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환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위원 |  06/09 12:42 | 조회 2271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3년말 우리나라 제조업의 부채비율은 123%였다. 외환위기 당시 396%에 달하던 부채비율이 6년 만에 1/3로 떨어진 것이다. 미국의 부채비율155%보다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2002년 처음으로 우리의 부채비율이 미국보다 낮아졌을 때는 적지않은 흥분도 안겨주었다. 외환위기의 한이 어린 부채비율의 하락은 재무구조개선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어느덧 사회적 의제가 달라졌다. 재무구조개선은 더 이상의 관심사가 아니다. 이제는 오히려 부채비율 하락이 기업의 불안심리와 투자부진의 상징이 되고있다. 갑작스러운 상황변화에 당혹감마저 느낀다. 투자활성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그에 앞서 몇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의 부채비율 개선은 상당부분 과장된 것이다. 미국처럼 연결재무제표를 기준으로 산출하면 우리의 부채비율은 크게 올라간다. 최근 증권거래소가 집계한 연결 전후의 부채비율 변화를 감안하여 환산해보면 우리 제조업의 부채비율은 대략 200% 남짓이 된다. 계열사간 순환출자가 가장 큰 교란 요인이다. 이러한 숫자놀음은 위기의 순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연결재무제표의 기본 재무제표화를 둘러싼 어지러운 논란과는 별개로, 이로 인해 발생하는 지표의 착시효과는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부채비율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안정성 지표가 큰 폭의 개선을 보였다. 그러나 차입금 기간구조의 악화를 감안하면 재무적 안정성의 제고를 단언하기는 어렵다. 우리 제조업의 단기차입금 비중은 최근 꾸준히 상승해서 55%에 달하고 있다.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따라 유동성리스크에 대한 대비를 부쩍 강화하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와 명백한 대조를 이룬다.

18% 수준인 미국 제조업과는 아예 견주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금융위기는 어떤 이유로 단기자금의 연장이 한계에 부딪히는 유동성위기에서 시작된다. 1997년 외환위기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접근방식은 너무도 한가롭다.

한국은행은 단기차입금비중 증가의 원인으로 투자부진에 따른 장기차입금 수요 감소와 금리하락세 지속을 들고 있다. 그러나 여건이 다르지 않은 선진국의 사례를 감안하면 이러한 분석에 동의하기 어렵다.

구조적인 모순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유동성리스크에 대한 우리 시장의 불감증에서 첫번째 원인을 찾고 있다. 상당수 기업들이 리스크 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현금유동성조차 확보하지 않고 있지만 이에 대한 경계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책은행의 과도한 보호와 개입도 한 원인이다.

이러한 기업의 대부분이 차입금의 60% 이상을 몇몇 국책은행에 의존하고 있다. 시장의 실패가 존재하는 경우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신용등급이 A~AA인 기업의 금융편중은 도덕적 해이를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더불어 CP시장을 비롯한 단기금융시장의 후진성도 한 몫 한다.

2003년 신용카드 위기도 상당부분 이러한 요인에 기인한다. 위기는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지표의 왜곡된 해석과 섣부른 자아도취는 다시 위기로 다가서는 지름길이다. 투자활성화와 지속적 구조개선을 적절하게 조화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경제신문) >


출처 : 머니투데이 (2004.06.09)
2004/06/09 12:49 2004/06/09 12:49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Trackback RSS : http://www.fallight.com/rss/trackback/331

Trackback ATOM : http://www.fallight.com/atom/trackback/331


« Previous : 1 : ... 1237 : 1238 : 1239 : 1240 : 1241 : 1242 : 1243 : 1244 : 1245 : ... 1287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