용된다. 그들의 어색하기 짝이 없는 동작도 그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 돌연히 사라진다. 그들은 음악이 나오면 어떻게 움직이면 좋은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네댓 가지 동작과 순서로 이루어진 단순한 작업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저능아들도 음악에 맞추기만 하면 그것을 완전하게 해낸다.

… 연극은 좀더 효과적이다. 연극에서 맡는 배역에는 조직하고 통합하는 힘이 있다. 연극에 계속되는 한 '배역'은 통합된 인격을 계속해서 지니기 때문이다. 맡은 배역을 연기하거나 무언가가 '되는' 능력은 인간의 특권이다. 여기에서 지능의 격차 따위는 전혀 관계가 없다.

pp.343-344


헤르만 폰 헬름홀츠는 음악적 지각에 대해 "복합음의 분석이 가능하고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음을 하나하나 나누는 게 가능하다 할지라도, 보통 인간의 귀는 그것을 독특한 음색으로 된 나뉠 수 없는 전체로서 듣게 된다."는 말을 했다. 이는 분석보다 한 단계 위의 종합적 지각에 대해 말하는 것이며, 음악적 감각의 본질이라 할 수 있겠다. 헬름홀츠는 이러한 음을 사람의 얼굴과 비교했다. 즉 우리가 사람을 분간할 때 그의 얼굴을 보고 그 사람 전체를 깨닫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자 고유한 방법으로 음을 인식한다는 설명이다. 요컨대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음악에서의 음과 장단은 사실 귀에 대해서는 마치 '얼굴'과 같은 것으로 음과 장단을 듣는 순간 전체적인 모습의 '사람'(혹은 '개성')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 특히 흥미로운 것은 사람의 얼굴을 지각 또는 인식할 때의 방식이다. 우리가 사람의 얼굴을, 적어도 본 적이 있는 얼굴을 알아볼 때는 그 자리에서 직접적으로 알아본다. 세부사항을 보고 그것을 분석함으로써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점과 관련해서는 많은 증거가 있다. 그러나 이미 보았듯이 얼굴인식불능증인 경우에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환자는 우후두겉질에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사람의 얼굴을 얼굴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답답할 정도로 에돌아가는 간접적인 길에 의존해야 한다. 의미도 없는 개개의 특징점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것이다.

pp.384-385

2007/07/31 13:14 2007/07/31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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