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산경남경마공원은 서울경마공원보다 뛰어난 경마 시스템을 갖췄는가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서울과 부경의 교류경주. 특히 3세마 삼관경주에서 부경 경주마들이 서울 경주마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수차례 보여주자, 소위 경마전문가ㆍ예상가들은 이에 대한 여러가지 이유를 제기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거론된 차이점이 바로, “서울과 비교할 수 없는 부경의 치열한 경쟁 시스템”이다. 상금의 대부분이 경쟁성 상금으로 이루어진 부경에서는 조교도 서울보다 열심히 시키고, 언제나 최선의 승부를 다하며, 보다 선진화된 마방 운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세부 내용이다.

(표)

(표1)은 2008년부터 열린 교류경주의 성적표로, 각 경주 출전한 서울과 부경 경주마를 3순위까지 나타낸 표다. 일단 부경 경주마들의 우위가 보인다. 그렇다면 부경의 경주마를 개별 마필별로 나누어 입상분포를 보면 어떨까.

개선장군(부경)은 교류경주에서 4회 입상, 상승일로(3회), 연승대로(3회), 천년대로(3회), 당대불패(3회), 남도제압(2회), 절호찬스(2회)다. 서울의 경우 매직빅터, 마이티갤러퍼, 탐라선택, 가야보배, 포리스트윈드, 더올마이티, 로즈캣 같은 마필은 입상은 커녕 서울에서도 여전히 1군에 진입하지 못한 경주마다.

특출난 국산 경주마가 부경에서 나오고 있고, 꾸준한 활약으로 말미암아 교류경주에서 부경이 우위를 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들 경주마들 덕분에 부경 자체가 엄청난 경쟁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외산마의 경우는 국산마와는 반대로 특출난 외산마가 서울에서 나오고 있고, 그들의 꾸준한 활약으로 혼합교류경주에서 서울이 우위를 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은 부경에 뛰어난 국산마가 있고, 서울에 뛰어난 외산마가 있다는 것만 보여줄 뿐, 조교나 시스템 자체에 차이가 있다고 할만한 근거를 제시해주지 않는다. 같은 조교를 받는 외산마는 서울이 더 강했고, 더욱이 2010년 코리안오크스에서는 서울 경주마가 1ㆍ2ㆍ3위를 모두 차지했다. (특이하게도 이를 주목하는 경마전문가들은 없었다.)

그렇다면 왜 유독 부경에서 뛰어난 국산마가 나오는가?


2. 입도선매(立稻先買)의 위력

많은 경마전문가 및 경마팬들은 조교 및 경마시스템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더 치열하게 조교시키고 관리하면 경주마는 더 강해지고 더 빨라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주마는 많이 굴릴수록 망가질 위험만 커진다. 마사회의 해외연수사업 초기에 기수들과 조교사들이 해외에 나가서 실전을 방불케하는 조교 모습을 보고 자기들도 선진경마를 해보겠다고 엄청난 조교를 벌인 적이 있다. 그 경주마들은 더 강해지고 빨라지기는 커녕, 얼마 안 가서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조교와 마필 능력에 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의가 있지만, 이 주제를 다룰 기회가 있다면 그때 더 자세히 논의하도록 하겠다.

조교와 경마시스템의 효과를 제외한다면, 과연 무엇이 서울과 부경의 차이를 낳는가?

(표2)

(표2)는 (표1)에 제시된 마필 가운데 수득상금 2억원이 넘는 마필들의 경매구매가와 개별구매가다. 확연하게 보이는 점은, 뛰어난 경주마들 가운데 경매로 구매된 마필의 상당수는 서울 경주마고, 개별구매나 자가생산으로 거래된 경주마는 부산이 더욱 많다는 점이다.

다만 개별구매가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기본적으로 개별구매가 자체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생산자와 마주 사이에 발생한 금전거래 사항을 누가 보증해주겠는가? 또한, 구매가는 구매시점에 따라 판단되야 하는데, 외부인은 구매시점을 알 수 없다. 만약 1세 때 구입한 말이라면 2세마 경매에서 구입한 말에 들이지 않아도 될 상당한 제반비용(사양관리, 조교비 등)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싹이 보이는 어린 말을 일찍 구입했을수록, 신고된 가격보다 더욱 많은 가격을 지불한 셈이된다.

경매로 넘어온 마필들의 우위를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높은 경매가를 주고 서울에서 구매한 마필이 좋은 성적을 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개별구매에서는 양상이 달라진다. 부경의 특출난 마필들은 대부분 입도선매된 마필이다.

부경의 마주들은 서울의 마주들보다 과감한 베팅을 해온 것이다. 과거 외국산마 구매상한이 없을 때 큰손을 내두르던 서울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개별구매를 했을 경우 경주마가 되기 전까지 부상을 입거나 폐사될 위험과, 경매낙찰마보다 낮은 보험 보상액을 감수해야 한다. 어린 나이에 입도선매한 마필이 잘 뛰어주리라는 보장 역시 없다. 분명 현재 상당한 적자를 보는 마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몇 마리의 특출난 마필들 덕분에 드러나 보이지 않고 있다.


3. It's all about the money

지금까지 부경의 마주들은 개별구매로 좋은 마필을 거둬들여 왔다. 그 성공에 힘입은 것인지 이제 부경의 마주들은 경매에서도 서울을 압도하는 베팅을 하고 있다.

(표)

(표3)은 2008년 11월 1세마 경매부터 지난 9일 열린 2010년 11월 1세마 경매까지 낙찰가 상위 5개 경주마를 나타난 표다. 부경이 총 33마리, 서울이 총 24마리가 올라 있다. 최고가의 대부분은 부경의 마주들이 기록했고, 부경의 중간값은 7,000만원, 서울의 중간값은 4,785만원으로, 고가 경주마를 사들이는 부경 마주들의 엄청난 머니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개별거래부터 경매에 이르기까지 부경은 서울을 현저히 앞서고 있다.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서울에 한가지 희소식이라면, 이런 경향이 영원할 수 없다는 점이다.

(표)

(표4)는 2010년도에 서울경마공원이 책정한 상금과 부경경마공원이 책정한 상금을 각 경마공원의 마주수와 경주용 마필수로 나눈 것이다. 부경은 줄곧 서울보다 낮은 상금을 놓고 상금대비 더 많은 마주와 경주마가 치열한 경쟁을 해왔다. 부경에는 선진조교방법도, 발전된 시스템도 없다. (이 시스템 속에서 기수 한 명은 자살을 감행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과다한 비용에 알맞은 수입이 충족되지 못한다. 앞으로 손실이 누적되면서 적자 마주가 늘어날 경우 부경의 머니파워는 서서히 줄어들 것이고, 서울과 부경의 경주마 수준은 균형을 맞출 것이다. 2010년 1세마까지 부경이 휩쓸었기 때문에 그 시기는 빨라야 2~3년 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설혹 내년에라도 서울이 부경을 압도한다 해도 놀랍지 않은 것은, 그게 경마이기 때문이고, 서울의 조교사들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동구매와 구매가 상한제하에서 들여오는 외산마는 이미 서울이 앞서고 있으며, 나이스초이스와 머니카는 부경의 일류마들을 꺾었다. 올해의 코리안오크스에서는 서울이 부경을 압도했다.

물론 지금까지와 같이, 내년에도 부경의 우위가 점쳐진다. 그러나, 경마에서 결론을 내리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또 있을까?


4.

이 이야기를 조금 더 밀고 나가면 선진경마국들과 대한민국의 경주마 수준 차이를 또다른 시각에서 풀어나갈 수 있다. 지금 마사회에서 벌이는 해외원정이 얼마나 얼빠진 짓인지 말이다. 현지에서 조교시켜 출전시킨다는 경주마들이 하나같이 꼴찌를 맴돌고 있다는 소식만 들려오지 않는가?

아마 다음에는 “한국 기수는 바보인가?”를 쓸지도 모르겠다. 물론 결론은, 한국 기수는 바보가 아니다. 마사회가, 예상가들이, 바보다.

노던에이스가 더비에서 부상당하고 폐사된 후로, 그 허망함 때문인지 경마에 관심을 잃었다. 섭서디가 밸리브리에게 패할 때도, 밸리브리가 동반의강자에게 패할 때도, 동반의강자가 터프윈에게 패할 때도 어딘가 모르게 허망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오늘, 경마장을 가볼까 하다 피곤해서 한숨 푹 자고 오래 전부터 쓰고자 했던 내용을 쓰고 보니... 역시 허망하다.


ㅡ 참고자료 ㅡ
한국마사회(www.kra.co.kr)
한국마사회말혈통정보(www.studbook.co.kr)
서울마주협회(www.sroa.or.kr)
공공기관경영정보공개시스템(www.alio.go.kr)

2010/11/21 23:47 2010/11/21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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