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30

2010/05/30 20:51 / My Life/Diary
《처음 이야기로 되돌아갑시다. 제우스 이야기가 왜 나왔어요?》

《아, 그 양반… 그 양반의 고민을 알아주는 건 나밖에 없습니다. 그 양반 물론 여자 좋아했지요. 그러나 당신네 펜대잡이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다르고말고. 그 양반은 여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킨 겁니다. 언젠가 시골 구석을 다니다 이 양반은 욕망과 회한으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노처녀, 혹은 아리따운 유부녀를 보았습니다. (꼭 아리따운 여자일 필요는 없습니다. 괴물이라도 상관없습니다). 남편은 멀리 떠나고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 양반은 성호를 척 긋고 변장합니다. 여자가 좋아할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리고는 그 여자 방으로 들어갑니다.

그저 적당하게 애무만 바라는 여자는 상대도 하지 않았어요. 턱도 없지. 녹초가 될 판인데도 최선을 다해주지요. 당신도 무슨 말인지 알겁니다. 이 암양들을 어떻게 일일이 다 만족시켜요? 오, 제우스, 저 가엾은 숫양, 귀찮은 내색 한 번 하는 법이 없었어요. 좋아서 그 짓 한 것도 아닐겁니다. 암양을 네댓 마리 해치우고 난 숫양 본 적 있어요? 침을 질질 흘리고 눈깔에는 안개와 눈꼽투성입니다. 기침까지 콜록콜록 해대는 꼴을 보면 그거 어디 서 있을 성싶지도 않습니다. 그래요, 저 불쌍한 제우스도 그런 고역을 적잖게 치렀을 겝니다.

그리곤 새벽이면 이렇게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을 겁니다. “오, 하느님. 언제면 좀 편히 쉴 수 있을까요? 죽을 지경입니다.” 이러고는 질질 흐르는 침을 닦았을 겁니다.

그때 문득 또 한숨소리가 들립니다. 저 아래 지구위에서 한 여자가 반라에 가까운 잠옷 바람으로 발코니로 나와 풍차라도 돌릴 듯이 한숨을 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제우스는 또 불쌍한 생각이 듭니다.

그는 끙하고 신음을 토해 냅니다. “이런 니기미, 또 내려가야 하게 생겼구나! 신세 타령하는 여자가 또 있으니 마땅히 내려가 달래주어야 할 일!” 이런 짓도 오래 하다보니 여자들이 제우스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빨아버리고 맙니다.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그는 먹은 것을 토하더니 지체가 마비되어 죽어버립니다. 그의 뒤를 이어 그리스도가 이 땅에 내립니다. 그는 이 제우스의 꼴이 말이 아닌 걸 보고는 가로되. “여자를 조심할지니.”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pp.373-374

우리는 소주 몇 병에 감자탕 大짜를 먹고 있었다. 그는 목사이자 시인이자 교수였는데, 당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책이라면서『그리스인 조르바』를 권했다. 감자탕 그릇 속을 후비적거리던 모습만 생각이 나고 이름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2010/05/30 20:51 2010/05/30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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